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겪었음을 이제는 알고 있지만, 한때는 꿋꿋이 보존된 정신의 독창성의 증거라고 각자 속으로 생각했던 것, 그것은 공식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던 일들을 우리가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존중할 수 없는 것들. 뉴스 보도와 신문과 공지들은 우리가 익숙해져 있던 것이 었고, 결코 우리가 경멸한 적 없는 것들이었다.
이것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낙담하고 불안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특히 어떤 일도 기대대로 되지 않는 시절에는 공식적이라는 승인을 필요로 하므로.
그러나 우리 모두 어떤 시점에서, 홍보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실정으로 비화하고 있는 사실들을 우리가 구해내는 출처가 공식적인 것이 아님을 우리 모두 알게 되었다.
일련의 말들이 사건들을 하나의 그림, 거의 이야기에 가까운 그림으로 구체화시키고 있었다.
‘그 다음에 있었던 일은 이거라고 또 누가누가 말하는 데 말이야.…’
그러나 점점 더 이 말들은 일상 대화에서 아무렇지 않게 내뱉어지는, 혹은 심지어 혼자 있을 때에도 내뱉어지는 말이 되었다.
‘그래, 물론이지!' 라 생각할지 모른다.
"바로 그거라니까.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단지 누가 실제로 그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없고 그런 뜻으로 이해한 적도 없달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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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며칠 동안 뉴스 보도와 신문은 유괴된, 아마도 어떤 가난하고 불행한 여인이 유모차에서 안고 달아난 한 어린이의 이야기를 추적하기도 했다.
경찰이 수백 명씩 파견되어 아이와 여인을 찾아서 여인을 처벌하기 위하여 교외와 시골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그 다음 번쩍거리며 터져나오는 뉴스는 수백 명, 수천 명, 아니 심지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첫번째 소식, 유괴된 어린이에 대한 우려, 그 아이를 유괴한 범죄자 개인을 처벌할 필요, 그것이 며칠 혹은 몇 주가 걸리고 늘 격무에 시달리는 경찰이 수백 명씩 투입될 필요가 있는 일이라 해도, 그것이 진정 우리를 대표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어했다.
두번째 사건, 대참사는 그 사건이 있었던 지역에 실제로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런 소식이 언제나 그렇듯이, 불행하지만 사소한 것, 아니 최소한 중요하지 않은 사건이었고, 그저 인간 문명의 균일한 흐름, 전개를 방해하는 사건일 뿐이었다.
이런 일들이 우리가 정상이라 받아들인 일들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 우리가 하기로 동의했던 공모 놀이가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들과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었다.
비현실감이 마치 구토증처럼 우리를 사로잡곤 했다.
어쩌면 이 느낌, 발 밑의 땅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느낌이야말로 진정한 적이었다…
아니 그것이 진정한 적이라고 우리가 믿었던 것인지도.
어쩌면 대단한 그 무엇도, 아니 최소한 돌이킬 수 없는 그 무엇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우리의 은밀한 동의는 우리 에게 적이 ‘현실' 그 자체였기 때문.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우리 스스로 알게끔 하려는 그 '현실'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중 누구나 하고 있던 가장, 우리가 벌거벗고 무방비 상태라 느끼는 순간들마다 연기를 하는 것처럼, 그리고 부조리하게 여겨졌던 우리의 가장은 경하해야 마땅한 것이었던지도?
혹은 어쩌면 그것들은 필요했던 것, 놀이를 통해 현실이 자신들의 허약함과 멀리 동떨어진 어떤 것이 되도록 할 줄 아는 아이들의 게임처럼?
하지만 점점 더, 그리고 내내, 우리는 말하자면 웃음의 욕구를 견뎌야 했다.
아, 좋은 웃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차라리 고함, 그리고 조롱의 폭소라고 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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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언젠가 방으로 들어갔다가 그녀가 창문을 통해 재닛 화이트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진지했고, 따뜻했으며 겉보기일지언정 진실했다.
자신은 재닛 화이트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재 화이트는 자신을 좋아하게끔 한다는 게 그녀의 의
도였다.
시장이나 누군가의 집에, 함께 나가보자는 일을 놓고 두 소녀는 셀 수 없이 많은 약속을 맺었다. 재닛이 에밀리로부터 받은 온기 덕분에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뜨고 나면 에밀리는 말했다.
"부모들이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걸 들었대요. 이제 무슨 얘길 들었는지 나한테 얘기해 줄 거에요." 아무렴.
그녀의 말은 옳았다.
중요한 점은 그녀에게 가까이 오는 사람들, 그녀의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들 중에 그녀에게 위협으로 인식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게 무엇이든 그녀의 경험이 바로 그런 것이었고, 그 경험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다.
