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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방 맡기는 여자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자신의 여자 친구의 핸드백을 들어주는 남자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자유국가 대한민국에서 여자 가방을 남자가 대신 들어주는 것이 무슨 대수겠냐마는 꼴불견으로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이는 특수한 상황이 아닌 지극히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미혼의 젊은 남녀관계를 전제한다.)
- 여성에게 핸드백이란 무슨 의미인가
<명품의 이유 10 펜디의 셀러리아 가방, 중앙일보, 2010-10-06.>
여성의 핸드백은 사실 내포하는 의미가 꽤나 있어보인다.
우선 핸드백은 여성의 은밀한 사생활을 의미한다. 오늘날 현대 여성들의 핸드백에는 보통 신분증과 돈이 있는 지갑, 각종 사진과 전화번호가 등록되어 있는 핸드폰이 기본적으로 들어간다. 또 사람에 따라 사생활이 담긴 수첩이나 다이어리, 화장실에서 화장 수정을 위한 코스메틱 제품들, 휴지나 손수건 같은 개인 위생을 위한 용품, 또 상황에 따라선 여성용품이나 다소 민망하거나 비밀 스러운 물건들이 들어 있기도 하다. 핸드백은 여성의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비밀스러운 공간의 확장이다. 그래서 부부 사이에서 조차 남편이 아내의 핸드백을 열어보는 것은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한편 핸드백은 패션을 중시하는 오늘날 트렌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토탈 코디네이션의 완성점이다. 완벽한 옷과 구두, 헤어와 화장을 하더라도 가방이 어울리지 않는 다면 말짱 도루묵이 되는 것이 여성의 핸드백이다. 그림에 눈을 그려넣자 용이 살아나 승천한다는 고사처럼 여성의 핸드백은 패션의 화룡점정이다.
또 한편으로 여성의 핸드백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기도 한다. 오늘날 명품, 메스티지 핸드백들은 여성들의 경제력을 상징하고, 실용성을 중시하는 핸드백은 그 여성이 매우 능력있는 여성임을 짐작케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독특하고 개성적인 핸드백은 그 여성의 높은 안목과 수준을 보여주는 것도 사실이다.
- 핸드백을 남성에게 건네는 여성의 심리는 무엇인가
<환희 “화장실 앞 여자친구 핸드백 들고 기다렸다, 뉴스엔, 2009-03-08.>
이렇게 핸드백은 여성에게 ?레야 뗄 수 없는 아이템이자 심볼이다. 그런데 이런 핸드백을 남성에게 맡기는 여자의 심리는 도대체 무엇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이런 문제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나 연구가 진행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추측에 맴돌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생각해보면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핸드백을 맡기는 이유는 보통
1. 가방이 정말 들기 무거워서
2.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이 귀찮아서
3. 남자친구가 자신의 가방을 먼저 들어주려고 해서
4. 자신의 가방을 들어주는 매너좋고 듬직한 남자친구가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서
정도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앞서 전제 했듯이 불편한 화장실에 가거나 몸이 갑자기 아프거나 하는 등의 특수한 상황이 아닌 지극히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미혼의 젊은 남녀관계를 전제한다)
-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나는 무슨 이유든 핸드백 맡기는 여성은 스스로를 망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심리를 하나씩 따져보자
1. 가방이 들기 무거워서
- 자기가 들고 다니기 버거울 만큼 무거운 가방을 들고 데이트에 나오는 여자는 현명하지 못한 여자일 것이다. 우선 가방 자체가 무겁다면 이는 자신에게 맞는 똑똑한 소비행위를 하지 못한 것이다. 괜히 멋부리기 위해 무거운 가죽 가방을 샀거나 장식용 징이 주렁 주렁 박힌 가방이 대표적인 예다. 또 남성이든 여성이든 가방을 들고 데이트를 나올 때 가방의 무게를 최소화 하고 꼭 필요한 물건들을 자신에게 맞는 무게로 준비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럼에도 핸드백에 넣고 다니는 것이 부담스러울 무게라면 보조 가방을 하나 더 들거나 예쁜 백팩을 준비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무게임을 알고도 남자가 들어주길 바라고 데이트에 나오는 속내는 너무나 뻔하지 않은가. 가방을 못들 만큼 몸상태가 안좋다면 애초에 데이트에 나오질 말았어야 한다. 물론 예기치 않은 상황은 예외가 되겠지만.
