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라 관이오(管夷吾)와 포숙아(鮑叔牙)는 서로 친구였다. 관이오는 자(字)를 중(仲)이라 하였기 때문에 관중(管仲)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그는 외모가 기이한데다가 정신이 명철하고 고금의 경서(經書)에 두루 능통하여 천하를 경영할 만한 인재였다. 제나라 양공(襄公)에게는 정실에서는 아들이 없고 후궁에게서만 두 아들이 있었다. 장자 규(糾)는 노녀(魯女) 소생이었고, 차자 소백(小白)은 거녀(莒女) 소생이었다. 두 공자(公子)가 장성하여 교육을 받게 되었을 때 관중이 포숙아와 상의하여 말하였다. “장차 제나라 왕이 될 사람은 규가 아니면 소백이다. 나와 그대가 한 사람씩 맡아 가르치다가 뒷날 왕이 되면 서로 천거하기로 하자.” 그래서 관중은 소홀(召忽)과 함께 공자 규의 스승이 되고, 포숙아는 공자 소백의 스승이 되었다. 그 무렵 양공은 노나라로 시집간 손아래 누이 문강(文姜)과 노나라에서 만나 불미스러운 관계를 맺었다. 이들 오누이는 문강이 시집가기 전부터 남녀 관계를 맺은 바 있었는데 이를 안 포숙아가 공자 소백에게 권했다. “그 일로 세상에서 말이 많으니 주군께 간(諫)해야 합니다.” 그래서 소백이 아버지에게 간하자 양공이 노하여 아들을 발길로 걷어찼다. 포숙아가 소백에게 다시 말하였다. “제가 들으니 음란한 자는 반드시 망한다고 합니다. 타국으로 피신하여 때를 기다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느 나라로 가야겠소?” “큰 나라는 흥망이 자주 교차하는 법이니 작은 나라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 거국(莒國)은 공자의 외가이므로 그리로 가신다면 홀대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거나라는 제나라와도 가까우니 무슨 일이 있을 때 급히 돌아와 일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소백은 옳다고 여겨 포숙아와 함께 거국으로 몸을 피했는데 과연 얼마 뒤에 양공은 공손무지(公孫無知)의 난을 만나 몸이 여러 토막으로 잘리는 변을 당했다. 공손무지는 스스로 왕이 되어 관중을 불렀다. 그러자 관중은, “이 자가 제 목에 칼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남에게까지 누를 끼치려 하는구나.” 하고 소홀과 상의하여 공자 규와 함께 노나라로 망명하였다. 노나라 장공(莊公)은 강대국에서 온 공자 일행을 후대하였다. 그런지 얼마 뒤에 옹름(雍䕲), 고혜(高傒) 등이 공손무지를 죽인 다음 공자 규를 맞아 왕으로 삼으려 하였다. 그러자 노나라 장공은 매우 기뻐하며 장군 조말(曹沫)에게 전차 삼백 승(乘)을 주어 공자를 호송하여 제나라로 향하게 하였다. 관중이 노후(魯侯)에게 말하였다. “공자 소백이 지금 거나라에 망명하고 있는데, 노국에 비하면 그곳이 제나라에 가깝습니다. 그가 먼저 귀국하면 나라의 주인이 바뀌게 됩니다. 그러니 신이 먼저 좋은 말을 빌려 타고 앞서 갔으면 합니다.” “군대는 몇 명을 함께 주리까?” “30승이면 족합니다.” 관중은 곧 장공의 도움을 받아 제나라로 출발했다. 그때 거나라에 있던 공자 소백 또한 제나라의 왕위가 비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포숙아와 상의한 다음 거나라 전차 백 승을 빌려 호송을 받으며 고국으로 돌아갔다. 관중은 제나라로 가던 중 아무래도 소백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병사를 이끌고 소백이 가는 길을 앞질러 소백 일행을 기다렸는데 과연 소백이 일행과 함께 나타났다. 소백은 차중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관중이 그 앞에 허리를 굽히고 물었다. “공자께서는 어디로 가시나이까?” “아버지의 상사(喪事)에 가는 길이오.” 