나는 내가 그녀가 되어보려 든다던가 그녀의 입장이 되어보려고 애쓴다는 것,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비판을 하려는 그녀의 욕구가 그들을 더욱 또렷하게 윤곽 지운다 는 것이 어떤 일인지 이해하려고 애쓴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 자신을 포함해 누구나 그렇게 하고 있지만, 단지 그녀의 경우엔 그런 경향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고 그런 욕구를 표출하고 과장하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당연한 일이 아닌가.
누군가 새로운 사람이 우리에게 접근하면 긴장하고 조심하게 되는 것은.
우리는 그 사람의 면면을 평가한다.
믿을 수 없도록 신속하게 천 가지의 평가와 측정이 일어난다.
그 남자, 혹은 그 여자를 정확한 위치에 놓고 우리는 이 침묵 속의 판단을 중지한다.
맞다, 이 사람은 나한테 맞는 사람이야:.
'아니다. 우리 사이엔 아무런 공통점이 없어.'
'아니야, 이 남자, 이 여자는 위험해…조심해! 위험하다니까!’
그런 식이다.
그러나 에밀리가 나를 위해 그런 경향을 강하게 보여주기 전까지, 나는 우리가 갇혀 있는 감옥이 무엇인지 몰랐고, 우리 중 누구도 방어적인 관찰이나 신속하고, 날카롭고, 냉정한 분석이 없이는 한 남자, 한 여자, 한 아이가 가까이 다가오도록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반응은 너무나 신속하고 너무나 습관이 된 것 - 어쩌면 우리의 부모들이 그것을 가르친 최초의 사람들이겠지만 - 이어서 우리는 얼마나 우리가 그것에 사로잡혀 있는지 깨닫지 못했던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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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것을 여전히 알아차리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패거리, 집단, 부족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 앞에서 진행 중이었던 그과정들을 내가 의식하고 있었다고 지금 말할 수 있다면 그건 내게 기분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을 몰랐다고 지금 판단한다.
같아지려는 열망으로부터 나오는 모방이 없다면, 어떻게 세상일이 항상 돌아갈 수 있을까?
사회의 모든 과정이 거기 기초를 두고 있으며, 개인성 발달의 전 과정이 거기 기초를 두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이것을 무시하려는, 심지어 지극히 그에 몰두해 있을 때까지도 언급하지 않으
려는 음모가 우리에게 있는 듯했다.
사람들 아이들, 성인들, 모두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지 않은 습관, 서로 독립된 지식 조각들을 획득함으로써, 가령 가게에서 카운터에 있는 아무 물건이나 선택하는 것과 비슷하게 성장한다는 믿음을 우리는 일종의 공모를 통해 공유했던 듯하다.
‘그래요. 그걸로 할래요' 혹은. '아니. 그건 싫어요! 하지만 실상 사람들은 좋고 나쁨과 무관하게 다른 사람들, 분위기. 사건, 장소를 통째로 삼킴으로써 발달한다.
숭배에 의한 발전, 대개의 경우 물론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진행된다.
우리의 친구를 보면 우리를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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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를 꺼내면서 그녀는 내 허락을 받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이런 행동이 얼마나 기뻤는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것은 그녀가 마침내 나에 대하여 그녀의 권리를 갖고 있다고 느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버릇없어도 될 아이의 권리도 거기 포함된 것이지만, 그것은 그 이상이었다.
기성세대가 젊은 사람이 그냥 어떤 물건, 그 사람 개인의 물건을 가져가는 것을 보는 것은 특히 그 행위가 인생의 어떤 단계에 대한 강력한 표현 혹은 선언이라면(어린 소녀에게 분홍색 꽃송이가 그려진 하얀 드레스가 그렇듯이), 그것은 얼마나 큰 해방감이며, 충격이며, 혹은 다시 말하자면 쪼그라드는 살덩이 위에 찬물을 붓는 듯한 경험인가.
이것은 강렬한 해방이다.
'이건 당신 것이기보다 차라리 내 것이야.’
그와 같은 절도 행위는 말한다.
내가 그것을 더 필요로 하기 때문에, 당신의 인생의 단계보다는 내 인생의 단계에 더 맞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에게 그것은 쓸모없게 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것은 내 것이야…
아마도 여기서 느끼는 그 강렬한 기쁨은 심지어 미래에 있게 될 어떤 사건에 대한 암시나 마찬가지인 것, 다른 사람들의 눈속에서 선언을, 물론 아마도 여전히 무의식적인 것일 선언을 보는 순 간과 같은 것. 이제 당신은 당신의 삶을 건네주어도 된다.
당신에겐 더 이상 삶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우리가 대신에 그 삶을 살아주겠다.
제발 이제 가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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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후기의 단계에서마저도, 놀라운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있었다.
복구가 불가능한 어떤 일 도 일어나지 않는 듯 살아가는 사람들.
