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랑 비탈(élan vital), 생(生)의 약동을 의미하는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 Bergson, 1859~1941)의 용어다. 신천둔치를 걷는다. 걷다가 잉어 촬영지에 서서 아래를 보니 잉어 떼가 득실하다. 오늘따라 꼬리 움직임이 더 활기차다. 살아 있음을 알리는 약동이다.
‘약동’이란 어휘는 생의 특징을 묘사한다. 우리의 삶은 이성에 의해 합리적으로 조절되기를 거부한다.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튀어 나가는 게 삶이다. 마치 오랫동안 술을 담아 놓은 통 어딘가에 자그마한 구멍이라도 나면 그곳으로 술이 거세게 튀어나오는 거와 흡사하다. 삶은 예측가능한 방식으로 통제되기를 거부하는 술통 안의 술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잉어 떼의 약동을 보면서, 서글픈 생각에 젖는다. ‘약동’이란 어휘는 나와 상관없는 건 아닌가? 나이가 들수록 무기력해진다. 약동의 주체는 생명이다. 생명의 뿌리는 욕망이다. 욕망의 언어가 희미해지거나 사라지는듯한 기분이다. 욕망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 욕망은 창조의 원질이고 새로움의 원천이다.
욕망의 언어를 망각하면 우린 그저 하나의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 화석화되어 가는 고깃덩어리를 재성화(再性化, resexualization)하는 일이 나에겐 고작 글 쓰는 일이다. 글이 마렵다. 쓰고 싶은 욕망은 모두에게 있다. 인간은 모두 글 쓰는 존재, 즉 호모 스크리벤스(homo scribens)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화장실을 자주 가듯, 글이 더 마려워진다. 그래서 난 거의 매일 하나씩 배설한다. 마려운데 어쩔 수 없다.
매일 올리는 글이 누군가에겐 배설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글과 행동이 다르다고 비방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 어차피 우린 결국 자위하는 존재다. 자신을 위로해 줄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아직도 괜찮다고. 잘 하고 있다고. 인간은 결국 실존적으론 에고이스트다. 결국 홀로 죽음에 마주 서야 할 존재다. 내 죽음 앞에선 가족도 친구도 다 이방인이다.
난 그 홀로 죽어야 할 미래의 사건을 오늘 글을 쓰면서 앞서 맞는다. 우린 결국 살면서 죽어간다. 죽어가면서 살고 있다. 그러다가 언젠가 홀로 내 죽음을 감당해야 할 실존적 고아이다. 실존은 그 누구의 것이 아니라 바로 내 것이다. ‘실존’이란 말마디가 다소 생소하다. 일상어가 아니다. 그저 ‘있다’ 혹은 ‘존재한다’로 표현한다. 하지만 잉어가 존재하는 방식과 인간이 존재하는 방식은 차이가 있다. 인간은 존재 자체가 문제인 존재다. 인간은 잉어에겐 쓸데없는 실존적 방황을 하며 산다. 그것도 홀로.
철학자 들뢰즈는 ‘—임’이 아닌 ‘—되기’(becomming)를 강조한다. 무슨 말인가? 인간을 이미 확정된 존재로 규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론 승산없는 베팅을 하며 산다. 하지만 실존론적으론 항상 가능 존재다. 그래서 무(無)다.
한곳에 뿌리를 내린 채 기존의 질서에 동화되어 사는 삶은 약동적이지 않다. 지속으로 탈영토화와 탈코드화를 시도하려는 창조적인 힘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 생물학적으로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아둔 인간이다. 그렇다고 주어진 영토에 정착하는 삶은 무기력하다. 지속적인 탈주가 필요하다. 항상 나 아닌 다른 것이 되기가 필요한 이유다. 생성과 차이의 철학이다.
인간은 항상 인간의 거울로만 인간을 봤다. 이제 잉어‘되기’를 통해 나를 비추어 보자. 잉어에게는 니즈(Needs,욕구)만 있고, 원츠(Wants,욕망)는 없다. 최소한의 욕구 이외 다른 욕망은 사치다. 끝없이 되새김질하는 나의 헛된 욕망이 잉어 떼 앞에서 부끄러워진다. 우린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며 자신의 바벨탑을 짓고 산다. 그 탑이 언제 무너질지도 모른 채.
나의 글쓰기는 노마드(유목민)로 살기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살 수 없다. 글쓰기는 새로운 내일 살려는 본능적 몸부림이다. 쓰지 않으면 마렵다. 나에겐 생존을 위한 최종병기가 글쓰기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
"쓰지 않으면 마렵다."
크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강렬한 욕망이자 힐링이 되겠지요,
끊임없이 퍼올리는 유려한 글들이 마냥 신기하기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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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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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