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들의 세계지, 있는 것이라곤 쥐들과 치즈밖에 없는.”
“쥐들의 세계는 어떤 곳인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비린내가 나는 세계였지. 임자 없는 치즈 땅이 무한히 펼쳐져 있다고 생각해봐. 모든 쥐들이 조금이라도 넓고, 좋은 치즈 땅을 얻기 위해 안달이 났었지.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 다투는 게 일이었어. 사상자(子)가 끊이질 않았지.”
나는 개척이 한 창 진행되고 있을 무렵, 미국 서부 지역의 광활한 대지에 울려 퍼지는 총소리를 상상해 보았다.
“지금은 피비린내가 나는 세계가 아니라는 얘기야?”
“그럼, 아주 좋은 곳이지. 시기, 질투 따위는 없는 곳이야. 서로에게 화를 내거나, 남 몰래 흉을 보는 일도 없지. 그 뿐만이 아니야. 쥐들은 항상 서로에게 상냥하고, 공손한 말투를 사용해. 친절과 배려로 가득 찬 곳이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몇 년 전부터 해마다 무서운 속도로 기온이 올라가고 있어. 이대로라면 얼마 못가 치즈가 다 녹아 버릴 거야. 쥐들의 세계가 녹아 없어져 버리는 거지. 그렇게 되면 넓고 좋은 치즈 땅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 할 거야. 다시 말해서 쥐들은 그동안 쓸 데 없는 땅따먹기에 시간 낭비를 해 온 셈이지. 이제 그들은 아등바등 싸울 필요가 없어진 거야. 그리고 악의가 비워진 자리에 선의를 채워 넣기 시작했어. 아름다운 세계가 도래하기 시작 한 거지.”
“오히려 더 슬픈 얘기처럼 들리는군. 희극이 아니라 비극에 가까운 이야기이군. 세상은 도대체 왜 그런 제한조건들이 있어야만 제대로 굴러가는 거지?”
쥐는 내 말을 무시한 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제곡인 ‘La Vita E Bella’를 휘파람으로 불기 시작했다. 꿈에서 깨보니 어젯밤에 미처 끄지 못한 TV에서 ‘La Vita E Bella’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TV를 끄고 일기장을 펼치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쥐는 영악한 동물이다.’
나는 한 학기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자취방에 있는 콘센트의 위치를 전부 파악할 수가 있었다. 대학교 때문에 난생 처음 느껴본 ‘혼자 산다는 것’의 의미는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처음 4개월 동안 내가 사용한 콘센트의 용도는 고작 3가지였다. 헤어드라이기, 핸드폰 충전기, 노트북 충전기. 방학 첫 날, 나는 대형 마트에 가서 전기스탠드와 전기 주전자와 멀티 탭을 샀다. 그리고 같은 날, 나는 처음으로 자취방의 가스레인지를 작동시켜 보았다. 그것은 게으르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무언가에 친숙해지기 위해서는 누구나 어느 정도의 적응 기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 시간이 짧던 길던 간에.
‘혼자 산다는 것’에 적응하는 중에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혼자 보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서서 손을 뻗으면 손에 닿을 천장을, 혼자 누워 잠을 기다리는 입장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너무나도 멀어 보였다. 더욱이 새로 한 도배 때문에 티끌 하나 없이 하얀 천장은 오히려 내 마음을 더욱 시리게 만들었다. 밤이 깊어갈 수록 천장은 더 멀어져 갔다. 하얀 천장과 누워있는 나 사이에 존재하는 공동의 자리 또한 계속해서 넓어져 갔고, 그 곳에는 어디서 왔는지 모를 외로움들이 빼곡히 들어박혔다. 천장이 싫어 한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집 구조상 왼쪽에는 차가운 벽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없어서, 한 참을 뒤척이다 더 이상 뒤척이기 힘들 정도로 피곤해지면 겨우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난 후에 맞는 아침은 결코 ‘하루의 시작을 여는 상쾌한’이라는 수식어에 어울리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다. 불규칙한 수면시간으로 인한 두통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두통을 진정시키기 위해 가만히 누워 있다가 어느 정도 정신이 들면 어느새 또 다른 외로움들이 다가와 있었다. 혼자서 하루의 끝과 하루의 시작에 선다는 것은 짧지 않은 적응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천장에는 야광별을 붙이고, 스스로 아침식사를 위한 음식을 만든다. 적응 기간을 잘 보내기 위해 내가 취한 조취들은 실로 간단한 것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잠들기 전에 바라보는 천장에는 항상 야광별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만 해도 나는 게츠비가 강 건너의 초록 불빛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그 불빛들을 지켜보곤 했었다. 중, 고등학교 때는 보통 침대에 눕는 즉시 잠에 빠졌기 때문에 야광별에 관련한 기억이 거의 없지만, 가끔씩 사춘기 병이 도져 우울한 날에는 한참동안 야광별을 바라보다 잠들곤 했다. 