지배 계급, 하지만 이것은 사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세상살이를 운영하는 사람들, 관리하는 사람들, 의회와 위원회에 앉아 있는 사람들,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라 하자.
말했다. 관료들. 국제 관료들.
하지만 이게 언제는 진실이 아니었던가?
사회의 일부, 사회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취하는 일부가 그 자신 속에서,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한에서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안정, 영원, 질서의 환상을 유지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이것은 양심, 어떤 종류의 정의 혹은 평등이 존재해야만 한다고 여전히 요구하는 인간성의 흔적기관과 관련이 있는 듯 내게는 보인다.
그 흔적기관은 어떤 사람들이 잘 살아가는 동안에 어떤 사람들은 굶으며 빈곤하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것이라고(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로 이렇게 느낀다. 어딘가에선, 아니 최소한 가끔씩은) 느낀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사회를 유지하는 메커니즘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 따라서 그것의 붕괴, 그것의 부패, 그것의 몰락은…
그렇다, 물론 이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역사를 통틀어 늘 일어났던 일, 언제든 그랬을 법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한에서는 언제나 일어났던 일이니까.
우리나라에서 지배 계급이 자신들이 속한 품위 혹은 부의 유리 종안에 서 살면서, 그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눈을 감아버리지 않았던 때가 있었던가?
이 '지배 계급' 이 정의, 페어플레이, 평등, 질서, 아니 심지어 사회주의라는 어휘들을 사용할 때 거기엔 진정한 차이가 있을 수 있었을까?
그들은 그런 말들을 사용했고, 어쩌면 그 말들을 확신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잠시나마 그 말들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언제나 그랬듯이 관리층이 최악의 것으로부터 보호되어 살아갈 때, 최악의 것을 말로 애써 부정하려고 할 때, 없기를 바랄 때, 법으로 없애려 애쓸 때 만사가 산산히 무너졌다. 최악의 것. 그것이 일어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자기네들이 무용함을, 자기네들이 즐기는 여분의 안정은 훔쳐온 것이며 자기들이 행한 봉사의 대가로 주어진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하지만 어찌 보자면, 별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이 공모에 모든 사람이 가담하고 있었다. 아니 일은 일어나고 있지만, 어느 날 매사가 역전하며 '보아라! 우리는 다시 예전의 좋은 시절로 돌아왔다'고 말할 날이 있으리라는 공모.
하지만 그 좋은 날이란 언제란 말인가?
이것은 기질의 문제였다.
만일 아무것도 갖지 못한 자라면, 꿈과 환상들 중에서 아무것이나 고르면 될 것이었다.
나는 우아한 종류의 봉건제를 상상했다.
봉건제. 하지만 물론 전쟁, 혹은 불의가 없어야 했다.
에밀리는 결코 그것을 겪어본 적도, 그로 인해 고통을 받은 적도 없으므로 '풍요의 시대' 가 다시 오기를 바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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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성자들과 철학자들의 목표가 라이언 일가에게는 타고난 권리로서 그들의 소유였다는 것이다.
라이언 일가의 방식이라고 부를 만한 것. 매 하루, 각각의 경험은 그 자체로서 충분한 것이었고, 각각의 행위는 그것의 여파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걸 훔치면 감옥에 가야 한다 . 균형있는 식사를 하지 않으면 비타민 결핍증에 걸린다 , '그 돈을
지금 쓰면 금요일에 집세 낼 돈이 없을 것이다' 같은 진리들, 그 집에 찾아오는 관리들이 늘 전해
주고 가는 이 진리들은 라이언 가족 사람들의 머릿속에 결코 저장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목사와 영혼의 교사들은 당연히 무안해하지 않았을까?
재산에 집착하는 것은 나쁘다고? 무슨 재산?
라이언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심지어 티셔츠 한 벌, 빗 하나도 없었다.
습관의 노예가 되는 것은 족쇄라고? 무슨 습관?
습관이 하나도 없는 것도 습관의 일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극빈층에게 고유한 이런 은총이 그들의 것이었다.
라이언 일가와 그들의 친구들, 검고 희고 갈색의 피부색을 가진, 밤낮의 구분없이 집 안팎 어디든 들고 나는 친구들로 구성된 부족 내에 존재하는 것은 무한한 베품과 관용, 판단의 너그러움, 더 운이 좋았던 수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이해의 섬세함 - 최소한 사건과 정황을 놓고 벌이는 힘겨운 다툼이 없이는 주어지지 않는 - 이었다.
사람은 외모에 신경써서는 안 된다고?
라이언 일가가 외모에 신경 쓰는 사치를 가질 수 없게 된 것은 오래전의 일이었다.
사람을 무시해서는 안되며, 다른 사람의 권리를 짓밟아서는 안 되고 겸손하며 요구가 없어야 한다고?
