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세 할머니, 한의대 입학 꿈꾼다 | |
8486 | 2006-08-20 | 추천 : 9 | 조회 : 47886 |
마포에 위치한 양원주부학교는 한국전쟁으로 남한으로 피란 나온 분들의 자녀, 전쟁고아, 극빈 아동 등 정규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는 청소년을 교육시킬 목적으로 1953년에 설립한 일성고등공민학교로부터 출발했다. 초기에는 주로 학령자인 극빈자와 근로청소년을 교육하여 왔다. 그러나 70년대 후반부터는 청소년은 줄고 나이 많은 성인들이 하나, 둘 입학하기 시작했는데 80년대 초에는 한 학급에 10여명의 나이 많은 주부학생들이 모였다. 그래서 83년부터는 주부들을 그들의 희망대로 따로 지도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양원주부학교의 시작이다. 처음에는 한글도 모르고, 알파벳도 몰라 자신의 이름도 쓸 줄 모르며, 자기 집 자동차 이름도 못 읽고 한자로 자기 이름도 못 쓰는 학생들이 이제 배움의 과정을 마치고 오는 24일 소중한 졸업식을 하게 되었다. 졸업식은 학생들의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못 배운 한을 풀어줄 뿐만 아니라 못 가르쳐 시집보낸 친정어머니, 아버지의 한도 풀어 주는 씻김굿의 현장이기도 하다.
팔십 노모의 손목을 잡고 등교하는 아침이면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며 힘차게 공공근로를 하며 살아가는 오십 대 아주머니의 희망의 자리도 이곳에는 있다. 한의대에 입학하는 그날까지 나의 공부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굳센 의지를 다지는 81세의 만학도도 이곳에서는 열네 살 중학생의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어떠한 현실도 자신의 소중한 인생임을 미소 속에 드러내며 공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학생들이 얻어낸 졸업장이기에 더욱 값질 것이다. 그럼 이번에 졸업하는 주부, 할머니 학생들 중 특별한 사연을 가진 세 분의 사연(수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만학의 꿈을 키우는 주부님들께 자그마나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한의대에 가는 그날까지 -81 세 노익장의 꿈- 양정자 : 81세 내 나이 팔십 일 세. 나의 꿈은 아직 식지 않았다. 지금 내가 간절하게 원하는 것은 한의대에 진학하여 나처럼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고 싶은 것이 내 생애 마지막 소망이다.
나는 전주에서 살다가 서울에 올라와서 기술을 배워 돈을 벌어 보려고 미용학원에 갔더니 글을 모르는 사람은 미용 기술을 배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때의 절망감이란 그 무엇으로도 형용하기 어려운 심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글을 배우기로 결심을 했다. 하지만 칠십이 다 된 나이에 한글을 기역, 니은부터 배워서 웬만한 실력을 만들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다녀 보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곳이 양원주부학교이다. 나는 양원주부학교에서 초등학교 과정을 인정하는 검정고시에 합격을 했다. 내 나이 칠십 구 세에 말이다.
지금 나는 고입 검정고시에 도전하고 있는 중이다. 영어, 수학 등 어려운 과목들이 남아 있어서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그래도 용기를 잃지 않고 매일 매일을 공부하는 시간으로 꽉 채울 수 있는 것은 양원주부학교의 선생님들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내 가슴 속에는 ‘항상 배워야 산다.’라는 말이 꿈틀대며 내게 힘을 주곤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열아홉에 친구들과 물놀이를 갔다가 다시 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난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다. 하늘나라에서 이 에미가 열심히 공부를 해서 고검, 대검에 합격하고 한의대에 진학해서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이루어 낸다면 얼마나 기쁠 것인가.
지금도 척수수술의 후유증으로 인해 허리가 안 좋은 상태이다. 광명시에서 양원주부학교가 있는 마포까지 통학하기엔 너무 힘이 들어서 학교 근처에다 방을 하나 얻어서 혼자 살고 있다. 아주 작은 방 하나에 나의 몸과 영혼을 뉘여 놓고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 한 순간도 한 눈 팔지 않고 공부에 전념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늙은 나이에 그 무슨 주책이냐고 비난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런지.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공부하는 즐거움이 가져다주는 행복을 아느냐고 말이다.
사별의 아픔을 달래며 80에 시작한 중학생활 -이정희 : 81세 오늘은 아들이 와서 삼계탕을 먹으러 가자고 하여 갔습니다. 돌아가신 남편이 좋아하던 음식이라 먹고도 싶어서 갔지만 눈물이 앞을 가려 잘 먹지를 못했습니다. 자식들 앞이라 내색도 못하고 맘으로만 펑펑 울었지요. 오늘따라 무척 외로워지더군요. 보고 싶어서 못 견딜 정도였습니다. - (어느 날 노트에서)
오남매를 키우느라고 부부생활은 살처럼 없어지고 남편의 몸에서는 점점 더 병을 키우고 있었다. 그런 줄 모르고 감기약만 먹어댄 것이다. 과로로 인한 합병증으로 남편은 결국 80을 못 채우고 세상을 떠나 버렸다.
