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live/OgaIDPOwvPM?si=v08DAjM-G70CZwO9(분노)
성소 휘장이 두 쪽으로 찢어짐 15:33~39
33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5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아리마대 요셉의 헌신 15:40~47
40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41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42 이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45 백부장에게 알아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46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47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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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제육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고 제구시에 예수님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 외치신 후 숨지십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집니다. 이를 본 백부장은 예수님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셨다고 고백합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 시신을 요구해 무덤에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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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 휘장이 두 쪽으로 찢어짐 15:33~39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인류를 위한 대속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제삼시(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제육시(낮 12시)가 되니 어둠이 임해 제구시(오후 3시)까지 지속됩니다.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34절; 시 22:1)라고 절규하십니다. 창세전부터 누리던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는 고통에 대한 절규입니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는 순간, 대속죄일에만 열리던 성소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쪽으로 찢어집니다(38절). 하나님과 분리되었던 죄인에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로운 살길’이 열린 것입니다(히 10:19~20). 이 모든 일을 목격한 로마 백부장은 예수님이 참으로 ‘하나님 아들’이었다고 고백합니다(39절). 완전한 대속과 화해를 이루신 예수님은 구원의 유일한 길이십니다.
● 더 깊은 묵상
성소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사건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내게 선물한 가장 큰 은혜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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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마대 요셉의 헌신 15:40~47
대부분의 제자가 도망갔지만, 예수님을 사랑하는 많은 여인이 십자가 죽음의 현장까지 예수님과 함께합니다. 또한 숨은 제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장례를 진행합니다. 요셉은 존경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정죄하는 결정에 찬성하지 않았습니다(눅 23:51). 요셉은 빌라도에게 ‘당돌히’(담대히) 예수님 시신을 요구합니다. 이는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요셉은 니고데모와 협력해 장례 절차를 거쳐 예수님을 자기 소유의 새 무덤에 안치합니다(마 27:60; 요 19:39). 죽음의 순간까지 함께한 이들, 예수님 시신을 정중히 장사 지낸 이들의 사랑과 헌신이 빛납니다.
● 더 깊은 묵상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한 일은 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끝까지 사랑과 충성을 보이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한절묵상:마가복음 15장 43절
성도는 때로 용기 있게 선택해야 합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합니다. 당시 예수님 편에 서는 것은 자신을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는 공회원으로서 많은 손해를 볼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도망간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모든 것을 잃더라도 예수님과 함께 하기를 결정합니다. 담대함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구원과 영생이 예수님께 있음을 믿는 믿음에서 옵니다.
어떤 어둠의 시간에도 주님만 붙든다면 순전한 기쁨의 날, 밝고도 즐거운 날을 맞이하게 된다. - 알렉산더 매클래런
오늘의 기도
하나님, 그리스도의 육체인 휘장을 찢어 새로운 살길을 열어 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피에 힘입어 담대히 지성소로 나아가는 주님의 백성이 교회와 세상을 잇는 가교 역할을 감당하게 하소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는 일에 헌신하며 거룩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150 갈보리산 위에)
오늘 본문은 예수그리스도의 운명하시는 장면과 그 후 무덤에 안치되는 상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돌아가시자 성소의 휘장이 둘로 갈리지는 일이 벌어지고, 사형집행을 하던 백부장이 못 박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라고 고백합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곧 숨지기 전의 상황, 예수의 추종자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등장, 예수그리스도의 장례 등입니다.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 어떤 자가 신포도주를 예수에게 마시게 하려고 입에 대며 '엘리야가 와서 내려 주나 보자.'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땅에서 길어 봐야 약 2m도 안 되는 십자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 곁의 사람이 신 포도주를 갈대에 뀌어 주님께 드리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신 포도주는 갈증과 통증을 완화할 일종의 마취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주변에 있던 자들이 엘리야를 말한 것은 그리스도가 엘리야를 부른 것으로 잘 못 들었거나, 제대로 들었다 하더라도 비웃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 예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백부장을 소환해 물은 빌라도의 말입니다. 