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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 여기 있습니다"
여관주인이 건네준 열쇠들을 받아- 제레도크와 페드란은 각자 자신의 방을 향했다. 하지만, 미약한 촛불이 빛을 발하는 어둡고 좁은 복도에서 그들이 느낀 것은 피곤함이 아니라 위화감- 그리고 누군가의 시선이었다.
"........."
문을 열기 위해 열쇠를 손잡이에 넣으려다가 말고 페드란과 제레도크는 거의 동시에 돌아섰다. 누군가 이 긴 복도의 끝에서 고의적인 살의를 표하고 있었다. 복도엔 촛불이 다 켜져 있었겠지만, 저 뒷편은 누군가 끈 듯 고요함과 짙은 암흑에 잠겨있었다.
"누구냐. 어둠 속에 숨어 있지 말고 나와라."
페드란이 어둠을 노려보며 말했다.
곧, 피식 웃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일렁이는 촛불에 의해 뭔가 흐릿한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무엇인가가 계속 가까이 다가오자- 제레도크와 페드란의 눈에 정확한 형상이 드러났다. 딥블랙 머리칼에 붉은 빛을 띄고 있는 눈동자의 남자였다.
웃고있는건지 비웃고 있는건지 구별도 안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 남자는 오른손에는 검집에 든 칼을- 왼손에는 눈에 익은 검은 칼날의 검을 들고 있었다. 페드란이 자신의 칼 손잡이에 손을 대고 있었지만, 남자는 상관치 않은 듯 그 두 칼을 바닥을 향해 늘어뜨린체 위험하게 흔들며 걸어왔다.
"누구냐고 물었다."
페드란이 매섭게 노려보자, 남자가 칼을 들어올렸다. 페드란과 제레도크는 곧장 공격태새로 들어갔지만, 그는 단지 칼을 자신의 어깨에 툭- 하고 어깨에 얹을 뿐이었다.
"음, 저는- 아, 그래요. 용병이에요. 테네라라고 하죠."
"용병같은거- 구한 적 없는데?"
"성격 급하시긴. 전 이미 어떤 일을 위해 고용되어있어요. 고용주는..."
테네라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검은 칼날의 검을 쥔채 왼손을 들어올려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턱을 쓰다듬나 싶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차피 곧 죽어주셔야할 분들에게 말할 필요성 따윈 없겠지요."
말을 하는 그의 입가에 뭔가 은은한 미소가 깔렸다. 그리곤 자신이 들고있는 두 칼 중 검집에 들어있는 검을 허리 춤 고리에 걸었다. 그리곤 검은 날의 검을 양손으로 바로 잡았다. 검날이 똑바로 세워지자, 희미한 주홍빛에 글로리어스란 검명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헨리크씨의 글로리어스..."
"고용주가 헨리크일리는 없을텐데."
페드란이 어느새 검을 뽑아 테네라라는 남자에게 겨누고 있었다.
"뭐, 물론이지요. 하지만-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알려고 하실 것 없이-"
순간, 그의 붉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냥 죽어주시면 됩니다."
그 말을 신호음으로 글로리어스가 페드란을 향해서 깊게 찔러 들어왔다. 조금은 급작스러운 공격이었지만 페드란은 어느정도 예상했었는지 어렵지 않게 옆으로 피해냈다. ...어두운 복도에서 확실하게 보이는 것은 휘둘러지고 있는 글로리어스와 챠르펠의 반사광 뿐이었다.
어둠에서는 제대로된 전투가 불가능하다는걸 깨닫고는 제레도크가 인조각을 들고 스펠을 말했다.
"클래스 1 클래릭 크래프트- 페어리 파이어"
곧 높이 떠오른 인조각에 의해 푸른빛이 복도에 퍼지기 시작했다. 페드란과 테네라는 예상치 못한 빛에 순간 눈을 찌푸렸으나, 곧 마법적인 빛이라 눈이 부시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읏, 멍청아! 놀랬잖아!"
페드란이 테네라의 공격을 막아내며 외쳤다. 그리곤 재빨리 왼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젠장!!'
페드란은 주술을 외우려다 말고 이내 자신이 24시간 동안 주술을 쓰지 못한 다는 것을 깨달아 수인을 풀었다. 그리곤 재빨리 몸을 낮췄다.