자취방에 야광별을 붙이고 천장과 마주한 첫날, 나는 그렇게 많이 뒤척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스스로 아침을 준비하는 것도 예상외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고물상에서 산 전기 토스트기로 빵을 굽고 딸기잼을 바른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조금 두른 후에 계란 프라이를 한다. 마지막으로 전자레인지로 우유를 데운 후에 코코아 파우더를 넣고 젓는다. 비록 양적 측면이나 질적 측면에서 만족할 만한 아침식사는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은 외로움을 떨쳐내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사는 자취방은 오래된 4층짜리 벽돌건물의 3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건물 주인이 4층에 살면서, 나머지 층에는 세입자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각 층마다 들어서 있는 사람들이 달랐다.
일층에는 세탁소가 있었다. 내 방에는 원래부터 드럼세탁기가 있었기 때문에, 세탁소를 자주 이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불을 세탁하거나, 아니면 드라이가 필요한 옷가지들은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종종 세탁소를 이용했다. 반년동안 자취방을 오가면서 나는 나 이외의 손님을 본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막상 세탁물을 맡기려고 가면 세탁소 주인아저씨는 온갖 세탁물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세탁물을 맡기는 것 이외에도 내가 세탁소를 들르는 경우가 있었다. 내가 집을 비웠을 때, 내 앞으로 오는 택배를 찾아야 하는 경우였다. 택배 배달원들은 3층에 있는 자취생들이 부재 시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세탁소에 물건들을 맡겼다. 내 입장에서는 그런 물건들을 맡김으로써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싫었다. 그렇기 때문에 택배 물건들을 찾으러 세탁소를 갈 때면 나는 항상 알로에가 든 음료수를 사갔다. 그 음료수는 감사함과 미안함의 표시였다.
이층에는 어떤 회사의 사무실이 있었다. 무슨 일을 하는 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사무실이었다. 일을 하는 동안에도 도어 록이 설치된 철제문은 대부분 닫혀 있었다. 가끔씩 열린 문 틈새로 사무실 안을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는데, 사원들 모두 저마다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원들은 전부 5~6명 정도였는데, 마주칠 때마다 얼굴에 피곤이 배어나왔다. 건물 입구에 설치된 철제 우편함에는 각 층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구분 짓기 위해 건물 주인이 수성 사인펜으로 이름을 써놓았다. 1층 세탁소, 4층 주인집, 301호부터 304호. 그리고 마지막으로 2층 미성이라는 문구까지. 나는 인터넷에 미성이라는 이름을 검색해보았지만 그럴듯한 정보는 얻지 못했다.
삼층은 4개의 원룸이 들어서 있어서, 대개 대학생들의 자취방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301호부터 304호까지 있었고, 내가 살고 있는 호수는 301호였다. 302호에는 여자 중국인 유학생이 살고 있었고, 304호에는 나와 같은 대학에 재학 중인 남학생이, 303호에는 젊은 남자가 살고 있었다. 3층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간의 교류는 없었고, ‘어느 호수에 어떤 얼굴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다‘ 정도만 알고 있는 실정이었다.
사층에는 건물 주인과 그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구성원은 건물 주인과 그의 아내, 음대를 다니는 딸과 과학고를 다닌다는 아들을 포함해 총 4명이었다. 딸은 몇 번 본적이 있지만, 아들은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아들을 떠올리는 편이 훨씬 수월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끔 주인아주머니를 지나 칠 때마다 한 시간 가까이 아들 얘기를 들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 얘기를 듣다가 수업에 늦은 적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어떤 화제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그 이야기 속에 일정한 흐름이 있다. 흐름 속에는 높낮이가 있어서, 높아질 때는 몰아치고 내려올 때는 쉬어가기 마련인데, 아주머니의 얘기는 ‘쉬어가기’가 없었다. 마치 조수 때를 잊어버린 바닷물처럼. 내 입장에서는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만한 흐름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주머니의 말을 끊고 ‘죄송합니다, 지금 제가 바빠서요.’라고 말할 성격도 못되었다.
