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韓信)은
회음(淮陰) 지방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똑똑하였으나,워낙 가난하여
하향현(下鄕縣) 남창(南昌)의 정장(亭長)인
하급 관리 집에 빌붙어 얻어
먹으며 살았다.
관리의 아내는
한신을 귀찮게 여겨 아침 일찍
밥을 지어 자기 식구끼리만
식사를 마쳤다.
한신이
일어났을 때는
이미 식사를 마친 뒤였으므로
밥을 얻어먹을 수가 없었다.
그 집 식구들이
아침 식사를 할 때에 맞춰
한신이 일어나도, 관리의 아내는 그를
위해 밥상을 차려주지 않았다.
어느 날 한신은
그 관리의 집을 나왔다.
그리고는 하릴 없이 성 밖에 나가
낚시를 하며 지냈다.
배가 고파
잔뜩 몸을 움츠린 채
한 마리의 물고기라도 낚아
올리려고 애를 썼다.
고기를 구워 아침
식사를 대신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신의 주린 배를 채워주기 위해
낚시에 걸려들 눈 먼 물고기는 없었다.
한나절이 되도록 물고기가 낚이지
않는 날이 많았다.
어느 날
빨래를 하러
나왔던 한 노파가
한신의 배고파하는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겨 자기 집으로
데려가 밥을 먹였다.
일정한 거처와
일자리가 마련될 때까지
수십일 동안 한신은 그 노파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었다.
“제가 나중에
출세하면 틀림없이 많은
보답을 하겠습니다.”
노파의 집을
나올 때 한신은 정중하게
절을 하며 말했다.
“대장부가 스스로
벌어먹지 못하기에 내가 가엾게
여겨 음식을 준 것뿐이오.
어찌
보답 따위를 바라겠소?
어서 좋은 일자리나 찾아보도록 하오.”
한신은 노파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한신은
무술을 연마하기 위해
허리에 늘 긴 칼을 차고 다녔다.
타고 나기를 기골이 장대
하였지만,
너무 굶주려서
비쩍 마른 데다 허리도
구부정하여 늘 엉거주춤한
자세로 걸어 다녔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한신을 바보로 취급했으며,
같은 또래의 청년들은 그를 마구 놀려대었다.
어느 날이었다. 한신이 길을 가고 있는데
동네 건달들이 그를 불러 세웠다.
“야,
바보 멍청이 한신아!”
건달 대장이
한신의 앞을 가로막았다.
한신은 걸음을
멈춘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장난을 걸어 올 것인데,
이 곤경을 어떻게 빠져 나갈지
난감하기만 했던 것이다.
“한신!
너 왜 대답이 없냐?
큰 칼을 옆구리에 차고 다니면
다 장군이 되는 줄 아니?
비록 칼을
차고 다니긴 하지만
넌 겁쟁이가 분명해. 만약 겁쟁이가
아니라면 그 칼로 나를 찔러봐.
네가
이 자리에서
나를 죽이지 못한다면 당장
내 가랑이 아래로 기어가야
한다. 알겠나?”
건달 대장은
허리에 양손을 올려놓은 채
자신의 가랑이를 넓게 벌리고 섰다.
그때 한신은 마음속으로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원래부터 인내심이
강한 편이지만, 이처럼 굴욕적인
모욕을 참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한신은
용감무쌍한 장군이 되기 위하여
남몰래 무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네 건달들이
그를 보고 용기도 없는 겁쟁이라고
놀려대는 것이었다.
한신은 당장이라도
허리에 찬 칼을 뽑아 건달 대장의
가슴을 찔러버리고 싶었다.
마음이 잘
진정되지 않자
손까지 떨렸다.그러는
사이에 마을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한신이 어떻게 할지
자못 궁금하였던 것이다.
“저 바보가
손을 떨고 있어.
칠칠치 못한 녀석! 밥이나 얻어먹고
다니는 거렁뱅이 주제에 칼 하나는
좋은걸 차고 있네 그려.”
구경하던 동네
사람들은 벌벌 떠는 한신을
보고 마구 비웃었다.
그때
한신은 결심하였다.
‘그래 저 사람들의 좋은 구경거리가
되어 주리라. 그것만이 지금 내가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한신은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순간적인
살인의 충동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결심을
굳힌 한신은
넙죽 땅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 건달 대장의 가랑이 사이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건달들과 구경을 하던
동네 사람들은 껄껄대고 웃으며,
용기도 없는 비굴한 사내라며 한신에게
손가락질을 해대기에 바빴다.
한신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리고 열심히 무술을 연마하였다.
후에 한신은 한나라 유방의 장수가
되어 큰 공을 세웠다.
천하통일을 이룩한 후
유방은 한신을 초나라 왕에 봉하였다.
이때 한신은 어린 시절 자신을 돌봐준 하향현
남창의 정장으로 있던 관리를 불러 돈
1백량을 주면서 말했다.
“당신은 시시한 사람이오.
남에게 은덕을 베풀면서, 그 덕행을
끝까지 하지 않았기 때문이오.”
그리고 한신은 자신이
관리의 집을 나와 성 밖에서 낚시를 할 때
수십일 동안 밥을 먹여준 노파를 불러 천금을 주어
은혜에 보답하였다. 한신은 또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게 한 건달 대장도 불렀다.
“이 사람은
용감한 사내다.
이 사람이 나를 모욕했을 때,
내가 어째서 죽일 수 없었겠는가?
그러나 당시 나는 이 사람을 죽여서 아무런
명예도 얻을 수 없음을 알았다.
살인죄만
짓고 인생을 망칠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충동을 잘 참았고,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는 굴욕을 견뎌낼 수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군사를
부리는 장수가 될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나에게 굴욕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한신은
건달 대장에게
마을의 치안을 담당하는
중위의 벼슬을 주었다.
-《인물로 읽는 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