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오지 않는다 / 배혜경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가톨릭 재단에 속해 있었다. 교복은 물론 겨울코트에서 베레모와 가방까지 자주색이라 검정색 일색의 교복들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띄었다. 자줏빛 무장을 하고 새벽 여섯 시에 집을 나서서 버스를 타고 내려서 걸어가는 시간을 모두 합하면 한 시간은 족히 걸렸다.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여고시절이 시작되자마자 헉헉 숨이 차고 다리에는 단단한 근육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파른 언덕길을 긴 호흡으로 올라 왼쪽으로 꺾어들면 교문은 다시 아득히 높은 곳에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교문을 통과해도 교실까지는 또 오르막길이 뻗어있었다. 매점을 스치고 강당을 지나고 본관을 건너서 나무들 사이에 숨어있는 건물의 네모난 입 속으로 들어가서야 한 숨을 내쉬었다. 모종의 예언 같기도 한 그 길. 낯선 길에 내던져졌지만 하루하루 기대감에 부풀었던 여고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처음 만난 선생님은 지리를 담당한 올드미스였다. 그러잖아도 흥미 없었던 과목인데 고저장단이 없는 목소리에 잘 웃지 않는 무덤덤한 표정, 우스개 한 번 들을 수 없는 수업은 수면제로 불렸다.
성모동산이 오월의 장미로 활활 타오르던 어느 날이었다. 조례시간에 선생님이 평소처럼 심각한 얼굴로 탁자에 한 팔을 걸치고 섰다. 그리곤 반장, 부반장, 부장들을 호명하며 무슨 시집인가 에세이집인가 하는 책을 사라고 하셨다. 통보였고 명령이었다. 그 책을 왜 담임이 할당 받아 조금도 읽고 싶어 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강매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당시에 나는 선생님이 그 책을 사라고 말씀하시는 동기는 잘 몰랐다 해도, 우선 그 방법과 절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생님의 어조도 싫었다. 구속하고 강요하는 암묵적인 분위기에 내심 발끈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그 책을 읽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사겠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 전 안 사겠습니다."
"다 사는 거니까 사라."
"아뇨, 전 안 사고 싶은데요."
옥신각신 몇 차례 날선 말이 오고가고, 선생님은 나를 노려보시더니 낮은 목소리로 호령하셨다.
"나중에 교무실로 와."
도시락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점심시간에 교무실로 찾아갔다.
선생님은 왜 사고 싶지 않으냐고 물었다. 나는 읽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난처한 얼굴로, 그냥 사면 안 되겠냐고 다시 물으시길래,
"저는 그냥 안 사겠습니다." 하고 끝까지 선생님 애를 태우고 말았다.
주위 선생님들의 시선이 모두 우리에게 쏠렸다. 결국 선생님은 화를 참지 못하고 충고하셨다.
"세상을 살다보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어.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이 더 많아. 내가 하기 싫어도 다 같이 하는 일이면 그냥 하는 것도 공부야."
나는 그 말씀을 수긍할 수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람. 다 같이 하는 일이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고? 집에 돌아와 곰곰 생각해보았고 결국 선생님께 편지를 쓰기로 했다. 짧은 소견에 시를 앞세워 우회하여 말씀 드리고 싶었다. 순간 왜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절창이 떠올랐던지. 그때의 선생님 나이를 다 지나와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시를 빼곡히 적어둔 공책을 뒤져 내 억울함을 호소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를 찾았다.
시의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게 연분홍 파스텔톤 편지지를 골랐다. 보라색 볼펜으로 또박또박 시를 옮기고 그 아래 몇 자 죄송한 마음을 붙여서 같은 색 봉투에 넣었다. 다음날 등교하자마자 교무실 책상에 올려놓았더니 선생님은 종례시간에 다시 나를 불렀다. 당시의 나로서는 무슨 의미인지 모를 아리송한 웃음을 보내며 책은 사지 않아도 좋다고 선언하셨다. 할당된 수를 채워야했던지 대신 다른 아이에게 난데없는 화살이 돌아간 걸로 기억한다. 내 편지는 선생님 손에서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다.
1학년을 마칠 즈음에 선생님 댁으로 친구들과 함께 인사를 하러갔다. 선생님은 수수한 다기에 작설차 잎을 담고 데운 물을 따르며 곧 결혼을 하고 학교를 옮길 거라는 말을 흘렸다. 워낙 말수가 적고 표정의 동요가 없는 분이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지만 나를 쳐다보시는 선생님의 눈말은 아직도 또렷하다.
'너도 참 세상 살기 수월하진 않겠다. 그래도 너무 이기적으로 살지는 마라.'
그런 속말이 들려왔다.
우리는 뜨듯한 아랫목에 둘러앉아 담요 속에 발을 넣고 차를 마셨다. 달콤한 오렌지주스나 주시지 웬 작설차람. 처음 본 차 맛이 씁쓸하고 떫었다. 하지만 엷은 녹색빛깔만큼이나 개운한 뒷맛을 남겨주었다. 맛의 속내를 알게 되기까지 그 후로도 적지 않은 세월이 걸릴 거라는 걸 철없던 그때는 알 수 없었다. 맹랑한 것이 얼토당토않게 선생님께 드렸던,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중 마음에 가장 당기는 구절을 읊조려본다.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겨울이 가야 봄이 오는 게 아니라 봄은 겨울 안에 늘 둥지 하나 지키고 앉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헤르메스의 발뒤꿈치에 달린 날개마냥 내 발뒤꿈치에는 언제나 봄 신령의 날개를 달아 두어야겠다. 봄은 오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이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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