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종횡무진: 안은영과 최재천, 누에 애벌레에서 세계 멸망까지
아홉 누에 애벌레와의 생활의 기록《안녕, 나의 아름다운 미물들》
동물행동학도 누에에 빚지고 있다, '노벨노동상' 수상자 부테난트
완보동물, 바퀴벌레, 양서류... 지구 마지막 순간에 떠올릴 동물들
사랑하고 사랑받을 줄 아는 것, 남은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거!
누에들이 뽕잎 갉아먹는 소리를 들어보세요, 가문 날 빗소리처럼 반가운
베스트셀러 《여자생활백서》의 안은영 작가가 아홉 누에 애벌레들과 함께 보낸 시간을 꾹꾹 눌러쓴 《안녕, 나의 아름다운 미물들》 책으로 돌아왔다. 누에 애벌레와 나눈 교감, 마음의 파문과 생활의 변화가 담긴 선물 같은 책이다.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등 생물(학)을 통해 시대의 메시지를 전하는 최재천 교수가 안은영 작가와 만나 '미물'들 이야기에서 시작해 세상의 멸망을 지켜볼 동물과 사람을 꼽고, 매일의 성실함 같은 덕목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담준론(高談峻論)은 '뜻이 높고 바르며 엄숙하고 날카로운 말'이기도 하지만 '아무 거리낌 없이 잘난 체하며 과장하여 떠벌리는 말'이라는 뜻도 갖고 있다. 둘은 고담준론에서 비켜서 누에 애벌레가 뽕잎 갉아먹는 소리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문 날 듣는 빗소리처럼 환영할 만한 대화다. [편집자 주]
각자의 누에 애벌레의 인연에서 시작해 미물과 인간이 교감하며 나눈 충만함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한 안은영 작가(왼쪽)와 최재천 교수. 소소한 이야기들이 파문이 되는 대화였다. // 사진=백범선 메디치미디어 영상팀장
누에의 인연과 노벨노동상
안은영: 안녕하세요, 《안녕, 나의 아름다운 미물들》을 쓴 안은영입니다. 오래전 기자 생활을 하면서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는데, 어느 날 다른 삶을 살게 되면서 숲해설가가 되고, 누에도 키우고, 그러다 누에에 관한 책까지 쓰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 마음에 작은 파동들이 있었는데, 선생님의 책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가 그 계기 중 하나였어요. 감사합니다.
최재천: 반갑습니다. 저도 작가님의 책 《안녕, 나의 아름다운 미물들》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 책이 계기가 되었다니 고마운 일이네요. 그런데 누에는 어쩌다 키우기 시작했던 건가요?
안은영: 얼떨결에 시작했어요. 유아 전문 숲해설가이기도 해서 아이들과 여러 활동을 함께하거든요. 한 동료가 누에 키우기를 해보면 좋겠다고 누에 애벌레 아홉 마리를 안겨준 거예요. 결혼을 해본 적도 없고, 고양이나 강아지도 길러본 적이 없어서 생명이 있는 존재를 책임진다는 게 한편 무서웠어요. 그런데 누에 애벌레 애들이 너무 귀엽더라고요. 꼬물거리면서 뽕잎만 먹고 산다는 게 신기했어요. 이파리만 먹고 사는 존재를 그냥 바라볼 뿐이었는데, 어느새 거기서 엄청난 감동을 받고 있더라고요.
최재천: 겂 없이 시작하셨군요.
안은영: 감당이 안 될 줄 알면서 시작했는데, 키우면서는 정말 좋았습니다.
최재천: 뽕잎은 어떻게 구하셨어요? 농약을 치지 않은 신선한 뽕잎 구하는 게 힘들었을 텐데요.
안은영: 집 주변에서 뽕잎을 얻을 수도 있지만, 약을 치는 경우가 많아서 쉽지 않았어요. 이 책에는 쓰지 않았는데, 두 번째로 누에들을 키울 때 제가 농약 친 뽕잎인지 모르고 주었다가 아이들이 까맣게 되어 죽는 걸 봤어요. 그때의 기분은 정말 참혹했죠.
