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바리스타 자원봉사 첫 출근.
어제 선생님께 드립커피 내리는 법 배웠을 땐 제대로 이해한 것 같더니만, 혼자 하려니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 하얀 도화지가 된 것 같다. 밤새 커피콩 너머 기억을 태워버렸나보다. 다행히 이럴 줄 알고(?) 부지런히 메모해 놨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대략 난감할 뻔 했다.
첫 개시니 경건한 마음으로! 두 손 모으고! 빗자루를 꺼냈다.
나는 카페 오픈 멤버여서 바닥청소와 테이블 세팅을 해야 한다. 혹여나 먼지가 뭍었을지 모르니 깨끗하게 테이블을 닦았다.
이어서 음료 메뉴가 적혀 있는 입간판을 카페 밖으로 내놨다. 많은 분들이 카페에 오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서.. (초보 바리스타 응원 많이 해주세욧!!) 카페에 음악이 빠지면 안 되는데 아뿔싸 이걸 배우지 않았다. 어디서 음악을 켜더라? 어쩔 수 없이 '침묵의 카페'로 운영하기로 했다.
바닥 청소를 마치고 내친 김에 화장실도 둘러보았다.
어랏! 물비누가 떨어졌네. 화장실에는 없는 것 같은데... 어디 있을까? 리필 비누 찾아 삼만리. 여기저기 두리번 거리다 결국 찾았다. 외부에 세면대가 하나 더 있는데 거기 아래에 있었다. 잃어버린 어린 양 찾은 기분으로 비누를 갖고와 가득 채워 넣었다. 채워지는 물비누만큼 뿌듯함이 마음 가득 차올랐다. 시키지 않은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한 게 스스로 뿌듯했던 모양이다. 이게 뭐라고~ ㅎㅎ
바닥 청소, 테이블 정리, 재료 세팅. 모든 준비를 마쳤다.
어제 눈으로만 본 커피를 연습삼아 내려보기로 했다. 도서관 커피는 정통 핸드드립은 아니고 그냥 드립이다. 바리스타 선생님 말로는 핸드드립은 진짜 어려운 것이라고 한다. 물 내리는 속도, 높이, 돌리는 방식 등에 따라 커피 맛이 천지차이로 달라진단다. 도서관 커피가 그냥 드립커피여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 덕에 나 같은 생짜배기도 향긋한 커피향 맡으며 활동할 수 있으니 말이다.
먼저, 원두 담은 병에서 한 컵 가득 원두를 펐다. 이 때가 제일 좋다. 콧구멍을 지나쳐 폐속까지 전달되는 진한 커피향.
가슴을 활짝 펴고 커피향을 크게 들이킨다. 커피병에 코를 파묻고 향기 맡고 싶은 유혹을 간신히 뿌리쳤다.
원두를 분쇄기에 넣고 전원을 찾다가 무심코 버튼을 눌렀다. 으악!!!!!! 버튼을 누르자마자 우다다다다 갈려 떨어지는 원두가루들... 대참사다! 허겁지겁 컵을 받쳤는데 이미 원두가루 반 이상은 사방팔방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선생님이 컵을 바짝 대라고 한 게 이거였구나. 역시 경험만한 스승이 없어... 누가 볼새라 허둥지둥 대참사를 해결했다.
아직 드립커피 1단계 밖에 안 됐는데 두 다리가 후들후들, 식은땀이 났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저울과 타이머를 꺼냈다. 선생님께서는 동일한 커피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확한 양과 시간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다. 부지런히 선생님 말씀을 메모장에 받아적었다. '초 0점 맞춘 뒤, 180그람, 2분 30초, 100그람 물 더 넣기, 처음 약 140 정도임.' 근데 오늘 다시 보니 내가 썼는데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거의 명탐정 셜록홈즈처럼 단서 맞추기에 들어갔다. 메모를 뚤어져라 쳐다보며 하나씩 기억을 복기해갔다.
드립커피를 내리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원두 커피 한 스푼을 분쇄기에 넣고 간다. 커피 필터를 깐 드리퍼에 간 커피가루를 넣는다. 드리퍼를 저울에 올려 0점으로 무게를 맞춘다. 물을 먼저 조금 넣어 향을 돋군 후 물180그람을 넣는다. 그 사이 잘 우려나도록 스푼으로 살살 저어준다. 너무 쎄게 저으면 필터가 찢어지니 주의해야 한다. (난 자꾸 이 과정을 잊어버렸다.) 물을 넣은 뒤 2분 30초 정도 기다린다. 머그컵에다 드리퍼를 올려 놓으면 촤악 하고 우려난 커피베이스가 떨어진다. 커피베이스에 물 140그람을 넣으면 완성. 이 모든 과정은 정확한 타이밍과 오차 없는 용량을 지켜야 한다(라고... 말하고 싶다.) 연습용으로 커피를 세 잔이나 만들+버리고서 정리한 내용이다.
글로는 이렇게 쓸 수 있지만 막상 커피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졌다. 어리버리 부들부들~
다행인지, 불행인지 생짜배기 바리스타인 줄 알고 카페인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커피 못내리는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손님이 한 명도 없는 건 별로다. ^^;;; 놀면 뭐하나 싶어서 레모네이드도 타보고, 아이스아메리카노도 만들었다. 함께 자원봉사 하는 대학생 친구들에게 음료 한 잔씩을 선물했다. 카페 데스크에 앉아 밖을 보며 손님을 기다리는 사장님의 마음을 감히 헤아려봤다. 오고가는 저 사람들이 모두 우리 카페에 들어오길 간절히 바라시겠지. 나도 잠시 그 마음이 되어 어떻게 하면 도서관 카페에 많은 사람이 올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한 분의 손님이 왔다. 그녀는 오자마자 친한 척을 한다. 내 이름을 묻고, 나이를 묻는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자기 이야기를 한다. 난 묻지도 않았는데.. 그녀와의 이야기는 to be continued....
첫댓글 우와... 이거 큰 일 났네요. 다음 편은 언제 올라오나요?
이 도서관은 말을 하게하는 마법의 도서관인가봐요.ㅋㅋ
입간판을 내놓으며 하루를 준비하는 모습에서 힘이 느껴지네요. 멋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