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작가 : 꿈꾸는 나무 (mintblue1983@hanmail.net)
* 창작실 : 20대 planet l
* 제 목 : 그늘...
* 편수 : 40
==================================================================
9.
밤새 기다린 것이 너무 화가 나 퉁명스럽게 말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공사하느라 늦은 것도 다 아는데...
왜 그렇게 화를 낸 건지 자신이 이해심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속좁은 여자가 된 것 같아
더 마음이 불편하다.
사실 기다리기는 했지만 연락없이 늦는 적이 거의 없는 현이라 걱정이 더 앞서기도 했다.
연신 한숨을 내쉬는 서연이는 힘이라고는 하나도 없어보인다.
“ 언니 왜 그래요? ”
“ 그냥... ”
힘없이 웃어보이는 서연이...
점심시간이 되고 입맛이 없다며 정은이를 먼저 식당으로 보내고 혼자 사무실에 남았다.
슬슬 허기가 느껴지는지 책상에 엎드린다.
“ 여기요! ”
“ 네. 물건 찾으러 오셨어요? ”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서연이가 고개를 든다.
눈앞에 있는 건 하얀 종이컵...
태어나서 종이컵이 이렇게 반가울 때가 또 있을까...
“ 현아... ”
현이는 웃으며 도시락을 들어보인다.
밤새 공사를 했으면 피곤할텐데...
하얀 셔츠를 입어서인지 다른 날 보다 더 깔끔해보인다.
“ 점심시간인데 여기서 뭐하고 있어. 밥 먹으러 가자! ”
서연이는 현이가 너무 고맙다.
남산골 한옥 마을...
평일 점심시간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다.
간간이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옥들을 둘러보는 것이 눈에 띌 뿐...
서연이는 현이가 손을 꼭 잡고서 걸어가고 있다.
아침의 냉전은 어디로 갔는지 다정해보이는 분위기다.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예쁜 꽃들이 자신의 색을 뽐내고 있었다.
“ 예쁘다! ”
“ 그러게... 앉아. 먹자. ”
현이는 서연이의 손을 잡아끌고 벤치에 앉았다.
들고 온 도시락을 조심스레 꺼내든다. 서연이가 좋아하는 일식집의 초밥.. 한 쪽 구석에 챙겨온
미소시루 된장국물도 보인다.
“ 어제 내가 연락없이 안 들어가서 화났지? ”
“ 아니야. 놀다가 그런 것도 아닌데... ”
“ 미안해. 어제 공사가 너무 급해서... ”
“ 괜찮아. ”
“ 너 근데 어제 실크 입었더라? ”
“ 어? 어... 그게... ”
“ 왜 입었어? ”
갑자기 개구져지는 현이의 표정...
“ 너 어제 나랑 같이 잘려 그랬구나? ”
“ 진짜! 또 그런다... ”
“ 알았어... 근데 어제 실크 왜 입었어? ”
퍽!
참다못해 날아간 서연이의 주먹...
티격태격 도시락을 다 먹고 서연이는 현이의 손을 이끌고 명동으로 간다.
여름도 지나가는데 새 옷을 하나 사야 한다나?
그리 수긍되는 의견은 아니지만 현이도 그냥 서연이의 손에 이끌려 간다.
오랜만에 둘이 하는 데이트라 싫지는 않은 듯...
“ 서연아. 너 내가 옷 사줄까? ”
“ 당연하지. ”
“ 뭬야? ”
“ 옷 사줄려고 여기 온 거잖아. 당연히 사야지. 무슨 소리 하는 거야. ”
“ 그. 그래... ”
서연이는 한 옷가게 진열대 앞에 섰다.
옆에서 마니킹과 서연이는 번갈아보던 서연이...
“ 서연아. 너 이 마네킹이랑 똑같은 옷 입어봐! ”
“ 왜? ”
“ 똑같은 옷이라도 다른 사람이 입으면 얼마나 망가지나 보려고... ”
“ 뭐야? ”
“ 당연히 마네킹이 더 이쁘겠지만... ”
“ 현아! ”
“ 알았어. 니가 더 이뻐. ”
이서연...
니가 내 아내인데...
당연히 니가 더 이쁘지...
너한테 잘 어울릴 거 같아서 예전에 내가 봐 둔 거야.
약올라 하기는...