나는 새벽 1시쯤에 꿈에서 깼다. 쥐가 나오는 꿈이었다. 처음 쥐와 치즈세계에 관한 꿈을 꾼 이후로 이따금씩 그와 관련된 꿈을 꾸게 되었다. 다시 잠들기 위해 눈을 감고 있었지만, 도통 잠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전기스탠드를 켜고 서머셋 몸의 <달과 6펜스>를 읽었다. 책을 좀 읽다가 다시 잠에 들 생각이었는데, 허기가 심해서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잠옷 차림 그대로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편의점에 들어갔다. 물건을 고르던 중에 중년 남성 2명이 들어왔다. 아마도 주류나 담배를 사러 온 것이리라. 보통 나는 편의점에 가면 고추장이 들어간 삼각 김밥만 샀었는데, 새벽녘이었기 때문에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의점에서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찾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편의점 안을 몇 번씩 오가면서 적당한 음식을 고르고 있는데, 갑자기 중년 남성 중 한명의 언성이 높아졌다.
“거, 왜 말길을 못 알아들어? 젊은 사람이?”
“원래 규정이 그래요. 종이컵은 따로 구매 하셔야 되요.”
“막걸리를 3병이나 샀는데, 종이컵 몇 개를 못 줘?”
상황 파악은 어렵지 않았다. 중년 남성 쪽에서는 ‘막걸리를 몇 병 샀는데 종이컵 몇 개를 왜 못 주냐‘는 항의였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아르바이트생 신분으로 종이컵을 마음대로 줄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원래 규정 상 종이컵은 엄연히 상품에 해당한다. 따라서 무상으로 제공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나는 그 싸움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궁금했다. 옆에서 물건을 고르는 척 하면서, 곁눈질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중년 남성 중 언성을 높이고 있던 사람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세탁소 주인이었다. 그는 실랑이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편의점 안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 했다.
“죄송합니다. 종이컵을 그냥 드릴 순 없어요.”
“아니, 그거 얼마나 한다고 이래? 내가 종이컵 백 개를 달란 것도 아니고. 몇 개를 못주나? 원 치사해서. 그렇게 장사하는 거 아니라니까. 빨리 몇 개만 좀 줘봐.”
“…….”
아르바이트생은 묵묵히 자신의 핸드폰을 쳐다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름이 김경일. 알았어. 한 번 보자고.”
그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왼쪽 가슴에 달린 명찰을 보면서 말했다.
“여기 주인이 오전에 일하는 젊은 여자 맞지? 어떻게 되나 한 번 봐. 젊은 놈이 왜 이렇게 말길을 못 알아들어?”
계속해서 잠자코 있던 아르바이트생도 이번에는 기분이 나빴는지 “교육 받을 때 그렇게 받았다니까요. 말하던지 말든지 맘대로 하세요.”라며 응수했다.
세탁소 주인이 나가면서 가래침을 뱉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바나나 우유와 맥반석 계란을 고르고 계산을 했다.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세탁소 앞에 놓인 평상이 보였다. 평상에서는 세탁소 주인을 포함해 중년 남성 몇몇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욕지거리를 하고 있던 세탁소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뱉어 놓고 계단을 후다닥 뛰어 올라갔다. 그가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거두어 들였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나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로 내가 세탁소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계절은 어느새 여름의 한복판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낮에는 매미 소리가 들리고, 밤에는 모기 때문에 잠에서 깨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처음 타지에 온 것이 2월 초 쯤 이었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심한 날은 고향과 타지의 온도가 5도 이상 차이가 났다. 상상 이상의 추위였다. 이제는 상상 이상의 더위를 겪어야 할 차례였다.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내 자취생활도 변하고 있었다. 이제는 혼자서 스스로를 대해야 하는 상황들이 어색하지 않았다. 꼭 정비례 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자취 생활에 잘 적응할수록 자취방에 들어서는 물건들이 많아졌다. 방향제와 모기장부터 선풍기, 텔레비전, 그리고 라디오까지. 그 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여러 가지 물건들이 필요해지기 시작했다.