붕-
글로리어스가 그의 머리위를 훑고 지나갔다. 페드란은 그의 옆구리를 향해 칼부림을 했다. 하지만, 챙- 하는 소리와 함께 공격이 저지당했다. 테네라가 어느새 왼손으로 허리춤에 찼던 검을 반쯤 뽑아 공격을 막았던 것이다. 페드란이 "칫-"하는 아쉬움을 토해내고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뒤로 물러서요."
가만히 뭔가 하고있던 제레도크가 페드란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 말을 듣고는 페드란이 미끄러지듯 뒤로 재빨리 물러섰다. 제레도크가 조용히 말했지만, 상대도 그 말을 들은 듯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제레도크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클래스 5 클래릭 크래프트- 플레임 스트라이크(Flame Strike)!"
제레도크가 황조각을 들고있는 자신의 왼손을 앞으로 뻗어내며 외쳤다. 곧 황조각이 검은 연기로 기화해 사라지더니 테네라의 머리위 천장에서 뜨거운 기운이 맴돌기 시작했다. 테네라가 그걸 깨달은 순간 화염이 그가 있는 곳을 내려쳤다.
화아악-
바닥에 흩어져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염은 벽지와 나무 탁자등을 빠른 속도로 갉아먹었다.
"죽었을까요?"
"글쎄."
약 10초정도가 지나도 반응이 없자, 제레도크가 뻗어있던 왼손으로 가방에서 성수를 꺼내들어 뿌리더니 짧고 조용하게 스펠을 중얼거렸다. 곧 빠르게 화염이 꺼져 연기만이 자욱했다.
"끝난 것 같군요."
제레도크가 손을 내리며 말했다. 하지만 페드란은 아직도 미심쩍은지 검을 거두고 있지 않았다.
빈 성수병을 가방에 넣으려고 제레도크가 고개를 숙인 순간- 갑자기 연기 속에서 무엇인가가 빠르게 달려나와 그에게 칼부림을 했다.
서걱
제레도크의 가방줄이 끊어져 가방이 바닥에 떨어졌다. 가방속에 들어있던 성수들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체엣-"
테네라가 그에게 치명상을 입히는데 실패하자 기분나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페드란이 제레도크의 카라를 잡아 뒤로 끌어냈던 것이다. 제레도크가 어떨떨함을 덜어내고 상황을 파악했을 무렵, 그는 페드란이 자신에게 뭐라뭐라 소리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죄송해요."
제레도크가 페드란의 뒤로 물러섰을 무렵, 테네라는 자신의 그을린 오른팔 소매를 털고 있었다.
"저는 소드 유저긴 하지만- 검 싸움엔 별로 자신이 없어요. 아직은 미숙하달까요."
물어본적도 없지만, 테네라가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리곤 왼손을 어깨높이로 들어올려 마치 매의 발같이 오므렸다. 빠른 속도로 마나가 일렁이며 푸른빛을 이뤄냈다.
"그렇기 때문에- 방해꾼은 싫어한답니다."
테네라가 자신의 상처입은 왼팔을 부여잡고 있는 제레도크를 쳐다봤다. 그리곤 들리지도 않게 읊조리고있던 스펠을 끝내고 시동어를 중얼거리더니, 광적인 웃음을 터트리며 공을 던지듯 왼손을 휘둘렀다. 푸른 흔적을 남기며 페드란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간 아주 작은 마력구는- 제레도크가 미처 쉴드를 펴기도 전에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페드란의 뒷편을 완전히 박살냈다. 곧 멀쩡하던 페드란 앞쪽의 유리창들도 후폭풍에 모조리 깨어져 날아갔다.
".......!!!"
페드란은 처참한 주변의 몰골에 할 말을 잃고 멍청히 무너져내린 복도를 내려다봤다. 뻥 뚫린 공간으로 내려다보이는 아래층 복도는 연기가 자욱했고, 그 먼지 사이로 제레도크의 모습이 어슴프레하게 보였다.
테네라는 단지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페드란은 현재 상황으로서는 제레도크를 데리고 물러나는게 좋을 듯 했거라 생각했지만- 앞의 상대가 쉽게 보내줄 것 같지 않았다.
'...일단은 별 수 없지.'
그는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있는 연막탄을 손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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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가 저의 레어입니다."
브리젠드가 길고 긴 입구를 통해서- 마법으로 밝혀져있는 커다란 동굴로 모두를 안내하며 말했다. 적당한 습기- 편한한 느낌의 주홍색 계열 가구들과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는 내벽.
