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과 하나님에 관하여
[서론]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신의 호칭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것은 하느님과 하나님의 차이점을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과 하나님은 같은 신으로 보고 있다. 과연 그럴까? 이에 대해서 정확하고 분명하게 알아 둬야할 필요성이 있어 이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A. ‘하느님’과 ‘하나님’에 대한 여러 견해들
먼저 하느님과 하나님에 대한 여러 주장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느님’이 내 안에 들어 왔을 때 ‘하나님’이 된다는 주장
“ 하느님과 하나님의 차이점을 알아야 혼용하지 않는다. 인간의 DNA(유전자의 본체)의 시초인 신이 하늘에 계실 때 하느님이라 하는 것이고- 그 신이 내 안에 들어와 나와 하나가 되면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성경 행2:1와 같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이 성령이 되어 인간의 몸으로 들어오는 현상과 같다. 그래서 묵상, 기도, 명상 등의 여러 가지 수행들은 하느님과 하나님을 깨닫기 위한 과정이요 방법이다. 그러므로 묵상이나 기도- 명상 등을 할 때에는 하느님이 내 안에 들어와 하나님이 되도록 하늘을 쳐다보면서 해야 하고- 그 하느님이 내 안에 들어와 하나님이 될 때 마음과 영혼을 깨끗이 닦을 수 있다. “ 는 주장이다.
[그리운소리]
‘하늘에 있는 하느님‘ 라 했을 때 이것은 고대로부터 숭배해온 하늘숭배 사상에서 나온 호칭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하느님을 내 몸 안으로 들어와서 하나님이 되게 하려고 묵상-명상 등을 한다면 이것은 귀신을 불러들이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우리 기독교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해서 만들어진 하나님도 아니며- 성령을 내 안으로 모시기 위해서는 철저한 회개가 필요한 것이지- 아무 뜻도 없이 두 손 모으고 하늘이나 쳐다보면서 묵상-명상으로 성령이 임하게 한 것이 아니다. 사도행전 2장의 성령강림을 이런 곳에 비유한 것은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발언이다.
2. ‘하나 + 님 = 하나님’이란 칭호가 생겼다는 주장.
‘하나님’이란 ‘호칭’은 하나, 둘, 셋, 넷. 할 때- 숫자의 첫 번째인 하나 + 님 = 하나님의 호칭이 된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런 주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2가지다.
[그리운소리]
첫째-하나+님=하나님이 된다면 신의 호칭은 계속 늘어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숫자는 - 일-십-백-천-만-십만-백만-억-조-경 등 천문학적인 숫자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숫자마다 ‘님’ 자를 붙여 ‘둘님’ ‘셋님‘ ’만님‘ ’억님‘ ’조님‘ ’경님‘ 하고 말이다. 인간들은 신을 만들기 좋아한다. 그래서 전 세계 나라마다 전통적인 토속종교들이 있어 인도에는 3억 3천개의 신이 있고- 일본에는 8백만 개의 신이 있으며- 중국- 한국- 인도- 등 천문학적인 숫자의 신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자를 붙여 하나님이라고 했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는
숫자에 님을 붙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님‘ 자를 붙일 때에는 인격체인 사람에게 존중의 표시로 붙인 것이지 무인격체에나 동물-글씨-숫자 같은 것에 붙일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무인격체인 물체나 동물이나 숫자 등에 ’님‘ 자를 붙여 하나님-둘님-셋님-넷님- A님-B님-C님- 파리님- 모기님- 개님 -닭님- 사자님- 호랑이님-해 보라. 이렇게 ’님‘자를 붙여 존중의 표시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즉 숫자를 숭배하고 만물을 숭배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기독교 하나님은 하나+님 해서 하나님이 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3. ‘하날’ ‘하늘‘에 님자를 붙여 ‘하나님’‘하느님’이 되었다는 주장
옛날에는 하늘을 '하늘-하늘님‘ 혹은 ‘하날-하날님'으로 읽힌 적이 있었는데 ’ㄹ‘를 탈락시켜 버리고 ’하느님' ‘하나님’이 되어 오늘날 ’하느님‘과 '하나님'이 정착돼 온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아들-딸이란 단어에서 ’ㄹ‘자를 빼버리면 ’아드님! 따님!‘ 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의미의 차이점이 있다면 '하느님'은 일반적으로 '하늘에 있는 절대자 신'을 말한 것이고... 하나님'은 특정 종교 즉 기독교의 유일신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는 무리들이 있다.
