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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 칠갑산 산행후기
일시: 2024. 04. 20
참석: 66명 (25회 5명)
산행: 7.5 Km (3시간)
충남의 알프스 청양 칠갑산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 적삼이 흠뻑 젖는다∼♬ /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 울어주던 산새소리만 어린 가슴속을 태웠소∼♬
35년전 가수 주병선이 불러 엄청나게 유행시켰던 조운파 작사·작곡 ‘칠갑산’의 노랫말이다. 애절한 가락에 실린 ‘콩밭 매던 아낙네’ 가 마치 내 어머니, 내 자신의 옛 모습인 양,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적신 노래다. 라디오, TV에서 매일 들렸고, 노래방 갈 때마다 불렀다.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칠갑산’이 누구나 아는 유명한 산이 되었다. 오늘 비를 맞으며 그 칠갑산을 산행하고 왔다.
칠갑산(561m)은 충청남도 청양의 중심부에 있는 산으로 차령산맥에 속한다. 높지는 않지만 첩첩 산에 골은 깊어 교통이 매우 불편하여 예전에는 섬보다 더 오지로 여겼다. 또, 능선은 부드럽지만 산사면이 급하고 거칠어 자연 그대로의 울창한 숲과 아흔아홉골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그 덕에 1973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충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100대 명산이 되었다.
독특한 산이름은 천지만물의 7대 생성원리인 풍수지화공견식(風水地火空見識)의 칠(七)과 육십갑자(六十甲子)의 첫 글자 갑(甲)에서 따왔다고 한다. 혹은 일곱 장수가 탄생할 갑(甲)자형 일곱 명당이 있어 그렇게 불렀다는 설도 있다.
칠갑산은 청양의 4개 면에 걸쳐 있고, 정상에서 능선이 방사성으로 뻗어 등산로가 매우 많다.
한치고개, 장곡사, 천장호, 도림사지 등을 기점으로 9개나 된다. 정상까지 짧으면 2 Km, 길어야 6.5 Km이다. 어느 코스를 잡아도 정상에 올랐다 내려오는데 2~4시간이면 된다. 가장 많이 찾는 코스는 한티고개에서 정상, 아흔아홉골 전망대를 거쳐 장곡사로 내려오는 코스이다. 시원한 계곡도 기암괴석도 없고, 오직 숲만 보고가는 전형적인 육산의 등산로이다.
칠갑산 정상은 사방 50리에 높은 산이 없어 360도 시야가 탁 트여 산들의 파노라마가 일품이다. 길게 뻗어 나간 산줄기, 가로질러 흐르는 첩첩 산줄기들을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다. 서쪽으로 오서산과 성주산, 남동쪽으로 계룡산과 대둔산이 눈에 들어오고, 칠갑산 남서쪽을 휘돌아 나가는 지천과 금강의 하얀 물줄기도 보인다.
총동산악회가 칠갑산을 다시 찾은 것은 15년만이다. 그때는 25회가 답사를 하여 한치고개에서 정상, 삼형제봉을 거쳐 장곡리로 내려왔다. 오늘은 43회가 답사를 하여 장곡주차장에서 정상을 오르고 원점 회귀하였다. 25회는 중간에 간식을 먹고 맨 뒤로 아흔아홉골 전망대에 올랐더니 운무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곳에서 되돌아 내려왔다, 장곡사와 장승공원은 덤으로 구경하였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가는 길
삶의 속도가 시속 70km인 나이가 되어서 그런지 어영부영 지내는데도 눈뜨면 아침이고 돌아서면 저녁이다. 하루하루 일주일이 금방 지나간다. 입고 있는 긴 옷들이 조금 답답하다고 느껴진 순간, 벌써 4월 하순으로 접어들고 있다. 또 한 달이 후딱 지나갔다.
그 짧은 시간에 봄은 요란하게 꽃단장을 하고 이곳저곳을 싸돌아 다니며 어찌나 많은 바람을 피워 댔던지, 사방천지에 연녹색 이파리 새끼들을 잔뜩 싸질러 놓았다.
교통이 불편했나? 참 발길이 멀었다. 15년만에 충청남도 청양의 복판에 있는 칠갑산으로 봄 산행이다. 허리가 부실해도 방구석 늙은이로 남기는 싫어 기를 쓰고 산행에 띠라 나섰다. 날씨가 흐리다 비가 온다 했는데 산행이나 제대로 할려나? 걱정은 되었다.
