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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시스 맥 알레스터, 이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선수는 부진한 시즌을 보낸 이후 팀의 중원에 더 많은 에너지와 역동성을 추가하고 싶어 한 위르겐 클롭에게 최우선 과제였다.
안필드로의 그의 이적은 지난 12월 월드컵에서 우승한 뒤 브라이튼을 클럽 역사상 최초로 유럽 대항전에 진출하게 도운 그의 2022-23 시즌을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그가 축구 선수 그리고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 성정한 이야기, 그가 어떻게 엘리트 미드필더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알렉시스 맥 알리스터는 그의 가족들과 모여 식탁에 둘러앉아 나누던 대화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별 다른 이야기도 아니었다. 아르헨티나 라 팜파주 산타 로사에서 태어난 그는 걸음마를 뗀 순간부터 공을 발에 달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 카를로스는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보카 주니어스, 그리고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에서 뛰었던 전투적인 레프트 백이었다. 또한 그의 삼촌 파트리시오는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였다. 알렉시스는 그의 두 형인 프란시스와 케빈처럼 집안 어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꿈을 꾸곤 했다. 그들의 아버지는 그의 친구이자 국가적 아이콘인 디에고 마라도나와 함께 플레이했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5살 무렵, 알렉시스는 일주일에 두 번씩 마라도나, 카를로스 테베스, 후안 로만 리켈메가 기술을 연마했던 부에노스 아이레스 노동자 지역 아카데미 클르부 소셜 파르케의 작은 구장에서 훈련을 받았다. 보카 주니어스의 팬으로 자란 그는 리켈메를 롤 모델로 삼으며 성장했다.
"우리 아들들은 그 지역 클럽에서 살다시피했죠. 먼저 한 사람이 훈련하고, 그다음에 다음 사람, 그리고 또 다음 사람. 그러는 동안에 아들들은 계속 거기에 머무르는 거죠. 세 아들 모두 축구 선수로서 제 동생과 저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겪으며 함께 자랐기 때문에 축구 선수로서 타고났다고 생각합니다." - 카를로스 맥 알리스터
클르부 JJ 바티스타에서 짧은 시간을 보낸 후 알렉시스와 그의 형제들은 2부 리그 팀인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유스팀에 합류했다.
축구 경기뿐만 아니라 맥 알리스터 형제들은 스페인 클럽 오사수나에 스카우터 업무를 하는 아버지를 돕기도 했다.
"형제 중 한 사람은 한 선수를, 다른 한 사람은 또 다른 선수를, 나머지 한 사람은 또 나머지 다른 선수를, 그렇게 따라다니며 아르헨티나 클럽들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보냈었죠." - 카를로스 맥 알리스터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중산층 지역에 기반을 둔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는 마라도나, 리켈메, 그리고 페르난도 레돈도와 같은 아르헨티나 축구의 저명한 인사들을 배출했다.
2016년 10월, 17세가 된 알렉시스는 센트럴 코르도바를 상대로 시니에 데뷔전을 치렀고, 24경기에 출전해 3골을 득점하며 팀이 승격하는 데 일조했다.
그다음 시즌, 세 형제는 다 함께 산 로렌조와의 리그 경기에 출전했다. 이는 가족의 큰 자부심이었다.
"그날은 감정적이었고 우리는 기쁘게 그날을 되돌아봅니다. 구단이 우리를 사람으로서 그리고 선수로서 이만큼 성장하게 해 줘서 너무 감사하죠. 그 일은 우리 마음속에 특별함으로 남아 있습니다." - 알렉시스 맥 알리스터
아르헨티노스의 총괄 매니저인 알레한드로 론코로니는 본지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알렉시스의 아버지와 그의 형제들이 우리 클럽에서 뛰었기 때문에 맥 알리스터 가족들은 우리와 연이 깊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사람들이죠."
"알렉시스는 항상 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들은 그가 플레이하는 방식에 공감했고, 그가 1군에서 데뷔한 이후로 모든 젊은이들이 그를 목표로 했습니다. 우리는 그를 매우 사랑했고 그의 커리어를 늘 지켜보고 있어요."
