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고등학교 내신 평가 전체를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입 상대평가 위헌 헌법소원을 청구한 것이 불과 한 달 전인데, 이렇게나 반응이 빠를 줄이야.
평가를 왜 하는가. 학생 개개인의 성장을 돕고, 교수·학습 방법을 개선하는 것이 본연의 목적이다. 그러나, 상대평가제는 철저하게 경쟁을 바탕으로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척도로 작동해왔다. 북미나 유럽 등 교육선진국 가운데 상대평가를 시행하는 나라는 없다.
올해 확정될 2022개정 교육과정은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옆자리에 앉은 친구들과의 비교 속에 포용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창의성도 마찬가지다. 실수해도 괜찮을 거라는 수용적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시도와 도전이 일어난다. 그러나, 대한민국 공교육의 평가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수업과 학습 방식도 요약, 정리, 암기, 문제풀이를 누가 더 잘 하느냐, 많이 하느냐로 귀결된다.
너무나 간절히 바라온 절대평가로의 전환 소식인데, 당장 쌍수 들어 환영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무엇 때문일까?
첫째, 학교 내신 채점에 대한 신뢰의 문제다. ‘절대평가’라고 하면 거의 동시에 떠오르는 ‘내신 부풀리기’ 우려가 있다. 이를 불식할 수 있는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사교육걱정은 ‘지역별 평가관리센터’(가칭) 같은 기구를 통해 평가 신뢰성을 구축할 것을 제안한다.
둘째, 평가 문제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은 입시이다. 교육 선진국들은 대입에서도 절대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내신만 절대평가를 시행할 경우, 입시는 대혼란에 빠지고 만다. 2024년에 발표할 대입 개편안에서 절대평가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
셋째, 현재의 서열화된 고교체제를 해체하고, 고교학점제의 목표인 교육과정 다양화를 더 확고히 완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현재와 같은 특목고, 자사고가 유지되면, 이들은 우수학생들을 선점하고, 입시에서 더욱 우대받을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고등학교를 통해 이루려 했던 교육적 목적은 고교학점제를 통해서도 충분히 이룰 수 있다.
이주호 교육부장관이 한 일간지와 인터뷰한 내용을 읽어보면 한 줄 한 줄이 사교육걱정이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성과 너무나 일치해서 깜짝 놀랄 지경이다. 장관의 재임 기간 동안 본인의 소신과 일치하는 정책을 실현한다면 사교육걱정은 조기해산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 교육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수십 년동안 어느 누구도 교육 혁신을 이루지 못해 우리는 아이들을 점점 무기력하게 만들어왔다.
2022년 등대지기학교에서 정신과 전문의 김현수 선생님은 코로나 3년을 거치며 가장 힘들었던 이들은 바로 아이들이라고 말한다. 초등학교 4학년은 수학을 포기하고, 중2는 공부를 포기하고, 고1이 되면 학교를 포기한다는 자조섞인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정밀하게 설계될 절대평가라는 특단의 조치가 있지 않으면 우리는 끝없이 희망을 찾아 표류하는 난민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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