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셍활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중의 하나가 저는 가정생활이라고 합니다
특히 요즈음 들어서 사회가 복잡해지고 점차 가정구성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이 거의 드문현상인 경우에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마도 여러자녀를 두었거나 아니면 한자녀를
두었더라도 한자리에 같이 식사를 할수있는 일이 그리 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신앙생활에서 한 자녀는 분명히 그의
엄마의 영향이 클것입니다
여기에서 몇년간 짧은시간동안 돌아보게되면
분명히 건강한 신앙생활과 봉사를 하는 부부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대체적으로 젊은부부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남성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반면에
여성들은 다분히 감성적이라고 합니다
저도 젊은시절부터 튼튼한 직장생활속에서 그때 아내는 오로지
집안일에만 몰두하였고 금융대란을 겪으면서 쥐 역할에 어려움을 겪었기에
아내를 직업전선으로 내몰게되었습니다
젊은 여성들이 차지하는 의류시장에서의 역할은 사실상 아내에 대한 기대이상
이었습니다. ㅈ생각에는 좋은 옷을 만드는 것보다는 좋은 옷을 파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일인지 모를 일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잘 적응해주었습니다
한국은 세상을 말하기이전에 천주교회내에서 여성의 역할이
점점 커져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남성에게 더 많은 기회를 보게됩니다
저는 성지순례나 아름대학같은곳이나 여러행사를 통해서
어느가정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들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저는 감동적인 부분을 보게됩니다
가끔 만나는 부부간의 일입니다 다들 아이들이 성장해서 성인들이 되었던
분이시에 마마도 결혼생활을 오래되었을것이라 여깁니다
저는 불현듯이 그때 중심을 잡는 측은 분명 여성이라 여겨집니다
떄로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에서 부심코 자신의 가족이나 배우자에 대하 ㄴ애기를
할때가 있습니다 이들 이야기를 하는데는 어떤 명분이나 기중이 있는것은 아닙니다
배우자를 소중히 여겨서 말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런분들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서도 분명히 소중히 여길줄
아는 분이라 여겨집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공계에서 공부를 했고 그런분야에서 주로 일해왔습니다
그런데 불과 십여년전부터인가 아니면 정년퇴직이후에
인문과학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처음에서 평생교육원에서 이분야 강으리를 들었습니다
서양화와 동양화에 대한 감상법을 들었지요
그안에는 분명히 그 그림을 그리게되는 배경이면 그그림을 그인이의
생활상을 알아볼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가 열심히 예비자 교리를 받고 세례받기 바로 직접입니다
교리교사는 이를 정리하면서 하느님어버지의 사랑에 대해서 정리해주었던
것인데 이를 곰곰히 생각한 그 여자는 세례를 받는것을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교리교사는 그 성실한 여성이 갑짜기 그런결정을 내리는데
이해가 잘안되었던 것입니다
그 여자는 오랫동안 자신의 친정아버지와의 불화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여성에게는 아버지라고 하면 그냥 친정아버지의 소습이 떠올라서
이를 하느님의 사랑과 연계하는 과정에서 혼란이 생긴것입니다
보통 가정에서 인정받고 존중받으면 세상에 나아가서 다른이들로부터
존중을 받는다소 합니다
저도 젊을때부터 가정에 소소홀히 해왔음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 젊을때에는 제가 올다고 여기는 모든일은 가족의 감성따위에는 신경을
쓰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요즈음 들어서 조금 완화되었는데 그계기가 있습니다
대략 20여년전에 저는 놀고 있어서 일자리를 구하러 포항까지 내려갔었습니다
포항에서 저는 일하고 아내는 서울에서 아들과 같이 살고 있었지요
주말마다 가족을 만나러 서울에 올라올수가 있었지만 그때에 한달에 200만원을 받았고
제가 숙소나 생활비로 쓰고 150만원을 가정에 부치기 위해서면 매주서울에
올라오는 일을 할수가 없었지요 한번 올라오면 거의 10만원돈이 들기 때문이었지요
저는 그때에 직장에 출근하는 평일 월요일부터 토요일오전사이에는 직장내 구내식당을
이용해서 그렇게 돈이 들지 않았지만
주말이 문제였지요 토요일저녁부터 일요일 하루는 나가서 사먹어야 했지요
그래서 저는 조그마한 곤로를 구입해서 숙소에서 사용했습니다
저는 저나름대로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그 곤로에다 라면과 영양을 휘해서
순두부를 사다가 끓여먹기도 하고 속옷은 곤로를 이용해서
빨래를 삶기도 하였지요
그런데 저녁에 숙소를 가기위해서 언덕을 오르면서 바닷가를 행해
보면서 그때 아내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 소중함을 꺠닫게됩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 애틋한 마음은 아내에게도
있었나 봅니다
지금 제가 본당생활에 전념할수가 있었던 것은
그도안 늦은나이에 고령부아버지를 모시고도 그리고 건강이 그리좋지않는
상태에서 아직도 용양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를 하면서 가정의 소중함을 느껴봅니다
본당에서는 가장 잘 안되는 부분중의 하나가 저는 대부모와의 관계라고
여기고 부모와 자식관계의 일과 부부관계의 일이라 여겨집니다
이들에 대한 경험을 나눌수가 있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응 아주 풍요로워질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자매들이 훨씬 저보다 잘 느끼실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