라이언 일가의 집에서 5분만 머문다면 중산계급 출신인 어느 누구라도 분노하여 자신의 변호사에게 전화 걸고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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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자마자 시작하지."
나는 말했다.
"그 앤 착한 애야. 그 앤 나쁜 애야. 오늘은 착한 일 많이 했니? 오늘은 나쁜 짓을 했다면서.
아유 얘는 얼마나 착한지 몰라요, 아주 착한 아이에요. 네가 그걸 기억 못한단 말이니?"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 말을 진정으로 듣고 있지는 않았다.
"그건 다 거짓이야. 아무런 실제적인 것과도 관계가 없어.
하지만 우리는 모두 평생 동안 거기서 벗어날 수 없어.
너는 참 착한 아이구나, 너는 참 나쁜 아이구나.
내가 하라는 대로 해, 그러면 착한 아이니까.
그건 일종의 덫이고 우리는 모두 거기 갇혀 있는 거야."
"우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결정했어요." 그녀가 말했다.
"글쎄다." 나는 말했다.
"결의안을 채택한다거나 민주주의가 참 매력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민주주의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우리가 늘 해왔던 일이지.
한편에는 '너는 참 착한 애구나, 너는 참 나쁜 애구나' 가 있고, 그리고 기구와 위계 질서와 서열에 따르는 자리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민주주의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하거나 우리가 얼마나 민주주의적인지 말하는 일이 있지.
그러니까 그것에 대해 그토록 상심할 이유는 없다.
여태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은 언제나 일어나는 일인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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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꽃무늬 벽의 뒤에 똑바로 선, 높고 보기 좋은, 하얗게 반짝이는 집이 있었다.
나는 얼마간 떨어져서 그것을 보다가 다가갔다.
그 신비한 경계를 건너는 순간부터 내가 다른 건물의 안에 있음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바깥에서 집에 접근하는 게 이번이 처음임을 주지하면서.
이것은 단단하고 잘 관리된 집, 양식상으로는 케이프 더치 (남아프리카에 거주하는 네덜란드 이주민 특유의 건축양식 - 옮긴이)와 비슷한 집, 수수한 곡선이 성안 사람들, 부르주아에 대해 말해 주고 있는 집이었다.
이 집은 독특하게 부드러운 광택을 내며 빛났다.
그 자체로는 친숙하지만 집의 재료로서는 그렇지 않은 물질로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집의 한 조각을 떼어내어 맛을 보았다.
달콤하면서 혀끝에서 녹는 맛.
동화에서 나올 성싶은 설탕으로 지은 집. 혹은 설탕이 아니라면, 누가 과자를 쌀 때 한때 쓰이던 먹을 수 있는 재료로 만든 집.
나는 계속해서 조금씩 조각을 내어 먹고 맛을 보았다.
계속 먹어보고 싶게 만드는 맛, 만족스럽지 못하고 물리게 하기 때문에 연거푸 덤비도록 만드는 맛이었다. 계
속 먹고 또 먹고도 결코 이 하얗고 밍밍한 맛에 만족을 못할 것이었다.
거기 에밀리가 있었다.
지붕을 뭉텅뭉텅 덩어리 내고 그 덩어리들을 자신의 건강한 입속으로 우겨 넣으면서.
거기 또 준도 있었다.
나른하게 맥풀린 채 조각을 고르고 주우면서. 벽의 한 파편, 창틀의 한 조각을…
우리는 먹고 또 먹으면서 마치 흰개미들처럼 그 집을 파먹고 들어갔다.
우리의 위장을 꽉 채우고도 만족되지 않은 채.
우리 스스로를 멈출 수 없으면서, 그렇지만 구역질을 느끼면서.
한쪽 구석을 먹고 들어가다가 나는 내가 '개인적' 인 것임을 알고 있는 방을 그 구역에서 보았다.
나는 그 방을 알고 있었다.
작은 방, 창을 통해 강렬한 햇빛이 들어오는 방.
돌로 된 바닥. 그 가운데에는 침상이 하나 놓여 있고 그 침상 속에는 어린아이, 어린 여자아이가 있는 방, 에밀리, 자신에게 몰두한 채 바깥 세계에 전혀 무심한 에밀리.
그녀는 먹고 있었다.
초콜릿, 아니, 배설물을.
그녀는 자신의 내장을 그 하얀색 침대의 상쾌함 속으로 열어 젖히고 배설물을 한 줌씩 쥐어 꺼낸 후 그것을 승리감과 기쁨의 짧은 비명을 질러대면서 여기저기 칠했다.
그녀는 시트와 담요에, 침상의 나무 구조물에, 자기 자신에, 자신의 얼굴과 머리카락에 칠했고, 거기 그녀는 앉아 있었다.