잔뜩 약올리고 앞장 서서 옷가게로 들어간다.
기분이 상했지만 그래도 서연이는 현이를 따라 옷가게로 들어간다.
잠시 후...
정말 마네킹과 같은 옷을 입고 서연이와 현이가 옷가게에서 나온다.
현이는 썩 만족스러운 듯...
“ 이쁘네! ”
“ 나? ”
“ 아니. 저 마네킹... ”
아니야. 서연아. 니가 더 이뻐.
서연이는 현이의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입은 삐죽거린다.
10.
충무로역 출구에 도착한 두 사람...
현이는 서연이가 사무실로 들어가야 하는 게 좀 아쉬운지 계속 손을 잡고 있다.
오랜만에 서연이와 단 둘이 시간을 가진 터라 더 소중하고 아쉽게 느껴진다.
아쉬운 건 서연이도 마찬가지 인 모양이다.
“ 안 가봐도 돼? ”
“ 이제 가야지. ”
“ 현아... 오늘 너무 고마워. 도시락도 맛있었고...
이 옷도 너무 고맙고... ”
“ 고마우면 내 부탁 한 가지만 들어줘! ”
“ 부탁? 뭔데? ”
“ 오늘 밤에... ”
“ 밤에 뭐? ”
“ 실크 한번만 더 입어라. ”
“ 아~ 진짜... ”
“ 알았지? ”
“ 몰라... 나 간다. ”
서연이는 현이의 손을 놓고 계단을 내려간다.
한참을 뒷모습을 지켜보는 현이...
“ 이따가 집에서 봐! ”
서연이는 손을 모아 소리를 내며 열심히 손을 흔든다.
다시 계단을 내려가고... 현이는 천천히 뒤로 걸므여 횡단보도에 선다.
아직 빨간불인 것을 확인하고 계속 계단을 보고 있다.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오고...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뒷걸음질 치며 계속 계단을 바라보고 있다.
너무 천천히 걸은 탓일까...
횡단보도를 중간 정도 건넜는데 신호등이 다시 빨간불로 바뀐다.
차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속력을 내며 달려온다.
빵빵~
요란한 크락션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린 현이...
큰 화물차가 현이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끼익~
쾅~
미처 피할 새도 없이 현이는 하늘 위로 튕겨졌다가 길에 떨어진다.
머리에서는 끈적한 피가 흘러나와 하얀 셔츠를 물들인다. 신호등이 다시 파란불로 바뀌고 사람
들이 현이 주위로 몰려든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많아지고 현이의 눈동자는 흐릿해지며 정신마
저 혼미해진다.
하나님...
아직은 안됩니다...
11.
이오이오~
요란한 앰블런스 소리를 내며 구급차가 거리를 지나고 있다.
다급한 상황을 알려주듯 앰블런스 소리는 듣는 사람들 마저도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런 구
급차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초리는 안타까울 뿐이다.
철컥~ 철커덕~
차가운 금속성의 소리를 내며 구급차의 문이 열리고 현이가 들 것에 실려 내려진다. 서두르는 급
한 손길들이 현이를 스친다. 아까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산소호흡기... 급히 응급실 한 침대로 옮
겨진다.
상의 걸쳐진 하얀 셔츠는 피로 물들어 색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호흡을 원활히 하기 위해 단
추가 두어개 풀러져 있다. 머리에서는 계속 끈적한 피가 흘러나와 응급용으로 감은 붕대도 핏빛
으로 변한 지 오래다.
뚜뚜뚜~
“ 원장님! ”
맥박을 재던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
뚜뚜뚜~
맥박을 나타내는 선의 움직임이 불규칙해진다.
제멋대로 왔다갔다 변동이 심하더니 이제는 점차 0 에 가까워지고 있다.
살아있는 동안 힘차게 뛰어야 할 심장이 점점 휴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응급실의 모든 의사와 간호사들의 얼굴에 수심이 실리고 있다.
탁~
응급실의 문을 박차고 한 의사가 뛰어 들어온다.
급하게 뛰어왔는지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이 맺혀있다.
한준석...
성심 종합병원의 원장이자 신경외과 전문의...
“ 원장님! 교통사고 응급환자에요. ” - 의사 1
“ befibrillrator 는? ” - 준석
“ 곧 옵니다. ” - 의사 2
준석이는 다급한 마음으로 현이가 뉘여있는 침대를 바라본다.