빌라도가 이상히 여긴 것은 보통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2~3일 가다가 죽기 때문입니다. 건강해서 그 때까지도 죽지 않을 경우에는 두 다리를 꺾어 죽였다고 합니다. 빌라도가 백부장을 부른 것은 그가 십자가 처형 책임자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보고를 받고서야 예수님의 시신을 내주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매우 의례적인 일입니다. 왜냐하면 로마의 반역자는 시체를 나무에 오래 달아놓아서 들짐승의 먹이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죄목은 유대인의 왕입니다. 주님은 로마의 일종의 모반자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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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 예수의 시신을 모시겠다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소개입니다. 이는 매우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로마의 반역자로 기소된 사람이고, 더구나 유대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신성모독으로 사형선고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면 그도 예수의 추종자로 몰릴 수도 있는 상황이고, 그렇게 되면 유대사회에서 파문될 수도 있습니다. 그 시대 파문은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나라에서 쫓겨나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골리앗과 목숨을 걸고 한 판 승부를 겨뤘듯이, 다니엘이 사자 굴을 선택했듯이, 아리마대 사람 요셉도 부와 명예를 져버린 채 빌라도에게 가서 주님의 시신을 요청합니다. 다윗과 다니엘처럼, 아리마대 사람 요셉도 분명히 용기가 있는 사람이고 영웅입니다. 믿는바 믿음을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용기에 대하여 성경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힌트는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그는 부자이고 산헤드린 공회원이었지만 하나님나라를 사모했던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나라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먼저 와야 할 분이 메시아 즉,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를 메시아로 보았고, 그리고 굳게 믿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죽었지만 그에게 예수는 메시아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그 믿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에겐 삶과 죽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나 죽으나 그에게 주님은 메시아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믿음은 결단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다 도망갔지만, 그의 믿음은 변할 수 없어 담대하게 빌라도를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태한 날, 밤이 지나갑니다.
그 다음날 이상한 소리를 듣습니다. 아침에 주님이 다시 사셨다는 소식을 그도 들었을 것입니다. 가만히 있었을까요? 그가 무덤의 주인입니다. 빈 무덤을 찾지 않을 리 없었을 것입니다. 그의 기쁨은 마치 하나님을 보듯이 감격에 감격을 더 했을 것입니다. 믿음이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기쁨은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백배 더 했을 것입니다. 믿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유턴이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음으로 노아가 방주를 지었듯이, 역시 믿음으로 요셉이 하나님나라를 맛보았던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상을 주십니다. 그 역시 우리가 진정으로 따라야 할 믿음의 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보이는 사람이 진정 그리스도인입니다.
2월20일 동인천지하상가 전도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크게 소리 질러 외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15:34)
아버지께 버림 받는 것처럼 두려운 것은 없습니다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9:27)
아버지께 버림 받았다는 느낌처럼 괴로운 것도 없습니다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시77:7~8)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잠시 외면 당하시는 그 괴로움을 견디심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받게 되었습니다(사53:5)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잠시 버림 받으심으로 우리가 영원히 버림 받은 자가 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사62:4)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지실 때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로 갈라진 것입니다 사람이 찢었다면 아래에서 위로 찢겼겠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하늘로부터 찢으셨기 때문에 위로부터 아래로 찢긴 것입니다 이 휘장에는 그룹들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그룹들은 범죄한 사람이 에덴동산 중앙 생명나무로 가지 못하도록 지키기 위해 두신 것입니다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4)
그러나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찢김으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고 있던 그룹들은 철수했고, 이제 우리는 생명나무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버림 받지 않고, 오직 주와 영원히 생명나무 아래에서 함께 거하게 된 것입니다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사60:15~16)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박해를 받아도 결코 버린 바 되지 않는 것입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고후4:9)
주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영원히 주와 함께 있게 하시려고 이제 곧 속히 오실 줄 믿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8)
보통 십자가형은 며칠 동안 피를 흘리고 힘이 빠지며 호흡이 끊어지는 고통의 형벌이었지만
주님께서 겪으신 채찍질과 폭력, 그를 누르는 죄의 무게는 그 생명을 빨리 끊어지게 했습니다.
빌라도는 그 빠른 죽음을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존경받는 유대 공의회원이었던 아리마데 요셉의 부탁을 들어 그 시신을 수습하도록 허락했습니다.
그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정성스럽게 싸서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에 모신 뒤
그 입구를 돌로 막아 놓았고 여인들은 그곳을 지켜보았습니다.