작은 원숭이가 되어.
깊은 생각에 잠겨 맛을 보고 소화시키는 원숭이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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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 어린아이, 침상, 햇빛이 드는 방은 불현듯 축소되었고,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닐까 하는 사이에 작아져 버리더니, 갑자기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은 더 작아진, 조그맣게 축소되어 고통이 거기 담기게 하기 위한 필요에서 축소된, 같은 장면의 좀더 작아진 광경이었다.
갑자기 돌에 부딪치며 울리는 소리가 있었고, 크고 화가 난 목소리가 있었고, 사람을 후려치는 소리가 있었고,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있었고 메스꺼움을 외치는 소리가 잇따랐고, 어린아이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 처음엔 분노 때문에, 그리고 잠시 후엔 절망감에 지르는 비명이 그 뒤를 이었다.
깊고 아주 뜨거운 목욕물 속에서 박박 문지르고 여기저기 물을 퍼붓는 그 넘쳐나는 힘 속에서 반쯤 익사하고 있을 때 내는 절망스런 비명.
그녀는 순진한 절망감으로 흐느꼈고, 그러는 동안 그 큰 여자는 그녀의 몸 여기저기에 코를 갖다대며 킁킁 냄새를 맡았는데, 똥 냄새가 완전히 씻기었는지 보려는 것이었지만 그녀가 맡은 것은 (그녀의 피부에 화상을 입힌 그 너무나 뜨거운 물에도 불구하고, 그 연약한 피부가 아프고 빨갛게 붓도록 한 그 문질러댐에도 불구하고) 희미하게 떠도는 악취였기에 그녀는 계속 혐오감의 비명을 두려움에 빠져 질러댈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향한 혐오감으로 소리를 지르고 또 지르고 있었다.
아이는 지쳐서 낮게 흐느꼈다.
그녀는 버려지듯 아기 놀이터 안에 놓여졌고, 그녀의 침상은 박박 문질러 소독을 하기 위해 밖으로 옮겨졌다.
수치심 속에 혼자가 되어, 그녀는 울고 또 울었다.
울고 있는 아이. 이해할 수 없음을 호소하는 참담하고 길 잃은 소리.
"너는 정말 못된 애야, 에밀리, 못되고, 못되고, 못되고, 구역질나고, 더럽고, 추하고, 더럽고, 더럽고 더럽고 더럽고 더럽고, 더러운 애야. 너는 더럽고 못되었고, 아 구역질나고, 너는 추하고 더럽고 더러운 애야, 에밀리.”
나는 인접한 방들에서 그녀를 찾아 헤맸지만, 그녀가 있는 방을 찾을 수 없었다.
에밀리가 내뱉는 비참한 소리를 간혹 아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었음에도. 자주, 나는 그녀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 너머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기 벽이 없었다면 나는 그녀를 만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벽을 따라 그 끝까지 가면 벽은 '개인적인' 것을 넘어 섰고 나는 밝게 녹색으로 빛나는 잔디밭이나 가장자리에 여름의 나무들이 자라 있는 조그만 벌판 위에 서 있었다.
잔디밭 위에는 알이 하나 있었다.
알은 크기가 조그만 집만 했지만, 어찌나 사뿐히 앉아 있는지 미풍에도 흔들렸다.
이 환히 빛나는 하얀 알의 주변에, 청명한 하늘 아래서 에밀리, 에밀리의 엄마, 에밀리의 아빠,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생각 할 수 있는 가장 그럴 성싶지 않은 사람들의 조합이었다.
에밀리 가까이에 있는 준이 있었다.
거기서 이들은 정처없이 움직였다.
햇빛에 만족하면서, 그들의 옷을 나부끼게 하는 미풍에 만족하면서. 이들은 알을 건드렸다. 이들은 뒤로 물러서더니 알을 보았다.
이들은 웃음을 지었다.
이들은 모두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은 알의 표면, 그 부드럽고 건강한 윤곽에 얼굴을 가져다대었고, 그렇게 자기 뺨이 알을 체
험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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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알의 냄새를 맡았다. 그들은 손가락 끝으 로 가볍게 알을 흔들었다.
이 모든 장면이 커다랗고 가볍고 즐거운 것, 자유였고 여기서 모퉁이를 도는가 싶더니 나는 좁다랗고 어두운 통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통로로 들어와 있었다.
물론 내가 잘못 안 것이었으니, 그녀는 그 벽 뒤에 있었던 게 아니었고, 또 다른 벽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정확히 그것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나는 달리기 시작했고, 계속 달렸다.
그녀에게 가야만 했으므로.
나는 내가 한편으로는 내켜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칼, 그녀의 피부에서 풍기는 그 희미한 오염의 냄새를 맡게 되는 순간을 나 역시 기대하고 있지 않았으므로. 나는 달리면서 나 자신에게 하나의 임무를 부과했다.
