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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AI의 역사] #8. AI의 사회적 책임과 딥마인드의 행보
정지훈
딥마인드의 또 다른 두 기둥: 셰인 레그와 무스타파 슐레이만
레그의 인공일반지능, 인간이 할 수 있는 지적인 업무/행위에 대한 도전
기술의 힘이 사회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슐레이만과 하사비스의 만남
딥마인드의 DQN 알고리듬, 인간처럼 경험하고 학습하는 AI의 등장
페이스북과 구글의 딥마인드 쟁탈전... 구글, 딥마인드를 품고 한발 앞서다
천재에게도 동료가 필요하다. 누가 천재의 동료가 될까? 또 다른 천재다. 딥마인드는 데미스 하사비스 혼자 만든 개인 왕국이 아니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지적인 행동을 인공지능이 스스로 배워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 셰인 레그와 인공지능의 사회적 책임, 윤리성 등을 고민한 무스타파 슐레이만 등이 딥마인드의 성공을 함께 이끌었다. 우연도 작용했다. 스카이프의 얀 탈린은 우연히 하사비스의 비전을 접하고는 그와 동료들을 전설적인 투자자들에 연결시켜주었다. 딥마인드는 승승장구했고, 결국 페이스북과 구글의 경쟁 속에 구글과 손을 잡는 것으로 이어졌다. [편집자 주]
구글 딥마인드의 창립자이자 CEO인 데미스 하사비스는 놀라울 정도로 추진력이 강하고 오늘날 가장 인상적인 AI를 개발했다. // 사진=George Gillams(Flickr)
데미스 하사비스가 게임 업계에서의 좌절을 딛고 인지신경과학 분야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던 때, 하사비스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실제 인공지능 개발에 적용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느꼈지만, 이 원대한 꿈을 혼자 이루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는 자신의 비전을 함께 실현할 수 있는 동료가 필요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자신과 같은 열정을 가진 두 사람을 만나게 된다. 셰인 레그와 무스타파 슐레이만. 이들의 만남은 곧 인공지능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딥마인드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셰인 레그: 뉴질랜드에서 시작된 AGI에 대한 열정가
1973년, 뉴질랜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셰인 레그(Shane Legg)는 어릴 적부터 과학과 기술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그의 호기심 많은 성격은 자연스럽게 컴퓨터 과학으로 이어졌고, 와이카도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학 시절, 레그는 인공지능의 무한한 가능성에 매료되었다. 특히 그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였다.
오클랜드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은 레그는 '솔로모노프 추론'에 관한 획기적인 논문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논문은 기계학습의 이론적 기반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학업을 마친 후, 그는 Adaptive Intelligence와 WebMind 등의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며 실무 경험을 쌓았다.
레그의 AGI에 대한 열정은 그를 유럽으로 이끌었다. 그는 스위스의 IDSIA(Dalle Molle Institute for Artificial Intelligence)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여기서 그는 AGI 연구로 유명한 마커스 허터의 지도 아래 AIXI라는 혁신적인 인공지능 모델을 연구했다. AIXI는 범용 인공지능의 이론적 모델로, 레그의 AGI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깊게 만들어 주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레그는 UCL(University College London)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바로 이곳에서 그는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데미스 하사비스와의 조우였다. 두 사람은 AGI에 대한 열정과 비전을 공유하며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들의 대화는 밤새도록 이어졌고, 미래의 인공지능에 대한 원대한 꿈을 함께 그려나갔다.
레그의 뛰어난 이론적 지식과 하사비스의 창의적인 비전이 만나 딥마인드의 씨앗이 뿌려졌다. 오늘날 레그는 구글 딥마인드의 Chief AGI Scientist로서, 가장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AI 프로젝트들을 이끌고 있다. 뉴질랜드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그의 여정이 이제 인공지능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무스타파 슐레이만, 사회적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AI 혁신가
무스타파 슐레이만(Mustafa Suleyman)은 1984년, 영국 런던의 한 병원에서 시리아계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다문화적 배경 속에서 자란 슐레이만은 사회문제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통찰력을 키웠다.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인연도 이 시기에 만났다. 바로 데미스 하사비스였다. 두 사람은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로 만나 깊은 우정을 쌓았다.