최재천: 누에가 굉장히 예민한 동물이거든요. 처음 키운 누에가 아홉 마리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몇 마리를 기르셨나요? 직접 부화도 시키셨나요?
안은영: 처음에는 아홉 마리였고요, 나중에 스무 마리까지 키워봤어요, 그 이상은 제가 감당을 못하겠더라고요. 직접 부화시키지는 못했고, 부화한 애벌레를 받아서 키웠습니다.
최재천: 저도 어렸을 때 집에 누에가 있었어요. 강릉이 고향인데,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자식들을 키워야 되니까 안 하는 일이 없으셨죠. 닭도 길러서 달걀 몇 개 장에 내다 팔고, 텃밭에서 뜯은 것도 팔고 하셨는데, 어느 해 방학에 가보니 누에를 기르고 계시더라구요. 할머니께서 안방 아랫목에다 짚으로 만든 가마니 같은 것에 키웠던 기억이 나요. 누에를 치느라 뽕나무를 심고 그 뽕잎 따는 임무를 제게 맡기셨는데, 저는 오디 먹는 맛에 즐겁게 그 일을 했죠. 오디, 진짜 맛있었어요. 한참 세월이 지나 미국 유학 시절 어느 날 친구네 집에 놀러가니 뒤뜰에 블랙베리가 있다고 하기에 열매를 따먹었는데, 뭐야, 이거 오디잖아, 했습니다. 그 맛이 그대로 기억에 남아 있었거든요. 오디를 영어로 블랙베리라고 하는 걸 그때야 알았죠.
안은영: 제가 누에를 키우면서 누에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아 공부를 했는데요,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잠사협회 등에서도 건강식 만드는 사업과 식품 만드는 것에만 관심이 있어서 누에 기르는 것에 대해서는 도움을 많이 못 받았어요. 누에가 나방으로 우화할 때까지 왜 기르느냐는 말에 상처를 받기도 했고요.
최재천: 제 전공 분야가 동물행동학인데요, 누에나방이 동물행동학 분야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지금은 많은 분이 ‘페로몬’이라는 단어를 일상어처럼 사용하는데, 사실 페로몬이 뭔지 정확하게 알고 사용하는 분은 많지 않아요. 몸에서 생기는 페로몬이라는 이 화학물질은 의사소통에도 관여한다고 하죠. 그 페로몬의 화학신호를 처음 밝혀낸 사람이 독일의 화학자 부테난트인데, 누에나방을 통해 알아냈습니다. 오늘날엔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누에나방 한 마리만 있어도 이 연구가 가능하고, 또 연구하면서 나방을 죽이지 않아도 돼요. 누에나방을 잡아 종이에다 살짝 배를 눌러서 액을 조금 짜서 묻히고는 날려 보내면 되거든요. 그 액만 분석하면 되니까. 하지만 1930년대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연구에 쓰인 누에나방 숫자를 보면 어마어마합니다. 한 1만 마리 이상을 잡아서 갈아서 추출하고, 그걸로 분석해서 화학 구조식을 밝혔을 거예요. 그 공로로 부테난트는 노벨화학상을 받습니다. 농담으로 부테난트가 받은 건 노벨화학상이 아니라 노벨노동상이라고 할 정도예요. 물론 수만 마리의 누에나방을 혼자서 잡진 않았을 거고, 아마도 학생들을 동원했겠죠. 그렇게 20년 동안의 연구를 통해 부테난트는 누에나방 암컷이 분비하는 화학물질이 극소량만 있어도 몇 킬로미터 바깥에 있는 수컷 나방을 유인할 정도로 강력하다는 걸 밝혀냈죠. 사실 수컷은 냄새를 맡는다기보다 화학물질의 농도 차이를 인식하면서 따라오는 거예요. 저쪽보다 이쪽으로 오니 농도가 조금 더 짙어졌네, 하면서 그걸 따라 오는 거죠.