"알렉시스는 다소 조용하고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매우 재미있고 다소 반항적이기도 해요."
아르헨티노스에서의 알렉시스의 눈부신 활약은 성인 무대에서의 83경기 출장, 12골과 9개의 어시스트로 기록되었으며, 이는 브라이튼 남미 지역 스카우터들의 이목을 끌었다. 프리미어 리그 클럽의 데이터 기반 접근 방식은 그를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할 재능 있는 유망주로 체크했다.
그에 대한 리포트는 쌓여갔고, 결국 2019년 1월 브라이튼은 약 800만 파운드에 그의 소유권을 확보한 뒤 즉시 나머지 시즌 동안 그를 아르헨티노스로 재임대했다. 보카 주니어스도 그와 계약하고 싶어 했지만 브라이튼의 제안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EU 여권이 없었고 영국에서 취업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없었기에 맥 알리스터는 그해 6월 소년 시절 꿈꾸던 클럽인 보카 주니어스로 한 시즌 동안 임대로 이적하게 되었다.
그는 브라질 클럽인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와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데뷔전에서 득점을 했다. 이 대회는 남미의 챔피언스 리그에 해당하는 대회였다. 구스타보 알파로 감독 밑에서 그는 다양한 미드필더 역할을 맡아 빛을 발했는데, 이에 그는 9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칠레와의 친선 경기에서 리오넬 스칼로니 감독의 부름을 밭아 아르헨티나 성인 대표팀 데뷔전을 치르게 되었다.
그다음 달 브라이튼의 테크니컬 디렉터인 댄 애쉬워스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날아가 보카의 이웃이자 최대 라이벌인 리버 플레이트와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준결승 2차전 경기를 관람했다.
보카는 합산 동점을 허용하며 2-1로 패했지만 애쉬워스는 브라이튼이 예상보다 일찍 맥 알리스터를 데려올 수 있는 기회를 이용해야 한다고 확신할 만큼 그를 충분히 지켜보았다. 그들은 1월에 그의 임대를 종료시키기 위해 785,000 파운드 가량을 보카에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맥 알리스터는 2개월 후 보카가 프리메라 리그 타이틀을 차지하면서 우승 메달을 받게 되었다.
"알렉시스가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매우 어려웠지만,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알렉시스는 그 시점에서 세 가지 또는 네 가지 요구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않고는 잉글랜드 무대에서 뛸 수가 없었어요. 그 조건들은 선수가 국가대표팀에서 뛰어봤어야 했고, 클럽 레벨의 국제 대회에서 뛰어봤어야 했고, 팀에서 정기적인 출장 시간을 가졌어야 하는 그런 것들이었죠."
"알렉시스가 브라이튼에서 뛸 수 있으려면 FA의 특별 허가가 필요했는데, 그들은 허가를 내주었습니다. 브라이튼이 찾아와 줘서 무척 기뻤지만 보카를 떠나는 것도 알렉시스에겐 쉽지 않았죠. 그때 보카를 떠나지 않았더라면 7월에 이 모든 조건을 다시 충족해야 했기 때문에 여름엔 이적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 카를로스 맥 알리스터
보카에서 그는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로 명성을 떨쳤다. 아르헨티나 기자 마틴 마주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그는 끝내 프리킥의 제왕이 되었습니다. 코너킥도요. 그는 한두 차례 프리킥으로 득점했었고, 팀의 모든 장신 선수들이 앞으로 달려가면 그는 그들이 원하는 곳에다가 공을 집어넣어 줬습니다."
맥 알리스터는 보카에서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스트라이커 테베즈와 전 라치오 포워드 마우로 사라테와 함께 플레이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에게 유럽 클럽에서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사라테는 그에게 세리에 A가 최고의 리그라고 말했지만 테베즈는 프리미어 리그가 정점이라고 단호히 말했으며 잉글리시 팬들의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설명했다.