"이 동굴은 입구가 성인 한 두명밖에 못 다닐 정도로 좁고 구석진데에 숨겨져 있어서 외부의 침입자들이 거의 없죠."
그가 자신의 책장을 뒤적거리며 말했다. 트레스티아와 네이픈은 의자에 앉아 엄청나게 높은 저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청나게 넓네요."
네이픈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는 천장이 얼마나 높은 걸까 생각하며 눈짐작으로 재어보고 있었다.
"한 70m되요."
브리젠드가 그의 모습을 보고 말했다.
'자연적으로 이렇게 높은 동굴이 존재하는게.. 가능할까?'
네이픈이 마치 빠져들 듯한 천장을 향해 손을 뻗으며 생각했다. 위로 갈수록 조금씩 좁아지는 타원 뿔 형태를 가진 동굴 천장은- 자신이 자연적으로 만들어 진게 아니라고 무언의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자, 찾았습니다! 제천오행사!"
브리젠드가 뭔가 나무조각 비슷한 것을 들어 보여주며 말했다. 그는 그걸 들고 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이게 그..?"
"그냥 나무 조각으로 보이는걸요. 땔감으로 쓰기엔 딱 좋아보이지만서도."
네이픈이 제천오행사를 살펴보며 말했다.
"땔감으로 쓰기엔- 너무나 아까운 물건이지요. 아무렴요."
그는 트레스티아에게 건내주려는 듯 제천오행사를 내밀었다. 하지만 트레스티아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브리젠드씨가 가지고 있어주세요. 저보다는 브리젠드씨가 가지고 있는게 안전할테니까요."
"하지만 이걸 가지러 온게 아니었... .........."
브리젠드는 말을 하려다가 말고 순간 트레스티아와 네이픈에게서 읽혀지는 생각들에 말을 잃었다.
'그러지말고 그냥 같이 가죠, 브리젠드씨'
'드래곤이 함께라면 몬스터를 만나도 안전할텐데'
"............."
브리젠드는 어울리지 않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제천오행사는 쏙- 하고 그의 로브 주머니로 들어갔다.
...브리젠드의 레어에서 볼일을 끝낸 그들은- 좁다란 입구를 통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 때- 한창 나가던 트레스티아의 머릿속에 뜬금없이 네이픈의 존재에 대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러고보니, 네이픈씨. 괜히 상관도 없는 위험한 일에 네이픈씨를 말려들게 하는게 아닌가 싶네요."
"아, 아니에요. 함께 다니면서 제 예상이 확실해지고 있어요."
말을 하는 그의 시선은 자신의 앞에 걸어가고 있는 브리젠드에게 집중되었다. 그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것은- 복수심였다.
"어서 도망가라!"
주변은 온통 시끄러웠다. 마을은 쑥대밭이 되어 불타오르고 있었고- 울창한 나무 너머로 날카로운 날개를 가진 검은 실루엣의 생명체들이 빠르게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그 것들은 붉은 불덩이를 뿜어내 마을을 불태우고 모두를 죽이고 있었다.
"당신은요!?"
한 아이를 감싸고 있는 여자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숲 언저리를 울렸다.
"그들은 내 생각을 읽을 수 있어! 곧 내 위치를 알아낼거야! 그 전에 어서 도망ㄱ... ......!!!"
갑자기 남자의 뒤에 큰 불덩이가 떨어져 폭발을 일으켰다. 남자는 그 폭풍에 튕겨져 여자의 근처로 날아와 바닥을 굴렀다. 여자가 그 모습을 보곤 아이의 눈을 가리며 날카로운 비명을 토했다.
"바트씨. 레일리아씨. 계약을 위반하고도- 살아남을 줄 알으셨어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와 남자는 그 목소리에 움찔하며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쳐다봤다.
아이는 보고 있었다. 여자가 움찔하느라 완전히 가려지지 않은 자신의 시야를 통해서. 긴 귀와- 진초록 머리- 그리고 날카로운 날개를 가지고 기분나쁜 웃음을 짓고 있는 존재를...
'틀림없어. 저 긴 초록 머리. 생각을 읽는 능력... 그리고 지금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네이픈이 주먹을 꽉 쥐었다. 힘이 들어간 그의 주먹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트레스티아씨도 있으니 지금은... 무리일까.'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의 눈 앞에 그토록 찾아해매던 존재가 있음에도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능력이 미웠다.
'하지만 누구인지는 알았잖아. 역시 드래곤일거라 생각했던 내 예상이... 맞았어.'