주님은 한 명의 죄수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하셨으니
그 영은 잠시 육신을 떠나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시신을 중요시 여기고 그 무덤에 주목합니다.
사망의 권세는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 묵상하게 하고
무덤에 갇히는 것을 안타깝고 두려워 떨게 합니다.
하지만 생명의 성령의 법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건지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과 능력으로 채워지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새 생명으로 임하시는 그 성령의 충만한 능력을 힘입어
날마다 승리하고 감사와 영광스러운 주님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33-38절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버림받은 고통을 토해내십니다(참조. 시 22:1). 사람들의 희롱보다, 로마 군인의 채찍보다, 십자가의 찢어지는 고통보다 더 괴로운 것은 하늘 아버지의 외면이었습니다. 아마도 한낮에 일어난 세 시간의 흑암은 하나님의 부재를 보여주는 상징이었을 것입니다(참조. 암 8:9).
주께서 당하신 이 모든 고통은 사실 죄인인 내가 당해야 할 고통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을 대상은 마땅히 우리 죄인들입니다. 노아의 때, 죄가 관영한 세상을 버리시고 다만 의인 노아를 구원하셨지만, 이제 하나님은 아들을 버리심으로 인류를 얻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 성전 휘장이 둘로 갈라진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하나님과 우리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보여줍니다(히 10:19,20).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39절 모든 이가 예수님을 희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형벌을 집행하던 백부장은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예수님을 지켜보고,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수많은 정치범들이 십자가에서 죽어갔지만, 이처럼 십자가를 받아들인 사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은 이렇듯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 이방인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나는 십자가의 예수님의 진정한 모습을 누구에게 소개하고 싶습니까?
40-47절 멀리서 예수님을 지켜본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갈릴리에서부터 ‘예수와 함께’했고, 제자들이 다 도망가고 흩어졌을 때도 끝까지 예수님 곁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을 확인한 여인들은 이후 부활의 첫 목격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거창한 일을 계획하는 것보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하루하루가 더 귀하다 인정받을 것입니다.
43,46절 아리마대 요셉은 공회원이라는 신분에도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합니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할 정도로 연관되길 두려워했지만, 요셉은 예수님의 동조자로 오해받아 불이익을 당할 수 있음에도 당돌히 빌라도를 찾아가 시체를 요구합니다. 그는 자신의 부와 지위를 주님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거듭난 부자’였습니다. 세상 나라가 전부가 아닌 줄 알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기도
주님의 영광스런 모습뿐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도 사랑하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세상에서 가장 불법적인 재판을 받으시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다.
제6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9시까지 계속된다.(3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지 세 시간이 지난 정오부터 오후3시까지
가장 햇볕이 뜨거워야 할 그 시간에도 해가 빛을 잃어 버렸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빛의 근원이시기 때문이다.
제9시에 예수님이 크게 소리를 지르신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34)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나이까? 하는 뜻이다.(34)
6시간이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으면 이렇게 소리를 지르실까?
퇴약볕에 1시간만 차렷자세로 세워 놓아도 쓰러질텐데....
육체적 고통보다 더 심한 것은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버림 받음이 더 고통스러웠지 않으셨을까?
그러나 예수님의 이 고통스러운 부르짖음이 나를 대신한 부르짖음이며
나의 죄악을 속하기 위한 부르짖음이며
죄와 타협 할 수 없는 거룩한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기 위한
나를 향한 구원의 십자가 이므로 나는 예수님의 이 고통을 찬양한다.
예수님이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신다.(37)
운명하심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38)
구약시대에는 1년에 한 차례씩 오직 대제사장만이 들어 갈 수 있는 지성소
그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있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 버렸다. .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 말미암아
대제사장을 통한 속죄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감히 대면 할 수 없었던 하나님 아버지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 직접 예배 할 수도 있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도 할 수 있도
대제사장을 통하지 않고 염소의 피로도 하지 않고 회개도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대신 지불하신 그 십자가의 은혜가
내가 치루어야 할 죄값을 대신 지불하신 것이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지성소에 들어가 주님을 만날 수 있게하신
그 주님을 찬양합니다. .
또 하나 놀라운 일이 있다.
예수의 사형 집행을 감독하고 있던 로마의 백부장이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였도다(39)라고 고백한다.