30회 임승호 총동회장이 6년만에 다시 시도하는 토요일 산행이다. 행락철을 피하고, 교회와 성당에 다니는 동문들을 마음 편히 산행에 많이 참여시키려는 목적이다. 하지만 대만 원정산행 직후라 피곤한 많은 동문들이 빠져서 버스 2대를 다 채우지도 못했다.
원정산행에서 25회 10명은 4박5일 연장하였는데, 병애는 어제 밤 늦게 도착하고도 오늘 산행에 나왔다. 미쳤어! 그런데 대단혀!
7시 25분에 교대역을 출발하였다. 양재 IC로 들어가 경부고속도로, 천안논산고속도로의 정안 알밤휴게소에서 잠깐 쉬었다. 주말 정체에 비까지 내리니 예정보다 50분이나 더 걸렸다. 휴게소도 꽉 차서 나가는 길 한쪽에 간신히 주차할 수 있었다. 화장실도 차 사이로 막 지나 가야했다.
공주서천고속도로 청양 IC에서 빠져나왔다. 좌회전하여 39번 국도로 가다 장평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645번 지방도를 달렸다.
칠갑산 가는 길이 이리저리 얼기설기 얽혀 복잡해도 김서리는 창문을 닦아가면서 도시처럼 번잡함이 없는 한적한 시골마을들과 신록이 넘치는 산과 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인적 드물고 차량 드문 길을 천천히 굽이굽이 가야 했다. 칠갑산 산자락을 굽이도는 지천의 다리 아래 천변에는 차를 대놓고 캠핑을 하고 있다. 지천의 오토캠핑장인가 보다.
칠갑산에서 발원하여 장곡사 앞자락을 흐르는 지천은 금강을 만날때까지 아흔아홉 굽이를 휘돌아 내려가면서 그 굽이도는 물길을 호위하듯 서있는 기암괴석의 계곡에 아홉 개의 명소를 만들어 냈으니 지천구곡(芝川九曲)이라 한다. 지천 아래쪽 부여 은산이 가요 칠갑산을 작사·작곡한 조운파 선생의 고향이다.
장곡사 분기점에서 장곡천을 따라 칠갑산의 품으로 깊숙이 파고 들었다. 그 유명한 장곡사 벚꽃길에는 연녹색 잎들만 가득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이 25회 청양 칠갑산장승문화축제가 시작하는 날이다. 내일까지 열린다.
버스의 출입을 통제하여 행사용 천막을 가득 쳐놓은 장승공원주차장 옆 임시주차장에 주차하고 내려야 했다. 10시 50분이었다.
계획보다 1시간이나 늦었다. 원래 장곡사에 내려주고 회차하려고 했는데, 할 수 없이 장곡사까지 1.4 Km를 걸어 올라가야 했다. 정상에 올라갈 길만 더욱 바빠졌다.
장곡주차장에서 장곡사까지 산행 워밍업
정안 휴게소에서 지체로 2호차는 아직 도착을 못했다. C코스 팀은 장승공원에서 남고, A와 B코스 팀은 장곡사를 향했다.
관람객들은 보이지 않고, 경찰들과 운영요원들만 바삐 움직였다. 장승공원 천막촌을 지나자 장곡천 건너 알품스 공원이 보였다.
알품스 공원은 생명의 근원인 알과 알을 품은 둥지를 형상화한 공원이다.
부슬비가 한 두 방울 떨어졌지만 우산도 안 쓰고 산기슭을 따라 난 포장도로를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불교의 큰 명절, 석가탄신일이 가까워서 그런지 길 양변에 오색 연등을 줄지어 달아 놓았다. 싱그러운 신록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왼쪽 아래쪽은 새로 조성한 넓은 식당가이지만 아직 반 이상이 빈 공간이다.
일주문 앞에 도착해서 사진을 찍으면서 2호차 동문들을 기다렸다.
한참을 지나 2호차 동문들이 도착하자마자 일주문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구호를 외친 후 산행에 나섰다.
일주문을 지나자 깨끗한 포장도로와 신록의 향기를 잔뜩 내뿜고 있는 연녹색 가로수가 우리를 반겼다.