관중이 말했다. “장차 공자 규가 위에 오를 터인즉 공자께서는 잠시 여기서 기다리시는 게 좋겠습니다.” 옆에 있던 포숙아가 관중을 꾸짖었다. “관이오는 물러가라! 너와 나는 각기 자기 주인을 위해 일하고 있으니 더 말할 것이 없다!” 관중이 보니 소백과 동행하고 있는 거국 군대는 자못 살기를 띠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참고 물러 나오던 그가 돌연 돌아서서 소백에게 활을 겨누어 쏘았다. 소백은 큰 소리를 지르며 입에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관중은 자기 병사들을 이끌고 나는 듯이 달아났다. 그러나 소백은 화살을 맞아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관중의 활 솜씨가 비범한 것을 알고 다시 쏘면 안 되리라 생각하여 짐짓 혀를 빼물고 쓰러진 것으로서, 화살은 마침 그의 허리띠 장식을 맞춘 것뿐 그는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 소백은 수레를 덮고 지름길을 택하여 규보다 먼저 제나라에 당도하였다. 그리하여 포숙아는 관중보다 먼저 성 중에 들어가 여러 대부들을 만나게 되어 그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포숙아가 여러 대부들에게 소백이 어질고 영특한 것을 찬양하자 대부들이 곤란해 하면서 말하였다. “장차 공자 규가 올 것인데 어찌하면 좋겠소?” 포숙아가 말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세 번이나 시군(弑君)의 난이 있었으니 어진 분이 아니고서는 능히 진정시킬 수 없소. 규보다 소백이 먼저 도착한 것은 하늘의 뜻이오. 또 만일 규를 세우면 노나라에서는 은혜를 보답하라고 할 것이니 그 요구를 어찌들 감당하시려오?” 이에 대신들의 뜻이 소백에게 모아져 임금으로 세우니, 그가 춘추오패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제환공(齊桓公)이다. 노장공은 공자 규와 함께 오다가 소백이 임금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분개하여 제나라를 공격하였지만 크게 패하여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포숙아가 환공에게 말하였다. “공자 규가 아직 노나라에 있으니 안심할 수 없습니다. 군대를 이끌고 노국 국경을 압박하며 공자 규를 없애라고 하면 노나라가 들을 것입니다.” 환공이 허락하자 포숙아는 군대를 이끌고 출병하였다. 그런 다음 공손습붕(公孫隰朋)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주어 노나라에 파견 하였다. “집에는 두 주인이 없고 나라에는 두 임금이 없습니다. 공자 규는 지금 노나라에 있으면서 임금이 되고자 하는데 우리 임금으로서는 그와 형제여서 차마 그를 죽일 수 없습니다. 귀국의 손을 빌려 없애기를 원합니다. 또한 관중과 소홀은 우리 임금의 원수이니 잡아 보내시면 죽여서 대묘(大廟)에 제향(祭享) 할까 합니다.” 포숙아는 습붕이 떠날 때 신신당부하였다. “관중은 천하의 기재(奇才)요. 임금께 아뢰어 중용하려 하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죽지 않게 하시오.” “노국에서 죽이려 하면 어찌하리까?” “관중이 우리 임금의 허리띠를 쏘았으니 이 일을 이야기하면 노국 사람들이 보내 줄 것이오.” 노장공이 포숙아의 편지를 받고 대신 시백(施百)과 상의하자 시백이 말했다. “공자 규를 죽여 그들의 요구에 응하십시오.” 마침내 장공은 시백을 시켜 시골에 가 있던 공자 규를 죽였다. 일을 마친 시백은 소홀과 관중을 수레에 실어 장공에게 압송하였는데, 소홀은 이 일을 부끄러이 여겨 섬돌에 머리를 받아 죽었다. 