맥 알리스터는 영국에 도착했을 때 적응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기간이 얼마나 어려울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는 루마니아 스트라이커 플로린 안도네가 떠난 후 10번 셔츠를 이어받았고, 그레이엄 포터 감독은 2020년 3월 울브스와의 0-0 경기에서 후반 그를 교체 선수로 데뷔시켰다.
하지만 그 게임은 이후 코비드-19 판데믹으로 프리미어 리그와 전 세계 다른 리그들이 폐쇄되면서 향후 15주 동안 브라이튼이 치른 마지막 경기임이 입증되었다.
알렉시스의 어머니 실비나는 당시 영국을 방문 중이었고 여행 제한으로 인해 아르헨티나로 돌아갈 수 없었다. 맥 알리스터는 봉쇄 기간 동안의 그녀가 그에게 "바위"같은 존재였다고 묘사했다.
"여기 생활에 대한 고된 환영식이었죠. 알렉시스는 100일은 비가 내리는 지역에 왔고 기후와 국가에 적응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외출할 수 없는 그의 아파트에서 항상 시간을 보냈죠. 그래서 그는 원하는 만큼 문화에 적응할 수도 없었습니다." - 그레이엄 포터
하지만 그는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여 영어 실력을 키워나갔고, 사실 이미 보카에서부터 영어 수업은 시작되어 있었다. 그러나 축구의 부재는 그의 삶에 커다란 공허함을 남겼다.
"저는 추진력을 잃었고 선수로서 정체되어 있었습니다."- 알렉시스 맥 알리스터
6월 말 시즌이 재개되었을 때 브라이튼은 남은 경기를 치르며 강등을 피했다. 맥 알리스터는 마지막 9경기에서 4번의 선발 출전과 4번의 교체 출전을 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찾고 있었다. 아직 21세에 불과한 그는 처음에 프리미어 리그의 신체적 특성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스태프들은 그러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광범위한 근력 및 컨디셔닝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그의 헌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브라이튼에서의 첫 30경기에서 단 한 골을 득점했지만, 숙적 크리스탈 팰리스를 상대로 무승부를 거둘 수 있게 만든 추가 시간 동점골은 팬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었다.
맥 알리스터는 처음에 이브 비수마, 애런 무이, 데이비 프뢰퍼르 그리고 데일 스티븐스와 미드필더 자리를 놓고 경쟁에 직면했다. 그러나 경쟁자들은 모두 새로운 클럽으로 옮겨갔고, 맥 알리스터는 공을 소유하는 침착함, 공간을 찾아내는 번뜩임, 골을 노리는 눈을 통해 점차 자리를 잡았다.
지난 9월 첼시로 떠나기 전 포터의 마지막 풀 시즌이었던 2021-22 시즌은 알렉시스의 진정한 돌파구였다. 그는 38번의 리그 경기에서 단 5차례만 결정했고 5골 2도움에 기여했으며, 브라이튼이 전 시즌 16위에서 9위로 도약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맥 알리스터는 2022년 1월 에버튼 원정을 떠나 "전환점"을 맞는 경기를 펼쳤다. 그는 그날 20야드 거리에서 골문 상단 코너로 맛있는 한 방을 꽂아 넣은 것을 포함하여 2골을 기록하며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의 상승 궤도는 이번 시즌 초 로베르토 데 제르비 감독이 포터의 후임으로 팀을 이으면서 속도를 더했다. 에콰도르 출신의 모이세스 카이세도와 함께 더블 볼란치의 일원으로 플레이하며, 깊은 지역에서 상대의 강한 압박을 견디고 공을 소유하는 그의 침착함과 의지는 이 이탈리아 감독의 정확한 후방 플레이 스타일에 완벽히 들어맞았다.
이는 브라이튼이 리버풀보다 한 계단 아래인 6위를 기록하며 유로파 리그에 진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 다음 맥 알리스터는 11월과 12월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우승을 이끈 후 돌아와 자신의 다재다능함을 강조했다. 그는 6번, 8번 혹은 10번으로도 뛸 수 있음을 입증했으며 그 모든 위치에서 편안함을 보여줬다.
