庚寅年 새해에 복 많이 받고 건강하길 기원하며,
사우들의 경주 답사 이야기 최종회(3회)를 올릴께. 늦게 올려 미안,
그래도 구정전에 올리려고 애 좀 썼어.
12월 3일(목) 맑음
오전 6시: 숙소의 중탄산온천탕에서 만나기로 하였는데 정혜자, 김희자, 고경희 3명만 출현했다.
왜들 안왔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전날 늦게 까지 떠들어서 피곤한 것인지, 아니면 지금도
다른 사람하고 목욕하기가 부끄러운지...
코오롱호텔은 경주에서 제일 오래된 호텔이어서 시설은 노후되었지만,
토함산 기슭에 위치하여 매우 조용하고 앤틱한 분위기에 경주에서 최상의 온천수가 나오는 것으로
유명해, 혹시 기회되면 다음에는 들려 보기를 권한다.
오전 9시20분
통일신라의 최고의 석조공예미술품이며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토함산 석굴암으로 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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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石窟庵)은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10년(751)에 당시의 재상(宰相)인 김대성(金大城)에 의해서
창건(創建)되어 혜공왕 10년(774)에 완성되었는데 건립 당시의 이름은 석불사(石佛寺)이다.
토함산 중턱에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내부공간에 본존불(3.48m)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금강역사상, 천왕상 등 총 40구의 불상을
조각했으나 입구의 감실내 2구의 보살상은 일본인이 가져가 지금은 38구만이 남아 있다.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인 석굴암의 석가여래를 위시한 40구의 불상과 인공석굴은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세계적인 예술품으로 평가 되어,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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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석굴암 내부 관람은 유리창 밖에서만 가능하다. 석굴을 지키는 안내자 선심으로 안정숙이 내부의 예불에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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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석굴암에서 바라다 보이는 직선 거리에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대왕의 수증릉과 그의 원찰(願刹)인 감은사지가 있다.
석굴암을 관람 후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에 있는 신라 38대 원성왕릉인 괘릉(掛陵)으로 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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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릉은 사적제26호로. 왕릉을 만들때 물이스며 들어 왕의 관을 돌 기둥 벽에 걸어서 장례를 지냈다고 하여 괘를으로 전함(걸을괘掛)
이후 이 릉의 부근에 있는 숭복사(崇福寺)의 비문이 발견되어 이곳이 원성왕릉으로 빍혀지게 되었다.
봉분에서 남쪽으로 길 양쪽에 북쪽으로부터 돌사자 2쌍, 각기 1쌍씩의 문인석(文人石)과 무인석(武人石)
그리고 화표석(華表石) 1쌍을 차례로 배치했다.
특히 무인상은 얼굴생김이나 표정, 수염 등으로 보아 서역인의 모습을 한 것으로 판단되어
당시 신라인들의 국제적인 교역관계를 엿 보게 한다. 이곳에서 울산까지는 12km의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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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다문 입과 커다란 오른손 주먹, 왼손 목의 굵은 알통 그리고 철퇴등으로 나름데로 힘센 무인상으로 표현한 것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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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을 열심히 보면서 사적지 탐방을 하는 환갑(還甲)의 사우들
드디어 장안의 화제 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주인공이 永眠하고 계신 현장을 찿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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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삼국통일의 기반을 이루고 민생의 안정에 주력한 우리 역사 속 최초의 여왕님의 명복을 빌었다.
선덕여왕(善德女王, ? ~ 647년 음력 1월 8일, 재위: 632년-647년) 또는 선덕왕(善德王)은 신라 제27대 왕이며,
성은 김(金), 이름은 덕만(德曼)이다. 진평왕과 마야부인(摩耶夫人)의 장녀이며 29대 태종무열왕의 큰이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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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은 평소 무척 지혜로웠는데, 그 사례로 일연스님은 삼국유사에 "선덕왕의 미리 안 세가지 일"(善德王知幾三事)을
기록하였다. <<삼국유사 三國遺事>> 권1 기이편(奇異編) 에 수록>>
첫째는 향기없는 모란꽃 이야기, 둘째는 몰래 침략한 적군을 여근곡에서 섬멸한 이야기, 셋째는 왕이 자신의 죽을 날을 미리 안 이야기로, 왕은 생전에 자신의 죽을 날을 예언하며 도리천(도利川) 에 장사 지내달라고 일렀다. 신하들이 도리천이 어딘가를 물으니 왕이 대답하기를 낭산(狼山) 남쪽이라고만 하였다. 왕은 과연 예언한 날에 세상을떠나고 신하들이 낭산 남쪽에 장사를 지냈다. 그로부터 10년 뒤 문무왕(文武王)이 사천왕사(四天王寺) 를 무덤 아래 세웠다.