[ 교통사고 응급환자 윤 현... ]
“ 윤 현 환자 보호자 없어요? ” - 준석
“ 아직... 오는 중이라서... ” - 간호사
대화가 오고가는 사이에도 맥박은 희미해지고 있었다.
다른 의사들이 응급실 문을 열고 befibrillrator (응급소생용 전기충격기)를 갖고 들어온다.
준석이가 급히 befibrillrator를 들고 충격을 주기위해 준비한다.
“ 50 ”
입안이 말라오는 준석이...
“ 100 ”
“ 150 ”
보다 강한 충격에 몸은 심하게 흔들리지만 맥박에는 전혀 반응이 없다.
오히려 맥박은 0을 향해 가까워 지고...
띠~
깜빡거리던 소리가 갑자기 계속 이어지고...
화면에 나타나는 맥박은 전혀 변화가 없이 한줄기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 휴...... ”
준석이는 허탈한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침대에 누워있던 현이의 위로는 하얀 천이 덮어진다
탁~
응급실 문이 거칠게 열리고 서연이가 기절할 듯한 얼굴로 들어온다.
뛰어 왔는지 얼굴에 땀이 그득하다.
“ 윤 현 환자 어딨어요? ” - 서연
“ 이 쪽으로 오세요. ” - 간호사
입술이 말라오는 서연이...
서연이가 본 현이는 하얀 천을 덮은 채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서연이는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툭 투둑~
“ 윤 현 환자 보호자 되세요? ” - 준석
“ ..네...... ” - 서연
“ 이 병원 원장 한준석입니다. 죄송합니다. 제 환자인데... ”
“ 무슨...... 이상 없는..... 거죠? ”
“ 죄송합니다... ”
“ 왜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한테 이런 걸 덮어두고 그러세요. ”
“ 네? ”
서연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며 현이가 덮고 있는 하얀 천을 들춰낸다.
피가 범벅이 된 얼굴...
피가 흐른 흔적만 보아도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다.
두 눈을 꼭 감은 채 서연이가 하얀 천을 들춰내고 반응이 없다.
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서연이는 뒤로 쓰러질 들 간신히 중심을 유지한다.
옆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아 가만히 현이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 현아... 이제 나 왔어... 이제 장난 그만 쳐도 되는데...
장난 그만 쳐도 된다구... 흑흑... 이제 일어나... 나 이제 화 낸다? 흑흑... ”
서연이는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할 만큼 목이 메여온다.
현이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서연이... 덮여 있던 하얀 천이 서연이의 눈물로 젖어가고 있었다.
준석이도 지켜주지 못했다는 웬지모를 죄책감에 마음이 아프다.
“ 현아... 흑흑.. 정말 나쁘다... 흑흑... ”
서연이는 한참을 그렇게 울고 있었고 준석이도 그 횅한 뒷모습을 지켜보며 한동안 그 자리를 지
키고 있었다. 서서히 하늘에 그늘이 지고 있었다.
12.
썰렁한 빈소...
다른 영안실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아우성. 울음 소리... 곡소리로 정신이 없다.
하얀 소복을 입은 서연이가 빈소 한 쪽 구석벽에 기대어 앉아 있다. 서연이의 옆에서 장난을 쳐
야할 현이는 사진 속에서 장난기어린 미소를 짓고 있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서연이는 눈에 초점이 없다.
온 몸에 힘이 다 빠지고 침조차 삼킬 생각이 들지 않는다.
현이의 부모님들은 지방에 살고 계셨기 때문에 서울까지 도착하기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잔
인하게도 서연이는 그 긴 시감동안 홀로 현이의 옆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문득 현이의 장난스런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어린 아이처럼 과자를 좋아하고 마냥 천진하던..
세상이 뒤집혀도 곁에서 장난을 칠 것 같던 현이...
한참을 생각에 빠져 허우적 거리던 서연이는 아직도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 속의 현이사 마냥 야
속할 뿐이다.
툭 투둑~
갑자기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이 쏟아진다.
툭 투두둑~
이를 악물고 참아보지만 눈물이 더 빨리 떨어질 뿐이었다.