나는 내가 느끼는 혐오감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 예민하게 들이쉬는 숨으로 보여주었던 것 같은 혐오감.
통제된 헛구역질, 배의 근육이 연이어 경련하고, 에밀리를 들고 에밀리를 에밀리의 쾌락의 장면으로부터 떼어놓는 두 팔을 통해 흘러내리며 에밀리에게 전달되었던, 전율하는 혐오감.
불시에 그녀를 처벌하면서 물 속으로, 급하기 때문에 아직 차가운 물이 담긴 욕조 속으로 처넣는, 하지만 뜨거운 물이 밀려들어오고, 아주 뜨겁고 아주 차가운 두 흐름의 물이 에밀리의 온몸을 감싸고 휩싸며 그녀의 다리와 그녀의 배를 데게 하고 얼게 하는 물 속으로 그녀를 처넣는 혐오감. 하지만 나는 그녀를 찾을 수 없었고, 결코 그녀를 찾지 못했으며, 울음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또 이어졌고, 나는 그 울음소리를 낮 동안에, 나의 ‘실제' 삶 속에 들을 수 있었다.
내가 한 세계, 내 거실의 꽃무늬 벽 뒤에 있는 영역에 있을 때, 매일의 평범하고 논리적이며 시간이 지배하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잊었던, 때로는 며칠씩 잊고 있던 평범한 삶속에 있을 때. 벽이 열릴 것이었고, 열렸고, 또 열릴 것이었고, 나는 그 벽을 통과하기만 하면 그 다른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벽 뒤의 장소가 갖고 있는 기미들, 그와 비슷한 어떤 것이 줄곧 내 실제 삶에 침입하는 시기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처음엔 아이의 흐느낌으로 드러났다.
아주 희미한, 아주 멀리서 들리는 흐느낌.
때로는 아예 들리지 않거나, 혹은 거의 들리지 않았고 그런 때 내 귀는 그 소리를 잡기 위해 바짝 긴장했고, 그리고 놓치곤 했다.
그 소리는 다시 들려왔고, 상당히 크게 들렸고, 심지어 내가 에밀리 그녀에게 말하고 있을 때조차도, 아니면 바깥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창문가에 서서 내다보고 있을 때조차도 그 소리는 크게 들려오곤 했다.
나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혼자 있는 아이의 울음소리, 미움받고 내동댕이쳐지는 아이의 흐느낌을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소리의 옆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불평 소리, 어머니가 불만을 터뜨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이 두 소리는 함께 나란히 계속되었다.
주제곡과 그 배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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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들으면서 앉아 있었다. 나는 혼자 앉아 귀를 기울였다.
따뜻한, 지나치게 따뜻한 날이었다.
무더운 여름 막바지의 날이었다.
천둥소리가 줄곧 들렸고, 마른 바람이 갑자기 휘몰아치기도 했다.
거리에는 불안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그것은 떠나야 한다는 필요였다.
나는 자잘한 할 일들을 일부러 만들곤 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으므로.
나는 앉아서, 아니면 뭔가를 하느라 바쁜 상태에서 귀를 기울였다.
어느 날 아침 에밀리가 들어왔고, 생기가 넘치고 밝은 표정의 에밀리는 내가 말릴 자두를 쟁반 위에 늘어놓고 있는 것을 보더니 그 일에 끼어들었다.
그날 아침 그녀는 줄무늬 면 셔츠, 그리고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셔츠는 가슴 부근에서 단추가 하나 떨어져 있어서 그 부위에서 벌어져, 그녀의 이미 단단하게 생겨난 가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피로해 보였고, 동시에 에너지로 가득 차 보였다.
아직 목욕은 하지 않았고, 성교의 냄새가 그녀로부터 흘러나왔다.
욕망이 채워지고 노곤하게 몸이 녹은 여자.
약간 슬픈, 그러나 익살이 섞여 있는 슬픔.
그녀는 한 마디로 여자였고, 거기 그녀는 앉아서 웃으며 천천히 편안한 동작으로 자두를 닦았고, 모든 배고픈 갈망과 욕구와 필요가 그녀의 내면으로부터 쫓기어 나간, 막 끝낸 성교의 덕택에 몰아내진 후였다.
그리고 내내 이 아이는 울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나이든, 시간의 흐름과 겨루는 사람들이 그러듯 이 문제의 그 완벽하게 심술궂은 성격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봐야 헛일이지만 (하지만 나이든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 생각을 일종의 잣대 혹은 지침으로써 거듭 반복 사용하면서.
그건 14년 전, 아니 그보다 더 짧은 세월 전의 일이다.
