방종우 야고보 신부님
성령 강림 대축일
사도행전 2,1-11 코린토 1서 12,3ㄷ-7.12-13 요한 20,19-23
+찬미예수님
이태리로 유학을 가라는 발령을 받은 뒤 처음으로 이태리어를 접한 날을 기억합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까지 독일어를 공부한 저에게 이태리어는 너무나도 생소한 언어였습니다.
발음도 발음이거니와 같은 동사임에도 불구하고 주어와 시제마다 형태가 변한다는 사실이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언어 체계였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저녁을 먹는다. 당신이 저녁을 먹는다. 그가 저녁을 먹는다. 라는 말을 할 때
우리나라 말은 모두 “먹는다”라는 동일한 동사를 쓰지만 이태리어 동사는 각각 다르게 변합니다.
뿐만 아니라 시제마다 또한 그 형태가 변화되니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나마 읽고 쓰는 건 생각할 시간이라도 있지 대화를 나누는 짧은 시간에
각기 다른 동사 변형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서른이 넘어, 내가 배우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 아닌 타의에 의해 배우게 된 낯선 언어.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어설프게 배우고 이태리에 나가서 생활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
심지어 이런 수준으로 나가 석사학위 박사학위를 받아온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온통 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어찌됐건 교구에서 명하였으니 유학을 나가긴 나가는데
그에 따를 고통스러운 시간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태리에 가보니 한국에서 몇 개월 배운 이태리어는 약 일주일이 지나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의 말은 어찌나 빠르고 성격은 또 얼마나 급한지
제대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어학생활을 하는 동안 다른 한국 신부들과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가,
오늘 독서의 성령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 사도들은 오순절을 맞이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바로 그 때에 거센 바람이 부는 소리가 나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성령이 내려앉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이 장면은 제자들이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가 개별적으로 선교를 하게 되는,
즉 다양한 지역에서 교회가 설립되는 시작점입니다.
이 언어의 능력으로 제자들은 다른 나라에 가서 선교를 하게 되고
예수님을 증언하게 되니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약속하신 ‘진리의 영’이
마침내 내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교회를 위해서 말도 통하지 않는 이태리로 왔는데 주님께서 하실 수만 있다면
나에게도 이태리어를 마음껏 구사할 수 있는 성령 쯤은 보내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5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즉, 정확히 작년 이맘 때 즈음 저는 박사 학위를 마치고 유학 생활을 마무리 한 채
인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지 1년이 흐른 지금, 지난 유학생활을 돌이켜 보면
‘이태리에서 참 많이 힘들었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족한 언어로 공부를 하느라 난감했던 시간,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을
떠올려 보면 군대를 다시 가면 다시 갔지 다시는 유학생활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에게 향했던 여러 가지 도움의 손길도 떠오릅니다.
낯선 언어를 가르쳐주시던 선생님들, 제 말을 경청해주시며 격려해주시던 교수님들,
저의 강론과 과제를 한땀 한땀 매만져주시던 할머니 수녀님들,
함께 공부하며 서로 힘을 냈던 외국인 친구들, 많은 기도로 지원해주신 신자분들,
없는 시간을 쪼개 언제나 꼼꼼이 저의 논문을 봐주신 지도 교수님들을 상기해 보면
그들의 도움 없이 과연 내가 건강히 비교적 짧은 시간에 공부를 잘 마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동료 사제들과 우스갯소리로 나누었던 말, 즉 예수님께서 고생하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이 실제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실제로 제 주변에는 수많은 성령의 은총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신자분들의 기도와 주변의 배려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지혜>의 은총이 있었고
공부를 통해 신앙의 진리를 깨닫는 <통찰>의 은총이 있었으며
유학 생활의 힘든 순간에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게되는 <식견>의 은총이 있었습니다.
부족하지만 노력을 통해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는 <용기>의 은총이 있었고
하느님의 뜻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의 은총 또한 있었으며
외국인들을 형제자매로 대하며 그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공경>의 은총을 배웠고
이를 통해 성숙한 사제 생활을 할 수 있는 <경외>의 은총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진리의 영을 보내시어 순간순간 지치고 힘든 시간마다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힘을 북돋아 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오늘은 이 성령의 일곱 가지 은총을 기념하는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일상 안에서 우리는 때로 기적을 꿈꾸고
주님의 현존을 원합니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주님의 움직임으로 인해 때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고
주님의 실재를 의심하거나 그에 실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령의 은총이란 한 순간에 모습을 드러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이야기 하듯, 주변 이웃들의 은사와 직분을 통해 성령의 은총들이 모이고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것은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같이
평화가 우리와 함께 하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손길입니다.
오늘 미사 후에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가 무엇인지 뽑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은사가 아닌,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입니다.
이를 기억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주님의 은총에 감사하며
담대히 이를 실천해 나갈 것을 오늘 미사 중에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 그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아멘.
서울대교구 방종우 야고보 신부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