슐레이만은 옥스포드대학에 입학했지만, 19세에 학업을 중단하고 사회로 뛰어들었다. 그는 자신의 열정을 실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쏟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곧바로 '무슬림 청소년 헬프라인(Muslim Youth Helpline)'을 설립해 젊은 무슬림들을 위한 상담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어 좀더 큰 규모의 사회적 임팩트를 위해 '레오스 파트너스(Reos Partners)'라는 사회혁신 컨설팅 회사를 세워 UN, 네덜란드 정부, WWF 등 글로벌한 스케일의 다양한 기관에 자문을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슐레이만은 기술의 힘이 사회문제 해결에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특히 AI의 잠재력에 주목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던 중 오랜 친구 데미스 하사비스로부터 딥마인드 합류 제안을 받게 된다.
하사비스는 슐레이만을 설득하기 위해 AI가 가진 사회변혁의 가능성을 역설했다. 지금까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슐레이만에게 데미스 하사비스는 AI가 이런 여러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는 비전을 내세웠다. 의료, 교육,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AI가 큰 역할을 하면서 실제적인 사회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슐레이만은 하사비스의 비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또한 하사비스와의 오랜 우정을 통해 그의 능력과 열정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슐레이만의 사회혁신 경험과 네트워크는 딥마인드가 AI 기술을 실제 세상의 문제에 적용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결국 슐레이만은 딥마인드 합류를 결심했다. 그는 딥마인드의 CPO(Chief Product Officer)로서 AI 기술을 실제 세상의 문제 해결에 적용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의 합류는 딥마인드에 사회적 임팩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져왔다. 2014년 구글과의 합병 이후, 슐레이만은 구글의 다양한 제품에 AI를 통합시키는 작업도 총괄했다. 특히 그가 주도한 '딥마인드 헬스' 프로젝트는 AI를 의료 분야에 적용해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2019년, 그의 커리어에 예기치 못한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딥마인드 내부에서 직장 내 괴롭힘과 성차별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 과정에서 슐레이만은 부당한 의혹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는 이러한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지만, 회사 차원의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일시적으로 정직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은 슐레이만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그의 평판에도 일시적인 타격을 주었다.
조사 결과, 슐레이만에 대한 혐의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그는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결국 슐레이만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 딥마인드를 떠나 구글로 자리를 옮기기로 결심했다. 이는 그의 커리어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AI 산업의 역동성과 가능성
구글에서 슐레이만은 더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이끌며 자신의 역량을 새롭게 증명해 나갔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조직 문화의 중요성과 리더십의 책임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계기를 가졌다. 이는 후에 그가 자신의 회사를 설립할 때 건강한 조직 문화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2022년, 슐레이만은 'Inflection AI'를 창업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워낙 뛰어난 명성을 가진 창업자가 만든 스타트업이기에, 매우 큰 규모의 투자도 유치할 수 있었고, 여기서 그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윤리적이고 포용적인 AI 개발 문화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Inflection AI에서의 그의 혁신적인 접근과 리더십은 업계의 주목을 받았고, 이는 그의 커리어에 또 다른 전환점을 가져왔다.
2024년, 슐레이만은 마이크로소프트의 Chief AI Officer로 임명되어 세계 최고 빅테크 기업의 AI 사업을 이끄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LinkedIn의 공동창업자이자 마이크로소프트 이사회 멤버인 리드 호프만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호프만은 슐레이만의 혁신적인 비전과 윤리적 접근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를 마이크로소프트의 AI 전략을 이끌 적임자로 추천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슐레이만은 기업의 AI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는 동시에, 이를 사회적 가치 창출과 연결시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리더십 아래, 마이크로소프트는 AI 기술을 교육, 의료,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며 사회적 임팩트를 만들어내고 있다.