포장도로 옆 오색등 걸리고 야자매트가 깔린 인도로 줄지어 걸어 올라갔다.
가진 것 없이 아흔아홉 골 산속에 살아도 행복한 이는 행복하고, 가진 것 많아 아흔아홉 칸 큰 집에 살아도 불행한 이는 불행하다.
너무 많이 가져도 너무 적게 가져도 불행한 시대, 과연 부처님의 치유와 위로는 무엇일까? 그 답을 구하러 많은 사람들이 일주문을 지나 이 길을 걸어 장곡사를 찾는 것이다.
허름한 외관 속에 숨어 있는 한방 옻닭과 오리 맛집인 ‘장곡민박상회’ 앞에 뜬금없이 ‘김삿갓’ 조각이 서있다. 조상이라도 되나?
통나무를 투박하게 깎아 폼 나게 세워 논 김삿갓 모습은 익살맞고 해학적이다. 왜 배만 안가렸을까? 또 의문이 들었다. 삿갓 위에 커다란 지붕이 있어 눈과 비는 확실히 피할 수 있겠다. 점심 때가 되었나 보다. 옻닭 냄새가 솔솔 풍겨 나와 허기진 배를 유혹했다.
김삿갓을 지나 완만한 길 따라 올라갔다. 골바람이 좋은 향기를 남기고 코 끝을 스쳐갔다. 장곡로 마지막 식당인 술과 음식은 물론 차도 파는 ‘꽃피는 산골’을 지나니, 늦게 핀 8겹 벚꽃 한 그루가 물기를 머금고 활짝 웃으며 반겼다. 화사하지만 외로워 보였다.
긴 골짜기 마지막 산기슭을 휘돌아 가니 커다란 느티나무 두 그루 위로 장곡사 주차장이 보였다.
골짜기가 길어서 ‘장곡(長谷)’이고, 여기에 ‘절 사(寺)’자 붙어서 장곡사(長谷寺)다.
긴 골짜기 안, 경사진 골을 다듬어 축대를 쌓고, 그 아래 위에 절을 지었다. 2단 축대 위에 장곡사의 범종루, 운학루, 심검당이 단아하지만 귀품 있는 모습으로 앉아 있다. 심검당 앞에 있는 콘테이너가 옥의 티다. 장곡사는 대웅전이 두 개라서 유명한 절이다.
장곡사는 하산할 때 구경하기로 하고, 운학루 우측으로 난 경사진 큰 길(등산로)을 따라서 올라갔다. 바로 앞에서 핸드폰을 들고 자기들 사진을 찍느라 낑낑대는 후배 둘이 있어 돌려세우고 보니, 35회 후배 단골 모델들이다. 사진 한 장 찍어 주었다.
상대웅전 비탈언덕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는 옹이 박혀서 변형되고 뒤틀어진 모습으로도 오랜 세월을 묵묵히 상대웅전을 떠받들고 있다. 나무도 고행수행 중인가? 곧 해탈할 것만 같다.
느티나무 아래 축대 위에는 무너진 석탑 지붕돌을 비롯하여 석등, 부속 석재들이 보관되어 있다. 예전에 작은 탑이 있었나 보다. 지금 장곡사에는 절마다 있는 그 흔한 석탑 하나 없다.
절내 경사진 큰 길(등산로)을 따라 동문들이 계속 올라왔다.
부드러운 사찰로 솔바람길
큰 길로 돌아 올라가니 상대웅전 앞 T 자형 삼거리가 나왔다. 왼쪽은 상대웅전 들어가는 잔돌 깔린 길이고, 오른쪽 널찍한 돌계단이 삼성각으로 오르는 길이자 ‘사찰로’ 등산로의 들머리이다.
돌계단을 오르자 왼쪽의 계단 위에 삼성각이 보였다. 삼성각에 올라가 볼 생각은 없고, 뒤돌아서 장곡사를 잠시 내려다 보았다.
골짜기 안의 지형을 따라 옹기종기 배치된 단아한 기와지붕 건물들이 연녹색 나무들과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등산로는 삼성각 우측에 있는 산비탈 계단으로 이어졌다. 정상까지 2.9 Km이다.
난간 있는 가파른 계단을 지그재그로 오르자 연이어 난간 없는 사각철계단이 길게 이어졌다.