그리고 맥 알리스터는 경기장 밖에서는 잉글랜드 남해안 휴양지 브라이튼에서 소파에 앉아 남미 마테차를 마시며 TV로 축구를 시청하며 조용한 일상을 보내왔다. 그는 이웃 지역 호브에 있는 카페 말벡을 방문하여 그의 고향으로부터 그리운 음식들을 맛보기 위해 스커트 스테이크, 엠파나다, 튀긴 고구마를 주문하곤 했었다.
맥 알리스터는 어디를 그든지 그의 성씨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브라이튼이 아스톤 빌라와 경기를 했을 때, 빌라의 코치이자 21세기 초 선수로 두 시즌 가량 리버풀에서 뛰어 여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스코티쉬 게리 맥알리스터는 알렉시스에게 그들이 혹시 먼 친척인지 궁금해하면서 그에게 그의 조상에 대해 물었다.
그의 아버지 카를로스가 선수 시절 보여준 불꽃색의 머리카락은 스코틀랜드 신화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의 가족 뿌리는 아일랜드에 있다.
"우리는 아르헨티나의 페르가미노라는 곳으로 건너왔지만, 그것은 3~4세대 전의 일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제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하여 알렉시스가 태어난 산타 로사 지역으로 이사를 온 거죠."
"우리 가족은 항상 우리 조상이 아일랜드에서 왔다고 말합니다. 그 이전의 선대들이 스코틀랜드에서 왔는지, 스코틀랜드에서 아일랜드로 왔는지, 그 이후에 아르헨티나로 온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일랜드 출신이라 말해요." - 카를로스 맥 알리스터
아일랜드 방송사 RTE는 수도 더블린 북쪽의 작은 해안 마을인 도나베이트에서 알렉시스의 먼 사촌 중 한 명을 추적했다. 노엘 맥알리스터는 조상들이 1865년에 처음으로 아르헨티나로 이주할 때부터 이 지역에 맥알리스터라는 성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알렉시스 맥 알리스터는 1993년에 아르헨티나 대표로 세 번 뛰었지만 1994년 월드컵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한 그의 아버지와는 분명히 매우 다른 유형의 선수이다.
"DNA 검사가 필요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그가 뛰기 시작한 클럽과 관련이 있습니다. 클럽 파르케는 캄비아소, 리켈메, 테베즈와 같은 선수들을 배출했었죠. 정말 훌륭한 선수들이고 대다수 공격적인 선수들입니다. 아마 이러한 점이 알렉시스에게 훨씬 더 공격적인 스타일을 가질 수 있게 했을 것 같네요."
"제가 크고 중요한 팀에서 뛰며 1군에서 많은 경기를 뛴 것은 사실이지만 저는 단단하고 강한 마킹맨이었으며, 짧은 키에도 불구하고 헤딩을 매우 잘했었습니다. 저는 매우 수비적인 선수였죠. 하지만 알렉시스는 공을 가지고 있을 때 팀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멋진 패스를 보내줄 수 있는 선수입니다. 자신보다 팀을 더 먼저 생각하죠. 데드볼도 잘 다루고요. 저보다 훨씬 뛰어난 선수입니다. 신에게 감사를!" - 카를로스 맥 알리스터
맥 알리스터의 두 형은 여전히 고국에서 프로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27세의 프란시스는 로사리오 센트럴의 미드필더이고 25세의 케빈은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의 수비수이다.
현지 기자 마주르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 "다른 두 형제는 아버지와 더 가까운 스타일입니다. 아버지 맥 알리스터는 희생 그 자체인 선수였어요. 머리로 태클을 해야 한다면 머리로 태클을 해내는 선수였죠. 체력이 전부였고 키가 매우 작은데도 불구하고 헤딩을 아주 잘 해냈습니다. 가족 내에서 알렉시스는 확실히 발 기술이 뛰어난 편이고 4명 중 가장 기술적인 사람입니다."