슐레이만의 여정은 성공과 좌절, 그리고 극복의 과정을 모두 담고 있다. 사회 혁신가에서 시작해 글로벌 테크 기업의 리더로, 그리고 다시 혁신적인 AI 기업의 창업자를 거쳐 세계적 기업의 AI 전략을 이끄는 수장으로 성장한 그의 이야기는 AI 산업의 역동성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그의 경험은 기술 발전과 함께 조직 문화, 윤리, 그리고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귀중한 교훈을 제공하고 있다. 슐레이만의 행보는 앞으로 AI 기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으며, 기술과 인문학, 사회적 가치의 조화로운 발전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딥마인드의 세 창업자. 왼쪽부터 데미스 하사비스, 무스타파 슐레이만, 셰인 레그. // 사진=Algorithm-X Lab
딥마인드의 탄생: 영국의 천재들과 전설적 투자자들의 만남
2010년 9월, 런던의 한 작은 아파트에서 AI 역사의 새 장이 열렸다. 데미스 하사비스, 셰인 레그, 무스타파 슐레이만 세 사람이 모여 딥마인드를 설립한 것이다. 그들의 첫 목표는 의외로 소박했다. 벽돌깨기, 퐁, 인베이더 같은 고전 게임을 혼자 할 수 있는 AI를 만드는 것. 하지만 이 단순한 목표 뒤에는 인공일반지능(AGI)을 향한 원대한 꿈이 숨어 있었다.
천재성과 열정은 넘쳤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AI 연구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고, 당시 AI에 대한 투자자들의 시선은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종종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찾아온다.
에스토니아 출신의 스카이프 공동창업자 얀 탈린이 옥스포드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하사비스의 발표를 듣게 된다. 탈린은 하사비스의 비전과 열정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즉시 실리콘밸리의 '페이팔 마피아'와 연결고리를 만들어주었다.
이 한 번의 만남이 딥마인드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일론 머스크, 피터 틸(파운더스 펀드), 스캇 배니스터 등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투자자들이 딥마인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단순히 돈만 투자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경험, 네트워크, 그리고 비전이 딥마인드에 더해졌다.
"우리는 운이 좋았어요. 얀이 아니었다면, 이런 훌륭한 투자자들을 만나기 어려웠을 겁니다." 하사비스는 후에 이렇게 회상했다. 실제로 뛰어난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많은 스타트업들이 적절한 투자를 받지 못해 사라져간다. 딥마인드의 사례는 혁신적인 아이디어, 뛰어난 인재, 그리고 선구안을 가진 투자자들의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실리콘밸리의 거물들과 손을 잡은 딥마인드는 빠르게 성장했다. 그들은 단순히 자금만 제공한 것이 아니라, 글로벌 네트워크와 경영 노하우를 함께 전수해주었다. 옥스포드의 '너드'들은 이제 글로벌 무대에서 혁신을 이끄는 주역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사비스와 그의 동료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투자받은 자금으로 최고의 인재들을 영입하고, 더욱 야심찬 프로젝트들을 시작했다. 벽돌깨기 AI를 만들겠다던 초기의 소박한 목표는 이제 "인류의 지능을 증강시키고 근본적인 과학적 발견을 이루어내겠다"는 대담한 비전으로 확장되었다.
혁신적 기술의 개발: DQN과 아타리 게임 정복
2013년, 딥마인드는 AI 역사에 한 획을 그을 혁신적인 기술을 선보였다. 바로 DQN(Deep Q-Network) 알고리듬이었다. DQN은 딥러닝과 강화학습을 결합한 기술로, AI가 마치 인간처럼 경험을 통해 학습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주었다.
