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고, 게다가 노래는 왜 그리 길며 음역의 변화는 왜 그리 갑작스러운지? 가사 또한 장난이 아니에요. ‘엄마, 사람을 죽였어요.(Mama, just killed a man).’
이 같은 형식과 구성의 파괴, 혼종성, 실험성, 비주류성이야말로 록 밴드 퀸과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시대를 앞서가는 독창성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에 더해 대중성까지 확보한 특이한 경우입니다. 이후 퀸의 다른 노래들도 찾게 되었습니다. 크게 히트한 귀에 익은 노래들을 열거해보죠. 위 <보헤미안 랩소디>를 비롯해 <Love of My Life> <You‘re My Best Friend> <Somebody to Love> <We Will Rock You/We are the Champion> 등. 어쨌거나 전반적인 록 음악의 퇴조와 함께 잊혔던 퀸의 노래들이 특히 우리나라에서 부활을 넘어 광풍을 몰고 온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요?
우선 ‘아이들’이 판치는 ‘아이돌’의 주류 음악에서 밀려난 중장년층(일부 노년층 포함)의 향수를 자극한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스에 열광하던 시절이. 1969년 클리프 리처드(<The Young Ones>)의 내한 공연은 보수적인 한국 사회를 뒤흔든 깜짝쇼였어요. 소녀 팬들은 소지품뿐만 아니라 옷가지도 내던지며 울부짖었고 실신하기까지 했죠. 이후 톰 존스 등을 거치며 열기가 지속되다 1980년 레이프 가렛(I Was Made for Dancin'>)의 내한 공연을 끝으로 시들었습니다.
아웃사이더 록 밴드인 퀸이 이질적인 부적응자의 음악을 추구했지만 결과적으로 일반 대중과의 소통으로 이어진 점도 평가해야 할 중요한 요소입니다. 화려한 오페라적 구성, 추종을 불허하는 지옥의 샤우팅, 무엇보다 떼창을 유도하는 후렴구의 주술적인 매력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떼창이야말로 분위기를 띄우고 세력을 과시하는 퍼포먼스에서는 필수 코스프레가 아니겠어요? ‘갈릴레이 갈릴레오, 맘마미아 맘마미아, 위윌록유 위윌록유, 라디오가가 라디오가가….’ 음악적 소외계층인 중장년층이 중독성 있는 후렴구를 흥얼거리며, 아니 응얼거리며 실로 오랜만에 박탈감에서 벗어나 음악적 욕구를 분출할 계기를 찾은 것이 아닐까요?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음악을 들려주는 영화인지, 무명 록 밴드의 성공담인지? 그에 더해 동성애 코드를 과도하게 삽입해 혼란스러웠어요. 영화적 완결미보다 시대를 지배한 팝음악을 들으려 간 사람도 많을 텐데 그에 대한 배려도 살짝 아쉽습니다. 이를테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는 ‘라이브 에이드(1985)’ 공연 대목입니다. 퀸 공연 위주로 할당한 것이야 당연하다 할지라도 함께 참가한 레전드 뮤지션들의 무대를 잠깐씩이라도 편집해 보여주었더라면! U2, 엘튼 존, 데이비드 보위, 폴 매카트니….
퀸 열풍이 문화 예술적 이슈를 넘어 우리 사회를 강타한 사회 현상이긴 한 모양입니다. 신문(J일보, 1월 7일)을 뒤적이며 노래 후렴구를 맥락 없이 흥얼거리는데 시사만화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유튜브 시장을 달구는 인터넷 방송을 풍자하는 만평에 쓰인 글자들이 음표처럼 날아올라 귓전을 맴돌더라고요. 알릴레오, 고칠레오, 바꿀레오, 감출레오, 빠질레오, 뻥칠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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