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 뒤 멸종” 생태계 파수꾼 꿀벌 지켜라
류준영 머니투데이 미래산업부 기자
“이제는 꿀벌에게도 ‘동물복지’가 필요합니다.”
이상재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생물부장은 “양봉(養蜂, 벌을 기르는 축산업) 연구는 융복합 학문으로 작년부터 8년간 5개 부처가 협력해 다부처 공동연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라며 “가내수공업에서 양봉 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체계를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5개 부처는 농업진흥청 농업과학원을 비롯해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농림축산식품부 농림축산검역본부, 기상청 국립기상과학원, 환경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다. 투입되는 R&D(연구·개발) 총예산은 484억 원에 이른다.
‘꿀벌 살리기 프로젝트’ 위해 양봉생태과 신설
전주역에서 차로 20~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농업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과의 각종 ‘꿀벌 살리기 프로젝트’가 한창이다. 농업 정책 및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인 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이 주선해 뒤영벌 스마트사육시설과 실험양봉장을 둘러볼 기회를 얻었다.
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과는 우리나라 양봉산업 분야 R&D를 책임지겠다는 목적으로 2021년 7월 1일 만들어졌다. 구체적으로는 ▲꿀벌 및 화분매개벌 유전자원 보존·품종 육성·보급 ▲꿀벌 안정생산기술 및 병해충 관리기술 개발 ▲화분매개벌류 이용 기술 개발 ▲양봉산물 등 꿀벌자원 고부가가치 신소재 개발 및 산업화 연구 ▲초본 및 농작물 밀원식물 개발 등의 임무를 수행 중이다.
양봉생태과를 신설한 계기는 꿀벌 집단 실종으로 양봉 농가의 시름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급격한 기후변화 등으로 최근 꿀벌이 폐사하면서 생태계 변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농진청에 따르면, 재작년 겨울 전국에서 꿀벌 약 78억 마리가 사라졌다. 전체 꿀벌의 약 18%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어 2023년 초에도 2배 가까운 약 140억 마리의 꿀벌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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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영벌 스마트사육시설'에 온도 습도 조도 등을 표시한 디스플레이 |
꿀벌 사라지면 ‘6차 대멸종’ 올 수 있어
응애 같은 병해충 발생과 과도한 농약 사용이 원인으로 꼽히지만, 폭염과 폭우 등 예전과 달라진 기후변화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는 설명이다. 이상기후로 꿀벌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밀원식물(꽃샘식물)의 개화 기간이 단축돼 이런 위기를 맞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더해 아까시나무(아카시아) 개화 시기와 꿀벌 활동 시기와의 불일치 등으로 꿀벌을 사육하는 양봉 농가의 주 소득원인 아카시아꿀의 작황도 부진하면서 농가 소득이 크게 감소했다. 올해도 세계 곳곳에서는 이상기후에 따른 피해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돼 더 많은 꿀벌이 실종 또는 폐사할 수도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꿀벌은 꿀 생산뿐 아니라 작물이 열매를 맺도록 수분을 돕는 역할도 한다. 꿀벌은 전 세계 과채 수분[受粉, 종자식물에서 수술의 화분(花粉)이 암술머리에 옮겨붙는 일]의 7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꿀벌이 사라지면 작물 생산량도 떨어지게 돼 ‘6차 대멸종’이 올 수 있다는 경고가 뒤따른다. 이 부장은 “꿀벌이 멸종하면 인류가 4년 뒤에 멸종한다는 말이 있다”라며 “화분 매개를 통해 우리가 먹고 있는 100대 작물 중 70%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꿀벌의 실종·폐사를 해결할 방안을 찾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고 중요한 시점이라는 얘기다.
꿀벌 지원군 ‘뒤영벌’ 생산 박차
이곳에선 꿀벌을 대신해 화분 매개 역할을 맡을 곤충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뒤영벌은 실내 사육이 가능하다. 따라서 급격한 기온변화나 병충해에 효과적인 자원으로 꼽힌다. 뒤영벌 생산이 고도화되면 10년 안에 시장 규모가 2배 이상 성장할 거란 전망도 있다.
실내화를 갈아신고 끈적끈적한 발판을 밟은 뒤 ‘뒤영벌 스마트사육시설’에 들어가보았다. 사육장 내부에는 실시간으로 온도와 습도, 조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다. 뒤영벌 교미실 문 앞에는 ‘뒤영벌 사육환경관계 시스템’이라고 표기된 약 40인치 모니터가 설치돼 있었다. 화면엔 교미전준비실, 교미실, 산란실, 봉군형성실, 봉군숙성실의 온도, 습도, 조도가 표시돼 있었다.
