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를 연결하면 기차가 될까?: 딥테크 스타트업이 필요한 까닭
류준영
[류준영의 사이-코노믹스] #6. 한계 봉착 대한민국, 딥테크 스타트업이 답
딥테크 유망기술 설명회, 지역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콜라보
창원, 대구 등 산업도시의 붕괴, 인구가 줄고 있다... 일자리 창출 시급
국내 딥테크 관련 기업 수 488개, 일본 1718개에 비해서도 한참 부족
일본 '27년까지 딥테크 유니콘 100개 양성 목표... 한국은 어디에 있는가?
“마차를 아무리 연결해도 기차가 되지 않는다.” 미국 경제학자 슘페터(1883~1950)가 남긴 말입니다. 낡은 것은 부수고 새로운 기술혁신에 도전하는 ‘창조적 파괴’가 선행돼야 새로운 문명/산업이 출현한다는 뜻입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혁신적 성장 모델을 통해 “끓는 물 속 개구리(한국)를 냄비 밖으로” 내보낼 ‘추월의 방정식’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관련 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지방소멸 대응’이 가장 시급해 보입니다. 류준영 필자는 대구에서 진행중인 디지털 전환/딥테크 관련 기술 협력 등에서 대안을 살핍니다. 일본이 딥테크 유니콘 100개 양성을 목표로 내건 가운데 한국의 실정은 어떤지 따져묻는 시선이 매섭습니다. [편집자 주]
AI(인공지능)가 교차로에 설치된 CCTV영상에 포착된 객체를 인식·식별하여 차량 진입과 같은 위험 상태를 교차로 인근 보행자에게 휴대폰 알림이나 소리, 진동으로 알려준다. CCTV(폐쇄회로TV) 영상데이터를 활용한 엣지 컴퓨팅 기반 안전 인식 알림 방법을 알기 쉽게 그림으로 표현했다. 전체 교통사고의 49%가 교차로에서 일어나는 만큼 필요한 기술로 호평받았다. / 출처: 경북대학교 지능형 네트워크 연구실
예산도 대통령도, 대구로 대구로~
지난 19일, 6월답지 않게 대구의 최고 기온이 37도를 찌를 때 ‘경북대 글로벌플라자 경하홀Ⅰ관에선 '경북대-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유니코어 사업화 유망기술 설명회'가 열렸습니다.
언뜻 보면 그저 그런 설명회로 보이지만 속성이 서로 다른, 시쳇말로 “결이 다른” 대학과 과학기술 분야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짝을 이뤄 민간에 이전할 만한 기술을 합동으로 발표하고 사업화도 함께 돕는 사업의 일환입니다. 예전엔 이런 형태 사업이 없었기에 2027년까지 시범사업으로 진행하다 3년 후 평가를 거쳐 10년 단위 사업으로 전환할 예정입니다. 이 시범사업에 투입된 정부 예산은 총 110억원입니다. 10년이면 곱하기 3하고, 지역(현재 4대 권역)도 늘테니 1000억원 이상의 빅프로젝트로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쩐‘의 냄새를 맡은 대학과 기관은 이 사업을 따낼 수 있다면 어색한 동거도 기꺼이 환영하겠다는 분위기이고, 해당 사업의 첫 오프라인 행사가 대구에서 개최된 겁니다.
우연찮게 다음날 경북 경산 영남대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는 경북을 ‘수소산업의 허브’로 키우겠다는 밑그림과 더불어 지역산업 활성화를 위해 “지역벤처투자를 늘리겠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구체적으로 지역 스타트업과 대기업을 이어주는 '밸류업 프로그램'을 조만간 내놓겠다는 구상도 함께 나왔지요.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협력)이 근래 스타트업 씬에서 화두이긴 하지만, 지역 스타트업과 대기업 간의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공동작업)이 레고 맞추듯 쉽게 이뤄지지는 않다는 게 업계 진단입니다. 서로 간 말못할 비밀(기술·노하우)이 많아서죠. 한편에선 얘네는 뭔가 좀 탐나는 게 있을까 송곳니를 숨기고, 또 다른 한편에선 혹시라도 빼앗아 갈까봐서 감추기 바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픈 이노베이션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아 어떻게 손발을 맞춰야 하는지 A부터 Z까지가 전부 서툽니다.