그 날도 그런 물건들 중 하나를 늘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자취방에 놓여있었던 에어컨의 필터를 청소하고 있었다. 에어컨에서 필터를 분리 한 다음, 다 쓴 칫솔 으로 필터사이의 먼지들을 털어냈다. 중성세제를 사용해 필터를 세척하고, 다시 한 번 물에 씻어서 햇빛에 말렸다. 준비를 끝마치고 막상 에어컨을 작동시키려니까 에어컨을 조종하는 리모컨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싱크대 위의 수납공간들과 책상의 서랍들을 열어보고 최종적으로는 에어컨 주위를 꼼꼼히 살폈지만, 어디에도 에어컨의 리모컨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원래부터 자취방에 있었던 에어컨인 점을 감안해 4층에 올라가보기로 하였다. 세탁소에 맡겨진 택배를 찾으러 갈 때처럼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더군다나 문을 열었을 때 주인아주머니가 나온다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롤러코스터를 한바탕 타야 하리라. 나는 계단을 하나 올랐다가 멈춰 섰다. 망설이다가 다시 오른다, 그리고 다시 멈춰 선다. 그렇게 계단을 오르다 보니 나는 마치 어린아이가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한쪽발로만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생각보다 행동을 앞서게 해야만 했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기척이 없었다.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른다. 몸을 돌려서 날듯이 내려오려는데, 철제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불길한 예감은 항상 맞아 들어간다.
“어, 301호 학생. 오랜만이네요.”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그래요. 잘 지내고 있어요? 불편한 건 없죠?”
말 끝부분에 미세하게나마 사투리의 흔적이 남아있다. 아마도 충청도일 것이다.
“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잘 지내고 있어요.”
“밤에 시끄럽지는 않아요? 제가 요즘 찬송가를 틀어놓거든요. 괜찮던가요?”
“네, 괜찮아요. 다른 방들도 다 조용해서 깊이 잘 자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전개다. 이제 내가 문을 두드린 이유를 말하고, 원하는 물건을 얻어서 돌아가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나는 시시한 모험담 속에 나오는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문 열어 놓으니까 좀 소리가 들리는구나. 그래도 다행이네요. 준형 학생도 교회 다닌다고 그랬죠, 저번에?”
“네, 모태신앙입니다.”
“그래요. 참 다행이다. 고향에서는 그럼 교회 잘 다녔겠네. 여기 와서도 교회 잘 다니나요?”
“매 번 가지는 못하지만, 아버지 아시는 분이 계셔서 되도록 그쪽 교회에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요. 잠깐만 기다려 봐요. 내가 들어보니까 저 찬송가 CD가 참 좋더라고. 준형 학생도 하나 줘야겠어.”
나는 아무리 시시한 모험담이라고 해도, 그 속에는 위기가 도사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때로는 악당이나 용의 형태로, 때로는 찬송가의 형태로.
“여기 있어요. 이게 참 좋더라고. 영어로도 나오니까, 영어 공부에도 도움 되고. 가끔씩 들어봐요.”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그런데 혹시 에어컨 리모컨 있으신가요? 제가 찾아본다고 찾아보긴 했는데 아직 못 찾았네요.”
“아, 301호 에어컨 리모컨. 내가 깜빡했네. 내 정신 좀 봐. 에어컨은 켜 봤어요? 아, 참 리모컨이 있어야 켜보지. 잠시만 있어봐요.”
슬슬 이야기가 마무리 될 참이다. 비록 공주님은 없지만 주인공은 행복해 질 것이고, 모험담 속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각자 자기들의 세계로 다시 되돌아가야 할 시간 이다.
“여기 있네. 저번 학생 때도 깜빡 했었는데, 이번에도 또 그러네. 미안해요. 건전지가 남아 있으려나? 한 번 같이 가서 확인을 해봐요. 에어컨이 잘 되는지도 한 번 봐야 하니까.”
주인아주머니와 함께 내려오면서 나는 방을 좀 더 깨끗이 쓰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방바닥에는 수건이 굴러다니고, 의자에는 지난 3일 동안 입었던 옷들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용케도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서둘러 에어컨 리모컨을 작동시켰다. 다행히도 에어컨은 정상이었다.