강화학습은 AI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보상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학습하는 방식이다. DQN은 여기에 딥러닝의 강력한 패턴 인식 능력을 더해, 복잡한 환경에서도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게 했다. 딥마인드 팀은 이 기술을 아타리 2600 게임들에 적용했고, 놀랍게도 DQN은 49개의 다양한 아타리 게임들을 인간 수준 이상으로 플레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성과는 AI 연구 커뮤니티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여러 AI학회와 워크샵에 이 결과가 공유되면서, AI의 새로운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특히 브레이크아웃 게임에서 AI가 인간이 생각해내지 못한 효율적인 전략을 스스로 발견해낸 것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이 성과는 초기 투자자들의 안목이 얼마나 탁월했는지를 증명해주는 순간이기도 했다. 일론 머스크, 피터 틸, 얀 탈린 등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이 초기에 보여준 신뢰가 틀리지 않았음이 입증된 것이다. 이들의 투자는 단순한 자금 제공을 넘어, 딥마인드가 글로벌 무대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DQN의 성공은 딥마인드에 대한 관심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학계뿐만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거대 기술 기업들도 이 작은 영국 스타트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특히 구글, 페이스북 등이 딥마인드의 기술에 큰 관심을 보였다. 초기 투자자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이미 실리콘밸리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던 딥마인드는, 이제 기술력으로 그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과로 인해 딥마인드는 AI 연구의 최전선에 서게 되었고, 여러 대기업들의 러브콜을 받게 되었다.
구글 딥마인드가 최근 서비스 오픈한 동영상 생성 인공지능 비오(Veo)를 소개하는 장면. 두꺼운 실로 짠 아기코끼리가 초원을 걷고 있다. / 사진=Google DeepMind
구글의 인수: 새로운 전환점
2014년 초, AI 업계에 폭탄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구글이 딥마인드를 약 5억 달러(약 6천 500억 원, 비공개. 실제로는 6억 달러에 달했다는 설도 있다)에 인수한다는 발표였다. 이는 당시 AI 스타트업 인수 중 최고 금액이었고, 딥마인드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틱한 인수 뒤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다. 사실 딥마인드는 페이스북과 인수 합의를 거의 마무리 짓고 있었던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가 직접 나서서 하사비스를 설득했고, 계약 체결 직전까지 갔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구글이 파격적인 조건을 내밀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구글은 단순히 높은 인수가만 제시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딥마인드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윤리적 AI 개발에 대한 하사비스의 비전을 존중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하사비스와 그의 팀에게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결국 딥마인드는 구글의 품에 안기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에는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직접적인 개입도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하사비스와의 개인적 친분을 통해 신뢰를 쌓았고, AI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공유했다.
인수 후, 딥마인드와 구글은 함께 'AI 윤리 위원회'를 설립했다. 이는 AI 기술의 발전이 인류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고,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옥스포드 대학의 철학자이자 AI 윤리 전문가인 닉 보스트롬을 자문위원으로 영입한 것이다. 이는 딥마인드가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AI의 장기적 영향과 윤리적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구글의 인수는 딥마인드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거대 기업의 자금력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그들은 더욱 야심찬 프로젝트들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데미스 하사비스, 쉐인 레그, 무스타파 슐레이만. 세 창업자의 꿈과 열정으로 시작된 딥마인드는 이제 구글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그들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AI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딥마인드의 진정한 도전은 이제부터였다. 그들은 AI의 가능성을 세상에 증명해야 했고, 동시에 그 힘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책임도 짊어져야 했다. 그들은 아타리 게임을 넘어, 바둑을 두는 AI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조금 더 흘러 2016년의 서울. 세계 최고의 바둑기사 이세돌과 딥마인드의 AI '알파고'가 대결을 앞두고 있었다. 이 대결은 단순한 게임을 넘어, AI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순간이 될 터였다. 딥마인드의 도전은 이제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과연 그들은 어떤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까? AI의 미래를 바꿀 그 운명적인 대결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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