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은 종종 가는 식당에서 묵밥과 육개장으로 했다. 이 식당에는 항상 늙은 호박이 쌓여 있다. 호박전 만들 재료다. 호박에 일부 가려져 있는 액자가 하나 있다. 오늘 가니 호박으로 가려졌던 부분이 다 보여서 사진에 담았다. 馬上靑年過時平白髮多 殘軀天所許不樂復如何(마상청년과시평백발다 잔구천소허불락부여하). 말 위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세월이 평화로워지니 백발이 가득하구나. 늙은 몸도 하늘이 내려준 것이니 즐기지 않으면 어찌할 거나! 젊은 시절 바삐 살다가 이제 여유가 생기니 몸은 이미 늙었다. 그러나 이 몸도 하늘이 내려준 것이니 즐기지 않으면 어떡하겠냐는 뜻인 거 같다.
무상(無常)하지 않은 게 어디 있는가? 가장 어리석은 게 변하지 않는 무엇이 있다는 착각이다. 권력도 미모도 인기도 재산도 젊음도 한 찰나를 살다 간다. 영원성에 대한 집착만큼 더 어리석은 게 없다는 생각이 절절해지는 요즘이다.
식사하고 대구현대백화점 앞을 지나가 커다란 조형물이 보여 차 안에서 찍었다. 종종 대형 조형물을 전시한다. 오늘 본 건 스페인 조각가 하이메 아욘(Jaime Hayon, 1974~)의 작품 ‘Step By Step’이다. 내가 보기엔 크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조형미가 없다. 더군다나 예술성도 우아미도 없다. 다만 특이한 건 크다는 것 뿐이다. 실물 크기나 혹은 작고 예쁜 것으로 축소된 조형물과는 달리 초대형이다. 생각의 전환이다.
스웨덴 출신 미국 조각가 올덴버그(Claes Oldenburg, 1929~2022)는 일상의 오브제를 초대형으로 만들어 기존의 생각을 바꾸었다. 그의 작품 ‘스프링’이 서울 청계천광장에 세워질 때 말이 많았다. 별다른 작품성도 없는데, 굳이 많은 돈을 들여 외국 작가를 불러와야 하는가 하는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당시 그를 불러올 정도로 유명세가 있었다. 생각의 틀을 전적으로 바꾸었다. 일상의 모든 것들이 오브제가 될 수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초대형으로 만들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기존의 틀을 해체한 것이다. 바우하우스(Bauhaus)의 기능주의와 미학을 해체한다. 작품은 기능에 충실할 필요도 없고 아름다워야 할 이유도 없다. 대형 빨래집게와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기능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전혀 예술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반(反) 예술이고 탈(脫) 예술이다.
오늘 본 백화점 앞 조형물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백화점과의 차별성, 아니 차이성을 강조하기 위한 조형물이 다. 하지만 우린 동일성에 집착한다. 그래야 안정적이고 번거롭지 않다. 남이 하는 대로 하면 잘 하는 거다.
백화점을 지나오면서 생각이 난다. 그렇다. 나이가 든다는 건 모두에게나 동질적이다. 애호박이 늙은 호박이 되듯이. 하지만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즐기지 않을 수 없다. 즐기기 위해서는일상성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매일매일 같은 걸 반복하는 권태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언가 새로운 걸 찾아서 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 노블(novel)하게 살아야 할 이유다. novelty(새로움) 혹은 singularity(특이함)를 추구해야 한다.
늙은 몸도 하늘이 허락한 것이라면 기꺼이 즐길 권리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올덴버그의 작품들은 전통적 기준으론 예술적 가치가 없다. 하지만 예술적 가치가 없다는 게 바로 가치다. 반 예술로 예술의 본질을 해체한다. 예술은 모두 이래야 한다는 본질주의를 폭로한다. 관념인 본질이 개체의 실존을 지배할 명분이 없다.
삶의 본질이 있는가? 좋은 사람 만나 잘 사는 건가? 권력을 누리고 사는 건가? 인간 존재의본질은 따로 없다. 굳이 말하면 본질은 만들어지는 거다. 존재를 찬양한 독일과는 달리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도 사르트르도 들뢰즈도 존재가 아닌 생성을 찬양한다. 생성이 본질이다. 삶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그 생성의 철학을 호흡하기 위해 12월 딸이 사는 프랑스 파리로 갈 예정이다. 벌써 약동한다. 이게 삶이 아닐까?
첫댓글 _()()()_
나이가 들수록 더 노블(novel)하게,
novelty(새로움) 혹은 singularity(특이함)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저는 그저 물 흐르는 대로 꽃 피는 대로,
그렇지만 제가 해야할 일을 성실하게 열심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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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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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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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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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