( 불경에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 하였으니 신하들도 10년 뒤에야 예언이 적중함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오후 1시가 다 되었지만 늦은 점심을 하기로 하고 안압지(雁鴨池)를보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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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674년에 신라왕궁에 인공으로 만든 대형연못이다. 바다를 상징하여 바닷돌로
장식하였고, 연못 안에는 동해의 3 신선(神仙)이 산다는 섬 3개를 만들어 아름다운 꽃나무와 진귀한 새를 길렀다. 안압지는 35년전의 발굴조사로 신라 궁궐에서 사용하던 금동제 가위등 3만여점의 실생활유물이 알려져서 통일신라 실생활문화사의 단면을밝힐 수 있었다. 현재 서편 호안석축 위로 3개의 누각과 건물지의 초석이 복원 정비되었으며, 새로 채워진 물에는 잉어와
오리가 노닐고 있었다. 그러나 졸속한 복원사업으로 안압지의 원래의 모습을 찿아 보기엔 거리감이 있어서 아쉬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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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를 한바퀴 도는데 1시간이 소요 되었다.
이곳은 안압지 동편의 얕은 산이며(무산십이봉의 하나), 건너편으로 서편의 누각(樓閣)이 보이고 있다.
안압지는 기하학적으로 작은 공간을 넓게 조경하여 어느 한 곳에서 전체를 조망할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오후 2시가 지나서야 경주교동의 요석궁에서 최부잣집 한정식을 맛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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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석궁 식당의 대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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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석궁(瑤石宮)은 신라무열왕(김춘추)의 딸 요석공주가 거처하면서 원효대사와 사랑을 나눠 설총을 낳은곳으로 전해진다.
이 곳에 최부자가 집을 지어 살아온 인연으로 음식점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최부자는 조선 선조때부터 진사벼슬을 하여
1950년까지 12대에 걸처 이곳 교동 일대에서 만석꾼 재산을 유지해왔고, 마지막 최부자인 최준은 전재산을 영남대에 기증함. 요석궁식당에서는 최부자댁의 400 여년간 이어진 전통 가정음식의 일부를 맛 볼 수 있는 것이다.
(종택(宗宅)의 가양주는 교동법주로 지정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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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방영중인 KBS 2TV 역사 드라마 `명가(名家)`는 조선시대 후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시대적 배경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한 경주 최부자댁을 주제로 하고 있다. 최 부자집안은 400년 동안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을 배출했으며, 가옥이 위치한 곳은 인왕동 요석궁으로 남아 있다. 우리가 식사한 이 집은 200여년 된 고가(古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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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해서 그런지 사진을 찍을 겨를도 없이 음식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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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잣집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 장의 하나로 멸장인데 멸치를 넣고 폭 고아서 만든 장으로 멸치비린 맛이 없다.
메뉴는 반월정식이 20.000원, 계림정식 30.000원,안압정식 50.000원, 포석정식 70.000원, 요석정식 100.000원,
우리는 계림정식에 요석궁에서 빚은 약선주를 한잔씩 했다. 이 다음 칠순 여행에는 안압정식으로 하면 어떨까 !
연금을 타는 내가 대접하리오.
서울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네..., 늦은 점심을 맛있게 한 사우들은 마지막 유적답사 코스인 삼한통일의 주역
김유신장군과 김춘추 태종무열왕의 무덤으로 향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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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장군의 묘소 앞, 요석궁의 가양주 덕분에 사우들의 화색이 좋네.
김유신(金庾信, 595년-673년)은 소판(蘇判) 겸 대량주도독(大梁州都督)인 김서현(金舒玄)과 지증왕의 증손녀인
만명부인(萬明)의 아들이며,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12대 자손으로 현재의 충청북도 진천에서 태어났다.
화랑출신의 장군으로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워, 생전에는 상대등(660)과 태대각간(668)의 벼슬을 하고 사후에는
흥무대왕(42대 흥덕왕 10년, 835)으로 추봉되었다.
묘는 흥무대왕이라는 시호에 걸맞게 왕릉급이며, 십이지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 묘는 흥덕왕때 개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왕릉에서의 최초의 십이지상은 33대 성덕왕의 무덤임, 아울러 왕릉에 조각된 십이지상은 모두 갑옷을 입은
무장상인데 비하여, 김유신장군묘의 12지신상은 평상복에 무기를 들었다.)
드디어 마지막 답사지인 삼한 통일을 달성한 주인공 김춘추공 태종 무열왕릉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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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신라 29대 태종무열왕(武烈王 김춘추) 의 능이다.