[그리운소리]
나는 2가지 이유로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첫째- 이들이 주장한 하느님과 하나님은 하늘숭배 사상 즉 샤머니즘에서 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조상대대로 섬겨온 전통적인 토속종교가 있는데 그것은 곧 하늘숭배 사상이다. 조상들은 하늘을 쳐다보며 막연하게 숭배하면서 ‘하늘‘이란 단어에서 ’ㄹ‘를 탈락시켜 버리고 -존중-공경의 표시로 ’님’ 자를 붙여 하느님으로 호칭했다. 그러나 이런 하늘숭배 사상은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니므롯 통치하에서 바벨탑으로 인한 언어혼잡 이후 흩어진 이래 모든 나라에서 섬겨온 아주 오래된 수천년의 고대 전통의 샤머니즘에서 생긴 토속종교의 신의 호칭이다.
그러나 기독교 유일신은 ’하늘숭배 사상‘에서 유래된 ’하날님‘에서 ’ㄹ‘를 빼버리고 생긴 ’하나님‘이 아니다. 만약 그것을 동의하고 받아들인다면 이것은 곧 이교사상에 기독교 옷을 입힌 혼합주의가 되고 만다. 카톨릭처럼 이교사상과 기독교 신앙과의 만남- 양보와 타협? 진정한 성도라면 이런 류의 혼합주의는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둘째- 귀신의 호칭을 가져와 창조주 여호와의 호칭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부르고 있는 ‘하나님’이란 호칭은 하늘숭배 사상에서 온 것이 아니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신의 호칭이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귀신의 호칭을 도용하여- 여호와의 칭호가 되었다고 주장한다면 ... 그렇게 주장한 기독교인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신성모독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감히 어떻게 귀신의 호칭이 기독교 유일신의 호칭도 되어 서로 공유하며 공존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어마어마한 대 반란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숭배 사상에서 유래된 ‘하느님’ ‘하나님‘이라는 귀신의 호칭을- 성경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호칭으로 잘못 알고 부르면 안 되는 것이다. 유일하고- 참되고-거룩한 신 여호와 하나님께-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씌우는 신성모독죄를 결코 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상종교와의 타협과 양보와 혼합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 사탄은 교활하고 간교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과 미신을 구별하지 못하도록 그럴듯하게- 비스무리하게...믹사(혼합) 시켜 많은 영혼들을 미혹하고 있는 것이이 우리 기독교인들은 귀신들의 가르침이나 미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4.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사용하라’는 ‘성경 무식파’
‘하느님’이면 어떻고- ‘하나님’이면 어떠냐. 뭘 그렇게 따져. 호칭 자체가 구원을 좌우하는 몸통도 아닌데... 구원과 상관도 없는 문제를 가지고 괜히 이슈를 만들어서 콩이야! 팥이야! 따지다보면 종파간 갈등과 감정만 격하게 될 뿐인데!... 좋은게 좋다고 그냥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 지혜롭게 ‘하느님’‘하나님’으로 대처해 나가면 되는 거고. 비록 하늘 숭배 사상에서 온 하느님이라 할찌라도 - “내가 부르고 있는 이 하느님은 성경 속 하나님을 의미한 것이지 사탄을 의미한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다 “ 이렇게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하느님이든 하나님이든---샤머니즘에서 왔든 하늘숭배 사상에서 왔든-숫자 개념에서 왔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신앙과 구원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데.... 우리의 구원은 신의 호칭과 관계없이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에 호칭 출처에 관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 된다”고 주장한다면 과연 그럴까? 성경도 이처럼 말씀하고 있을까? 우리의 구원이 여호와의 호칭과 아무 관계가 없다면 하나님께서 과연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행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행16: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행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하였느니라
