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짜장면 집]에서의 행복
최의상
멋이 무엇인지 까마득한 나이가 되고 보니 머리가 길었다 하면 이발소가 아닌 미용실을 찾아 머리를 커트한다. 머리를 감지도 않고 조금 긴 머리를 자르고 헤어드라이로 머리카락을 시원하게 날려버린 후 8,000원을 지불하면 된다. 이발을 한 후 창 밖에 보이는 상호가 인상적이었다. [행복한 짜장면 집]이었다. 호기심에 이끌려 행복한 짜장면집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지금 시간 12시10분이어서 그런지 한 테이블에 세명의 손님이 전부였다. 메뉴판을 보았다. 짜장면 4,500원이었다. 지금 시세로 짜장면 한 그릇에 9,000원 이상인 물가 고공행진의 시대에 반값도 안 되는 가격을 보고 느낀 것은 “싼 것이 비지떡” 이라 하였는데 맛없는 짜장면이겠지 하고 짜장면 한 그릇을 주문하고 대금을 선불하였다. 그리고 6명이 앉을 테이블 한 옆에 앉아 짜장면 나오기를 기다렸다.
짜장면 한 그릇과 양파와 단무지와 춘장이 담긴 작은 그릇이 식탁위에 놓이며 “맛있게 드세요.” 하기에 나도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였다. 젓갈 한 개씩 양 손에 들고 짜장꾸미가 골고루 면가락에 버무려지도록 여러 번 들었다 놓았다. 짜장꾸미에 고기토막과 감자 토막 그리고 양파등이 골고루 들어 있었다. 9,000원 이상의 짜장면과 비교할 때 손색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다만 면의 양이 조금 적은 듯하였으나, 많아서 남겨 버리는 것보다는 내게는 알맞은 양이었다. 중요한 것은 맛이 어떠하겠는가에 있었다. 한 젓가락을 입에 넣고 미식가처럼 맛을 음미해 보았다. 약간 달큰하면서 짭자롬하면서도 짜장 특유의 기름기와 코카콜라 색깔에서 느껴지는 짙은 착색의 감미로움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며 “괜찮은데” 라고 마음 한 구석에서 울려나왔다. 왜, 행복한 짜장면 집은 4,500원이고, 왜. 다른 중국집에서는 9,000원 이상 폭리를 하는 것인가 하는 분노가 마음 속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유리 문이 자주 열리고 닫혔다. 빈자리가 채워지기 시작하였다. 몇 명이냐고 묻자 손님은 6명이라고 했다. 자리가 없으니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단체손님인 모양이다. 내가 앉은 테이블이 6명이 앉을 수 있는데 나 혼자 앉아 6명의 손님을 받을 수가 없게 된 것 같다. 내가 자리를 옮기면 6명이 편히 앉아 정담을 나누며 즐겁게 식사를 할 것이라는 생각에 주인에게 “내가 다른 자리로 옮기겠다고 했다.” 주인은 고맙다고 하며 내 그릇을 옮겨 주었다. 6명이 앉은 자리에서 모두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다. 상대편을 배려해 주었다는 작은 선심에 흐뭇하며 남은 음식을 즐겁게 다 먹었다.
[행복한 짜장면 집]에서 아주 작은 양보와 배려로 마음에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활동 범위가 좁아져 가는 늙은이들에게는 대인관계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그러기에 양보와 배려의 기회를 얻기도 어렵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참다운 행복, 그거은 우리들이 어떻게 끝을 맺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시작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또 우리들이 무엇을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바라느냐의 문제이다.” 라고 하였다. 즉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순간에서 그 일을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포기하느냐에 따라 참다운 행복을 얻을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행복은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실천할 때 오는 것이다. [행복한 짜장면 집]에서의 나의 작은 배려로 인하여 나는 행복의 순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