습도가 높으니 금방 이마에 땀이 나기 시작하였다. 그저 편안한 등산로에 있는 매운 청양고추라 생각하고 천천히 올라갔다.
계단이 끝나면서 널찍한 흙길로 바뀌고, ‘칠갑산 거북바위의 유래’를 빼곡히 적어 세워 놓은 안내판을 만났다. 읽어보진 않았다.
안내판 뒤의 거북바위를 보는 순간, 목만 내밀고 있나? 긴가민가 아리송했다. 다른 산 같으면 그저 흔한 작은 바위에 지나지 않는데, 육산에서는 보기 드문 귀한 바위라 누군가 거북바위라 이름 붙여서 이야기 거리로 만들었다.
잠시 쉬며 32회 후배가 준 오이와 가지고 온 물 한 모금 마셨다.
거북바위를 지나서 뿌리가 들어난 소나무 숲길을 200 m 오르니 자연휴양림 길과 만나는 능선 삼거리다.
장곡사에서 500 m비탈길을 숨가쁘게 올라왔지만 쉬지 않고 바로 능선길을 탔다. 능선은 완만하고 걷기 좋은 길로 한참동안 이어졌다. 솔잎 향기 가득한 소나무 숲과 신록의 향기 넘치는 참나무 숲이 번갈아, 또는 섞여서 나왔다.
능선 숲을 걸어가면서 숨을 한 번 크게 쉬자 맑은 공기가 허파를 한바퀴 돌아 나왔다. 시원하여 몇 번을 반복하였다. 숲이 내뿜은 피톤치드가 몸속으로 밀려들었는지 마음이 한결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길 가운데 굵은 소나무를 등받이 삼아 원형으로 나무의자를 설치한 몇 개의 쉼터가 나왔다. 36회 후배들이 먼저 와 나무의자 쉼터에서 쉬고 있었다. 군락지는 아니지만, 분홍색 산철쭉이 능선갈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하였다.
정상 2.0 Km 이정표 옆, 조그만 팻말의 큰 글씨는 이 길이 '솔바람길'이란 것을 알려준다.
소나무 사이로 솔솔 솔바람 불어오니 딱 맞는 이름이다. 팻말에 쓰여진 글은 부처님 가르침을 간결하게 담고 있는 숫타니파타(경전모음)에 있는 유명한 글이다. 산중에서 보니 신기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못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숫타니파타 경전 中에서 –
능선은 외길이고, 중간에 이정표도 많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산행을 하여도 문제없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단체 등산객들은 전혀 보이질 않았고, 드문드문 많아야 서너 명이었다. 대부분 가족, 친구들과 온 것 같았다.
가끔 홀로 내려오는 젊은 여자 등산객도 보였다. 익숙한 산행 모습이 등린이는 아닌 것 같았다.
물기 머금은 여린 나뭇잎들이 더욱 초록초록 빛났다. 산새 소리를 들으며,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싱그러운 신록을 보면서 능선을 걸으니, 가슴은 시원해지고 머리는 맑아졌다. 칠갑산 등산로는 건강한 숲, 치유의 길로 이용해도 좋을 것 같다.
평탄한 길을 한참 걷고 나니, 경사는 급하지 않지만 긴 사각철계단 길이 나왔다. 후배들을 앞서 보내면서 천천히 올라갔다.
능선의 봉우리는 옆구리를 째고서 좁고 평탄한 등산로를 만들어 놓았다.
오르락내리락 구간이 적어 편안하게 걸을 수 있어 좋긴하다. 째진 등산로의 경사면은 가파르고 위험해서 밧줄을 설치해 놓았다. 튼튼한 말뚝 없이 나무에다 드문드문 묶어 놓아서 밧줄이 많이 늘어지고 허술해 보였다.
거북바위가 알을 낳고 내려간 듯 길가운데에 바위덩어리 몇 알 보였다.
계단 옆길로 나무를 밟고 올라가서 아픈 것이 아니라 밧줄을 나무에 너무 꽉 쩜매놔서 나무가 아픈 것 같다.
능선 좌우에 우거진 나무들 때문에 조망은 거의 없다. 나무들 사이로 언뜻언뜻 칠갑산 다른 능선과 골짜기 일부분 모습들만 조금 보일 뿐이다. 계단에 올라서도 마찬가지이다.