행4:12-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이런 구절들은 신의 호칭이 영혼 구원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어떤 신을 믿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성공실패가 좌우되고- 죽고 사는 문제와- 복과 저주와- 생명과 사명- 천국과 지옥이 좌우되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신30:15=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19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삼성 로고나 그 기업의 심벌 깃발만 봐도 ... 삼성이란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어떤 제품들을 만들어 팔고 있는지... 그 신뢰도가 어느 정도인지... 세계 몇 위를 차지하고 있는지 ... 금방 알 수 있듯이 각 종교의 신의 호칭 역시 그렇다. 모든 종교에는 거기에 걸 맞는 자기들만이 부르고 섬기는 신의 이름이 있는데 그 신의 이름은- 그 신의 존재와 출처를 말해 주고... 그 종교를 대변해 주고- 그 규모를 말해 주고- 그 교리를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통일교 하면 문선명- 문선명 하면 그 주장과 교리들이 곧 바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다. ‘하나님’하면 ‘절대자 유일신- 전지전능하심-무소불능하심-거룩하고 참된 신-진리의 신-사랑과 공의의 신-성경 66권의 저자-이스라엘-천지창조-구속사역-천국과 지옥-심판-재림-천년왕국-신천신지- 새 예루살렘 등 성경의 핵심 교리들이 한꺼번에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종교의 신의 호칭은 ‘신의 존재와 중심 교리와 교세 등’을 소개하고 있는 로고요 심벌마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희 호칭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어떤 신을 믿고 섬기느냐에 따라서 인간의 운명이 좌우 되고 인생 성공실패가 좌우되며- 천국과 지옥이 좌우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이면 어떻고... 하나님이면 어떠냐! 하늘숭배 사상에서 왔든... 하나+님= 하나님이라 하든 ....신의 출처가 뭐 그리 중요하냐? 이것이 성경과 일치된 하나님으로만 알고 섬기면 되는 거지 ”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가! 자기 영혼을 절망과 사망에 밀어 넣는 위험한 사상인 것이다
만약 말레시야에 있는 이슬람교도들이... 자기들이 믿고 섬기는 신의 호칭을 이런 식으로 생각했더라면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리는 종교전쟁을 했을까?
2010. 2. 22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내용이다
“ 말레이시아는 인구 2800만 명 중 60%가 이슬람교도들이고(알라신을 믿는 마호멧트교), 9%가 가톨릭· 개신교를 믿는다. 그 중에서 250만이 그리스도교인들인데 주로 중국이나·인도계 사람들이다. 그런데 2009년 12월에 말레시아 고등법원이 “ 가톨릭신자나- 개신교인들도 이슬람교의 신 ‘알라’라는 용어를 사용해도 된다”라고 결정을 내렸다. 2년 전만 해도 이슬람의 알라신을 빙자한 출판물 등은 모두 금지시켰는데-이것을 뒤집어 버린 것이다.
그러자 그때부터 ‘알라’라는 신의 호칭 사용권을 놓고 종교간 분쟁이 일어났는데 교회- 성당 11곳이 불에 타고- 시크교 사원, 이슬람 사원 2곳 등의 예배처가 불타고, 기물 훼손 등으로 온 사회가 무질서로 난무했다. 인도계통의 기독교인들은 돼지머리를 베서 이슬람교도들의 예배처인 모스크에 집어 던져 넣고- 말레시야의 이슬람교도들은 소를 숭배한 힌두교 사원에 소머리를 집어 던져 넣는 등 사회 곳곳에서 종교 분쟁이 일어나 사회질서를 마비시켰다.
국민 60%를 차지하고 있는 본토인 이슬람 교도들은 “기독교인들이 ‘주님’이라는 호칭 ‘투한’을 버리고 왜 굳이 ‘알라’라고 하는 우리들의 신 이름을 사용하겠다고 고집하는 것이냐. 이것은 곧 ‘알라’라는 호칭을 사용해서 이슬람교도들을 헷갈리게 해서 기독교로 개종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냐” 그래서 이슬람 교도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는 내용이다.
