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hapsody in Berlin 랩소디 인 베를린
구효서
2010, 문학에디션 뿔
이 책은 2009년 7월 부터 2010년 1월까지 <문학웹진 뿔>에 연재되었던 소설가 구효서의 작품이다.
사실 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을 집어들기까진 인터넷에서 이 작품이 얼마나 많은 인기를 누렸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다만, 일요일 오후의 나른함이 날 도서관으로 이끌었고, 그 서가에 외따로이 놓여있었던 이 책이 그 스스로 내용을 내게 드러내고
싶었는지도. 어느 곳에도 몸을 둘 곳없는 영원한 방랑, 그 유영의 흐름이, 내게 감지되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의 한국문학에서 '디아스포라'의 주제를 이보다 방대하고 심원하게 그려낸 소설은 없었다.
18세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독일에서 일본과 한국에 이르기까지
확장된 시공의 삶을 추적하는 구효서의 소설은, '예술가 소설'의 새로운 전범을 열어 보인다.
핏빛 동백꽃잎의 낙화 같은 존재의 슬픈 운명을 힘차게 비상하는 물떼새의 날갯짓으로 승화시키는 음악의 장엄한 선율,
그 선율의 민족과 정치, 그리고 종교와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사랑의 지평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 이경호(문학평론가)
한겨레 토요칼럼에서 서경식 선생님의 '디아스포라의 눈'을 눈여겨 보았던 나로서는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에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김상호' 혹은 '야마가와 겐타로'의 삶과 '요한 힌터마이어'의 삶 뿐이겠는가.
오히려 스스로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우리들 모두가 실은 정신적인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고 있진 않은지.
책은 일본인 '하나코'가 40여년 동안 연락이 끊겼던 첫사랑 '겐타로'의 행적을 좇아 독일을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67세의 노파를 움직이게 만든 것은 바로 단 두줄의 문장.
' 아, 이것은 모질지 못한 짓일까 모진 짓일까.
내가 늘 찾던, 내가 평생 가닿고자 했던 곳이 하나코였다는 사실을 못내 고백하는 것.'
이후 하나코의 통역을 맡은 '나'와의 동행은 시작된다.
둘은 김상호가 평양에서 가져온 복사본 <TOCCATA UND FUGA>를 읽어가며
분단된 조국 어디에서도 머물 자리를 찾지 못한 한 이방인의 삶을 추적한다.
김상호와 하나코의 이야기, 힌터마이어와 아이블링거 그리고 레아의 이야기가 정교하게 직조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슈타인도르프의 '랩소디 인 베를린'에 이르러서야 이 소설은 그 진가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야기의 치밀한 구성이 주는 즐거움 외에도 문장 하나 하나에서 얻는 기쁨 또한 적지 않다.
평범한 독자인 내가 이런 가슴 벅찬 느낌을 갖기까지 작가의 노력은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는다.
바쁜 시간을 쪼갤 수 밖에 없었던 이 책. 첫장을 넘긴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떨림을 주는 지,
새삼 처음 제대로 된 소설을 접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던 단발머리 중학생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