남편은 법대 출신의 인텔리였고 난 중학교 1년을 마친 학력의 소유자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잘 어울렸고 평생 맘 고생 없이 잘 살아왔다. 그 결과로 아들은 미국 위스콘신 대학을 마치고 테네시에서 학위를 따 지금 대기업 전무로 일하고 있고, 큰사위는 카이스트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모두 아내 덕분이라고 늘 장모 앞에서 감사하다고 하는 장한 사위이다. 막내딸은 존스 홉킨스 대에서 유전역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따서 서울대로 가기로 예정되어 있다. 막내사위는 서울대에서 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삼성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어딜 가나 자식들 자랑을 하고 있지만 애들 키우느라 결국 배우지 못한 내 인생이 너무 허무할 뿐이다. 그런데다 작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게 되자 외로움과 슬픔과 허무함은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어디를 가도 슬프고 무엇을 해도 외롭고 의욕도 없어지고 진정으로 목숨을 이어가야 하나 하는 절망감만 팽배해졌다.
그래서 일찍이 신문과 뉴스를 통해 알고 있던 양원에 맘을 독하게 먹고 입학해서 지금 중학교 과정을 졸업하게 된다. 젊은 사람들과 공부를 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왕 언니 대접을 잘 받고 있어 매일 매일이 행복하고 즐겁다. 하지만 맘 한 구석에는 남편이 살아있다면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을까 하는 생각에 한없이 서운해진다. 먼저 가버린 남편이 너무 보고 싶다. 더구나 나이가 한살씩 많아질수록 몸도 혼자서는 가누기가 힘들어진다. 아들이 같이 살자고 하는데 자식한테 짐을 주기도 싫고 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공부를 더 많이 하면 해답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인자하고 지혜롭고 훌륭신 선생님들을 만나러 오늘도 아픈 다리를 이끌고 힘차게 학교로 간다. 항암치료 받으면서 공부로 마음을 달랩니다 정추임 : 51세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슬펐던 때는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암 선고를 받던 순간인 것 같다. 순간 아무 생각도 없이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할일이 많은데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아직은 자식들 뒷바라지도 해줘야 되고 남편의 옆에서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 내가 더 살아야 하는데 내게 무슨 잘못이 많아서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쳐왔는지, 캄캄하기만한 나의 마음은 그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그 모든 것이 원망스러워 나는 울고 또 울었다. 그러나 아무리 울어도 내 몸이 다시 성해지지 않았고 아이들과 남편은 편함없이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틀을 울고 나니 모든 것이 포기가 되고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다음날부터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항암치료를 한 번 할 때마다 변해져가는 내 모습을 거울을 통해서 바라보며 나는 점점 무기력해 질 수 밖에 없었다.
6개월 동안을 고통 속에서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를 끝내고 하던 일도 다 정리했다. 아들도 군대에 가고 하루하루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애가 “양원주부학교”라는 곳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쓸쓸한 내 마음을 혹시라도 달래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무덤덤한 마음으로 등록을 했다.
처음엔 적응을 하지 못해서 무척 힘이 들었지만 결석은 하지 말아야지 하는 목표로 지금은 나름대로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내 마음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 몸이 끝이 나면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어떤 희망이 내 안에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 혼자만 못 배운 것 같아 항상 움츠리고 살았는데 학교 와서 학생들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되었고 세상에 나처럼 못 배운 사람이 저렇게 많았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은 위안을 받으며 새 인생을 사는 기분으로 친구들도 많이 사귀게 되었다. 세상에는 하고자 하면 배움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이런 곳도 있다는 것에 감사드린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숨 가쁘게 살면서 그 모든 것을 가슴에 묻고 사는 내가 불쌍해서 하느님이 내 인생을 되돌아 볼 기회를 주신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앞으로는 그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충실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지난학기 졸업식, 기쁨에 울고 있는 졸업생 사진:양원주부학교 사진 : 양원주부학교 제공 사진 : 양원주부학교 제공 사진 : 양원주부학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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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임시정부, 상해版 독립신문 창간
우리 근·현대사에서 ‘독립신문’의 제호를 사용한 신문은 많다. 서재필과 개화파가 창간한 독립신문(1896년), 장기영 등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창간한 독립신문(1919년), 광복 후 서울에서 발간된 독립신문(1945년), 1919년 8월 21일에 임시정부가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기관지로 발간한 ‘상해판(版) 독립신문’ 등이다.