“ 서연... 언니... ”
눈물이 맺힌 눈으로 바라본 곳에는 정은이가 서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아픈 일인지 뼈에 사무치게 느끼고 있는 정은
이... 가장 먼저 달려온 정은이는 이유 모를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고 있었다.
피식!
서연이는 눈물을 흘리며 피식 웃는다.
이유모를 묘한 기분에 서연이는 더 이상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 이야... 그 사람은 특별하게 죽음을 맞이 했다. ’
‘ 나도 나중에 그렇게 죽었음 좋겠다. ’
서연이의 머릿속에는 며칠 전 현이가 생각없이 던진 말들이 맴돌고 있었다.
가만히 다가와 서연이의 앞에 앉는 정은이...
“ 괜찮냐구... 그런 말 안 할께요...
그런 거 물어보지 않아도 내가 너무 잘 아니까... ”
서연이는 다시금 눈물이 떨어진다.
13.
쏴아~
오랜만에 시원한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서연이는 병원 창가에서 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 3일간 서연이는 시간에 무감각해져 있었다. 현이의 부모님들이 병원에 도착하고 그 뒤를 이
어 현이의 형제들, 친구들... 평소에 현이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현이의 빈자리만이 커질 뿐이었다.
이제 내일이면 장례식이 끝나고 현이를 정말 보내야 하는 것이었다.
며칠 사이 몰라보게 상한 서연이의 얼굴...
“ 이서연씨? ”
서연이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본다.
하얀 가운에 무테 안경을 쓴 남자... 응급실에서 서연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나쁜 소식을 알려주
던 사람... 원장 한준석...
“ 나 기억나죠? 한준석이에요. ”
준석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연스럽게 서연이의 옆에 걸터 앉는다.
아무 말이 없는 서연...
“ 견딜만 해요? ”
“ .......... ”
“ 지난 번에는 말 잘 하던데.... 나랑 말 하기 싫어요? ”
“ 아뇨... ”
“ 미안해요. ”
“ 무슨... ”
“ 그냥... 나는 내 환자를 지키지 못했을 때 그 가족들한테 너무 미안하더라구요. ”
“ ...... "
“ 내가 잘못 한 거 같아서요...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실은 그게 아닌데... ”
“ ...... ”
“ 내가 잘못 한 건가요? ”
준석이는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으며 웃는다.
“ 아뇨... 그런데........ 조금만 더 지켜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혼자서 떠나는 기분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런 생각은 해요... ”
“ 나처럼 어린 놈이 이렇게 큰 종합병원 원장이라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
“ 글쎄요... ”
갑자기 뜬금없는 말에 서연이는 잠시 당황한다.
“ 아버지가 워낙 봉사활동 하시는 걸 좋아하셔서요. ”
“ ......... ”
“ 일찍 저한테 떠넘기신 거에요. 원장하시면 봉사활동 다니시는 거 불편하시다고...
사실 이름만 원장이지 완전 쫄병이에요... ”
“ 네... ”
“ 나 참 뜬금없는 사람이죠? ”
현이만큼이나 엉뚱한 사람...
서연이는 눈물이 맺혀온다.
“ 견디기 힘들어 보여요. 그 짐을 내가 떠넘긴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워요... ”
툭 투둑~
서연이는 기어이 눈물을 떨구고 만다.
“ 이렇게 생각해 볼래요? 나중에 더 많이 만날테니까...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봐요... ”
준석이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서연이에게 건네준다.
눈물을 떨구는 서연이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가고 있었다.
“ 서연씨... 나중에는 웃는 모습 보여줘요. 그리고 나중에 만날 때는 이렇게 만나지 맙시다.
서로 좋게 만나요... ”
“ 죄송합니다... 마음 불편하게 만들어서... ”
“ 아니에요... 직업인걸요... ”
“ 그런데... 지금은 제가 선생님을 배려해드릴 마음의 여유가 없네요...
나중에는 선생님 보고 꼭 웃을께요... ”
“ 서연씨... ”
“ 손수건 고맙습니다. 제가 깨끗이 해서 돌려드릴께요... 그럼... ”
서연이는 눈물을 훔치며 먼저 자리를 떠난다. 떠난 사람의 빈자리만큼이나 쓸쓸해보이는 뒷모
습... 준석이는 한쪽 마음 구석이 아려온다.
14.
햇살이 예쁘게 창을 두드리는 날...