그러나 관중은, “임금을 위해 죽는 신하도 있고 살아남아 공을 이루는 신하도 있다. 나는 살아 돌아가 공자 규를 위해 원한을 갚겠다.” 하며 함거(檻車) 안으로 들어갔다. “관중의 태도를 살펴보니 무슨 내막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은 천하의 준재(俊才)이오니 제나라에 물어 제나라에서 쓸 데 없다고 하면 죽이는 것이 옳습니다.” 이러는 동안 관중을 죽인다는 소문이 돌았으므로 습붕이 장공을 만나 말하였다. “관중은 우리 임금의 허리띠를 쏘았기 때문에 임금께서는 직접 관중을 죽여야 분풀이가 되겠다 하옵니다.” 장공은 그러겠다고 여겨 관중을 태워 공자 규, 소홀의 머리와 더불어 습붕에게 넘겼다. 습붕은 백배 사례하였다. 관중은 이 일이 모두 포숙아의 심려원모(深慮遠謀)임을 짐작하였다. 그는 빨리 제나라로 가지 않으면 노나라 사람들이 의심할까 두려워 함거를 끄는 인부들에게 노래를 가르침으로써 그들이 재미를 붙여 이틀 길을 하루에 가도록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장공은 관중을 살려 보낸 다음 뒤늦게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사람을 시켜 뒤쫓게 하였다. 그러나 관중은 이미 노나라를 벗어난 뒤였다. 관중이 도착하자 포숙아는 보물을 얻은 듯이 기뻐하며 관중을 맞았다. 그 러나 관중은 함거에서 나오기를 망설이며 말하였다. “임금의 명령을 받지 않고서는 나갈 수 없소.” 포숙아가 친구를 위로하였다. “염려 마시오. 내가 장차 그대를 임금에게 천거하겠소.” 꺼림칙한 마음으로 관중이 말했다. “나와 소홀은 함께 공자 규를 섬겼는데 주공이 죽자 그는 신하의 도리를 다해 스스로 죽었소. 이런 마당에 내가 주공을 죽인 원수를 섬긴다면 주공은 지하에서 나를 꾸짖고 소홀은 나를 비웃을 것이오.” 포숙아가 논하였다. “내 들으니 큰일을 이루는 자는 작은 부끄러움을 근심하지 않으며, 큰 공을 세우는 자는 작은 절개를 돌보지 않는다 하오. 그대는 천하를 경영할 능력이 있으나 단지 때를 만나지 못하고 있었소. 이제 주공의 뜻이 크고 식견이 높으니 그대가 주공을 돕는다면 큰일을 이루지 못할 까닭이 없소.” 포숙아는 환공에게 돌아와 한편으로는 조상하고 한 편으로는 치하하였다. 환공이 의아하게 여겨 물었다. “그대는 누구를 조상하는 거요?” 이에 포숙아가 말하였다. “공자 규는 주공의 형님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처결함은 부득이하였다 하더라도 어찌 조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 치하는 왜 하는 거요?” “저는 관중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이제 주공이 어진 재상감을 얻으셨으니 어찌 치하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환공이 화를 내었다. “그 자는 나를 쏘아 죽이려고 하였소. 나는 지금도 그가 쏜 화살을 갖고 있소. 반드시 복수해야 하오. 하물며 어찌 중용하겠소?” 포숙아가 환공을 설득하였다. “신하가 제 주인을 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관중이 주공의 허리띠를 쏠 때 그에게는 공자 규가 있었을 뿐 주공이 있었을 까닭이 없습니다. 그를 쓰십시오. 그를 쓰신다면 그는 주공을 쏘던 화살로 주공을 위해 천하를 쏠 것입니다. 어찌 한 사람의 허리띠나 쏘고 있겠습니까?” “경의 공을 생각하여 그의 죄를 사면하겠소. 죽이지나 말도록 하시오.” 환공은 자기가 왕이 되는 데 가장 공로가 많은 포숙아를 상경(上卿)에 임명하여 국정을 통괄케 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포숙아가 사양하여 말하였다. “신의 능력은 고작해야 예법이나 준수하는 정도입니다. 그것은 신의 개인적인 수양에 불과한 것이어서 이로써 나라를 잘 다스리지는 못합니다. 