“잘 돼서 다행이네. 필터 청소는 했어요?”
“네, 아까 칫솔로 먼지 닦고, 세제로도 한 번 씻었어요.”
“그래요, 참 깔끔하기도 해, 우리 준형학생은.”
아주머니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수건들을 발로 밀어내며 말했다.
“어머, 이건 야광별이야? 전자레인지도 샀네. 노트북으로 공부하고 있었구나.”
“네, 공모전 나간다고 해서 보고서 좀 만들고 있었어요.”
“그래요. 이 노트북으로 CD도 들을 수 있죠?”
“네, 그렇긴 그렇죠.”
“찬송가 한 번 들어보면 안 될까? 준형 학생, 또 너무 공부만 하면 안 돼요. 적당히 쉬어가면서 해야지.”
나는 노트북에 CD를 넣고, 찬송가를 재생시켰다.
“잘 나와요. 감사합니다.”
“그래, 그래. 얼마나 좋아요. 머리 공부만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야. 마음의 공부도 해야지. 요즘 젊은 학생들은 너무 한 쪽밖에 못보고 있어. 준형 학생도 소홀히 하면 안 돼요. 준형 학생은 세례는 받았나?”
“모태 신앙이라서 어렸을 때 유아세례 받았었어요.”
“유아세례를 받았구나. 근데 준형 학생, 그 걸로는 부족해. 우리 아들도 유아세례 받았었거든. 근데 최근에 공부 하느라 너무 힘들어해서, 저번 주에 침례를 받고 왔어. 그랬더니 마음이 너무너무 편안하다는 거야. 그 뒤로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는지 스트레스가 없어져서 공부도 너무 잘되고 그러나봐.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먼저 교회가야 된다고 그러네.”
나는 또 한 번의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이 생각하는 것이 모두 이뤄지는 모험담은 후세에 널리 회자될 정도로 좋은 이야기가 못되는 것이다.
“네, 정말 잘됐네요.”
“그래, 정말 잘 됐다니까. 준형 학생도 이참에 침례를 받아 보는 게 어때요? 이번 주에 우리 아들이랑 한 번 같이 가면 어떨까?”
“음, 저도 교회를 다니고 있는 입장이라 서요. 더군다나 아버지 지인분이 그쪽에 목사님으로 계셔서 다른 교회로 가기가 좀 곤란하네요. 이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려구요.”
아주머니는 스승이 하찮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제자를 일깨우듯이 말했다.
“걱정 하지 마. 자기 신앙이 중요한 거지. 나도 보통 교회에서는 은혜를 별로 못 받았거든. 근데 이 교회 와서는 정말 많은 은혜를 받았어. 내 안에 믿음과 성령이 얼마나 충만한지 몰라요. 준형 학생도 그런 은혜를 받았으면 정말 좋겠는데. 매 주 토요일마다 신자들 가정에서 친목회의 같은 걸 하거든요. 준형 학생도 토요일 거기 가서 좋은 말씀 나누고 일요일에 같이 교회 가면 정말 좋을 텐데.”
나는 내 머릿속에 주인공이 패배하는 모험담이 있었는지 뒤져보기 시작했다.
“네. 그런데 제가 이번 주 토요일에는 학원 접수를 하러 가야 돼서요. 시간이 될지 모르겠네요.”
“무슨 학원 접수를 하는데요?”
“토익 학원이요. 어차피 나중에는 필수로 해야 될 공부고, 전공과목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그래요, 열심히 해야지. 근데 준형 학생, 마음이 공허하면 안돼요. 공부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공허하면 어떻게 할 거야? 우리 아들도 침례 받고 나서부터는 소리 내서 기도해요. 글로 읽는 것도 좋지만, 소리 내서 말해 본다는 거랑은 또 다르거든. 한 번 따라 해봐요. 하나님이, 어 잠시 만요.”
아주머니의 핸드폰에서는 벨소리로 찬송가가 흘러나왔다. 핸드폰에서 나오는 찬송가는 노트북에서 나오는 찬송가와 겹쳐서 내 머리를 어지럽게 하고 있었다.
“예, 아 그러세요. 잠시 만요. 제가 확인해보고 전화를 다시 드릴게요.”