자신이 감당치 못할 정도 무게의 가방을 들고 데이트를 나와 '가방은 남자가 들어주겠지'라고 생각하는 여성의 심리를 과연 건강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
2.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이 귀찮아서
- 자신이 가방 드는 것을 귀찮아 해서 남자 친구에게 맡기는 여자는 이기적인 여자일 것이다. 자신이 귀찮으면 상대방도 귀찮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태도의 발현 아닐까.
여자의 불편함을 남자가 해결해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런 여자의 심리를 순순히 받아 들일 남자가 얼마나 될까?
3. 남자친구가 자신의 가방을 들어주려고 해서
- 자신의 남자친구의 뜻에 따라 순순히 가방을 맡기는 여자는 책임감이 없는 여자일 수 있다. 또한 조금 심하게 말하면 자기 의견이 없는 여자일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물건을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고 남자친구가 달라고 해서 주는 수동적인 태도도 그렇거니와, 앞서 보았듯 은밀하고 개인적인 여성의 핸드백을 남성에게 쉽게 건네는 여자는 자신의 주관과 영역이 확립되어 있는 여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물론 여자쪽에서 원치도 않는데 먼저 나서서 가방을 들어주는 남자도 그저 별생각이 없는 남자이기는 마찬가지 일 것이다.
4. 자신의 가방을 들어주는 매너좋고 듬직한 남자친구가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서
- 이런 유형의 여성은 큰 오해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남자 친구와의 교제가 자신의 정서적, 감정적 충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변의 시선이나 허영을 채우기 위한 것임은 아닌지, 자신이 남자 친구를 정말 사랑하는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심지어 여자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남자가 그리 듬직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 것을 남자친구의 매너와 믿음직함, 연인 사이의 사랑과 돈독한 유대관계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오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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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남자에게 가방을 맡기는 여자의 심리를 이렇게 단순화 시킬수는 없고,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인들이 합쳐진 것일 수 있다. 그리고 남자에 비해 약한 신체구조를 가진 여자의 가방을 남자가 들어주는 것은 남녀평등을 논하기 전에 '하나의 배려'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남녀평등이 이루어 지려면 법과 규제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남녀평등이 아닌, 우리 문화 깊숙히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남녀평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여자의 가방을 들어줄 정도의 사이가 되면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사이가 아닐 것이다. 길거리에 여자의 가방을 남자가 들고가는 커플을 보면 그 커플을 연인이라고 생각하지 그냥 단순한 회사동료나 친구로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고 보면, 여자의 가방을 들어주는 남자의 심리도 "이 남자는 내 남자다", "이 여자는 내 여자다"라고 보여주기위한 심리의 하나일런지도 모르겠다.
<남녀 평등 외치다가도 난 여자이니까... 알다가도 모를일, 포커스신문사, 2010-10-07.>
하지만, 여성의 사생활과 스타일을 대변하는 핸드백. 여성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가늠케 하는 핸드백, 여성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하는 핸드백을 남성에게 맡기는 여자는 과연 남녀 평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남성과 여성의 평등은 같은 권리를 향유하는 만큼 같은 의무를 부담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성과 여성의 다름을 인정하는 만큼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어야 한다. 자신의 핸드백을 맡기는 여자는 스스로를 남성에게 종속시키는 행위로 이해될 수 있으며,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남성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또한 여성이 남성보다 힘이 약하다는 신체적 차이를 알고도 그에 적절히 대처하지 않는 것은 남여의 다름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2. 깔창 신는 남자
"루저녀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익히 유명한 사건이다. 하지만 기실 루저녀는 공공연하게 존재하던 대한민국 사회의 키에 대한 콤플렉스를 수면위로 부상시키는 펌프질을 했을 뿐이다.