맥 알리스터의 왼팔에 있는 타투 컬렉션 중에는 그의 부모와 형제의 이름이 있다.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로 데뷔한 날과 승격한 날 등 의미 있는 날짜들도 마찬가지다.
팔꿈치 주변에는 그와 그의 형제들이 착용한 셔츠의 번호가 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과 10번 셔츠를 입은 채로 공을 들고 걸어가는 어린 시절 본인의 이미지도 그려져 있다.
카를로스는 아들이 자랄 때 "아주 적은 일에만 집중을 하되, 열정을 가지고 임하라."라고 자주 말하곤 했다.
"그 조언이 우리와 함께 했죠. 우리는 프로 축구 선수가 된 것을 행운으로 여기면서 매우 즐겁게 경기를 즐기고 있어요." - 알렉시스 맥 알리스터
맥 알리스터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리오넬 메시를 처음 만났을 때 소름이 돋았다.
"저는 완전히 빨개졌어요. 홍당무였죠. 인사도 할 수 없었어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을 만나 정말 긴장해 버렸지만 그래도 환상적이었습니다. 잊지 못할 거예요. 아버지가 마라도나와 함께 뛰고 제가 메시와 함께 훈련할 수 있었던 것은 마법과도 같았습니다." - 알렉시스 맥 알리스터
메시는 알렉시스가 첫 대표팀 훈련 캠프에서 별명으로 놀림을 당하자 그를 보호하기도 했다.
"(머리색 때문에) 모두가 저를 'Colo'라고 불렀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Ginger'라는 뜻이죠.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메시가 팀원들에게 말해줬습니다. '얘는 Colo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다신 그렇게 부르지 마라!'라고 말이죠." - 알렉시스 맥 알리스터
그 이후로 알렉시스와 메시의 유대감은 크게 강화되었다.
2019년 칠레와 멕시코를 상대한 평가전에서 출전했던 맥 알리스터는, 기다림 끝에 작년 3월 베네수엘라와의 월드컵 예선에서 세 번째 대표팀 출전을 달성했다. 그 사이에 그는 일본에서 열린 올림픽에 출전하여 아르헨티나 U-23 대표팀에 합류하기도 했다.
FIFA가 스쿼드 멤버 규모를 23명에서 26명으로 늘릴 때까지도 그는 월드컵 스쿼드에 확실히 승선되리라 생각되지 않아 왔다.
허나 그 이후, 지오반니 로 셀소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토너먼트 시작 2주 전에 스쿼드에서 제외되자 팀에 채워야 할 공석이 발생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 충격적인 개막전 패배를 당한 이후 스칼로니는 간과했던 맥 알리스터를 출전시켰고 알렉시스는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기회를 꽉 붙잡았다. 그 이후 그는 녹아웃 스테이지로의 진출을 확정 지은 폴란드전 승리에서 첫 번째 A 매치 득점을 기록하였다.
맥 알리스터는 입지를 늘렸고 왼쪽 측면에 머무르며 메시와 훌륭한 호흡을 보여줌으로써 토너먼트의 스타 중 한 명임을 증명했다.
그의 공헌은 프랑스와의 결승전, 앙헬 디 마리아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절정에 달했다.
카타르에서 스칼로니의 스쿼드 중 6명만이 토너먼트에서 550분을 출전한 맥 알리스터보다 더 많은 플레이 타임을 기록했다.
브라이튼의 미드필더이자 리버풀의 전 선수 아담 랄라나는 그레이엄 헌터와의 인터뷰 팟캐스트에 출연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월드컵 동안 알렉시스의 플레이를 보는 것은 정말로 특별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플레이하진 않았지만 익숙해진 뒤론 자신을 증명했어요. 이 선수가 뛰지 않는 게 말이 안 될 정도로 잘했습니다."