아주머니는 전화를 끊고 매우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준형 학생, 내가 토요일 날 가는 걸로 알고 있을게. 준형 학생 정도면 아줌마 말 알아들었을 거라 생각해요. 꼭 같이 가요. 찬송가도 틈틈이 들어보세요. 그럼 토요일 날 봐요.”
“장담은 못 드려요. CD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토요일 날, 아주머니의 전화는 오지 않았다, 아니 올 수가 없었다. 내가 전화기를 꺼두었기 때문이다. 전화상으로 몇 십분 동안이나 계속되는 아주머니의 말을 들어가면서, 그 제안을 빠져나가기 위해 이리저리 핑계거리를 찾고 싶지는 않았다. 주인공은 결국 아름다운 얘기를 빚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젠 책장을 덮어야 할 시간이다. 어찌됐든 모든 이야기는 결국 결말로 흘러가기 마련 인 것이다. 만일 이 책에 에필로그가 있다면 아마 이렇게 흘러가지 않을까, ‘그 후로 주인공은 주인아주머니를 피해 다녀야만 했다.’라고. 그리고 그 에필로그는 실로 적확한 것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점점 나 자신을 대해야 하는 순간들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굳이 내가 스스로에게 묻지 않아도 5평 남짓한 자취방에 있는 야광 별들과 여러 가전제품들은 그렇다는 사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잘못 되어 있었다. 아무리 깊은 반추를 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왜 주인아주머니와 세탁소주인을 피해 다녀야 하는가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와는 상관없이 대학 1학년생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은 정해져 있었다. 영어 공부와, 운전면허. 그리고 나는 대충과 열심의 중간 정도로 영어 공부를 하고, 면허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나는 운전면허학원을 가기 위해 학원차를 이용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보다 이편이 시간적, 금전적 비용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다시 한 번 시간 확인 차 들어가 본 학원 홈페이지에서 ‘2호차는 XXX 삼거리 쪽에서 매 시 53분에 탑승 가능합니다.’라는 글을 보고 집을 나섰다. 차를 이용해 본 경험이 서너 번 정도 있었는데, 생각보다 매 번 차 탑승 시간이 들쭉날쭉했다. 그래서 나는 10분 정도 일찍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삼거리 쪽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았다. 5시 42분 이었다. 귀에 꼽은 이어폰을 통해서 노래가 흘러 나왔다. 노래 소리가 너무 커서 음량을 줄이려다 관뒀다. 땀으로 흥건한 손을 바지에 넣기 싫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지독한 더위였다. 3곡 정도가 지나가자 온 몸이 땀범벅이 됐다. 얼굴에서 흘러내린 땀이 신발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4번째 곡의 1절이 끝나자 학원 차의 외양과 비슷한 노란색 차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차를 타기 위해 손을 들었다가 4호차라고 써진 노란색 스티커를 본 후에, 손을 내리고 다시 기다리는 입장으로 되돌아갔다. 내가 타야할 차는 2호차였기 때문이다. 시계는 6시 4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20분을 넘게 기다렸지만, 도통 차가 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운전기사아저씨에게 전화를 했다.
“2호입니다.”
4일전에도 3일전에도 그제도 계속해서 매번 똑같은 말투가 흘러나온다. 자동응답기가 전화를 대신 받은 것 같다.
“여보세요, XXX 3거리에서 차 타려고 하는데, 언제쯤 오시나요?”
나는 아직 완전히 익숙하지 않은 서울말로, 가능한 한 최대한 정중하게 물었다.
“XXX 3거리요?”
낌새가 좀 수상했다. 왠지 아저씨가 말을 이어 나간다면, 뭔가 좋지 못한 일이 생길 것만 같아서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네, 홈페이지에는 매시 53분에 온다고 하셔서 40분부터 기다렸는데, 아직 안 오셔서요.” 직감이 안 좋았던 데다가, 20분 동안 여름의 태양에 질려버린 나의 말투는 상당히 사무적으로 변해 있었다.
“거 4호차 타세요, 4호차. XXX 3거리는 4호차 타세요.”
그러지 않길 바랐지만 내 예감이 맞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이상했다. 분명히 일전에 내가 3~4번 이용했던 차의 창틀에는 4가 아닌 2라고 써진 빛바랜 노란색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4 호차는 이미 지나갔어요. 그리고 XXX 3거리는 4호차 타라구요? 제가 그제도 2호차 탔었는데, 저 아시잖아요. 매 번 모자 쓰고 마른 남자 학생이요. 학원 갈 때나 올 때나 계속 2 호차만 탔었어요.”