나라를 잘 다스리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안으로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밖으로는 오랑캐를 어루만지며, 왕실에 공훈을 더하고, 혜택은 여러 제후에 두루 미치게 합니다. 그리하여 나라는 태산처럼 안정되고, 임금은 큰 복을 누리며, 그 공이 금석에 기록되어 이름을 만대에 남기게 됩니다. 어찌 신이 이런 대임을 맡을 수 있겠습니까?” 환공이 물었다. “혹 그런 일을 해낼 걸출한 인물을 알고 있소?” “만일 사람을 구하지 않는다면 모르거니와 구하기로 한다면 그 사람은 오직 관중뿐입니다. 신이 관중보다 못한 것이 다섯 가지입니다. 너그럽고 부드러워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풂에 있어 신은 그만 못합니다. 나라를 다스려 그 권도(權道)를 행함에 있어 신은 그만 못합니다. 충성됨과 신뢰로써 백성을 결합하는 데 있어 신은 그만 못합니다. 예법을 재정하여 사방에 실시함에 있어 신은 그만 못합니다. 북을 들고 외적과 싸울 때 백성들로 하여금 물러서지 않게 함에 있어 신은 그만 못합니다.” “경은 즉시 그를 불러오시오. 내가 그를 만나 능력을 알아보겠소.” 그러나 포숙아는 환공의 급한 마음을 억눌렀다. “관중을 등용하시려면 그의 능력에 맞게 대우하셔야 합니다. 관중은 승상 자리에 둘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두어야 할 사람입니다. 승상은 임금의 아랫자리이지만 관중 같은 천하 대제(天下大才)에 대해서는 임금의 부형(父兄)으로서 예를 갖추는 것이 옳습니다. 날짜를 택하여 극히 존중하며 그를 맞으시면 주공께서 어진 사람을 존중하고 사사로운 원수를 잘 잊는다는 평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경의 말에 따르겠소.” 마침내 환공은 극진한 예로써 관중을 맞아들여 천하를 경영할 방도를 물었는데 관중은 어느 문제도 막힘없이 질서정연하게 대답하여 조금의 허점도 없었다. 환공은 그로부터 사흘 낮 밤을 관중과 토론한 다음 크게 기뻐하였고, 다시 사흘간의 재계(齋戒)를 한 다음 관중을 정승으로 삼으려 하였다. 그러나 관중이 사양하여 말하였다. “큰 건물은 목재 하나로 지어지지 않고 큰 바다는 물 한줄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주공의 큰 뜻을 이루시려면 반드시 오걸(五傑)을 쓰셔야만 합니다.” “오걸이 누구요?” “겸손하고 진퇴를 알며 강함과 부드러움을 판별함에 있어서 신은 습붕만 못하오니 그를 대사행(大司行)으로 임명하시기 바랍니다. 토지를 개척하여 곡식을 많이 산출하는 데 있어 저는 영척만 못하오니 그를 대사광목(大司廣牧)에 임명하시기 바랍니다. 수레가 서로 혼잡하지 않고 군대를 몰아 앞으로만 나아가게 하는 데 있어 신은 왕자(王子) 성보(成父)만 못하오니 그를 대사마(大司馬)에 임명하시기 바랍니다. 송사(訟事)를 공정히 판결하고 무고한 백성을 죽이지 않음에 있어서 신은 빈수무(賓須無)만 못하오니 그를 대사리(大司理)에 임명하시기 바랍니다. 임금의 안색을 범하면서까지 간하되 충성되어 죽음도 피하지 않고 부귀에도 흔들리지 않음에 있어 신은 포숙만 못하오니 그를 대간관(大諫官)에 임명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신다면 신은 재주가 없으나마 군명을 받들어 정성을 다할까 합니다.” 환공은 즉시 다섯 사람을 관중이 천거하는 직위에 임명하는 한편 관중을 재상으로 삼고 많은 재물을 내렸다. 그로부터 관중은 제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완벽하리만큼 충실을 기하여 제나라를 여러 제후국 중 최강국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환공으로 하여금 아홉 번 제후를 모아 모임을 열어 그 맹주(盟主)가 되게 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주(周) 왕실의 체통을 세우고 다른 한 편으로는 자기 주군을 빛나게 하였다. 