감독을 하고 있던 이방인 백부장이 어떻게 이런 정확한 신앙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예수님은 살아서도 복음을 전하고 죽으시면서도 복음을 전하시는 모양이다.
12제자들은 비겁하게 다 배신하고 도망을 갔는데
여인들은 (막달라 마리아, 작은 야고보,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매)(40)와
이 외에도 예수와 함께 올라온 여자가 많았다.(41)
그래서 여자들이 신앙이 더 훌륭(?)한가 보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다.
예수님이 운명하신 날은 금요일이고 제6시부터 제9시까지
다시말하면 12시부터 오후3시까지 십자가에 달리셨다.
자 이제 예수님은 운명을 하셨다.
장사를 지내야 하는데 장사를 지내야 할 제자들은 다 도망을 가버렸다.
우리는 적어도 3일장 정도해서 조문도 하고 하겠지만 죄없으신 예수님이
범죄자로 돌아가셨으니 예수님은 조문 할 제자도 없었구나!!!
유대인의 율법에는 나무위에 달린 범죄자의 장사는
그날에 장사지내야 하고 밤새도록 나무 위에 달아 놓으면 안 된다.(신21:22~23)
그런데 지금 안식일 바로 전날이다. 해가지면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그럴러면 오후 3시부터 6시 사이에 장사를 지내지 않으면 안된다.
금요일 오후6시가 지나면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이 시작되기전 빨리 예수님을 장사지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때에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 준비된 보석같은 한 사람을 예비해 두셨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다.(43)
본문에는 요셉은 존귀한 공회원이라고 소개했고(43)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고 했다.(43)
당돌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요청한다.(43)
놀라운 용기이다.
사실 이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이지만 유대인들을 두려워 했다.(요19:38)
유대인들도 두려워하던 요셉이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당돌하게 요청한다.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났을까?
아마도 이분은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가 되는 것을 도운 모르드개 같은 분이고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가?(스4:14)하는 말씀이 생각 날 정도로
이 요셉은 이 때를 위하여 공회원이 된 분이 아닌가 싶다.
직분이 직위가 높아 지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리라.
또 요셉은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고(눅23:50)
공회의 회원이긴 하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결의와
그 행사에 찬성하지 않은 자이다.(눅23:51)
드러나지 않은 숨은 예수님의 제자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다.
사실 이런 용기를 내기에는 부담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유대인의 비난이 두렵고 공회 회원들의 비난이 겁나고
자신의 명예와 권력과 지위가 위태롭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돌히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내어 달라 요청하고(43)
손수 세마포를 사고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고(46)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아 장사를 지낸다.(46)
구레네 시몬은 얼떨결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지만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자원하여 죄인처럼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정성을 다하여 장례를 치른다.
충성스런 여인들인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신이 놓여진 곳을 지켜보았다.(47)
❝십자가의 주님과 동행하는 삶❞
십자가에서 철저하게 버림을 받아 죽으신 예수님은 영광의 자리에 이르는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은 무엇입니까?
➲ 화목하게 하는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33~38절).
정오부터 오후 세 시까지 어둠이 온 땅을 덮었습니다(33절). 햇볕이 가장 강하게 내리쬐는 시간에 일어난 초자연적인 사건은 일시적인 자연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강력한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34절).. 살이 찢겨 나가는 군인들의 채찍보다, 사람들의 온갖 조롱과 모욕보다, 사랑하는 제자들의 배신보다 그리고 십자가의 그 고통보다 ‘아바 아버지’의 침묵과 외면이 예수님을 더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아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셨습니다. ‘...보시오, 그가 엘리야를 부르고 있소... 어디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두고 봅시다...’(35~36절)라고 끝까지 조롱하는 무지한 사람들을 안타까워하시며 예수님은 큰 소리를 지르시고서 숨을 거두셨습니다(37절).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자발적인 죽음이었습니다. 그때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습니다(38절,새번역)... 옛 언약의 상징인 성소의 제사적 기능을 없애버리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공로를 힘입어 이제는 누구나 성소 안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내 자신 안에 엄청난 고통을 가져오게 합니다. 비참하고, 비극적인 인생을 살아가게 합니다. 언제나 죄인의 신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죄를 대신 지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은 더 이상 내 자신을 죄인으로 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주님 안에 거하고 있는 한 내 자신은 하나님께 버림받거나 저주를 당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감사할 뿐입니다.
