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당신의 봄
“쑥이 한창일 낀데…."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못 나가요."
어머니가 오셨다. 오랜만이다. 구미 오빠 집에서 겨울을 나고 언니 집에서 며칠, 이웃 오빠 집에서 며칠을 지내시다가 그저께 막내딸인 우리 집에 오신 것이다.
평생을 저 들녘과 함께 지새운 어머니, 아직도 저 들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는 듯이 봄을 핑계로 그 봄이 밀어낸 봄나물을 핑계로 나가자 재촉하신다.
“야야, 봉다리도 하나 챙기라." “그냥, 조금 걷다가 와요."
“하이고 야야, 봄에는 고들빼이도 맛있고, 내이도 맛있고, 쑥도 얼매나 좋은데…."
어머니의 야윈 손을 잡고 고모령 건너편 금호강 근처로 갔다. 실시간으로 키워내는 수양버들잎은, 먼 옛날 오월 단오 적에 동구어귀 정자나무 그네처럼 흔들렸다. 먼 길 돌아온 쇠물닭들이 삼삼오오 연분홍 맨발을 하늘로 치켜세우며 자맥질하였다. 켜켜이 쌓인 갈대 울음이 두런두런 바람 속으로 들어설 때 어머니는 잡은 나의 손을 살며시 풀며 저만치 나가셨다. 나직한 둑 섶에 동그랗게 접어서 앉으신 백발의 어머니, 파꽃으로 피셨다.
“엄마!" “말라꼬 자꾸 부르노."
“엄마!" “왜요?"
유년시절 부모님 일하시는 고추밭머리에서 여치며 풀무치 잡아서 동무하고 놀곤 했다. 조용한 밭두렁을 지나치는 산바람 소리에 힐끔 고개 들어보면, 구불텅한 고랑 저만치 멀어져서 아른아른 거리면 화들짝 놀라 “엄마"하고 부르곤 했다. 멍하게 마음 굽이쳐 흐르다가 그날처럼 불러보는 사이 오후를 건너는 태양이 고모령 나뭇가지로 내려와 흐르는 강물에 다홍 치맛자락을 풀어내었다. 그러고도 한참을 들의 품에 깃든 어머니, 그 봄들과의 회포는 좀처럼 멎어지질 않았다.
어머니가 따온 봄이 아파트 13층 고도에서 풋풋하게 번지는 저녁식탁엔 도란도란 젓가락 부딪치는 소리 분주하였다.
내년에도 봄은 오겠지. 파릇파릇 오겠지.
'엄마, 또 가요, 꼭….’ <시인>(영남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