당시 중국은 주(周)나라 시대로서 제후(諸侯)가 모두 주나라의 신하였지만 정작 종주국인 주나라는 힘이 없었다. 따라서 제후 간에 분쟁이 일어날 때 주나라는 이를 통제하지 못하였다. 그런 가운데 환공이 강자로 등장하여 제후 간의 분쟁을 조정하는 역할을 자임한 것인데, 그때마다 주 왕실을 존중하는 명분, 이른바 ‘존왕양이(尊王讓夷: 왕을 존중하고 오랑캐를 배척한다)’를 내세웠으므로 주왕실에서는 크게 기뻐하였다. 환공처럼 제후를 한 자리에 모이게 하는 것을 회맹(會盟)이라고 하고, 그 자리에서 큰형님 뻘의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패(覇), 패를 행사하는 자를 패자(覇者)라고 한다. 춘추시대에는 패자가 여럿 있었고, 그중 다섯 명을 꼽아 ‘춘추오패(春秋五覇)’라고 하는데, 제환공은 관중의 보필을 받아 그 첫 번째 패자이자 오패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한 패자가 되었다. 관중의 경세대재(經世大才)가 잘 활용되어 나라가 안정되고 부유해지자 환공은 할 일이 없어졌다. 그는 관중을 존중하여 중부(仲父)라고 칭하며 아버지에 상응하는 예우를 하였다. 처음에 포숙아가 주청한 대로 그를 신하의 대열에 앉혀두기에는 그의 공적이 너무 컸던 것이다. 환공은 정사를 모두 관중에게 맡기고 매일 놀다시피 하였다. 누가 정사에 대해 물으면 환공은 “왜 중부에게 고하지 않느냐?”고 말하였다. 어느 때 환공을 모시고 있던 자가 환공에게 말했다. “임금이 영을 내리면 신하가 듣는 법이온데, 지금 주군께서는 하나도 관부(管父), 둘도 중부(仲父)라 하시니 제나라에는 임금이 안 계신 듯 하오이다.” 환공이 웃으며 말하였다. “과인에게 있어 중부는 팔다리와 같은데 너희 소인들이 무엇을 알겠느냐?” 이렇듯 큰 신임을 받으며 공적을 쌓는 동안 관중은 임금에게 버금가는 사치를 누렸지만 환공은 그것을 용인하였고, 그의 치적에 의해 큰 혜택을 보고 있던 백성들도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고 한다. 관중은 자기가 성공할 수 있었던 데 있어 포숙아의 우정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어느 때 관중이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젊어서 곤궁하였을 때 나는 포숙아와 함께 장사를 한 일이 있었다. 장사를 마치고 이익을 나눌 때면 나는 내 몫을 더 많이 배정하였다. 그런데도 포숙아는 나를 탐욕하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그보다 가난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내가 일찍이 포숙아와 함께 일을 도모하다가 실패하였을 때에도 포숙아는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다. 일에는 운이 있어 유리할 때도 있지만 불리할 때도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세 번을 벼슬을 하다가 세 번 쫓겨났다. 그런데 그때에도 포숙아는 나를 무능하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내가 일찍이 싸움에 나가 달아난 것이 세 번이었다. 그러나 포숙아는 나를 비겁하다고 하지 않았다. 내게는 늙으신 어머니가 계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자 규가 싸움에서 패하자 소홀은 죽고 나는 붙들려 함거에 실려갔다. 