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8명, ‘예비 초등 부모를 위한 무료 특강’ 신청자 숫자다. 아무리 무료특강이지만, 1600명이 넘게 신청했다니, 신청만 하고 불참하는 사람이 많다 하더라도 최소 500명 이상은 수강하게 될 터였다. 내 아이가 초등 입학을 앞두었을 때의 막연한 긴장은 말할 것도 없고, 중년의 나이가 된 나조차도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 느꼈던 불안감이 생생하다.
강의가 시작되자 동시접속자만 622명이었다. 강의 끝까지 접속자는 크게 줄지 않았다. 강의를 맡은 양신영 연구원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초창기부터 합류해 온 11년차 연구원이다. 이전에는 국어교사였고, 민들레를 꽃피운 강아지똥처럼 아이들의 삶을 바꾸는 일을 소망하며 교육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부모 말 사전을 아시나요?
강의는 ‘부모 말 사전’으로 연다.
1. 잡고 가다 (예) 초등 입학 전까지 모으기, 가르기까지는 잡고 가야지
2. 넣어주다 (예) 3세에는 자연 관찰 도서전집을 넣어 줘야 돼.
3. 들여놓다 (예) 이제 수학동화 들여 놓을 때 되지 않았어?
이 단어들은 모두 ‘부모 주도’라는 점을 지적했다. 맘카페나 엄마표 공부 커뮤니티에 흔히 등장하는 이 단어들이 나 역시 불편했다. 아이가 뭔가를 필요로 하는 바로 그 타이밍을 놓치면 안될 거 같은 불안감을 자극했다. 그러나, 그 불안은 대상이 구체적인 공포와 달리 ‘미래의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 실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짚어주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만3-5세 아동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누리과정’과 초등 교육과정이 어떻게 연계되는지 ‘국어’과목을 비교해 살펴보았다. 이 강의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초등 1학년에 접하는 다양한 교과서를 직접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전 교육과정과 달리 2017년부터 시행된 교육과정은 한글이나 큰 숫자들을 잘 모르고 입학하더라도 그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나갈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2012년 국어 교과서(사진 좌)와 2017년 교과서(우)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
이전에는 한글교육이 27시간에 불과했지만, 2017년부터 68시간으로 늘어났다. 한글책임교육을 국가가 선언한 것이다. 이 정책이 수립되는 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노력이 결정적이었다. 사실 우리나라는 전세계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든 모국어 교육을 책임지지 않는 나라였다. 한글책임교육 시행 이후, 1학년 1학기에는 알림장 쓰기, 받아쓰기, 일기 쓰기가 금지되었다.
과거 교과서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매우 컸다. 10년 전 교과서와 비교할 때마다 예전에 배웠던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부모들은 집에서도 아이와 받아쓰기 연습을 하며 얼마나 조바심이 났을까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양신영 연구원은 초등 1학년을 비롯 저학년 시기에는 평범한 일상을 아이 스스로 책임지고 마무리하는 일들 곧 생활습관을 연습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학교는 재미있는 공간이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심어주라고 신신당부했다.
우산을 접고 펴는 일, 운동화 끈을 매는 일, 우유팩을 여는 일, 급할 때는 수업시간이라도 선생님에게 “선생님, 저 화장실 가고 싶어요. 잠깐 다녀와도 될까요?”라고 용기있게 말하는 일을 연습해야 하는 것이다!!!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초등학교 1학년 때 겪은 실로 다양한 난처함을 기억하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우산을 접는 부위를 누르고 우산살이 모일 때 쏟아지는 압력이 너무 무섭고 힘들었는데. 운동화 끈은 고사하고 신발을 매번 왼쪽과 오른쪽을 바꿔 신었지. 선생님이 칠판에 ‘소풍’이라는 단어를 크게 쓰셨는데 ‘풍’이라는 글자의 조합은 어찌나 낯설고 기이하던지.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을 못해서 실수 하는 친구들도 참 허다했다. 딱딱한 나무 걸상에 얼어붙은 자세로 앉아 선생님의 얼굴을 빤히 쳐다 보던 아이들의 눈동자.
부모 역할에는 두 달 뒤 학교에 들어갈 아이에게 받침있는 글자를 연습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아이가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은 엄마라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선생님은 다른 사람이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지만 내 아이에게 엄마 역할은 나밖에 할 수 없다는 말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실수와 실패는 성장의 상수. 막연한 불안감을 내려 놓고, 너른 품을 가진 엄마 역할을 다시금 되새길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