"메시가 플레이를 연결하기 위해 알렉시스를 찾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무려 메시가 공격 빌드를 도와줄 선수를 찾을 때 말이죠. 메시가 아래로 내려오면 그가 위로 전진하고, 메시가 높게 올라가면 그는 뒤를 받쳐줍니다. 이것이 그의 축구 지능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결승전이 3-3 무승부로 끝난 후 곤잘로 몬티엘이 승부차기에서 우승을 확정 짓는 킥을 성공시켰을 때, 맥 알리스터는 관중석에서 기뻐하는 가족에게 키스를 날리며 눈물을 터트렸다.
"저와 조국에게 멋진 날이었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것이었고 모든 선수들의 최고점이죠."- 알렉시스 맥 알리스터
아르헨티나가 1986년 이후 처음으로 세계 챔피언에 등극하며 그들은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도는 오픈 버스 퍼레이드를 펼쳤고 집으로 돌아왔다.
"감정에 압도당했죠. 500만 명의 사람들이 거리에서 우리와 함께 축하를 나눴습니다." - 알렉시스 맥 알리스터
2주 동안의 휴식을 취하며 그는 산타 로사로 돌아갔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그의 24세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가 있었다. 가족들은 맥 알리스터의 머리에 산타 모자를 얹고 그가 월드컵에서 트로피에 키스하는 모습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었다.
1월 초 예상보다 일찍 브라이튼으로 돌아온 맥 알리스터의 태도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는 선수들과 스태프들로부터 영웅적인 환영을 받으며 훈련장으로 돌아왔다. 월드컵 메달을 목에 걸고 종이꽃가루들이 쏟아지자 그는 복제품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는 아르헨티나에 있을 때 너무 많이 울어서 흘릴 눈물이 없다며 농담했다.
5일 후, 그는 미들즈브러와의 FA컵 경기에서 교체로 출전해 놀라운 뒷발 피니쉬를 포함하여 두 골을 득점하며 승리를 이끌었다. 맥 알리스터는 소유권을 되찾기 위해 수비 진영으로 다시 달려가 공격을 시작했다.
그의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미래에 대한 추측이 커져갔지만 그의 집중력과 다짐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지난해 10월 재계약을 맺은 것은 팀과 그에게 서로 이익이 되었다. 2025년 여름까지의 재계약과 추가 1년 연장 옵션은 브라이튼이 그의 가치를 보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 여름 그를 원하는 클럽들이 그를 더 쉽게 데려올 수 있도록 맥 알리스터 측은 요청을 했고 관련 조항이 삽입되었다.
"그들이 나에게 보여준 믿음에 보답하기 위한 아이디어였습니다. 브라이튼은 제가 선수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성장하도록 도와주었어요." - 알렉시스 맥 알리스터
그리고 2023년 1월 월드컵 이후 첫 홈경기에서 아멕스 스타디움을 찾은 방문자는 리버풀이었다.
위르겐 클롭이 이미 큰 찬사를 보냈지만, 맥 알리스터의 지능적인 볼 배급과 지칠 줄 모르는 오프 더 볼 플레이는 리버풀에게 3-0 패배를 안겨준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고, 그의 평가는 높아져갔다. 그는 조엘 마팁의 패스 미스를 가로채 솔리 마치의 첫 골을 도왔다.
그는 모든 대회에서 12골(페널티킥 6개)을 넣어 브라이튼의 최다 득점자로서 시즌을 마쳤고, 40경기에 출전해 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브라이튼의 유럽 대항전 진출에 일조했다. 또한 그는 지난 5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추가시간 9분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가장 늦은 시간에 터진 결승골을 성공시켰다.
다재다능함뿐만 아니라 알렉시스는 내구성에서 매우 뛰어난 툴을 가졌다. 그는 브라이튼에서 3년 반 동안 질병이나 부상으로 리그 경기 중 단 4경기만을 결장했다.
그는 시즌 마지막 날 빌라에 2-1로 패한 브라이튼 팬들에게 눈물의 작별인사를 건넸고, 데 제르비는 맥 알리스터와 카이세도가 이번 여름에 이적할 것임을 확실히 확인해 주었다.