이곳 서악동 선도산 동쪽 구릉 아래에는 모두 5기의 큰 무덤이 있다. 이 중 가장 아래쪽에 있으며,
사적 제20호로 지정되었다.
경내의 비각에는 국보 제25호로 지정된 태종무열왕릉비 의 귀부(龜趺)와 이수(螭首)가 있다.
이수에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고 새겨져 있어 신라 왕릉 가운데 매장된 왕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능이다.
무열왕 김춘추는 신라 제25대 진지왕의 둘째아들인 용춘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26대 진평왕의 딸이자 27대 선덕여왕의 동생인 천명부인이다.
(24대 진흥왕의 장자인 태자 동륜이 일찍 죽자 둘째 아들인 금륜이가 25대 진지왕이 됨),
왕비는 김유신의 누이 문명왕후이고, 28대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신라 최초의 진골 출신의 왕으로서
당 나라와 연합 하여 백제를 정복하고 삼국통일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삼국유사에 당나라 태종이 사절로 온 김춘추공의 외모를 보고 "신성(神聖)한 사람'으로,
또 '왕은 하루에 쌀 6말(六斗)의 밥과 술 6말, 꿩 10 마리를 먹는다' 라는 기록이 있으니 무열왕의 모습을 상상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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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뒤로 보이는 산이 선도산(仙桃山)이고, 이어서 산 같이 둥근 무덤들이 산 자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선도산 능선과 무덤의 선이 닮지 않았니?! 무덤은 안쪽 부터 23대 법흥왕릉(514-540), 24대 진흥왕릉(540-576), 25대 진지왕릉(576-579),무열왕의 아버지 김용춘( 문흥대왕으로 추봉)릉으로 추정되고 있어 무열왕의 가족 묘역으로 볼 수 있다.
선도산에는 성모(聖母)가 살고 있다고 한다. 성모는 본래 중국 왕실의 딸로 신선의 술법을 배운 뒤 선도산에 살다가
지선(地仙)이 되어 신라 왕실을 보호한다고 하여 신라에서는 오래 전 부터 이곳에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산이다.
무열왕릉 뒷 쪽으로 산책하다가 선도산 자락 너른 평원에 작은 산처럼 조성된 4기의
대형 무덤에 때 마침 초겨울의 석양 빛이 유택을 비추니 그 평온함과 대자연의 어우러짐에
사우들은 모두 감탄지사를 연발하면서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우리는 삼한을 통일한 주역들과의 만남을 끝으로 환갑 동기들의 2009년도 1박2일의 경주 유적지 답사의 막을 내렸다.
경주 1박 2일 함께 한 랜터 카 12인승 스타렉스!
. 後記
읽느라고 수고 했지? 늦게 올린 것을 다시한번 미안해 하며...,
금년도 사우 여행에는 모두 함께 하면 좋겠다.
** 2010년 부터는 1박2일의 국내여행을 정례화하는 안**
** 2개월에 한번 모이는 사우 모임도 가능한 서울 소재 궁,릉, 박물관등과 연계하는 안 **
** 삼국유사(三國遺事)등 역사서를 강독(講讀)을 하는 안**
** 2012년 졸업 40주년에는 우리 동기 총동창회를 개최하는 안**
** 2012년 졸업 40주년 기념으로 국외 여행을 하는 안**
이상은 이번 여행에서 오가던 사우들의 제안인데 간단히 정리한것야.
혹시 누락된 것이나, 제안이 있으면 댓글에 올려주거나, 2월3일 2010년 첫 모임에서
이야기 하면 좋을 것 같다.
- 안녕!- |
첫댓글 수고했어요 환갑이라니 대학생때 같으다 모두
학교 때는 졸면서 듣던 강의가 네 설명에는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리네. 동참한 사우들은 입맛까지...
글과 사진에 네 지극한 정성이 느껴진다. 네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얌전히 착한 학생들같이 한 줄로 사진 찍는 일은 한두 장 밖에 없었을텐데.ㅎㅎㅎ 경주에서 오래 (몇년?) 있었으니 아는 곳도, 아는 것도, 해주고 싶은 말도 얼마나 많았을까. 수학여행 잘 했겠네. 음식도 맛깔스러워 보이고...경주 함께 갔던 사우들 답글에서 만나자! 還甲이지?
얼마 지난 후에 보니 더욱 새롭고 흐뭇하다. 사진을 이렇게 시리즈로 보니 과연 답사 시절같다. 여하튼 고경희 선생 배려
와 수준있는 안내는 길이 기억 될 것이다. 고맙다 경희야! 김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