이 말을 하면서 나는 어느 새 어금니에 힘이 들어간 것을 느꼈다.
“그러면 미리 전화를 했어야지. 오늘은 4호차 타세요.”
“4호차는 이미 지나가버렸어요. 홈페이지에는 무조건 매시에 정해진 시각에 차가 온다고 나와 있는데요. 저번에는 전화를 안 해도 됐었는데, 매 번 미리 전화를 해야 하는 건가요?”
“XXX 삼거리 면은, 거 4호차 타라니까요. 4호차가 오늘은 그 쪽을 갑니다.”
나는 앞으로 어떤 학원을 다니던지 간에 4호차를 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니요, 이미 4호차가 지나갔구요. 저는 계속 2호차를 탔었어요. 홈페이지에는 매 시마다 차가, 아닙니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전화를 끊고 나는 지하철역으로 달렸다.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이용해야 하는 중앙선은 배차 간격이 상당히 길다. 더군다나 내가 들어야 할 수업시간은 30분밖에 남지 않았고, 학원 규정상 예약한 수업시간에 가지 못할 경우 수강생 측에서 돈을 환불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시간도 없었다. 태양이 선물한 끈적끈적한 땀과 함께 나는 달려야 했다. 달리는 동안 이어폰이 빠져서 땅바닥에 끌렸다.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잠시 멈춰서 땀범벅이 된 손으로 MP3를 끄고 이어폰을 정리해서 가방 안에 아무렇게나 쳐 넣었다.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는데 문득 지하철이 역을 막 통과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왠지 그래야 이야기가 맞아떨어지는 듯싶었다. ‘어디까지 꼬이나 보자.’ 모퉁이를 돌아서 지갑을 빼고, 고개를 들어 지하철 상태를 확인했다. 당 역 도착이었다. 가끔씩은 예상했던 이야기와 어긋나도 상당히 괜찮다는 생각을 하며 날듯이 지하철에 탑승했다. 타자마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속옷과 바지가 땀에 절어 한 겹처럼 붙어있는 것이 느껴졌다. 너무 불쾌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기분 탓인지 모든 것이 비뚤어져 보였다. '전화를 저렇게 큰 목소리로 해야 하는 건지, 생전 처음 본 옆 사람의 어깨를 빌리면서까지 졸아야 하는 건지'라는 생각을 하며 상식이 없어진 공간을 분노로 채우고 있었다. 겨우 역에 도착해서 15분을 걸어 학원 입구가 보이자 사무실부터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약속을 지켜주셔야죠. 공지 믿고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들 입장도 생각해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떻게 말해야 내 짜증이 더 잘 전달 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이 4호차라고 믿고 있는 아저씨에게 때로는 4호차가 아니라 2호차가 답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한껏 찡그린 표정으로 불만을 토해내는 내 자신을 떠올려보니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뒀다.
학원이 끝나고 집에 와서 책을 읽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 이름이 ‘면허학원버스기사님'으로 되어있었다. 왜 이 전화가 울리는지 대강 알 것 같았다. 수강생인 내가 혹여 라도 사무실에 불만을 표출한다면 기사 아저씨는 학원 측에 쓴 소리를 듣게 되리라. 내가 느꼈던 초조함을 아저씨가 느끼고 있다는 생각을 하자 알 수 없는 희열감들이 몰려들었다. 더군다나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의도적으로 전화를 외면한 것이다. 나는 전화를 받는 대신 아저씨의 초조함 위에 적의를 실어 보냈다. 전화기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울리다가 멈췄다. 진동이 끊기는 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거대한 생물이 죽기 전에 토하는 마지막 숨소리처럼 들렸다.
얼마간 책을 읽다가 나는 눈이 아파서 잠을 청하기 위해 침대에 누웠다. 평소와 같이 천장을 보고 누웠는데 뭔가가 허전했다. 친밀한 무언가가 내가 모르는 사이에 결여 돼버린 느낌이었다. 그것이 야광별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야광별에서 나오는 작지만, 확실한 초록색 빛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천장에 새 야광별을 붙이려다가 귀찮아서 내버려두기로 했다.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내 꿈에 으레 등장하곤 했던 치즈세계에 관한 꿈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전까지는 치즈세계에서의 시간대가 낮이었지만 지금은 밤이라는 것이다. 정말 문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 이었다. 어둠의 깊이가 너무도 농밀해서, 오히려 작은 불빛만 있어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달빛도, 하다못해 야광별이 내뿜는 희미한 별빛 하나도 없었다.