"브라이튼의 정책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떠날 수 있고, 팀을 옮겨 더 높은 수준에서 뛸 수 있어요. 그들은 둘 다 훌륭한 사람들이자 훌륭한 선수들입니다." - 로베르토 데 제르비
지난 3년 동안 맥 알리스터와 라커룸을 함께 쓴 랄라나는 그의 발전을 기쁘게 지켜봤다.
"그는 특별한 선수이자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가 여기에 정착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알렉시스의 영어 실력은 놀랍습니다. 그의 플레이 방식 또한 매우 순수하죠. 그가 축구로 도와주는 방식,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방식, 그가 플레이하는 방식에는 전혀 이기심이 없습니다."
"그는 가장 빠르거나 가장 강한 사람은 아니지만 상관없습니다. (머리를 가리키며) 이게 있으니까요. 모드리치 같아요. 너무 똑똑하죠. 그는 공이 누구보다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알렉시스는 그런 부류입니다." - 아담 랄라나
브라이튼에서 맥 알리스터에 대해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피치에서는 치열한 싸움꾼, 피치 밖에서는 수줍음 많고 예의 바르고 겸손한 선수가 바로 그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열린 아르헨티나 팀 동료 라우타로 마르티네즈의 결혼식에 참석한 그는 여자친구 에일렌 코바와 함께 휴가차 마이애미로 향했다. 그는 엣지워터 지역에 200만 달러짜리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맥 알리스터는 플로리다에 기반을 둔 온라인 신문 Infobae에 리버풀로 합류할 가능성에 대하여 자신은 "매우 침착"하다고 말했다. 그의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는 다음 시즌 안필드에서 챔피언스 리그에 나서지 못하는 대신 클롭의 팀이 탐내는 지위를 되찾도록 돕는 도전에 열광했다.
"목표는 더 많은 타이틀을 획득하기 위해 개인과 선수로서 계속 발전하는 것입니다. 저는 24살이고 세계 챔피언이고 세계 최고의 리그 중 하나에서 뛰고 있으며 제 커리어가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 여전히 출발선에 있고 정말 발전하길 바라죠." - 알렉시스 맥 알리스터
그는 이제 막 출발했다. 산타 로사에서 온 소년은 이제 리버풀 미드필더 재건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이 글을 보니 맥알이 우리팀에서 실패할거란 생각이 1도 안 드네요.ㅎ
북마크 해놨는데 까먹고 이제야 봤네요.
편하게 잘 읽었습니다.
뭔가 나름 탄탄대로의 커리어를 차근차근 밟아온 느낌인데 리버풀에서 방점을 찍을 수 있길…
안코 뭐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댓글이 너무 없어요.
번역러분들 보람되게 댓글 좀 달아들 주시지…
정성스러운 글 잘 읽었습니다!
제 유니폼 컬렉션이 전부 미드필더들일만큼 미드필더를 좋아하는 편인데요.
맥 알리스터 역시도 제가 좋아하는 선수 중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바이날둠, 티아고, 헨더슨, 파비뉴, 아놀드 갖고 있는데..
유일한 수비수인 아놀드마저 실제론 몹시 미드필더스러운 선수죠. ㅋㅋㅋ
실제론 유스 땐 미드필더로 뛰었구요.
랄라나가 거의 리버풀 스카우터 수준으로 실력, 인성, 태도에 대해 3년간 맥 알리스터를 리뷰해줬네요!!
역시 클롭풀의 황태자답습니다. ㅋㅋ
길고긴 정성글이라 저도 천천히 열심히 읽었네요
완벽한 축구가족의 일원이였다니 더 흥미진진하구요
축구선수로서의 능력뿐 아니라 인간 자체로서도 맥알리스터는 영입되자마자 정이가는 선수네요
우리팀 리버풀에서도 탄탄대로 커리어 이어나갔으면 하네요
항상 우리팀도 일명 데드볼 스페셜리스트가 한명 있었으면 하고 바랬는데
그런면에서도 너무 기대가 됩니다
천천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큰 글이였네요 감사합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가장 빠르고 가장 강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영리하고 기술적이었던 랄라나가 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