‘성소 휘장의 찢어짐’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이 무너짐은 물론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담이 허물어져서 예수님 안에서 서로 화목의 관계가 이루어졌음을 상징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화목 그리고 이웃과의 화목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십자가의 주님과 동행하는 삶임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 영생하게 하는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39~41절).
예수님의 처형을 집행했던 책임자로 십자가 처형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던 백부장은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39절)라고 고백합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그리고 이방인으로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직접 보았던 제자들조차 하지 못했던 고백입니다.
예수님의 그 고난의 현장을 끝까지 지키며 동행했던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을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었습니다.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이 여인들의 모습 속에서 제자도의 참 모범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세상적인 기준과 인간의 이성으로 십자가를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라고 하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면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가장 측근에 머물러 있었던 제자들은 믿음으로 예수님이 행한 모든 이적과 말씀들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위급한 순간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반면 고난의 현장에 끝까지 예수님과 동행했던 여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첫 번째로 목격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렇게 어떤 이적과 기적을 보지 않고도 영생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영생의 이르는 길을 보여주신 주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이 십자가의 주님과 동행하는 삶임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 제자로서 사는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42~47절).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라고 하는 사람이 대담하게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는 존경 받는 공회원 사람이었기에, 십자가형을 받은 예수를 장사지낸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고 예수님을 장사 지내려고 했던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42절)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이 도망가고 없는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담대하게 빌라도에게 나아가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값비싼 세마포를 구입하여 예수님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세마포로 감은 예수님의 시신을 바위 속에 판 무덤에 안치한 요셉은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았습니다. 그는 그가 가지고 있는 지위와 부를 오직 예수님을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진정한 제자의 삶이란 세상이 주는 유익과 만족 그리고 부와 명예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어떠한 위급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는 사람입니다. 어떠한 자리에서도 그리스도인임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가진 것들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꺼이 헌신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 예수님의 죽음은 나를 지배하고 있는 사망 권세를 깨뜨리기 위한 죽음이다..’라고 당당하게 전하며 살아가는 것이 십자가의 주님과 동행하는 삶임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온전한 구원을 이루신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 속에서 생활 할 뿐만 아니라 영생에 이르는 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이를 전파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이 될 수 있기를(막 15:33~47절).
1.온 땅이 어두워졌습니다.(33-37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실 때에 온 땅이 어두워졌습니다. 죄로 어두워져서 메시야를 죽이기까지 한 유대인들의 영적상태도 이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죄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의 형틀에 죽게 만들었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는 인간들에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움의 마음의 표현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도 유대인들과 같은 영적인 어두움에 처하지 않도록 날마다 믿음 안에서 힘써 달려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휘장이 찢어졌습니다.(38절)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자마자 성소 휘장이 둘로 찢어 졌다는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갈 온전한 길이 열렸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즉 구약시대에 행해진 모형적인 제사의식의 시대가 끝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자들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막혔던 죄의 장벽을 예수님으로 인하여 완전히 무너뜨렸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열어 놓으신 길을 따라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복을 누리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3.백부장의 신앙고백(39-41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일어난 현상들을 보고 곁에 서 있던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죽어 주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유대인들은 백부장과 같은 것을 보면서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못하는 영적인 우매함을 보였습니다. 나는 백부장과 같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는 참된 고백을 소유하고 있는가?
4.아리마대 요셉(42-47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십자가에 시체를 두기를 꺼려하여서 빌라도에게 치워달라고 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고 죽으신 것을 확인하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서 죽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장례에 앞장섰던 사람은 놀랍게도 아리마대사람 요셉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으로 숨은 제자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위험한 순간에 예수님의 장례로 인하여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리마대 요셉은 자신의 새 무덤에 예수님을 장례하는 용기있는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위험 앞에서는 도망가는 믿음 약한 자들이 아니라 아리마대 요셉과 같이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용기있는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 아버지,
천지를 진동하고 휘장을 찢으시면서도
사랑하는 자녀들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그 아들의 생명을 내어주신 그 인자와 긍휼하심을 찬양합니다.
날마다 우리의 마음을 찢고 회개의 눈물을 드려
허락하신 그 은혜에 합당한 거룩하고 정결한 삶으로
나아가는 주님의 제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