왜 신의 호칭이란 사용권을 두고 피의 역사를 만들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자기들만 사용할 수 있는 신의 호칭을 타 종교와 공용(공동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
둘째- 이슬람교의 신의 호칭은 반드시 다른 종교와 구별돼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신의 호칭을 헷갈리게 해서 이슬람교도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100% 맞는 말이다. 한 종교의 신의 호칭은 그 종교의 대명사요 그 종교를 대변해 주고 소개하는 깃발이요-기호요- 심벌마크가 되기 때문에 절대로 공동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신에 대한 호칭 문제로 논란이 있었던 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완전한 무풍지대는 아니다. 1977년 가톨릭과 일부 개신교 교단이 초교파 운동 차원에서 공동번역성서를 만들 때-“천주교의 천주님과 개신교의 하나님을 믹사해서 ‘하느님’으로 통일시키자” 해서 공동번역을 출간했지만 많은 교회들이 이 호칭 문제로 반기를 들어 그 공동번역이 큰 호응을 얻지 못하여 신구교통합운동은 실패로 끝났고- 1991년 프로야구 개막식에서 애국가를 부른 가수가 “하나님이 보우하사”라고 했을 때 관중들의 야유가 퍼붓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하느님과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그 뿌리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면 어떻고... 하나님이면 어떠냐” 식이였다면 서로 공용-공존하면서 종교간 갈등없이 사랑노래 부르며 잘 살았을 것이다.
B. 기독교의 ‘하나님‘ 호칭에 관하여
1. 기독교 안에 있는 두 파
전 세계 기독교 안에는 큰 두 파가 있는데 이는 곧 하느님파와 하나님파다. ‘하느님파’는 가톨릭- 성공회-정교회가 있고- ‘하나님파’는 당연 개신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극기 집회를 가보면 주최자들이나 연사들이나 수많은 기독교인 민초들이 애국가를 부르면서도 아무 생각없이 ‘하느님이 보우하사’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가사대로 부르지 않는 기독교인들도 있지만 극소수이다.
그래서인지
2010. 2. 22일자 중앙일보는 이렇게 적고 있다.
“애국가에 나오는 하느님은 국조 단군의 할아버지 환인일까? 아니면 기독교의 신일까? ”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하나님’이란 칭호에 대해서 확실한 개념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 기독교 ‘하나님’이란 칭호는 인간 학문이나-인간들의 전통적인 토속종교나-언어의 유례- 숫자 개념-하늘숭배 사상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창세기에 정답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창세기에서 그 칭호의 뿌리를 찾는 이유는 천지창조와 관련하여 신의 호칭이 맨 먼저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 칭호에 관하여
창세기 1장~3장 안에는
‘하나님(םיל‘-엘로힘)’이란 말이 51번이나 나오고-
‘여호와 하나님(הוהי םיל-여호와 엘로힘)’으로는 20번이 나와 있다.
■여호와(הוהי)에 관하여
[단수] הוהי(여호와)-하나님의 영원한 이름과 표호다(출3:15).
이 단어는 인간 역사상 상천하지에 오직 단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한 고유명사로 .. 그 누구도 손을 댈 수 없으며-- 조작할 수도 없고--- 그 무엇과 혼합시킬 수도 없으며- 뜯어 고칠 수도 없고- 함부로 부를 수도 없는- 하나님의 영원한 이름이며- 대대로 기억할 하나님의 표호다.
출3:15...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표호란 -로고, 표지, 간판, 기호. 부호, 심벌, 마크, 깃발 등을 말한다. 그러므로 ‘여호와 엘로힘’ 즉 ‘여호와 하나님’은 천국 로고요 기독교의 간판이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란 소리만 들어도 -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성품을 가지셨는지...그 분이 과거에 무슨 일을 하셨는지... 지금도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또 미래에는 어떤 일들을 하실 분인지 ... 한꺼번에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삼성기업 로고만 봐도 “ 삼성은 어떤 기업인지... 무슨 제품을 만들어 팔고 있는지...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신뢰도가 어느 정도인지 ” 한꺼번에 떠오름과 같다.