6월 19일, 대구 경북대에서 열린 '경북대-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유니코어 사업화 유망기술 설명회'에서 참가자가 도로 유지 보수 작업 로봇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류준영
한달에 1000명씩 타 지역으로 …특례시의 붕괴 “특단이 필요”
하지만 지금 대구를 포함한 경북지역에선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닙니다. 바로 아래동네 창원특례시만 봐도 그렇습니다. ‘인구 100만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올 연말이면 이런 붕괴가 가시화될거란 전망입니다. 특례시 지위 박탈 얘기까지 나옵니다.
현행 지방자치법엔 전년도 인구가 2년 연속 100만명 미만이면 특례시 지위를 잃게 돼 있습니다. 창원시 인구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 100만4693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010년 창원·마산·진해 3개 도시가 통합할 당시 110만 4015명이었던 창원시는 지난해 1만2000여명이 줄면서 비수도권 인구 감소 1위라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한 달 평균 500명에서 1000명씩 감소한다는 얘기인데 이렇게 가면 올해 안에 100만명 아래로 내려가는 건 불 보듯 뻔해 보입니다.
급기야 창원시가 특례시 지위 상실 유예기간을 현행 2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고, 특례시 지정기준 인구수를 100만명 이상에서 80만명 이상으로 낮춰 달라고 정부에 강력하게 건의했다고 합니다. 행정상으로 실질적으로 꽤 난처한 요구입니다.
대구도 처지가 다를 게 없습니다. 지난해 대구 인구는 2013년 대비 4.4% 감소한 237만 명으로 8개 특별·광역시 중 네 번째로 많긴 했지만, 노령화지수는 176%로 순위가 1단계 올라 3위, 고용률은 2013년 대비 1.6p% 오른 59.6%로, 청년고용률은 2.6%p 상승한 64.5% 정도로 큰 개선이 없었습니다. 노후한 기업의 주력사업모델을 변화시킬 유인과 인구 감소를 막을 일자리 창출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도로 유지·보수 작업을 위한 자율 작업 수행 로봇이 차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움푹 파인 도로를 알아서 매우고, 차선 도색이 벗겨진 곳을 찾아 자동으로 페인트 공사를 진행한다. ETRI의 '이동형 로봇의 자율 차선 추적 제어기술'에 기반하고 있다. / 사진=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호흡만 해도 질병 잡아낸다… 대구에서 탐낸 기술 여기 다 모였네
다시 경북대-ETRI 유니코어 사업화 유망기술 설명회장으로 돌아갑니다. 경북대에서 예정된 발표자가 행사 당일 교수에서 해당 랩(연구실) 학생들로 대부분 교체되는 등 무성의한 모습을 나타내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현장에 참여한 민간기업 대표들은 그래도 쓸만한 기술이 몇몇 보인다면서 자리를 지켰습니다. 특히 대구 중소·중견기업과의 연계 가능성이 높은 기술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먼저 ‘협동로봇 기반의 모바일(이동형) 매니퓰레이터(로봇손) 기술’(출처: ETRI 대경권연구본부 로봇·모빌리티연구실, 책임자: 동지연 선임연구원)의 경우 '섬유도시→로봇도시'로 대변화를 꿰하는 대구 산단에 유용한 기술로 평가 받았습니다.
대구에 위치한 로봇 관련 기업만 360여 개 가량 됩니다. 2008년엔 3개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시장수요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는데 해당 기술은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아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티치펜던트(일종의 조종기)가 일체형으로 제공돼 고령의 작업자도 손쉽게 다룰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ETRI의 진용식 박사가 선보인 '이동형 로봇의 자율 차선 추적 제어기술'도 사람들의 주의를 모았습니다. 이는 도로 유지·보수 작업을 위한 자율작업수행 로봇이 차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움푹 파인 도로를 알아서 매우고, 차선 도색이 벗겨진 곳을 찾아 자동으로 페인트 공사를 진행합니다. “낡은 도시에 적합한 기술”이란 평가를 얻었습니다.