그러나 포숙아는 내가 주군을 따라 죽지 않은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작은 절개를 굽히는 것보다 큰 이름을 천하에 드러내지 못하는 것을 더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아, 나를 낳아 주신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실로 포숙아이다!” 포숙아는 관중을 환공에게 추천하고 스스로 그 아래에서 일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관중이 탁월한 재능을 가졌음을 칭찬하기보다는 포숙아가 능히 사람을 알아본 것을 칭찬하였다. 관중이 환공을 도와 천하를 재패한 데에는 뛰어난 인재들의 도움이 컸다. 관중이 비록 남달리 뛰어난 사람이긴 하지만 나라 일을 혼자서 다 처결할 수는 없는 법이므로 훌륭한 인재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영척과 습붕이 뛰어난 인재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들도 혹은 죽고 혹은 늙었다. 마침내 일세의 영걸 관중이 병에 걸려 위독해졌다. 환공은 친히 관중의 집을 방문하여 그의 손을 잡고 물었다. “중부의 병이 중하시오. 불행히 일어나지 못한다면 누구에게 정사를 맡겨야 하겠소?” 관중이 탄식하였다. “아깝습니다. 영척이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환공이 다시 물었다. “인재가 영척 한 사람뿐이겠소? 습붕을 재상으로 임명하면 어떻겠소?” “가합니다. 습붕은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집에 있으면서도 늘 나라 일을 잊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공께서는 습붕을 오래 쓰시지 못할 것입니다. 하늘이 습붕을 내어 관중의 혀가 되게 하셨는데, 지금 몸이 죽어가는 마당에 혀가 남아 있은들 얼마나 가겠습니까?” 환공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나는 장차 큰일을 포숙아에게 맡기려고 하오. 중부의 생각은 어떠하오?” 그러나 가장 친한 벗이었던 포숙아에 대해 관중은 이렇게 평하였다. “포숙아는 단지 군자일 뿐으로 정치에는 합당치 않습니다. 그는 선악을 너무 분명하게 가릅니다. 물론 선을 좋아함은 좋은 것이지만 그는 악을 싫어함이 너무 심합니다. 포숙아는 사람이 한 번 잘못하는 것을 보면 종신토록 그것을 잊지 못합니다.” “그러면 역아(易牙)는 어떠하오?” “저 역아, 수조(豎刁), 개방(開方) 등 세 사람은 절대로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 “역아는 전에 나를 위해 자기 아들을 삶아 죽이기까지 한 사람이오.” “인정상 자기 아들보다 임금을 더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 아들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임금을 버리기는 쉬운 일입니다.” “수조는 자기 몸을 학대하면서까지 나를 섬기는 사람이오.” “인정상 몸보다 더 중한 것이 없는데 제 몸을 학대하는 사람이 임금을 학대하기는 쉬운 일입니다.” “개방은 천승의 지위를 버리고 나를 따르고 있소. 부모의 상에도 가지 않을 정도이니 어찌 의심하겠소?” “부모를 모르는 사람이 어찌 임금을 알겠습니까? 또한 천승의 직위는 매우 귀한 것인데 그것을 버렸을 때는 그것보다 더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공께서는 그들을 가까이하지 마십시오. 그들을 가까이하면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입니다.” 환공이 의아하여 물었다. “그들 세 사람은 오랫동안 내 곁에 있었소. 그런데도 왜 지난날에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소?” 