날카로운 날개. 그 능력. 분명 모든게 확실해보였다. 하지만- 이내 '계약'이라는 단어에서 자신감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드래곤들이 인간과 계약을 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걸...
BGM :: Wondering :: 클릭
레어에서 나가자- 해는 지고 있었지만, 이미 나무로 둘러쌓인 이 숲은 반쯤 어둠에 잠겨있음을 알 수 있었다.
"벌써 해가 졌군요. 마부가 기다리고 있을테니 어서 내려가죠."
트레스티아가 지고있는 태양을 주시하며 말했다. 조금 내려가던 그들은, 곧 브리젠드가 그들을 저지함으로 그 자리에 멈추게 되었다. 이미 해는 져서 사방에 어둠이 내려와 브리젠드의 마법에 의지해 내려가던 그들은- 브리젠드가 길을 막자 의아해했다.
"...왜 그러시죠, 브리젠드?"
"손님들이 와있군요."
브리젠드가 그렇게 말을 하자 어둠의 막을 걷어내듯-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손님이라 불린 존재들은- 세명 정도였다.
"읏...!"
순간 익숙한 느낌에 자신의 심장을 부여잡은 네이픈. 그는 눈살을 강하게 찌푸리며 아직도 실루엣에 불과한 셋을 노려봤다.
"여기 있었군요, '계약 위반자' 네이픈씨."
실루엣에 불과했던 그들 중 하나가 입을 열어 뜬금없는 말을 하더니 이 곳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흡사 박쥐날개 같은 날카로운 날개를 가진- 긴 귀와 어려보이는 얼굴과 키. 보라색 빛이 도는 긴 꼬랑지 머리의 남자. 딱히 그의 길고 날카로운 손톱만 뺀다면 위협할만한 흉기는 없어보였다.
"...마족?"
트레스티아의 말에 그 남자는 그녀를 쳐다보더니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레이디. 2급 마족- 네루게일이라고 합니다."
"인사같은건 필요없어, 네루. 난 돌아가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어."
네이픈이 자신의 칼을 겨누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루게일이라 불려진 마족남성은- 네이픈이 든 검을 손으로 밀쳐내며 한숨을 내뱉었다.
"이 네루는 슬프답니다. 주인님께서 당신이 오려고 하지 않는다면 당신을 죽이라는 명령을 하셨어요. 슬픈 일이죠."
그가 눈물을 닦아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그리곤 네이픈에게 다가서며 계속 말을 이었다.
"전 당신이 죽는걸 원하진 않아요. 왠만한 우리 마족보다도 뛰어난 그 능력. 이 네루는 당신의 그 점을 높이 사고 있답니다. 예전처럼 다시 우리들과 함께 해줘야겠어요."
"아직 나는 여기서 아무런 답도 얻어내지 못했어. 돌아갈 수 없어."
네루게일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고개를 숙여 자신의 긴 손톱을 다듬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아아, 바트씨가 보시면 슬퍼하실 거에요."
"...아버지 얘기는 꺼내지 마. 아버지에 대해서 아는 것도 하나 없으면서. 너희가 계약만 잘 지켜서 그 때 우리마을만 지켜냈어도..."
네이픈이 인상을 썼다. 그의 칼이 가늘게 떨렸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바트씨가 분명히 당신에게 한 말이 있을텐데요. 기억해봐요."
"말?"
"그래요. 분명히- 당신이 13살 되던 해에- 바트씨가 당신의 어깨를 잡고- 눈물을 흘리시면서 말씀하셨었잖아요."
"미안하다... 네게 못할 짓을 했구나... 하지만 아버지같은 일은 하지 말거라..."
중년의 남자가 피로 그려진 마법진 중앙에 서있는 아이의 어깨를 부여잡고 흐느끼며 말했다.
"......아버지... 같은... 일?"
"그래요. 기억 안나세요? 아버지는 그 후에 계약 위반을 하셨잖아요. 그래서..."
그가 말을 하다말고 끝을 흐리더니- 다듬고 있던 손톱으로 목을 빠르게 긋는 시늉을 했다.
"설마..."
"그래요. 그는 당신의 영혼을 우리 악마에게 종속시켰지요. 그게 당신 마을의 내려오는 관습. 그렇게 당신 마을은 우리 마족의 보살핌 아래 번창했고 지켜졌었습니다. 하지만- 마을은 우리를 배신 했지요. 고마움도 모르고."