그러므로 ‘하나님’이란 칭호는 유일하고 거룩한 하나님을 소개하고- 천국을 소개하고- 구속사를 알리고- 심판을 경고하고- 미래 행복을 알려주는- 천국의 대명사요-천국의 방향을 바로 가르쳐 주는 구원의 이정표인 것이다. 그리고 민수기 2장을 보면 이스라엘 각 지파마다 그 지파를 상징한 깃발들이 있고- 동서남북에 진을 칠 때 앞에서 인도하는 4 지파의 특별한 깃발들이 있는데- 맨 앞서가는 하나님의 깃발도 있다. 그것이 바로 온 회중이 멀리서도 볼 수 있는 깃발이 있는데 그것은 곧 불과 구름기둥이다.
■ 엘로힘에 관하여
וֹל(엘로아흐)라는 [단수]가 있다. 그 뜻은 ‘유일한 참된 신‘이다. 이 단어의 복수가 있는데 םיל(엘로힘)이다. 뜻은 ‘유일한 참된 신들’이다. 왜 복수형인가? 그 단어 자체가 성부-성자-성령 3분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단수가 아니라 복수형이다.
복수형 헬로힘이 성부-성자-성령이라고 가르쳐 준 구절이 있다. 그것은 곧 창1:26이다.
“하나님(םיל-엘로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이 구절에서 엘로힘이 ‘우리‘ 즉 성부-성자-성령이라고 자체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הוהי םיל(여호와 엘로힘) 하면-이 3분의 이름은 여호와.
성부 여호와 - 성자 여호와 - 성령 여호와 - 하나의 이름으로 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신6:4이다. “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엘로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무슨 말인가 ?
직역하면 “ 3분(엘로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즉 각자의 직임은 달라도 이 3분은 하나이며- 오직 하나의 이름으로 통일돼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인간 숫자 개념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천하지의 전무후무한 유일한 단어다. 상식적인 계산법은 1+1+1= 3인데- 성경 속 삼위일체 계산법은 1+1+1=1. 이것이 어찌 인간의 계산법이겠는가! 그러므로 삼위일체 교리는 םיל(엘로힘)으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세 암흑시대 때는 삼위일체에 관하여 많은 비유들이 난무했다. “잎은 셋인데 줄기는 하나”다 하여 3잎 크로바에 비유하기도 하고- 인간의 육체는 하나지만 몸+정신+영혼으로 이뤄졌다하여 인간에 비교하기도 하다가 급기야는 “ 삼위일체는 머리 셋 달린 괴물이다“ 라고 까지 주장을 하다가 신성모독죄로 참수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삼위일체에 관한 정확한 정의는 오늘날까지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숫자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3분의 이름 모두가 다 여호와라고 한 것은 내 주장이 아니라 성경 자체의 주장이다. 호렙산 가시떨기 가운데 모세에게 나타나신 분도 예수님이지만 여호와로 기록돼 있고(출3:15)- 주의 영광을 보여 달라는 모세에게 등만 보이신 분도 성자 하나님이지만 여호와로 기록돼 있을 것을 볼 수 있다(출33:18-23).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에 나온 ‘하나님’이나-기독교 ‘하나님’이란 칭호는 숫자의 첫출발인 ‘하나’ ‘1’이라는 개념도 아니며- 샤마니즘의 하느님이나 하날님에서 ‘ㄹ’를 빼버린 하나님도 아니라- 신의 존재 그 자체 엘로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으로 부를 때 엘로힘을 말하고 있음을 알고 사용해야 한다.