집사라고 하면 고양이나 개를 생각하기 쉽지만 안은영 작가는 꼬물거리며 뽕잎을 먹을 뿐인 누에 애벌레로 대상을 확장했다. 《안녕, 나의 아름다운 미물들》은 누에 애벌레 집사의 기록으로는 첫번째 책이 되었다. // 사진 제공=메디치미디어
지구 최후의 생존자, 적응력과 융통성 혹은 성실함
안은영: 교수님께서 가끔 ‘최재천의 아마존’ 유튜브를 통해 호모사피엔스는 멸망이 멀지 않았다고 얘기를 하시잖아요. 만약에 지구 마지막 날 인간 한 개체와 곤충의 한 개체가 살아남는다면 어떤 성향의 인간과 곤충이 살아남을까요?
최재천: 곤충부터 먼저 한번 볼까요. 사실 곤충이 아닌데 곤충처럼 보이는 동물이 있거든요. 생물 분류 단계의 ‘종속과목강문계’ 중 곤충은 ‘절지동물문’에 속해요. 근데 제가 이야기하려는 동물은 아예 다른 ‘문’이에요. ‘완보동물문’이라고, ‘완보’는 느리게 걷는다는 의미인데 영어로는 타디그레이드(tardigrade)이라고 하거든요. 성충이 돼봐야 한 1.5mm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놈인데 걔가 얼마 전에 우주에도 갔다 왔어요. 우주에서도 얘가 웬만하면 살아남을 것 같다고 과학자들이 뽑은 거죠. 별명이 인디스트럭터블 애니멀스(indestructible animals), 거의 파괴할 수 없는 동물이라는 뜻이죠. 150도의 뜨거운 물속에서도 살아남고 도저히 아무것도 살아남을 수 없는 극한 환경에서도 버티죠. 저는 이게 끝까지 살아남을 것 같습니다.
안은영: 완보동물문이라니 흥미롭네요. 그래도 곤충의 한 개체를 꼽아본다면요?
최재천: 곤충 중에서는 아마도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바퀴벌레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바퀴벌레는 워낙 적응력도 강하고 번식력도 강하니까요. 그런데 주신 질문을 계속 생각하다보니 다른 결론이 떠올랐어요. 지금 지구에서 제일 힘들어하는 동물 중 하나가 양서류입니다. 개구리나 두꺼비가 여기에 속하는데요, 이들이 왜 힘이 드냐면, 이들은 어렸을 때는 물속에서 살아야 되고 커서는 물 바깥에서 살아야 되는데, 그러려면 두 환경이 필요하죠. 어느 곳 하나라도 환경이 나빠지면 생존을 못해요. 수질 오염이 심하면 알 또는 올챙이 때 다 죽어버리고, 토양 오염이 심하면 성체가 된 다음에 죽어버리죠. 서식 환경이 하나라면 더 잘 살아남을 수 있는데, 물속과 토양 중 한쪽만 나빠져도 생존의 위협을 받기 때문에 양서류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무서운 속도로 사라지고 있어요. 둘 중 한 곳의 환경에서만 살게 된다면 생존율이 높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쪽 환경이 너무 악화됐을 때 그곳의 환경으로 건너가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버틸 수 있다면요.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요. 사람의 경우는 어떤 사람이 살아남을까요. 옛날 사람들은 무병장수라는 말을 했는데, 요즘은 유병장수라고 하잖아요. 약간 병약한 분들이 의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더 오래 사는 경우가 많아요. 남성이 여성에 비해 평균수명이 7~8년 짧은데,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남자들의 ‘객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술자리 원샷 습성 같은 것도 객기라 봅니다.
안은영: 객기는 수컷의 본능인가요?
최재천: 네, 수컷의 본능입니다. 그래서 모든 동물의 수컷은 암컷보다 수명이 짧아요. 그래서 잘나가는 수컷, 잘난 수컷은 보나마나 나대다가 일찍 사라지고, 적당히 약한 사람들, 그래서 조심하는 사람들이 살아남을 거라고 봅니다.
안은영: 교수님 말씀에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적자생존 진화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결국 융통성이고 적응력 아닌가요?
최재천: 그럴 거예요. 부족사회를 상상해보면 용감한 사람들은 죽을 확률이 컸겠죠. 그렇다고 사냥터나 전장에 나가지 않고 숨어 있는 남자가 그 사회에서 인정받고 먹을 거 잘 챙겨 먹고 오래 살았을까요. 그건 아마 아닐 텐데요, 하지만 그 시절에도 나대지 않고 상황 파악 잘하고 빠질 때 살짝 빠지고 체면 유지는 좀 하는 사람들이 살아남았을 거예요.