제대로 쉬지를 않고 계속 걸었더니 배도 출출하고 12시 30분도 넘어서 길가의 작은 공간에서 간식을 먹으며 술 한 잔 했다.
뒤따라 올라오는 32회 여후배들에게 "과일 좀 먹고 쉬었다 가!" 라고 말해도 그냥 지나갔다.
간식을 먹고 다시 출발하려는데,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우비를 입고, 우산을 펼쳐 쓰고 걸었다.
정상 0.9Km 이정표를 지나 봉우리를 옆구리로 돌아갔다. 27회 김용우가 벌써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오고 있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자 거치른 능선길에 바위가 한 두 개 보이더니 곧 무더기로 나타났고, 연이어 운무가 낀 소나무 사이로 울퉁불퉁 튀어나온 수많은 바위들이 나타났다. 비까지 내리니 미끄러워 조심조심 걸어갔다.
지나고 나니 너무 짧아 아쉬웠지만 칠갑산 유일의 재미있는 바위구간이다.
정상을 약 400 m를 남기고 계단 중간 오른편에 '아흔아홉골 전망대' 데크가 보였다.
칠갑산 정상에 올라갔던 한 무리 후배들이 계단을 내려왔다. 계단을 올라 칠갑산 아흔아홉골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아흔아홉골 전망대'에 들어섰다. 데크 가운데에는 산봉우리 모양의 벤치가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골짜기 안은 운무로 가득차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상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하고, 전망대에서 인증사진 한 장 찍고는 바로 장곡사로 내려갔다.
'칠갑산 아흔아홉골'은 칠갑산 정상과 삼형제봉에서 장곡마을로 길게 흘러내리는 두 산줄기 사이, 수많은 골과 봉우리들, 그리고 울창한 숲이 서로서로의 몸을 보태서 만들어 낸 칠갑산 최고의 자연경관이다. 칠갑산에서 이곳보다 더 멋진 곳은 없다.
15년만에 다시 왔는데, 아흔아홉골의 멋진 풍경도, 정상에서 산들의 파노라마도 못보고 되돌아 내려가려니 너무도 아쉬웠다.
내려가는 길은 거의 쉬지도 않고 내리 걸었다. 능선 삼거리에 와서야 천천히 장곡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길가에 참나무, 소나무들이 번갈아 나오는 중에 어두운 회색 코르크 껍질의 참나무가 특이하게 눈에 들어왔다. 병애한테 물으니 굴참나무란다. 우리나라에 사는 참나무는 모두 6종류나 된다. 신갈나무가 제일 많고, 굴참나무는 두번째로 많이 자란다.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들은 세월 따라 익어가는 노인의 깊은 주름처럼, 세월의 흔적을 두꺼운 껍질에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싱그러운 소나무와 참나무 향기를 맡으며 부드러운 능선과 울창한 숲 길을 편안하게 걷는 것이 칠갑산 산행의 참 맛이다.
대웅전이 둘인 천년고찰 장곡사
장곡사로 내려가다 말고 삼성각 앞에 잠시 멈춰 서서 다시 장곡사를 내려다보았다. 금당옆 느티나무와 비탈언덕의 거대한 고목들로 인하여 절 위에 또 다른 절이 있는 것 처럼 장곡사는 두 영역으로 확실히 나뉜다.
장곡사는 신라 문성왕12년인 850년에 보조선사 체징(體澄)이 창건한 이후, 오랜 세월을 거치며 중수를 거듭하였다. 천년 역사에 비해 절 규모는 작지만, 국보 3점, 보물 4점, 유형문화재 1점 등 생각보다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또한 장곡사는 국내 최고의 약사여래 도량으로 소문이 났다. 상하 대웅전에 안치되어 있는 2구의 약사여래 부처는 국내에서 가장 영험하여 병들고 불안해서 찾아오는 중생들의 기도는 물론 위안과 치유에 큰 효험을 주고 있다고 한다.