서연이는 거의 일주일만에 유실물 센터에 출근을 하고 있다.
정은이가 많이 배려해준 덕에 예정보다 더 많이 쉬고 출근할 수 있었다. 서연이는 심호흡하고 사
무실 문을 연다.
딸깍~
“ 언니!! 괜찮아요? 내일부터 나와도 되는데... ”
정은이의 걱정어린 말투...
문득 정은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이번 일로 정은이와는 친자매 이상으로 가까워졌다. 평소 모르던 모습까지도 알게 되고...
속이 깊은 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고 후 가장 먼저 달려와 준...
그리고 퇴근 후면 어김없이 달려와 한쪽 어깨를 빌려준...
때로는 언니같고 또 엄마같은 의젓한 동생이었다.
“ 이제 괜찮아. 너 혼자서 힘들었겠다. ”
“ 아니에요. 언니... 며칠인데요... ”
서연이는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는다.
책상위에 올려놓은 현이와 찍은 사진이 서연이의 눈동자를 흔들리게 한다. 떨리는 손으로 액자
를 잡는다. 그리고는 가만히 사진을 어루만진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있어야 할 곳에 없는 단 한 사람...
그 사람이 사무치게 그립다...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정은이가 작은 상자를 내민다.
어리둥절한 서연...
“ 언니. 이거 언니한테 온 상자에요. 망설이다가... 아니 안 주려다가... 어휴... 모르겠다. ”
정은이답지않게 자꾸 말이 꼬인다.
“ 뭔데 그래? ”
서연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상자를 열어본다.
어쩌면 서연이는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상자를 여는 순간 눈물이 핑 돈다.
혹시...
상자 속에는 지하철 보관함 열쇠가 앙증맞게 들어있다.
7번...
역시...
현이다. 행운이 올거라며 항상 현이가 좋아하던 숫자.
애써 웃어보인다.
“ 언니... 남편한테서 온 거 같아서요... 전해줘야 하나 말아야하나 많이 고민했어요.
그런데 괜히 중간에서 가로채는 거 같아서요... 미안해요... ”
“ 괜찮아. ”
웃으며 열쇠를 꼭 쥐고는 사무실을 나건다.
현이가 보낸 것이니 4호선 충무로역 보관함일 것이다. 사무실에서 보관함이 먼 거리는 아니었지
만 서연이는 보관함이 가까워질수록 웬지모를 걱정이 앞선다.
서연아... 울지말자...
서연이는 가슴속으로 몇 번이고 맹세한다.
철컥~
휴우~
크게 숨을 내쉬고는 보관함을 연다.
보관함에는 음악 cd 와 빨간 장미 1송이가 놓여져있다.
빨간 장미 1송이는 흑장미로 변해있다. cd를 손에 든 서연이는 투명한 cd 케이스 사이로 보이
는 현이의 글씨가 흐릿해진다.
「 서연아... 어제 늦어서 미안해... 사랑해!! 」
툭 투둑~
다시 눈물이 떨어진다.
이번에는 참아볼 생각도 하기전에 슬픔과 서러움이 밀려온다.
털썩~
서연이는 자리에 주저앉아 서럽게 소리내어 울기 시작한다.
cd 와 장미꽃 1송이를 소중히 품에 안은채...
흑흑...
어깨까지 들썩거리며 우는 서연이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언제 왔는지 정은이가 먼발치에서 그런 서연이를 지켜보고 있다.
15.
모처럼 한가한 휴일~
서연이는 오랜만에 밀린 빨래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옷장에서 묵은 빨래들을 꺼내어 주머니속
을 살펴보고 있었다. 드라이를 맡기려고 검은 정장바지에 주머니를 살펴보는데 손수건 한 장이
손에 잡힌다.
“ 이게 누구 손수건이지? ”
곰곰이 생각하는 서연이...
병원에서... 비가 내리던 날... 손수건을 건네주던 서연...
한준석...
“ 아, 맞다... ”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표정으로 손수건을 바라보는 서연이...
서연이는 요 며칠 사이 몰라보게 수척해졌다. 원래부터 먹는거에 취미가 없는데다가 현이가 없
어 더욱 그랬다. 끼니를 제대로 챙겨먹기는커녕 간식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얼굴이 약간 창백해졌다.
결국 서연이는 빨래를 다시 미루고 병원으로 나섰다.