이해하지 못함과 너의 덴 엉덩이와 허벅지와 다리 때문에 그토록 고통스럽고 그토록 오래 울었던 일이, 내게 14년은 너무나 짧은 세월이고, 그 세월은 내 기준으로는 깃털처럼 가벼운 세월이다.
하지만 너에게 너의 기준에서, 그것은 모든 것, 너의 일생이다.
그녀는 시간을 생각하면서. 하나씩 천천히 이정표가 추월되면서 여성이 되고 자유의 세계로 들어갔던 것을 헤아려보면서, 시간에 대해 한때 소녀들이 말하는 방식이라고 기대되었던 방식으로 "이제 곧 열다섯 살 이 돼요."라고 말했다.
이는 그녀가 막 열네 살 생일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어제에서야 자기 생일을 말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발랄하기까지 하며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날리면서. 마치 '어린 소녀'가 그러듯이.
그리고 그녀는 막 사랑의 행위를 하고 돌아온, 그것도 어린 여자가 할 법한 사랑의 행위가 아닌 행위를 하고 돌아온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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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는 그 장면으로 다가가 거울 앞까지 가더니 거울에 코를 대고 킁킁대며 냄새를 맡았고, 다음엔 에밀리가 서 있던 바닥에 코를 갖다 대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혐오감으로 일그러진 것이었지만, 그러나 지금 그녀에게 혐오감을 자극한 건 이 짐승이었다.
"가." 그녀는 낮고 숨을 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극도의 혐오감 혹은 공포에 질려 있을 때 간신히 내게 되는 그런 목소리로.
"이 더러운 추악한 짐승. 가"
해서 휴고는 내 쪽으로 비실비실 도망쳐 왔고, 우리는 주먹을 들고 나를, 휴고를 치려고 다가오는 여자를 피해 물러섰다.
우리는 도망쳤다.
빨리, 그리고 더 빨리, 그러는 사이 여자는 점점 더 다가왔고. 점점 더 커졌고, 거대해 졌고, 그녀의 안으로 에밀리의 소녀 시절 방, 웃음이 터지도록 전형적인 방, 어울리지 않는 거울이 있는 에밀리의 방을 자기 안으로 끌어들이더니 쾅! 우리는 다시 거실로, 한 개의 촛불이 빛의 공동을 만들어내며 타오르고 있는 어두운 장소로, 조그만 난롯불이 거기를 둘러싼 조그만 공간을 덥히고 있는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내가 늘 앉던 자리에 앉아 있었다.
휴고는 벽 근처에 똑바로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낑낑거리고… 아니다, 정확히 말하려면 울고 있었다고 해야 한다.
그는 울고 있었다. 쓸쓸함 때문에. 인간이 그러듯이.
그는 몸을 돌리고 내 침실로 기듯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개인적인 곳' 이라고 불렀던데서 에밀리를 보았던 마지막이었다.
내가 다시는 에밀리의 소녀 시절, 혹은 아기 시절, 혹은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끔찍한 거울 장면, 변태를 암시하는 장면이 마지막이었다.
또 그 다른 세계를 불꽃, 혹은 그 기나긴 가을밤들을 그 옆에 앉아 보냈던 아껴 피운 불의 일렁거림을 통해 - 이것 역시 새로운 일이었다-_그 다른 세계를 통과하는 경우에도, 나는 방에서 방으로 열리고 또 열리는 방들을 보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그곳으로 들어갔던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나는 내가 경험한 것, 내가 갔던 곳에 대한 분명한 기억을 유지할 수 없었다.
나를 지탱했던, 혹은 나를 소진시켰던 감정들로부터, 내가 거기에 갔던 것은 알았지만.
나는 거기서 음식을 먹었다.
위안과 상냥함 그 자체인, 널찍하고 웅얼거리는 원천으로부터.
나는 겁을 먹고 위협받았다.
아니 어쩌면 이 방의 두터운 불빛 속에, 혹은 그 아래에, 지금은 거기에서 나오는 또 다른 빛이 은은히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빛을 나와 함께 가지고 왔고 그 빛은 잠시 머물렀다.
내가, 그 것이 상징하는 그 무엇을 갈망하도록 하면서.
그리고 그것이 희미하게 사라졌을 때, 공기는 얼마나 느리고 어둡고 무거웠던가…
휴고는 마른 기침 증세를 보이고 있었고, 거기 같이 앉아 있는 동안에, 그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창가로 가서, 창문에 코를 비비고, 옆구리는 씰룩거리며 있곤 했고, 그러면 나는 창문을 열고, 나 역시 환기가 되지 않아 막힌 방 안의 무겁고 답답한 공기로부터 일종의 마비를 겪고 있음을 깨닫곤 했다.