장곡사는 상대웅전 영역과 하대웅전 영역의 높이 차이가 크고, 대웅전 내부에 모신 부처가 다르고, 건축 시기, 건물 생김새, 건물 배치와 방향이 모두 다르다. 언제, 왜 대웅전이 두 개가 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인근 도림사가 임진왜란 때 불타고 대웅전만 남게 되자 옮겨왔다는 설, 약사 도량으로 기도의 효험이 뛰어나 전국에서 스님과 신도들이 몰려오자 그들을 수용할 목적으로 대웅전을 하나 더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상대웅전 영역
삼성각 돌계단을 내려가 상대웅전으로 들어갔다. 돌 축대 위에 기와로 쌓은 담장이 있고, 마당엔 잔돌이 깔려 있어 무척 소박하고 정갈한 모습이다. 동남향의 상대웅전 옆에 응진전이 붙어 있고, 승방인 염화실은 마당 끝 산 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상대웅전은 기단 위에 배흘림 기둥을 세운 단층 맞배지붕 건물이다. 고려 말, 조선 초의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어서 건물은 보물(162호)로 지정되어 있고, 내부에 철제약사여래좌상(국보 58호), 철조비로자나좌상(보물 174호), 철조아미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석가모니불을 모셔야 대웅전이라 하는데, 장곡사 대웅전엔 이유는 모르지만 석가모니불이 없다. 대웅전 내부는 사진촬영을 못하게 한다. 보물을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 속세의 번잡한 마음과 생각을 잠시 내려놓게 한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순자가 기도하는 것인지 구경하는 것인지? 그 뒷모습이 아리송했다.
천년고목 느티나무 옆에서 풍경소리를 들으며 시원한 바람까지 맞으니, 마음은 편안 해지고 산행의 피로도 날아가버린 듯하다.
상대웅전 옆 약수터에 놓인 작은 돌부처들이 무척 앙증맞고 아름답다. 소소한 것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게 느껴졌다.
긴 돌계단을 내려가면서 하대웅전 영역을 내려다보았다. 아기자기한 전각들이 옹기종기 처마를 맞대고 있는 모습이 참 정겹다.
하대웅전 영역
상대웅전에서 가파른 긴 돌계단을 내려서니 하대웅전 영역이다. 서남향 하대웅전 옆에 지장전을 붙여 두고, 설선당, 운학루, 범종루, 봉향각, 심검당이 잔돌 깔린 좁은 마당을 가운데 두고 ‘ㅁ’자로 마주보게 지었다.
하대웅전은 높게 두 기단을 쌓아 올리고 지은 맞배지붕 단층 건물이다. 조선중기의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어 건물은 보물(181호)로 지정되어 있고, 내부에는 최근 국보로 승격된 이목구비가 선명한 금동약사여래좌상(국보337호)과 용화수 가지를 들고 있는 미륵불괘불탱화(국보 300호)가 있다. 하대웅전 내부도 촬영은 금지이고, 역시 석가모니불은 없다.
승방으로 쓰이는 설선당은 ’ㄱ’자형 맞배지붕 건물로 잇대어 지은 형태가 특이하다. 설선당에는 한때 옛 백제 땅의 맹주가 되어 대권을 꿈꾸었던 김종필 총리가 1972년에 쓴 ‘장곡사’ 현판이 걸려 있다. 장독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심검당이 요사채인가?
범종루에는 세상을 들깨우는 소리판인 범종, 법고, 목어가 있다. 법고는 양쪽이 구멍 났지만 수선할 코끼리 가죽을 구하지 못해 안타깝게 방치되고 있다.
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정토를 뒤로하고 운학루 밑 돌계단을 내려섰다. 다시 번잡한 세상으로 돌아간다.
해우소에서 근심 하나 덜어내고, 식당을 향해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갔다. 오늘 총동산악회에서 예약한 집은 장곡주차장 바로 앞에 있는 '칠갑산맛집'이다.
사진을 찍느라 한참 지체하였더니 바쁜 걸음으로 쫒아도 동기들은 벌써 장곡상회, 김삿갓을 지나 일주문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어 천천히 내려갔다. 논밭 뒤로 식당들이 보였다. 그 식당가 끝자락에 ' 칠갑산맛집' 식당이 있다.
장곡로 '칠갑산골' 식당을 지나고, 돌계단을 내려가서 칠갑산맛집 식당으로 갔다.
칠갑산맛집 청국장백반
멀리서도 '칠갑산맛집' 마당의 장독대가 보이고, 고풍스러운 한옥기와가 시골동네 부잣집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식당이다.