‘후각 인공지능 딥노즈(Deep Nose) 기술(ETRI 디지털융합연구소, 최재훈 박사)’도 특별했습니다. 극미량의 가스를 탐지해 생체 호기 가스, 불법 육가공 상품 밀수, 폭발물 탐지 등이 가능한데 사람의 날숨(내쉬는 숨) 분석을 통해 어떤 질병에 걸렸는지 알 수 있다는 대목에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지역엔 큰 병원이 없어 ‘예방의학’이 중요 이슈입니다. 노령화지수가 갈수록 높아지는 대구가 탐낼 만한 기술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사회 안전시스템 구축과 관련한 기술에도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학교 앞 교차로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신호등이 바뀔 무렵 교차로를 향해 빠른 속도로 차량 한 대가 달려옵니다. 그 순간 교차로에 서있는 학생들의 휴대폰이 알림 메시지와 함께 진동하며 “우회전 차량 진입 중 주의, 좌우를 살피고 건너세요”라고 알립니다. 그 덕분에 학생들은 나아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횡단보도 주위를 살핀 뒤 안전하게 교차로를 건널 수 있습니다.
이는 AI(인공지능)가 교차로에 설치된 CCTV영상에 포착된 객체를 인식·식별하여 차량 진입과 같은 위험 상태를 교차로 인근 보행자에게 휴대폰 알림이나 소리, 진동으로 알려주는 ‘CCTV(폐쇄회로TV) 영상데이터를 활용한 엣지 컴퓨팅 기반 안전 인식 알림 방법' 기술을 설명한 것입니다. 경북대학교 컴퓨터학부 지능형 네트워크 연구실이 개발하고 민간 이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근 교차로 사고율이 전체 교통사고의 49%를 차지한 상황인 데다 이런 보조적인 C-ITS(차세대 지능형교통체계) 기반 안전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표 1] 각국별 딥테크 관련 주요 지표 (출처: 한국과학기술지주)
국가 | 미국 | 중국 | 일본 | 한국 |
딥테크 기업 수 | 22,910개 | 9,935개 | 1,1718개 | 488개 |
4차 산업혁명 PCT 특허 | 37,343건 | 41,508건 | 29,564건 | 12,417건 |
기술개발 역량 | 95.9점 | 78.9점 | 100점 | 91.7점 |
기술이전 | 4.26점 | 4.58점 | 4.72점 | 4.08점 |
생존율 | 79.1% | 69.7% | 95.3% | 63.7% |
*한국은 딥테크 기업 수에서만이 아니라, 특허 건수 및 기술이전과 생존율에서도 4개국 중 최하위에 위치했고, 기술개발 역량에서만 중국보다 좋은 점수를 받았다.
‘대한민국 디스토피아’ 극복 처방전은 “딥테크”
지난 반세기 우리나라 섬유 공업의 요람 역할을 한 대구가 ’디지털 전환‘(DX)에 박차를 가하면서 공공기술 이전·사업화라는 큰 웨이브가 넘실됩니다. 이는 대구 섬유 산단에 창업 2세 경영자들이 관련 딥테크(첨단기술) 스타트업들을 세워 진두지휘하는 모양새입니다. 산단 노후화로 성장동력을 잃어가던 지역에선 혁신기술과 혁신기업의 수혈로 미래 재도약을 꿈꿉니다.
하지만 아직 이런 기업은 현저히 적습니다. 한국과학기술지주(KST)에 따르면 2023년 말 국내 딥테크 관련 기업 수는 488개입니다. 미국(2만2910개), 중국(9935개), 일본(1718개)에 비해 한참 부족합니다. .
딥테크 스타트업은 기존 스타트업과 비교해 '데스밸리(죽음의 계곡, 창업 3~5년차 기업이 겪는 경영난)'가 더 길고 깊은 반면 국내 딥테크 투자는 소극적인 걸로 평가됩니다. 이유는 여럿 있지만 투자 부문만 보면 2016~2020년 기준 각국 민간 벤처투자 중 딥테크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스라엘 20%, 미국 18.7%, 영국 15.6%인 데 비해 한국은 5%에 불과했습니다.
글로벌 주요국들의 딥테크 투자 연평균 증가율을 보면 미국은 60%에 달합니다. EU(유럽연합)는 2025년까지 450억 유로(약 66조원)을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일본은 2027년까지 딥테크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기업) 100개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딥테크 유니콘은 총 3개로 글로벌 비중은 1.2%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020년 3.8%로 38개 OECD 회원국 중 5위였다가 올해 2.0%까지 떨어지며 18위로 떨어졌습니다. “마차를 아무리 연결해도 기차가 되지 않는다.” 슘페터의 화두를 다시금 떠올리게 합니다.
글쓴이 류준영은
KAIST 과학저널리즘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한양대학교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지디넷코리아, 이데일리를 거쳐 머니투데이에서 벤처·스터트업 분야를 취재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자협회 선정 ‘2020년 대한민국과학기자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