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서안-바다 건너는 보문사가 있는 삼산면(석모도)이다.
망둥이 낚시로 하루해를 보내며
이곳 10월은 망둥이 낚시가 제철이니 이는 낚시 입질 좋고 씨알 굵고 고기 맛 또한 썩 오를 때임이라.
낚시치곤 단순해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어 좋으나 고단수의 꾼들에겐 그리 심에 차는 어종은 못 되리
라. 그래도 바닷 바람 쏘이며 하루를 보내려는 사람들에겐 이만한 소일거리도 쉽지 않을 듯.
원래 낚시란 게 고기를 잡는 한 수단일진대 어쨌든 잡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겠는가.
준비도 아주 간단. 아무런 낚시대 하나에 입갑(갯지렁이)과 그물망이면 ok.
내 낚시 해 본 지 얼마만인가.
외지를 떠돌 땐 어서 고향 마을에 가서 낚시나 하며 조용히 살고 싶은 생각 무진 했는데.
막상 와서 해 보니 웬걸 고기가 어디 만만히 잡혀야지.
낚시 기술도 없는데다가 잡으려는 욕심도 별로 없으니 뭐 제대로 될 리가 있나.
광을 뒤져 보니 녹슬은 낚싯대도 하나 있고 그물망도 그래도 온전히 먼지 속에 걸려 있었다. 됐다.
낚시점에 들러 갯지렁이와 낚시 바늘을 사가지고(도합 3000원) 오토바이를 몰아 바닷가로 나간다.
이게 그래도 바다 낚시라 물때 맞춰 나가는 것이다. 어느 물때쯤에 고기가 잘 잡힌다는 그런 게 있으
니까.
적당한 자리를 골라 잡고 낚싯대를 드리운다.
사방이 확 트인 게 우선 기분이 좋다. 바다 낚시인들이 누리는 큰 자랑이다.
물은 벌써 많이 들어왔다.
흰 돛단배 한 척이 빨간 등대 너머에 저 멀리 떠 있고 물새들이 분주히 물 위를 날고 있다.
갯가를 따라 멀고 가까이에 낚시하는 사람들이 꽤 된다.
낚시는 고기를 잡아야 한다. 근데 오늘 과연 놈들이 순순히 내게 잡혀 줄까. 아지못게라 좀 기다려는 봐
야겠지. 낚시란 게 기다림의 철학이 아니던가.
낚시는 물이 밀기 시작할 때와 만조 끝 물이 돌 때쯤에 잘 된다고들 하나 물이 다 쓸어 내려 갈 때만 아
니라면 대개 가능하리라 본다. 그 날 재수니까. 운7 기3이라고나 할까. 망둥이는 여기서도 더 운 쪽을 높
여야 할 것 같다.
물이 너무 쓸었을 땐 갯벌에 발을 깊이 빠지면서 하게 되니 불편하다. 그래서도 이왕이면 그 날 물때 계
산을 해 보고 나오게 되는 데...
조수의 흐름은 한 달에 두 번 주기로 정확히 계속 반복되는 것으로 무슨 에러니 예외니 하는 게 전혀 없
다. 그 운행에 한치의 착오라도 생긴다면 그 건 바로 천지개벽의 상황이다. 따라서 그 움직임을 아는 것
도 아주 쉽다.
어느 날 기준으로 만조 시각을 알면 음력 한달 중 어느 날의 조수의 흐름이라도 계산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초하루 만조 시각이 5시라면 날마다 조금씩 (50분 정도) 늦어지면서 16일엔 그 만조 시각이
다시 제자리 5시에 돌아온다. 이게 1주기로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마다 기준 시점의 조수 흐름을 알아 놓고 있으면 그 판에 박힌 일쯤이야 누구나 쉽게 꼽아
낼 수 있게 된다. 다만 인위적인 큰달(30일), 작은달(29일)로 한달 일수를 맞추는 계산 방식 때문에
그 시각이 조금씩 차이가 있게 된다.
특히 바닷가 달을 보고 사는 사람들은 거의 본능적 감각으로 물때를 알고 있다.
어쩌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이와 같은 것을 우리 인간이 애써 고생만 사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낚시는 고기를 잡아야 하는데, 근데 이 게 맘대로 안 된단 말이지.
등산은 묵묵히 산을 오르기만 하면 된다. 아무런 급부 없이도. 그러나 낚시는 기술과 지혜를 발휘해서
실물 소득을 올려야 한다. 실로 난처한 일.
수천년 전에 공자는 이미 이를 간파하고 요산요수를 교시한 것이란 말인가.
또한 강태공 같은 이야 낚시를 하면서 제세방략을 궁구해 내었다고 하지만 우리네 중생이야 어디 그런
가. 한마리 잡고 못잡고에 온통 희비애락이 걸려있음이니.
초장 끝발이 안 서면 자리를 옮겨라. 넓고 넓은 바닷가에 자리는 많다.
그래도 안 되면 낚싯대를 접고 좀 쉬어라. 식사도 하면서 술도 한잔 하면서.
낚시가 단조롭고 지루한 모습 같아도 그래도 시간은 잘 간다. 바둑 두는 것만큼이나 잘 간다.
물이 저 아래서 찰싹되더니 어느 새 여기 높이까지 올라왔다. 이 게 바로 시간이란 것이렸다.
뒤로 뒤로 쫒겨가며 낚싯대를 던진다. 물이 잔뜩 밀어 바다가 아주 넓어졌다.
해는 서쪽 멀리 섬 너머에 지고 있다. 누리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나 보다.
낚시꾼들의 모습이 하나 둘 사라진다.
만조 시간은 좀 더 있어야 하는데 오늘 그런대로 고기 몇마리 잡고 잘 보냈으니 그만 접어야겠다.
사람은 물러갈 때를 알아야 한다니.
자칫 어물대다간 어둔 길에 고생하게 된다.
바다 멀리로 등대불이 깜박거린다. (2009. 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