식당에 들어서니 넓은 앞마당, 옆마당과 뒷마당 할 것 없이 장독들이 그득하다. 한편에는 고추장, 된장, 산나물 말린 것, 각종 청, 콩 등 온갖 식재료를 판매하고 있고, 정자 쉼터도 있다. 대부분 이곳 청양에서 생산되는 것들이다.
이 식당의 인기 메뉴는 청국장 백반이다. 여사장이 적당한 온도와 시간 조절로 발효시킨 청국장은 그 특유의 냄새가 덜해 먹기 편하다. 청국장, 묵은지와 두부를 푹 끓이니,묵은지는 국물에 녹아들고 청국장 알갱이와 두부는 그대로 살아있는 맛이다.
청국장의 본래의 맛을 느끼도록 띄운 청국장이기에 짜지 않아 다소 심심하다. 짜게 먹는 사람들 입맛에는 안 맞을 수 있다. 알아서 소금 쳐서 먹으면 된다. 나물을 비롯한 푸짐한 기본찬들이 하나같이 다 맛있었다. 리필도 잘해주고 종업원 서비스가 만점이었다.
장승공원 장승축제
일부러도 찾아 오는데 식사를 먼저 마치고 칠갑산 장승문화축제를 잠깐 구경하였다. 장승공원은 바로 식당앞 개울 건너에 있다.
오늘이 ‘장승(長栍)’을 주제로 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장승문화축제가 시작하는 날이라 기념식은 이미 오전에 끝났다.
장승은 통나무나 돌에 해학적이거나 익살스러운 사람의 얼굴 모양을 새겨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운 목상‧석상의 신목(神木)이다. 나무 기둥이나 돌기둥의 상부에 사람 또는 신장의 얼굴 형태를 소박하게 그리거나 조각하고, 하부에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의 글씨를 새긴 토속신앙의 대상물이다. 엣날에는 마을마다 있었다.
비를 맞으며 보노라 한 번 둘러보기만 했다. 장승공원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좁은 공간에 이곳저곳에 장승이 알차게 세워져 있다.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 장승이 이 공원의 상징이다. 길 따라 세워진 350개가 넘는 장승들 표정은 가지가지라 하나하나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손으로 깎아 모양은 투박하지만 익살맞은 표정이 재미 있었다.
어느 마을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이 모여 막 제작된 장승을 세우며 장승제를 지내고 있었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안내를 담당하는 사람이 해설을 하고 있었다. 잠깐 들으니, 장승 제사는 이조 세종대왕 때부터 유교식으로 지내기 시작했단다.
천막들을 둘러보다기 장승을 만들고 있는 칠갑산 장승깎기 작가들을 볼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3시 30분에 서울로 출발을 하였다.
도중에 천안논산고속도로 정안 알밤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비도 오고 많은 차량으로 정체가 심한 천안논산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경부고속도로 전용차선을 달렸다. 죽전에서 일부 내려주고 교대역에 6시 30분경에 도착을 했다.
교대역 10번 출구 부근 이남장에서 설렁탕 한 그릇씩 먹고 집으로 갔다.
오늘 흐렸다가 비가 오는 와중에 칠갑산 사찰로를 재미있게 산행하였다. 장곡사와 장승문화축제는 덤으로 구경을 하였다.
5월은 선농축전에서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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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배님 후기덕분에 놓치고 못 보았던 장곡사와 장승축제 를 다녀온 느낌이었어요.
늘 섬세하고, 정감있는 선배님의 후기를 이렇게 감사히 읽고, 기쁨의 미소를 지어봅니다.
앞만보고, 오로지 정상만 향해 비를 철철맞으며 내딛는 발걸음이 1년 반 만의 정상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선배님!
총동 산악회 산행을 다녀오면 너무 너무 선배님의 후기 글이 기다려집니다.
알밤 휴게소의 다람쥐 동상과 장승 축제의 장승들을 비로 인해 보지도 못했고 볼 생각조차 못했어요.....ㅜㅜ
이 글을 통해 보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칠갑산의 연두연두 초록초록한 봄의 색깔이 너무 예뻐요.
단골 후배인 저희 사진 예쁘게 찍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어느 전문 산행가도 선배님의 후기에 못 미칩니다 대단하십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