관중이 말하였다. “그동안에는 주군께서 원하시므로 주군의 뜻에 맞춰드린 것입니다. 비유컨대 그들이 물이 되어 넘치려 하면 제가 제방이 되어 막아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제방이 터지면 장차 물이 흘러넘칠 것이니, 주군께서는 이들을 반드시 멀리 하십시오.” 관중이 환공에게 부탁하여 역아, 수조, 개방을 배척하고 습붕에게 정사를 맡기게 하였다는 말을 들은 역아가 포숙아를 찾아가 말하였다. “중부가 상국이 된 것은 모두 대부께서 자신을 낮추어 천거하셨기 때문인데, 지금 중부가 병중에 있으면서 임금이 가셔서 물으니 대부는 정치에 합당치 않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대부를 위하여 심히 불만스럽게 여기는 바입니다.” 이에 포숙아가 대답하였다. “바로 그런 점이야말로 내가 관중을 천거한 까닭이오. 관중은 나라 일에는 공공한 마음으로 임하여 비록 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사사로운 정을 두지 않는 사람이오. 나도 그를 잘 알고 있거니와 그 또한 나를 잘 알고 있소. 그의 말과 같이 나를 사관에 임명하여 나쁜 자들을 축출하라고 한다면 나는 잘할 수 있소. 그러나 나에게 국정 전반을 맡으라고 하면 나는 잘할 수 없소. 만일 나에게 사관을 맡으라고 한다면 나는 먼저 그대부터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이에 역아가 부끄러워하며 물러갔다. 얼마 뒤 환공은 포숙아, 습붕 등과 함께 관중을 문병하였다. 관중은 병이 극도로 나빠져 있었으므로 모두들 눈물을 흘렸다. 그날 밤으로 관중이 죽자 환공은 “슬프다! 하늘이 내 팔을 꺾으셨구나!” 하며 울었고, 성대하게 장례를 치러 주었다. 환공은 관중이 누리던 식읍을 그의 아들이 이어받게 하였다. 그 식읍은 환공이 대부 백씨가 가진 것을 회수하여 관중에게 준 것으로 관중이 죽은 이상 다시 백씨에게 돌아가야 했다. 역아가 대부 백씨를 찾아가 말하였다. “옛날 주군께서 그대의 봉읍을 빼앗아 중부에게 주었소. 이제 중부가 죽었는데 그대는 왜 주군께 말씀드려 그것을 되찾지 않소? 내가 옆에서 도와 드리겠소.” 백씨가 울면서 대답하였다. “나는 공이 없어서 읍을 잃었는데 중부는 죽어서도 그 공이 아직 남아 있소. 내가 무슨 면목으로 읍을 도로 달라고 임금께 말씀드리란 말이오?” 이에 역아가 탄식하였다. “중부는 죽었어도 오히려 백씨의 마음을 복종시켰다. 실로 우리 같은 사람은 소인이라 하겠다.” 환공은 관중의 천거에 따라 습붕에게 정치를 맡겼다. 그런데 과연 한 달도 못되어 습붕이 병들어 죽었으므로 환공은 감탄하였다. “중부는 성인이었다. 습붕을 오래 쓰지 못할 것을 어찌 알았을까?” 환공은 포숙아를 상경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나 포숙아가 굳이 사양하므로 환공이 그 까닭을 물었다. 포숙아가 아뢰었다. “주군께서도 신이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시는 줄 아십니다. 꼭 신을 쓰시려면 역아, 수조, 개방 등 세 사람을 멀리해 주십시오. 그러면 감히 명을 받들겠습니다.” “중부가 이미 그런 말을 했었소. 경의 뜻을 좇으리다.” 환공은 그날로 세 사람을 파면하자 포숙아가 복명하였다. 그러나 포숙아가 상국이 된 뒤에 환공은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포숙아에 의해 쫓겨난 역아, 수조, 개방 등은 그동안 환공의 주변에 머물며 좋은 음식을 바치고 재미있는 일을 벌이며 환공을 즐겁게 해 주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즐거움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환공은 음식을 대해서도 맛을 느끼지 못하고,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사라져 버렸다. 