서연이는 면허가 없기 때문에 차가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하는 수 없이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어렵게 어렵게 병원에 도착했다.
현이를 잃고 처음 오는 병원... 느낌이 사뭇 다르다.
병원 정원에는 환자와 그 보호자들이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하고 있다.
서연이는 가만히 벤치를 바라보다가 병원으로 들어간다.
똑똑~
“ 네, 들어오세요. ”
빼꼼히 문을 열고 윤주가 싱긋 웃는다.
책상에 앉아 차트를 보고 있던 준석이는 윤주의 모습을 보고는 웃음을 짓는다.
“ 들어와. ” - 준석
“ 그래. ” - 윤주
“ 휴일인데 집에 안 갔어? ”
“ 오늘 나는 비번인데... 니가 오늘 근무라서 안 갔지.... ”
“ 어유~ 열녀 났네~ ”
“ 고마우면 이따가 맛있는 밥이나 사줘. ”
“ 그래. ”
“ 근데 무슨 원장이 이러냐... 휴일날 쉬지도 못하고... ”
“ 그러게 말이다... 그러지 말고 니가 우리 아버지한테 좀 졸라라... ”
“ 됐어. 어머님도 못 말리시는 아버님을 내가 무슨 수로 말려... ”
“ 예비 며느리가 좀 해봐. 넌 약혼녀가 하는 일이 뭐있냐... ”
“ 야! 약혼녀가 약혼자 휴무하게 하는 게 일이냐? ”
“ 어쨌든... ”
윤주는 준석이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는다.
김윤주...
준석이와 약혼자이자 병원 소아과 전문의이다.
냉철하고 차가운 판단력을 가진 의사. 준석이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환자는 약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치료한다는 생각을 가진 준석이와는 달리 윤주
는 사람의 생명은 하나라는 생각에 선례없는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존심도 강
하고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는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하지만 윤주도 준석이앞에서만은 애교도 떨고 상냥한 모습을 보인다.
“ 윤주야. 나 응급실 내려갈건데 같이 갈래? ”
“ 그래. 그러지머.... ”
준석이는 윤주와 나란히 원장실을 나선다.
16.
윤주와 응급실로 내려온 준석이...
그냥 무심코 눈길을 돌리다가 병원 정원에 눈길이 멈춘다.
윤주가 열심히 말하는 데도 통 들리지가 않는다.
“ 이 환자는 소아과 환자인데... 부작용이 너무 심해서 치료가 매우 힘들어... 날이 더워지면 서 염증도 많이 생기고... ”
이서연...
그때보다 많이 수척해진 얼굴이다.
서연이는 벤치를 바라보다가 병원쪽으로 걸어온다.
한참을 말하던 윤주는 계속 넋을 놓고 있는 준석이에게 짜증을 낸다.
“ 준석아, 너 내 말 듣고 있어? ”
“ ...... ”
“ 준석아!! ”
“ 어, 어? ”
“ 너 뭐 봐? ”
“ 아니... 그게 아니고... ”
그러면서도 계속 서연이를 주시하고 있는 준석이...
“ 윤주야. 내가 이따가 소아과 의국으로 갈께. ”
“ 어디 가는데? ”
“ 알았지? ”
“ 준석아!! ”
준석이는 윤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응급실에서 뛰어나간다.
허둥지둥 병원로비로 뛰어나와 서연이를 찾는 준석이...
마음이 조급해진다. 때마침... 서연이가 로비로 걸어 들어오고 있다.
서연이를 발견하고서야 마음을 놓는 준석이...
“ 이서연씨! ”
걸어가던 서연이가 걸금을 멈추고 준석이를 바라본다.
“ 선생님... ”
“ 어쩐 일이에요? ”
“ 선생님 뵈러 왔어요. ”
“ 저요? ”
“ 네... ”
“ 이야~ 이거 영광인데요? ”
준석이는 너털웃음을 웃는다. 따라 웃는 서연
==================================================================
* 작가 : 꿈꾸는 나무 (mintblue1983@hanmail.net)
* 창작실 : 20대 planet l
* 제 목 : 그늘...
* 편수 : 40
==================================================================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장편완결
20대Planet1
그늘... 9-16
꿈꾸는 나무
추천 0
조회 6,805
04.09.13 23:44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