‘상해판 독립신문’은 상하이에 망명 중인 독립지사들이 자신들의 공동관심사와 독립운동 관련 소식을 모아 발행하던 등사판 신문 ‘우리 소식’을 모태로 출발했다. 사장 겸 주필은 이광수가, 편집국장은 주요한이 맡아 타블로이드보다 조금 작은 크기로 주 3회 발행을 원칙으로 했다. 상하이에 한글 활자가 없어 성경에서 한글을 오려내 자모를 만들 만큼 제작환경이 열악했지만 일제를 통렬하게 비판할 때는 지면을 아끼지 않았다.
재정난과 일제의 간접적인 탄압으로 1925년 9월, 189호를 마지막으로 폐간할 때까지 ‘獨立’ ‘獨立新聞’ ‘독립신문’으로 제호가 3번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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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스탈린 정권의 희생양 트로츠키, 멕시코에서 암살 당하다
1900년대 초 영국 망명 기간 중 레닌과 공동 전선을 구축한 경험이 있는 트로츠키(Leon Trotskii)는 1차 대전 기간 중 對 독일 강화문제를 둘러싸고 레닌과 갈등관계를 형성하면서 1918년 권력 중심에서 밀려났다. 트로츠키는 레닌 사후 다시 당의 노선 문제로 스탈린과 대립하여, 1927년 소련 공산당에서 제명된 후 1929년 국외로 추방되었다.
그는 러시아와 같은 후진국은 혁명에 있어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필수조건이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 세계 혁명이 요구된다는 '영구 혁명론'을 주창, 러시아 단독으로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 가능하다는 스탈린의 '일국 사회주의론'과 대립하게 된다. .
1929년 국외로 추방된 트로츠키는 각국을 떠돌다, 1936년에 멕시코에 정착했다. 트로츠키는 경호원의 삼엄한 경비를 받으며 멕시코 시티 근처에 위치한 안가에서 은둔 생활을 했으나, 스탈린이 보낸 킬러에 의해 1940년 8월 21일 암살 당했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이 모스크바에서 궐석 재판을 통해 자신에게 사형을 구형한 후, 암살단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암살 석 달 전인 1940년 5월에도 트로츠키의 경호원들이 30명의 무장괴한을 총격전 끝에 물리친 적이 있었다.
암살 당일의 사고는 언론 기자로 변장한 암살범이 트로츠키에게 기사에 관한 조언을 구한다는 구실로 접근한 다음, 레인 코트 속에 숨겨 들어간 얼음 송곳(ice-pick)으로 그를 살해했다. 스탈린의 명령에 의해 트로츠키를 추적했던 비밀 요원의 한 명으로 추정되는 범인을 면담 직전에 트로츠키의 경호원이 사전 몸수색을 했으나, 범행에 사용된 '얼음 송곳'을 발견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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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8년(신라 진흥왕 29) 진흥왕, 황초령에 순수비 세움
1545년(조선 명종 1) 을사사화 일어남
1649년 리처드 크라쇼(Richard Crashaw), 영국 시인 태어남
1741년 헨델 오라토리오 '메시아' 작곡
1754년 윌리엄 머독(William Murdock), 스코틀랜드 발명가 태어남
1765년 윌리엄 4세(William IV), 영국 왕 태어남
1789년 프랑스 수학자 오귀스탱 루이 코시 출생
1798년 프랑스 역사가 쥘 미슐레 출생
1808년 주노(Junot) 장군의 프랑스군, 비미에로 전투(Battle of Vimiero)에서 웰링턴 공(Duke of Wellington)에게 패배
1821년(조선 순조 21) 우리 나라 최초의 신부 김대건 태어남. 한국 천주교 103위 성인중 1위
1838년 독일 시인 샤미소 사망
1862년 인상파 음악가인 프랑스 작곡가 드비시 태어남
1872년 어브리 베어드슬리(Aubrey Beardsley), 영국 일러스트레이터 태어남
1875년 운양호 사건. 강화도 수비대, 강화도에 나타난 운양호 포격. 운양호 물러나 영종진(永宗鎭)포격후 상륙 약탈함.