아무튼 3분의 하나님은 능력-지혜-거룩-공의-권능-사랑-자비-전지전능-무소불능 등 위치와 신분과 거룩한 속성에 있어서 통일되지만 - 맡은 직임에 있어서는 구별된다. 예를 들면 천지창조에 있어서 성부 하나님은 설계사로 - 성자 예수님은 건축가로- 성령께서는 생명의 공급자로 활동하셨고- 구원사역(복음사역)에 있어서도 성부 하나님은 구원을 계획하시고- 성자 예수님은 그것을 성취시키시고- 성령께서는 행2:1을 통해 죽은 영혼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는 생명의 공급자로 지금까지 활동하시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르고 있는 ‘하나님’은 최고-의뜸-오직-유일한-하나“ 등의 숫자개념의 ‘하나님’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엘로힘’은 3분의 하나님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영어 성경에도 창2:4에 'one'이 아닌 ‘ the-God(주님)’로 번역돼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하나님은 ‘엘로힘’ 3분 하나님 그 존재 자체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서약을 해놓고 안 지키게 되면 신성모독죄로 사함이 없는 죄가 되는 것이다.
C. 하느님’이 ‘하나님’으로 변경된 이유
1. 최초 신약의 번역자 로스+이응찬+이수정
םיל(엘로힘)이 하나님으로 번역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년 전에 조선에 복음이 처음 들어왔을 때- 한글 번역에 있어서 첫 발을 연 사람은 바로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 해외선교부의 선교사인 영국인 로스(1842~1915) 목사였다.
로스 목사에 있어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성경을 번역해서 조선 백성들에게 성경을 읽도록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1882년에 만주에서 평안북도 상인 이응찬을 고용해 한국어를 배우면서 누가복음-요한복음을 최초 한국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번역 과정에서 제일 큰 문제는 “성경 속 여호와 엘로힘(םיל הוהי)을 어떤 말로 번역할 것이냐”라고 하는 호칭문제에 부딪혔다. “이스라엘의 신 הוהי םיל을 그대로 전하게 된다면 조선인들에게는 너무 생소하여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는 성경을 번역할 때 처음에는 하느님이 아니라 중국성경처럼 신으로 번역하려 했으나 조선에서는 신을 귀신으로 생각하게 되자 그들에게 물었다 “ 조선에서는 세상을 다스리는 신의 존재를 뭐라 부르냐?”하고 물으니까 그들이 대답하기를 “하느님”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눅-요한복음을 번역할 때 하느님이라고 했다. 그리고 3년 후 1885년에는 일본 유학생었던 이수정(최초 주기도 번역)이 마가복음을 번역 출판하여 배포했다.
2. 언더우드의 공헌 하느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잡음
언더우드 목사는 미국 북 장로교회 해외 선교부에서 파송한 선교사다. 언더우드(새문안교회 설립자)가 한국으로 오게된 동기는 “한국에도 선교사를 파송해 달라”는 이수정의 편지를 읽고 감동받아 1885년에 인천 제물포를 동해 조선에 발을 딛게 되었다.
조선에 들어온 언더우드는 조선에서 복음을 전할 때 주님의 호칭을 뭐라고 전할까 고민하다가 한국인들이 고구려 때부터 막연하게 찾는 하느님 숭배 사상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실 조선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조상대대로 샤머니즘을 기초로한 전통적인 토속종교로서의 유일신 하늘사상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하늘님이었다. 그래서 그는 야훼보다는 “하느님으로 호칭하는 것이-효과적인 전도를 위해 좋겠다”하여 복음을 전파했는데 하느님이라는 그 호칭이 우리 민족에게 친근하게 느껴짐으로 인하여 복음운동이 빠르게 확산되는 큰 효과를 거두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언더우드는 하느님에서 하나님으로 바꾸었다.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개념 때문이었다. 샤마니즘의 하늘숭배 사상을 이용해서 야훼를 하느님이라고 전했는데- 사람들 머릿속에는 조상대대로 숭배해 왔던 하늘님-하느님 개념으로 알고 섬기므로 - 우상종교에 기독교 옷을 입히는 결과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유학생으로서 마가복음을 번역했던 이수정이 번역판에는 예수를 ‘귀신의 아들’이라는 인상을 주는 표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내용이 수정되지 않은 채 한국인들에게 전파되고 있었던 것을 여러 선교사들이 지적하여 본격적으로 정밀한 번역을 시작하게 한 계기가 된 것이다.