안은영: 결국 그날그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소심하면서도 성실한 존재가 오래 살아남는다는 말씀이네요.
《안녕, 나의 아름다운 미물들》에는 안은영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 여럿 들어가 있다. 대화 중 언급된, 가장 약한 애벌레에게 뽕잎을 작게 조각내 주고 있는 모습. // 사진 제공=메디치미디어
사랑을 주면 상대도 알아요, 설령 미물이라도
최재천: 그런데 작가님은 누에나방을 기르면서 언제 제일 감동을 받으셨나요?
안은영: 교수님, 혹 MBTI 들어보셨죠. 저는 ‘대문자 F’거든요. 감성적이고 감정적인데, 누에나방을 기르면서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누에 광인이 되어버릴 정도로요. 제일 기억나는 건, 가장 아팠던 흰둥이였어요. 아파서 많이 먹지 못하고 고치도 짓지 못하고 일찍 죽었는데요, 아플 때 제가 핀셋으로 뽕잎을 잘라서 주니까 그걸 받아먹었어요. 그때 정말 뭐라 표현할 수 없을 감동을 받았습니다.
최재천: 저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제 아내가 요즘 동네 고양이들을 키우고 있는데 그중 한 마리가 바이러스 질병에 걸렸는데 불치병이었어요. 미국에서 신약 개발이 되었다지만 구할 수 없어서 퇴직금을 꽤 많이 이 녀석 살리는 데 썼죠. 결국 살려냈고, 지금은 우리 집에서 왕초 고양이가 됐어요. 이 아이를 돌보던 중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이를 안고 제가 그랬어요, 어떻게든 먹어야 네가 산다고, 계속 말했더니 며칠 지나니 제가 가서 안으면 한 1~2분 제 옆에 앉아 있다가 어떻게든 먹으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저한테 보여주는 거죠. 아빠 나 먹는다, 하고. 아빠가 나 먹으라 그랬지, 하는 것처럼. 제 무릎에 앉아 저하고 잠깐 교감을 하고 또 가서 먹어요. 먹고 또 올라오고.
안은영: 교수님이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가서 누에에게 뽕잎을 따주셨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소년 시절의 교수님을 상상해봤어요. 근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 소년 이미지가 지금도 남아 있는 듯해요.
최재천: 누에 애벌레들이 뽕잎 갉아 먹는 모습은 하루 종일 봐도 질리지 않잖아요. 가끔은 거꾸로 서듯 먹는 애도 있고, 뽕잎 갉아 먹는 소리, 들어보셨죠?
안은영: 누에 애벌레가 많지 않아도 뽕잎 갉아 먹는 소리는 정말 잘 들리더라고요. 힐링이 되는 소리예요.
최재천: 많은 누에가 뽕잎 갉아 먹는 소리를 녹음해서 들어보면 빗소리랑 비슷해요. 숲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같아서 사람들이 그런 소리에 마음에 위안을 얻고 그러죠.
안은영: 저도 나중에 녹음해서 들어봐야겠습니다.
최재천: 앞으로도 계속 누에를 기르실 건가요?
안은영: 제가 좀 이기적인 사람인데, 우연히 길렀다가 감동하고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주어서 지금까지 세 번을 길렀어요. 그런데 계속 기를 자신은 없었는데, 오늘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올해 가을누에는 다시 기르고 싶어졌습니다.
최재천: 본인이 이기적인 사람이라 말씀하지만, 이미 자연에 매료되셨잖아요. 이제 누에가 아니더라도 자연의 또 다른 무언가에 심취하실 거라고 봐요. 이미 자연한테 발목을 잡히셨으니까요.
안은영: 정말 그렇겠네요. 교수님,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소소한 종횡무진 같은 대화를 마치고 두 분이 함께 환하게 웃으며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누에 애벌레처럼 무해한 사람들이 나눈 좋은 대화의 마무리였다. // 사진=백범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