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강] 시의 언어가 갖는 특성.2 ㅡ강사/김영천
3)언어의 암시성.
시의 언어가 지닌 암시성에 의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경물) 저 편에 있는 정신적인 세계, 불가사의 세계까지도 담아낼 수 있는 것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수영님의 <눈>
신경림님의 <목계장터>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 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지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ㅡㅡㅡ"목계의 독특한 정서, 목계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내 감정을 시로 표현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주 오래다. 실제로 나는 <목계장터>를 쓰기 전에 두 번이나 비슷한 소재로 시를 써서 발표까지 했었다. 그러나 두 편이 다 발표되고 보니 너무 마음에 안 차 없애버리고 마침내 세 번까지 쓰게 된 것이 이 시다. <목계장터>는 내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품 중의 하나다"
정현종ㅡ<마른 나뭇잎>
마른 나뭇잎을 본다.
살아서, 사람이 어떻게
마른 나뭇잎처럼 깨끗할 수 있으랴.
ㅡㅡ작가의 이야기"늦가을이나 겨울, 내 일터의 뒷산을 걸어다니다가 마른 잎이 내 눈길을 끈 까닭은 다름 아니라 그게 아주 깨끗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마른 잎을 보면서 나는, 참 깨끗하구나........하는 생각에 잠겼고, 아울러 살아 있는 사람은 저렇게 깨끗할 수 없지.........하는 생각에 잠겼다.
그런 생각에는 나한테, 또는 우리한테 있을지도 모르는 더러움에 대한 관용의 뜻도 들어있겠지만, 그보다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건 어느 정도 더러워지는 걸 감수하는 것이라는 그 더러워짐의 불가피성(여기에는 나의 나에 대한 느낌, 남의 나에 대한 느낌, 나의 남에 대한 느낌 따위가 얽혀 있는 것이지만)에 대한 느낌이 들어 있는 한편 거의 무의식적인 자기반성 행위가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중략) 어떻든 마른 나뭇잎으로 돌아가서, 사람도 죽으면 더 이상 더럽혀지지 않는다. 죽는다는 건 욕망이 끝난다는 걸 뜻하며,. . .
마른 잎과 관련해서 또 좀 다른 얘기를 하자면. <마름>과 <젖음>의 철학이라고 할까 하는 것에 대한 생각도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없다.
물론 수도사나 성직자 를 위한 가르침이라는 성격을 염두에 두어야겠지만, 불교나 기독교(가령 십자가의 요한이라는 성인)에서 강조 하는 <바짝 마름>이라든지 <마른 막대기 같아야 한다> 하는 얘기도 생각해 볼만한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