나는 일단 무작정 걷기로 했다.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걷는 것을 방해할만한 장애물은 없는 것 같았다. 한참을 걷다보니 저 멀리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어렴풋이 뭔가가 아삭거리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현실세계와 달리 꿈속에서는 부품이 몇 군데 빠진 톱니바퀴가 돌아가기도 한다. 전후 사정이나 인과관계와 상관없이 그래야만 하는 것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불빛이 선명해지고 점차 아삭거리는 소리도 커지고 있었다. 소리와 불빛은 동굴 속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달리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날듯이 동굴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동굴 속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쥐들이 치즈를 먹고 있었다. 불빛은 동굴의 한 가운데에 있는 모닥불에서 나오고 있었고, 쥐들이 아삭거리는 소리는 동굴을 때려 점점 증폭되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본능이 시키는 대로 쥐들의 틈에 끼어들어 치즈를 먹기 시작했다. 나를 둘러싸고 주인아주머니와 세탁소 주인, 그리고 기사 아저씨도 치즈를 먹고 있었다. 우리들은 서로를 확인했지만, 거기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우리도 똑같은 쥐들인 것이다.
첫댓글 일차 초고가 끝난 즉시 올립니다. 글을 올리면서도 고쳐야 할 부분이 많이 보이네요. 차차 고쳐가야하겠지요.
22살이 되서, 처음으로 소설가란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일기 이외에 처음으로 글을 써보기도 했네요. 하루키를 참 좋아해서 소설보다는 그의 에세이를 많이 읽었습니다. 소설가로서의 작품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소설가의 모습은 어떠한가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하루키가 '결말이 정해져 있는 얘기는 제 자신도 쓰고 싶지 않아요. 내 안에 침잠하면 이야기는 온천수처럼 자동으로 터져나옵니다. 거기에 집중하고, 매번 글을 써나가는 것이지요.'라고 말했던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도 구성같은건 안잡고, 그냥 글을 썼어요.
소설을 처음써보는 풋내기가 참 무모한 짓을 했네요.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다리가 찢어진다고, 막상 그렇게 써보니 이야기들이 단순 나열 형식으로 되버려서 긴밀한 연결이 안되네요. 더군다나 일단 막 썼더니 처음엔 90장이 넘어서, 도대체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주위에 제가 소설가를 한다면 탐탁지 않아하는 사람들 밖에 없어서, 작지 분들한테 비평 듣고 싶어서 글 올립니다.
제목은 아직 못정했네요. 어떤 의견이라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날씨가 추운데, 감기 조심하세요.
"자기 눈에 고쳐할 부분이 보이면 올리지 말고 즉시 고친 다음에 올리셔야죠. 그것이 소설에 대한 기본 자세 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쏟아 낸 다음에 올려도 절대 늦지 않습니다. 그리고 원고지 매수는 올림으로 하셔야 합니다. 실제로 원고지 쓸 때 소수점으로 표기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아마 짐작컨데 작가도 자기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는지 스스로도 모를 것 같습니다. 제목이란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이미지인데 그걸 정하지도 못했다는 것이 그 증거로 보여집니다.
문장 하나 하나는 나쁘지는 않은데 구성이 전혀 안되어 있습니다.
고치는 것보다 아예 새로 다시 쓰시는 것이 더 빠를 듯 하네요.
처음 소설을 써보는 거라면, 처음부터 욕심을 부려 7,80장을 쓰기 보다는 10매, 20매 정도의 짧은 매수로 제목과 주제를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맞게 글을 써내려가는 연습을 많이 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야기 속으로 쏙-빨려들어가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에 와서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감이 좀 왔죠.
마지막 한 문장으로 독자로부터 공감대를 형성시킬 수 있기는 좀 얘기가 부족하다는 느낌도 받았죠.
그리고 화자가 준형이죠..남자인데, 화자가 여자로 느껴지는 나는 뭘까요?....
잘 읽었습니다.
좋은 충고, 다시 한 번 새기고 또 새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