그래서 1887년에 언더우드를 비롯해 아펜젤러, 스크랜턴 등이 언더우드 집에 모여 상임성서위원회를 조직하여 로스목사+ 이응찬+ 이수정 등과 함께 번역했던 성경의 개정 작업을 포기하고 새 번역에 착수하기 시작했는데- 언더우드는 하느님에서 성경 속 하나님으로 변경시키는데 앞장섰다. 이것을 언더우드 선교사 업적 중 가장 큰 업적이라고 신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이는 조선의 전통적인 토속종교인 샤마니즘의 하느님과 성경 속 기독교의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를 분명하게 선을 긋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성경이 지금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성경인 것이다.
D. ‘하느님파’와 ‘하나님파’
1. 하느님파 천주교+성공회+정교회
이 3종파에서 부르는 하느님은 조선의 전통적인 토속종교로부터 출발한 하늘숭배 사상에서 나온 신의 호칭인 것이다. 하늘+님= 하늘님 ‘ㄹ’ 빼고 하느님이 된 것이다. 개신교보다 먼저 우리나라에 들어온 천주교는 이 전래의 용어를 그대로 성경에 여호와 신을 지칭하는 용어로 흡수하고 그들의 용어로 삼았다. "하느님"이라 호칭한 신은 이 세상의 공중권세 잡은 자 사탄이요, 루시퍼다.
김수한 추기경+ 정진석 추기경이 구원에 관해 평소에 한 말이 있다 “ 우리가 등산할 때 정상에 올라가는 길이 여러 개가 있듯이 ‘하느님’은 여러 개의 길을 두어 각 민족마다 고유한 구원의 길로 자기에게 오게 하셨다 ” 무슨 말인가?
온 인류는 바벨론 언어혼잡 이후 전 세계로 흩어지면서 하늘 숭배 사상도 가져갔다. 때문에 하늘숭배는 전 세계 나라들의 전통적 토속종교가 된 것이다. 그들은 모두 하늘을 하느님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화 드라마를 보게 되면 소원을 빌 때 어려운 일을 당할 때 “ 하늘이시여! 하느님! 하늘의 뜻이다!. 천지신명이시여! 삼신이시여! ” 등의 말을 많이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하늘을 유일한 절대자 신으로 보았기 때문에 하늘님-하느님이라 호칭한 것이다.
하늘에는 해-달-별-바람-비-눈-이슬-서리-무지개-천둥-번개-벼락 등이 있다. 이 모든 것은 하늘이 품고 있다. 그래서 이 모든 신을 품고 있는 최고의 신이 하늘인데- 존중의 표시로 님자를 붙여 하늘님-하느님이라 부르고 섬기게 된 것이다. 그래서 무당까지도 잡신까지 주관하고 있는 최고의 신 즉 잡신들의 수장은 "하늘님"-"하느님"이라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추기경들의 “ ‘하느님’은 여러 개의 길을 두어 각 민족마다 고유한 구원의 길 ”
“여러 개의 길?” “각 민족마다 고유한 길” 이게 무슨 말인가 ?
이것은 분명 각 나라마다 각 민족들이 섬기고 있는 고유한 전통적인 신이 있는데 그 하느님을 섬겨도 구원이 있다.“ 는 말이다. 각 민족마다 고유한 신이 하느님이니 이 지구촌에 얼마나 많은 하느님이 존재하는가. 그런데 그 하느님을 믿어도 구원이 있다? 얼마나 비성경적인 주장인가.