우리는 거기 나란히, 바깥으로 부터 흘러 들어오는 공기로 숨을 쉬면서 서 있었고, 우리의 폐를 그 공기로 정화 시키려고 애쓰면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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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는 제럴드의 손을 잡았고, 그리고 휴고와 함께 숲의 장막을 통 과하여 그 안으로…
그리고 이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말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우리에게 그 무엇이든 보여줄 수 있는 그곳, 이런 저런 방식으로 장식된 방들, 수천 년에 걸친 기호와 관습을 보여주는 방들이 있는 그곳에 있었다.
부서진 벽, 무너지고 있는 벽, 다시 쌓이고 있 는 벽.
풀 싹이 돋아나고 새집이 있는 숲 바닥 같은 지붕.
망가진, 더럽혀진, 도둑맞은 방들.
천둥이 치고 번쩍이는 구름 밑에 반짝이는 황갈색의 잔디밭이 있고, 그 잔디밭 위에는 거대한 검은 알이 있다.
오톨도톨 요철이 있는 쇠로 된 알, 그러나 잘 닦여서 반짝이는 알, 그 검은색 윤기에 반영된 것은 에밀리, 휴고, 제럴드, 에밀리의 경찰 아버지, 그녀의 건장하 웃고 있는 씩씩한 어머니, 그리고 조그만 데니스, 네 살짜리 범죄자가 제럴드의 손을 꽉 잡고, 그 손을 잡고 제럴드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웃고 있는 모습.
거기 그들은 서서 이 쇠로 된 알을 보고 있고, 그 알은 거기 서 있는 그들의 힘 때문에 부서지고, 부서져 산산조각이 나면서,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온 것은…., 하나의 장면, 어쩌면 조용한 방에 모여선 사람들, 몸을 수그리고 양탄자 위에 일정한 문양이 있어 서로 맞추어지게 되어 있는 조각들을 맞춰보고 있는 사람들, 꼭 맞는 조각을 놓았을 때에 생기가 불어넣어지기 전까지는 죽어 있던 양탄자의 모습. 하지만 아니다.
내가 본 것은 그게 아니었다.
아니 만일 내가 본 게 그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똑똑히 보지는 못했다…
그 세계, 천 개의 짧은 순간 동안에 자신을 드러낸, 자잘한 장면들의 뒤죽박죽, 또 다른 그림의 면면들, 모두 덧없는 것들, 이것들이 우리가 그 안에 걸음을 옮겨놓는 순간 접혔고, 스스로를 꾸러미로 만들었고, 사라지고 있었고, 작아지고 없어지고 있었다.
그 모든 것, 나무와 시내, 풀밭과 방과 사람들. 하지만 내가 그 내내 찾고 있던 한 사람은 거기 있었다. 거기 그녀가 있었다.
아니, 나는 그녀가 어땠는지 분명히 말할 능력이 없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이 정도면 적합한 단어일 것이다.
나는 잠깐 동안 그녀를 보았을 뿐이다.
어두운 대기 속에서 불꽃이 사라지는 것 정도의 순간.
한 번 을 깜박이는 시간.
그녀는 단 한 번 자신의 얼굴을 내게로 돌렸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아무것도 없다.
그녀의 옆에는, 그녀가 몸을 돌리고 멀리 그리고 앞장서 걸어나갈 때, 세계가 그녀의 주변에서 스
스로 접히고 있을 때, 에밀리가 있었고, 그리고 에밀리의 옆에는 휴고가 있었고, 그리고 그들의
뒤를 따라 제럴드가 천천히 걷고 있었다.
에밀리, 맞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까지의 그녀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 변한 에밀리, 그리고 다른 분위기에 있는 에밀리였고, 그 노란 짐승 휴고는 그녀의 새로운 자아에 걸맞는 것이었다.
놀랍도록 잘생긴 아름다운 짐승, 온화한 품위와 당당함을 갖고 있는 짐승.
그는 그녀의 옆에서 걸었고 그녀의 손은 그의 목 위에 있었다.
둘은 그 '한 사람’, 앞장서서 이 붕괴한 작은 세계를 떠나 전적으로 다른 질서를 가진 세계로 들어가는 길을 인도하고 있는 한 사람의 뒤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둘은, 단 한순간 동안,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출입구를 지날 때 그들의 얼굴을 돌렸을 뿐이었다. 그들은 웃었다…
이 얼굴을 보자 제럴드는 그들에게로 당겨지듯이 따라갔고, 그러나 그는 두려운 갈등을 느끼면서, 뒤를 보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망설였고, 그러는 사이 반짝이는 조각들이 그의 주변에서 소용돌이치며 솟구쳐 올랐다.
그러자 바로 마지막 순간에 그들이, 그의 아이들이 달리면서, 그의 손과 옷에 매달리면서 왔고, 이들은 모두 마지막 벽이 무너지고 있는 사이 다른 이들의 뒤를 서둘러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