네루게일의 눈초리가 갑자기 날카롭게 변했다.
"아버지는 당신만은 계약위반을 하지 않길 원하셨던 걸 겁니다. 자신도 그래서 죽었으니까요."
"...설마... 너희가 우리 마을을... 그리고 우리 가족을..."
네루게일이 씩 웃었다.
"모르셨나요?"
네이픈이 갑자기 그 자리에 풀썩 무릎을 꿇어앉았다. 주변에서 언제 적대적으로 변할지 모르는 네루게일을 경계하고 있는 그들은- 네이픈에게 함부로 다가갈 수 없었다.
"그... 그것도 모르고... 너희에게서 힘을 얻기 위해... 내 원수들에게 영혼을 파는 계약을... 했던건가..."
네이픈은 반쯤 정신이 나가보였다. 네루게일이 그에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뭐, 저희도 그 일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었답니다. 하지만 바트는 당신에게 분명히 계약위반을 하지 말라고 했지요. 자, 어서 우리에게로 돌아와요. 아버지는 당신마저 죽는건 원하지 않을거에요. 지금이라도 돌아오면 계약위반했던 것- 주인님께서 모두 잊어주신다고 하셨어요. 우리에겐 아직 당신이 필요하답니다."
"아니... 그게 아니야."
"예?"
네이픈이 일어나며 말했다. 그는 네루게일에게 공개적으로 살의를 뿜어내고 있었다.
"너희와 계약 따위- 하지 말라는 말씀이셨어.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난... 난...!!!"
네이픈이 네루게일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휘둘러진 그의 검은 서슴없이 네루게일을 두동강내버렸다. ...하지만- 그의 육신은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마치 연기처럼 떨어진 두 육체가 다시 달라붙었다.
"멍청한짓 하지 말아요, 네이픈. 네루는 당신을 죽이길 원하지 않는답니다. 당신에게 위해를 가하는것도 싫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네요. 힘을 써서라도 데려가는 수밖에. 좀 많이 아프시겠지만... 이 꽉 물고 참으세요."
그의 단절됐던 육신이 다시 완전히 붙자- 그가 오른손을 뒤로 뻗었다. 그리고- 트레스티아와 브리젠드가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네루게일의 손이 네이픈의 국부를 관통해 나갔다.
네루게일의 오른팔 전부가 그의 국부를 뚫고 나올때까지- 그 자리 아무도 외마디 단어조차 뱉어내지 못했다. 네이픈의 손에서 칼이 떨어지고- 네이픈의 상체가 들릴 듯 말듯 한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내며 자신의 팔 위로 힘을 잃고 넘어져 매달리자, 그제서야 네루게일이 그의 국부에서 자신의 팔을 빠르게 꺼냈다. 네이픈은 이미 죽은 것 같이- 바닥에 힘없이 널부러졌다.
네루게일의 손에서 붉은 피가 뚝- 뚝- 떨어졌다.
흘러나왔다. 바닥에 쓰러진 네이픈의 말없는 육신에서 붉은 생명의 통화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매말른 흙 바닥을 적셨다.
"...무슨 짓을!"
브리젠드가 그들에게 호통치듯 소리쳤다.
"아아, 네루도 이런 짓은 하기 싫다고요. 하지만 죽이진 않았어요. 네이픈씨는 우리 악마와 계약을 한 상태라 심장만 다치지 않으면 죽지 않아요. 네루는 누군가를 죽이는걸 싫어한답니다."
축 늘어진 네이픈을 자신의 어깨에 업으면서 그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
갑자기 가려다가 말고 그 악마가 브리젠드를 쳐다봤다. 꽤 오랜시간 둘은 눈싸움하듯 서로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가- 이내 네루게일이란 악마가 뒤돌아서며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이런 곳에 숨어 있었군요, 그린 르 수스팔레브. 다음에 만나면 당신을 오늘처럼 그냥 보내진 않을겁니다."
그들은 브리젠드나 트레스티아가 뭐라 하기도 전에- 네이픈과 함께 어둠의 기운에 휩쌓이더니 사라져버렸다. ...바닥엔- 이미 사라져버린 네이픈의 다 부러져가는 칼과 핏자국- 그리고...
"...목걸이."
트레스티아가 대왕오징어의 이빨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목걸이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한번 보고 싶네요, 바다라는 곳. 하늘 끝과 맞닿는, 커다란 호수라...'
End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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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음. BGM이 잘 어울리는군. 꽤나.
슬퍼..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