어느 날 후궁 장위희(長衛姬)가 환공에게 말하였다. “주군께서는 왜 세 사람을 부르지 않으십니까?” “과인도 그들을 생각하고는 있으나 포숙아의 뜻을 거스르기가 어렵구나.” 장위희가 속삭였다. “포숙아에게도 시중드는 사람은 있을 것입니다. 주군께서는 지금 연로하신데 이렇게 불편을 겪으셔서는 안 됩니다. 먼저 역아부터 부르십시오. 나머지 두 사람은 차차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환공은 역아를 다시 궁중으로 불러들여 음식을 만들게 하였다. 포숙아가 간하였다. “주군께서는 중부의 유언을 잊으셨습니까? 역아를 왜 다시 부르신 것입니까?” “역아는 나라에 해를 끼칠 사람은 아닐 뿐 아니라 나에게는 꼭 필요한 사람이니 상국은 관여치 마시오. 중부의 그들에 대한 평은 너무 지나치오.” 환공은 얼마 뒤에는 수조와 개방까지 복직시켜 좌우에 두었다. 포숙아는 그 일로 심화를 얻어 얼마 뒤에 죽었다. 그러자 그들 세 사람은 거리낄 것이 없어져 나라 일을 농단하였고 그 결과 천하를 호령하던 제나라의 힘은 날로 쇠퇴하였다. 마침내 환공이 병이 들었는데, 화타와 함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명의(名醫)인 편작이 환공을 진찰하였지만 환공은 편작의 말을 따르지 않아 병은 더욱 깊어졌다. 역아는 수조와 상의하여 환공의 명령을 빙자하여 내전(內殿)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런 다음 장위희와 그의 아들 무휴(無虧)만을 궁 안에 머물게 하고 환공이 죽기만을 기다렸다. 그들은 환공이 머무는 궁궐의 출입문을 막고 궁인들을 모두 내보내었다. 그런 다음 침실주위에 세 길 높이로 담을 쌓고 안으로 통하는 개구멍을 하나 두어 작은 내시를 들여보내 수시로 환공의 생사를 탐지하였다. 이렇게 하여 춘추 제일의 패자는 홀몸으로 외딴 방에 병자가 되어 누워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담 위에서 사람 하나가 떨어졌다. 보니 환공의 천첩 안아아(晏蛾兒)였다. 환공이 안아아에게 말하였다. “시장하여 죽을 지경이다. 죽을 마시고 싶으니 좀 가져 오너라.” “그러고 싶지만 가져 올 수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역아 일당이 일을 꾸며 궁문을 막았습니다. 또 침실 밖에는 높은 벽을 쌓아 내외를 차단하였기 때문에 사람이 출입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들어 왔느냐?” “첩은 주군께 한 번 사랑을 입은 은혜를 보답하려고 죽기를 무릅쓰고 담을 넘어 들어 왔습니다.” “세자 소(昭)는 어디 있느냐?” “역아와 수조가 못 들어오게 하고 있습니다.” 환공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불민하였다. 중부와 포숙아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화근이다.” 그리고는 분기가 치솟아 올라 부르짖었다. “하늘이여, 제가 이렇게 끝을 맺어야만 합니까?” 환공은 입으로 피를 토하면서 안아아에게 말하였다. “나는 총애하는 첩이 여섯에 아들이 십여 명 있으나 죽음을 앞둔 이때 내 곁에는 너밖에 없구나. 지난날 너를 후대하지 못한 것이 한이다.” “주군께서는 자중하십시오. 주군께서 불행을 당하신다면 첩 또한 죽을 것입니다.” 환공이 다시 부르짖었다. “내가 죽으면 장차 지하에 가서 무슨 면목으로 중부를 볼 것이냐!” 환공은 얼굴을 소매로 가리고 탄식하더니 절명하였다. 안아아 또한 머리를 기둥에 부딪쳐 죽었다. 그때부터 세자 소의 세력과 역아, 수조가 옹립하려는 장위희의 아들 무휴의 세력 간에 권력 쟁탈전을 벌였다. 그 결과 역아, 수조, 장위희, 무휴 등은 비참하게 죽었다. -《리더의 아침을 여는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