1901년 캐딜락 자동차 회사(The Cadillac Motor Company), 프랑스의 탐험가 안토이네 캐딜락(Antoine Cadillac)의 이름을 따서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 설립됨
1903년 일본 정부, 한만(韓滿)보호 기본타협안을 러시아 정부에 제시
1904년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 영국 재즈 피아니스트, 밴드리더 태어남
1909년 도수(屠獸)규제 반포
1911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걸작 <모나 리자 Mona Lisa>,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도둑 맞음 - 2년 후 발견됨
1912년 총포화약류 취췌(取締)령 공포
1919년 안창호 등 임정기관지 상해版 '독립' 창간
1930년 애스턴 웹(Aston Webb), 영국 건축가 태어남
1930년 영국의 마가렛 공주(Princess Margaret) 태어남
1933년 자넷 베이커(Janet Baker), 영국 메조소프라노 태어남
1934년 한강 인도교 공사 준공
1937년 중국-소련 불가침조약 조인
1943년 덴마크의 사실주의 작가 폰토피단 사망 - 1917년 노벨문학상 수상
1944년 덤버튼 오크스 회의 개최
1945년 손원일 등 海事關係 지도자들이 회합하여 海事隊 조직(손원일, 정긍모, 김영철, 한갑수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일종의 준군사단체)
1949년 서독 점령군, 군정 종식
1950년 육군보병학교를 부산 동래에서 陸軍諸兵學校로 개칭
1951년 레너드 콘스탄트 램버트(Leonard Constant Lambert), 영국 작곡가 태어남
1952년 인도-파키스탄, 국경선 획정에 관한 협정에 조인
1959년 자콥 엡스타인(Jacob Epstein), 영국 조각가 태어남
1959년 하와이(Hawaii), 미국의 50번째 주(州)로 편입
1964년 이탈리아 공산당 지도자 팔미로 톨리아티 사망
1968년 남해 서귀포 해상에서 무장간첩선 격침.
1968년 소련군, 체코에 침입
1969년 미, 쿠바 외교관 2명 추방
1969년 안성군에서 세기항공의 파이피기 추락, 국회의원 조창대 등 5명 사망
1970년 경부고속도로 추풍령서 한진고속버스 참사. 25명 사망, 22명 중경상
1976년 청계천 하수처리장 준공
1976년 UN군 판문점 문제의 미루나무 절단
1978년 태풍 칼멘호 강타, 44명 사망, 피해액 92억원
1980년 전군 주요지휘관회의, 전두환 장군을 국가원수로 추대하기로 결정
1981년 정부, 제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 확정 발표
1982년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 레바논 철수 개시
1983년 필리핀의 정치가이며 마르코스의 독재 반대 운동을 해온 아키노(Benigno Aquino), 마닐라 공항에서 괴한에게 암살됨
1985년 한국, 국제이동위성기구 가입
1986년 구 중앙청 청사를 개조한 국립중앙박물관 개관
1986년 변호사 이병린 세상 떠남. 대한변협회장 역임. 저서: <법 속에서 인간 속에서>
1991년 라트비아(Latvia), 독립 선언
1991년 모스크바에서는 옐친, 레닌그라드에서는 시장 소브차크의 주도하에 각각 20만 규모의 쿠데타 규탄 집회가 열림
1991년 정부, 과학기술처산하 19개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을 통폐합
1993년 영호남 등 남부지방에 집중호우. 12명 사망, 재산피해 206억여원
1993년 타티아나 트로야노스(Tatiana Troyanos), 미국 메조소프라노
1995년 미국, '중국이 대만 침공하면 개입' <대만관계법 의거> 대만주재 미국대표 언명.
1995년 서브라만얀 찬드라세카(Subrahmanyan Chandrasekhar), 인도 출생 미국 천체 물리학자
1997년 UN 인권 소위원회, 북한 인권결의안 채택. 1)강제수용소의 대규모 구금을 포함한 심각한 인권유린. 2)거주이전 자유에 대한 심각한 제약. 3)인권관련 정보차단에 대한 우려. 국제기구가 북한의 인권에 관한 결의안 채택은 이번이 처음.
1998년 국방부, <화생방 방호사령부> 창설.
2003년 2003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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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세요!
첫댓글 하와이가 미국의 50번째주로 편입이되네요... 퀴터달러를 모으다보니 이런것도 많은 관심이 갑니다...^^ 임시정부의 독립신문이 발간되었네요... 여러종류의 독립신문이 있었던것은 오늘 알았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 ~! 노력하는 인내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 많이 들리는데 .... 이글 오늘 많이 좀 일었으면 합니다. 지나온 학창시절 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것이 후회되는군요. 정말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오늘의 소사 매번 감사하게 읽고 있습니다.
양원주부학교의 81세 만학도 - 그간 얼마나 불편했을까요, 그리고 앞으로 희망이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80년 군부가 전두환을 국가원수로 추대하네요. 그 댓가가 오래갈 것 같습니다. 아키노도 공항에서 피살후 부인 코라손이 대통령을 하게 됩니다. 잘잘못 그 많은 것이 국민들에게 또 오랫동안 기억되고 있습니다.
늦은 나이에도 꿈과 희망을 가지고 공부하시는 주부학교 학생분들께 힘찬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오랫만에 댓글 남기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