행4:12-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천주교 십계명 중 1계명에
“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공경할欽. 높힐崇)하라”
‘ 한 분‘ ‘하느님’ 이란 ‘모든 잡신들의 수장급 개념’이로서의 ‘한분’으로 하늘에 있는 하느님’ 사탄을 의미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각 나라마다 각 지역마다 각 개인마다 섬기는 최고의 신 하느님이 있는데- 그들 나름대로 그 하느님은 단 한 분밖에 없는 최고의 신이요 절대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천주교에서 한분 하느님이라 했을 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들어야 한다. 이 지구촌에는 각 나라마다 얼마나 많은 하느님이 존재하겠는가! 각 나라마다 모든 잡신들의 수장은 하느님이다. 그 잡신들의 수장인 하느님(사탄)을 성경 속 하나님으로 알고 섬기면 구원이 보장된다? 이게 얼마나 비성경적이고 사탄적인가!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경고하셨다
출20:3에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여기서 다른 신들이란 무엇을 말하겠는가! 하늘에서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의 호칭을- 여호와의 호칭과 비슷하게 해서 많은 영혼들을 미혹하여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는 그 “ 하느님들‘을 마음에 두고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욥31:26-27= 언제 태양의 빛남과 달의 명랑하게 운행되는 것을 보고- 내 마음이 가만히 유혹되어 손에 입 맞추었던가!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2. ‘하나님파’ 개신교
‘하나님’은 개신교의 심벌마크요- 천국을 상징하는 로고다. ‘하나님’하면 스스로 계신 여호와 신의 존재와 거룩하신 성품과 창조능력과 구속사역과 공의로운 심판과 천국과 지옥과 구원의 진리-성경 66권의 저자 등을 한꺼번에 떠올리게 하는 칭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란 심벌은 복음전파에 있어 서... 천국을 소개함에 있어서... 지상 최고의 광고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샤머니즘의 근간에 뿌리를 둔 하느님을- 성경 속 하나님으로 알고 믿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 민족이 오랫동안 자자손손 대대로 숭배해 왔던 잡신들의 수장인 ‘하느님’이란 호칭의 옷을 가져와 .. ‘여호와’께 이교도의 옷을 입혀 ‘하나님’이란 호칭으로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천주교에서는 많은 싣도들을 얻기 위해 그런 방법을 썼지만-목적이 선하면 방법도 선해야 하는 것이다. 목적이 성경적이면 방법도 성경적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하나에 전 인생을 거는 진정한 성도들은 하느님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불러야 하는 것이다.
E. 결론
기독교 하나님이란 호칭은 하나+님을 더한 숫자개념의 하나님도 아니고- 하날+님에서 ‘ㄹ’자를 빼버린 하늘숭배 사상에서 온 하나님도 아니고 - 하늘에 있는 신이 내 안에 들어오면 하나님이 된다는 유물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그런 하나님도 아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이란 칭호는 ‘엘로힘’ 즉 ‘유일한 참된 신들“ 성부-성자-성령‘ 존재 그 자체인 것이며- 영원한 신의 존재성과 거룩한 성품과 창조능력과 구속사역 등이 하나님이란 이름으로 압축돼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하면 성경 66권속에 기록돼 있는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일들이 다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란 호칭은 상천하지에 오직 딱 하나만 존재하기 때문에 신6:4. 신4:39. 갈3:20 등 성경 곳곳에서 ‘유일한...오직 하나이신...상천하지에 오직 하나뿐인... 오직 한분’ 등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근본 뿌리가 다른 하느님과 하나님을 반드시 구별하여 ‘샤머니즘에서 유래된 하느님이란 말을 사용하지 말고- 반드시 성경에 뿌리를 둔 하나님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기독교에서 사용한 ’하나님‘이란 칭호는 살아계신 참된 신 3분 하나님을 말하고 있는 엘로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이 엘로힘은 그 3분 존재 자체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또 이 3분 하나님 이름은 다 똑같이 여호와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9.7.31.수. [그리운소리]
첫댓글 https://www.youtube.com/watch?v=BAtNEnag7R4
하느님과 하나님.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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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에서는 히브리어가 써지지 않아 나오다 말고 있습니다
유튜브 [구원의 이정표]로 들어가시면 영상에 원어가 다 나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