- 깔창은 머스트-해브 아이템
<똑똑한 깔창 “신고 걸으면 살 빠져요.”, 포커스신문사, 2010-10-05.>
요즘 TV 프로그램을 보아도, 또 주위를 둘러 보아도 남성에게 깔창은 일종의 머스트-해브(Must-have :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must와 have를 결합한 신조어)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키 작은 남자는 볼 품 없다"는 일부 여성들의 생각이 공공연히 퍼지게 되고 키 크고 늘씬한 서구인들에 대한 동경과 함께 '키 큰 남자가 경제력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 '키 큰 남자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위치할 가능성이 크다' 는 등의 의도된(?) 통계자료들은 키에 대한 대한민국 사회의 컴플렉스를 부채질했다. 그리고 결국은 깔창이라는 "희대의 발명품"이자 "남성을 향한 족쇄"인 신상 아이템을 생산해냈다.
- 깔창의 해악
깔창의 해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심한 것이 실상이다. 깔창은 우선 남성들의 허리와 등, 무릎 관절, 척추와 목뼈에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가한다. 이는 특히 성장기 학생들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데, 이러한 블필요한 스트레스는 성장을 방해하고 골격을 굽게 만들어 오히려 키를 작게 만들며 조금만 활동해도 쉽게 피로해지게 만든다.
불편한 자세는 집중력과 안정감을 떨어뜨려 학습이나 업무 활동에 지장을 주고 이러한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축적될 경우 척추 등에 장애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발은 온 몸의 축소판으로 알려져 있는데 깔창으로 인해 좁아진 신발에 발이 눌리면 혈액순환도 안되고 붓기가 쉽게 오르고, 하지정맥류와 같은 질병을 야기하기도 한다.
<성장걸림돌 척추 측만증 어떻게 치료하나, 헬스코리아뉴스, 2010-02-02.>
또 너도 나도 깔창을 신다보니 서로 좀 더 커보이기 위해 더 높은 깔창, 더 많은 깔창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 연쇄적인 효과로 요즘에는 키 180cm가 넘는 소위 비(非)루저들도 깔창을 신기 시작했다. 마치 전염병처럼 깔창이 널리 퍼지고 있고 정도도 갈 수록 심해지며 그 전염력도 매우 강해지고 있다.
이는 다시 깔창을 신은 남자들끼리 사이에서도 "깔창을 신어도 키가 작네."라는 느낌을 주게 되고 스스로를 다시 키 컴플렉스와 깔창에 종속시키는 순환오류에 빠지게 한다. 결국 깔창은 키 컴플렉스를 해결해 주기는 커녕 심화시킬 따름이다.
- 키의 노예로 만드는 깔창
"루저녀 사건"이 터졌을 때 수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루저녀가 말하는 '루저'이든 아니든. 하지만 그 때 분노 했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지금 깔창을 선택하고 있다. 키로 사람을 차별하고 구분짓는 것에 분노하면서도 스스로를 그러한 논리에 편입시키는 모순적인 행동이다. 그렇게 깔창 신는 남자들은 스스로를 '루저녀의 오류'와 '키 컴플렉스'에 종속시키고, 그러한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포기하여 노예가 되가고 있다. 깔창을 신어 자신감을 얻겠다는 데 무슨 문제냐라고 반문한다면 다시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당신의 자신감과 자존심은 깔창 따위로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
☞ 남자♂와 여자♀, 자유롭고 평등한가?
<KBS 미녀들의 수다 화면 캡쳐. 스스로에 대해 우리는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핸드백을 맡기는 여자, 깔창을 신는 남자. 오늘날 패션을 읽어보면 우리 사회 문제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핸드백을 맡기는 여자는 스스로의 평등권을 누릴 줄 모르는 것일 수 있다.
깔창을 신는 남자는 인간 고유의 자유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은연중에 타성에 젖어 남성과 여성의 성적 자유와 평등에 무감각하게 대처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자유와 평등을 핏대 높여 주장하기에 앞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자유와 평등을 좀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중히 되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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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