교미실은 어두웠고, 뒤영벌 보금자리 상자가 연구실 벽을 둘러싼 선반마다 놓여 있었다. 봉군형성실에서 박기영 농업연구사는 가로 40㎝, 세로 30㎝, 깊이 20㎝ 정도 돼 보이는 플라스틱 상자를 내왔다. 상자 내부엔 검지 한마디만 한 여왕벌 1마리를 50~80마리의 일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박 농업연구사는 “90일 정도 돼 벌집이 어느 정도 크기가 되면 시설 하우스로 보낸다”라고 말했다.
상자엔 날짜별로 늘어난 뒤영벌 숫자를 체크한 표기와 함께 인공수정, 봉군(벌무리) 형성 등 현재 상태를 기록한 메모가 붙어 있었다. 개체군 숫자를 파악해 외부 민간업체로 배송 가능한 일정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한상미 양봉생태과장(농업연구관)은 “숫벌과 여왕벌은 2주간 공중 교미한 뒤 체임버에 들어간다”라며 “뒤영벌은 비닐하우스와 같은 좁은 공간에 대한 적응력이 꿀벌보다 뛰어나고 꿀벌의 화분 매개가 어려운 토마토와 무밀작물에서도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ICT 기술도 적극 활용…꿀벌의 가치는 5조~6조 원 이상
농업과학원 양봉생태과에서는 꿀벌통 환경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실시간으로 전송하고 또 제어하는 기능도 연구 중이다. 농업과학원 인근 산자락에 다다르자 ‘윙~윙~’ 소리가 들리는 양봉실험실이 나타났다. 이곳 공터 한가운데는 전기선이 연결된 벌통이 줄지어 있었다. 겉보기엔 일반 나무 벌통 같지만 화분 매개에 사용하는 벌의 활동과 봉군 수명을 늘릴 수 있도록 개발한 ‘스마트 벌통’이다.
출입구엔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달아 몇 마리의 꿀벌이 생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또 벌통 내부 먹이(대용화분, 당액), 내온도, 이산화탄소 농도까지도 모바일로 모니터링을 할 수 있다. 내부 환경을 제어할 수 있는 앱(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원격 관리도 가능하다. 이런 기능 덕에 농가들은 현장에 가지 않고도 벌을 키울 수 있게 됐다. 벌을 잘 모르는 초보자도 벌통을 손쉽게 관리할 수 있다는 설명이 더해진다.
이곳 관계자는 “비닐하우스가 고온일 때는 센서와 연동된 환기 팬을 가동해 벌통 내부를 최적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라며, “이를 통해 기존 벌통보다 벌의 활동은 2배 이상 늘고 벌의 생존 기간도 65%가량 늘린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화분 매개로 인한 착과율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농업과학원의 스마트 벌통은 현재 8개 지역에 200여 개가 설치·운영 중이다. 연내 12개 지역에 300개를 더 설치할 예정이다. 이 부장은 “벌통 내부의 다양한 센싱과 빅데이터, 딥러닝이 조합된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등 꿀벌을 안정적으로 증식 관리하는 기술을 계속 개발, 보급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농업과학원은 전북 부안군 위도에 ‘꿀벌 격리육종장’을 구축하고 우수한 꿀벌 품종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한상미 과장은 “농사는 종자로 시작해 종자로 끝난다는 말이 있듯 장기적으로 꿀벌도 응애 저항성 품종을 육종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말했다. 농업과학원은 앞으로 전남 영광, 경남 통영, 충남 보령 등에 ‘꿀벌자원 육성 품종 증식장’을 건립하고, 2025년부터 연간 5,000마리 이상의 우수한 여왕벌을 생산해 양봉 현장에 보급할 계획이다.
이번 기관 탐방엔 농업회사법인 항미종묘 김태경 대표,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이인복 교수, 목장이나 농장에 각종 ICT(정보통신기술) 융복합 서비스를 개발·제공하는 애그테크 스타트업 제네틱스 하현제 대표 등이 함께 참여했다. 이주량 선임연구위원은 “꿀벌의 화문매개 가치는 5조~6조 원 이상”이라며 “농업 생산량 10%가 변하면 가격은 60%가 변한다는 법칙이 있다. 빠른 조처를 하지 않으면 앞으로 곡물 가격의 높은 변동성에 따른 부담을 모두가 안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