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 전 1500년부터 유럽 대륙에서 아리아인 ( 백인 )이
네팔과 인도에 들어오기 시작해서 그 아리아인 왕조가
네팔과 인도를 대부분 장악하면서 통치 수단으로
카스트제도를 만들있다.
카스트는 포르투갈 말인데
네팔과 인도에서는 카스트가
색상의 뜻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색깔이 없는 아리아인
백인들은 브라만이나 크샤트리아 상류층 신분이 되고
색깔이 있는 네팔이나 인도
원주민들은 농민과 상인으로
이루어진 바이사, 노동을 하는
천민 수드라 등 하위 신분으로
전락시킨다. 네팔의 룸비니에서
태어난 석가모니 역시 아리아인
후예였고 석가모니 제자들도
모두 백인들었다 한다.
히말라에서 우리 짐을 지던
포터도 하나는 아리아인 백인이였고, 하나는 유색 인종이었다. 네팔은 현재
카스트와 무관한 생활을 하고
있고 인도는 1950년에 한법에서 카스트 제도를 삭제했단다.
네팔의 문자는 알파베트가
인도와 같으나 말은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단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지배할 때 네팔은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부여 받았는데 그것은
네팔 왕이 국민 16세부터 끝까지 항전하겠다는 결의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영국으로
가지고 갈 물산이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나라, 차도
들어가지 못하는 험준한
히말라야 산맥에서 전쟁을
해봤자 피만 흘리지 아무런
소득이 없겠다는 영국의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네팔은 무역 의존도가 인도에 너무 편중되어
있다고 한다. 시커먼 매연을
뿜어대는 버스들은 인도에서
사용하던 중고차를 수입해서
운행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네팔은 13세기까지 24개의
왕국이 있었다고 하니 왕만
24명이 존재했던 셈이다.
1996년부터 10년간 마오주의
공산당 반군을 이끌며 네팔
왕정과 내전을 이끌었던
카말 다할( 전 총리 )에 의해서
2007년에 네팔의 왕정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호텔을 출발한 차는 한참을
달리다 계속해서 산으로
올라가는데 마치 그 옛날에
강원도 대관령을 넘어갈 때
굽이굽이 고갯길을 연상케한다.
1시간30분 지나서 도착한 호텔은 해발 2000미터에 위치해 있는데 주변에도
호텔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바로 옆 호텔에서는 밴드와
함께 음악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일출의 명소라고
알려진 이곳으로 올라오는
내내 각종 팬션과 마을들이
산재해 있다. 네팔에서는
해발 2000미터까지는 평지로
본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산속에 촘촘히 박혀있는 집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다.
네팔에는 해발 5000미터가 되는 이름도 없는 산들이 수없이
많다고 한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살고 있다는 행색이
아주 남루한 젊은 부부가
네팔의 관광 명소 사진이
들어 있는 책자를 13달러에
팔고 있어서 한권을 사줬는데
영어로 세일을 제법 잘한
덕택이었다.
네팔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가르치기 때문에
국민 대부분이 기본적이 영어를
할 줄 아는 것 같았다.
포카라의 촘농 출신 아짐씨도,
맛사지를 하는 사회 초년생
아가씨도, 우리 짐을 지고
다녔던 포터들도 영어로
의사소통을 잘한다.
이 동네에도 막걸리를 만들어
파는 곳이 있다고 해서 가이드
치링이에게 사오라고 했더니
날이 어두워져서 못찾았다고
해서 와인과 맥주로 네팔에서
마지막 밤에 이야기 꽃을 피웠다
아침에 일어나 베란다로 나가니
안개가 자욱해서 아름다운 일출은 불발로 끝났다.
식당에는 우리 4명을 제외하고
포르투갈 사람들로 꽉 찼는데
모두가 직장에서 은퇴하고
단체로 관광나온 것 같았다.
안나푸르나에 갈거냐고 물으니
아니란다. 우리는 갔다 왔다고
했더니 very strong하며
엄지척을 한다. 호텔을 출발해
카투만두 시내로 들어오다가
박타푸르 ( BHAKPUR )에
들렸다. 박타푸르는 카투만두
계곡의 3대 도시 중 하나이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고 한다. 입장료는
15달러로 비싼편이었다.
박타푸르는 중세 시대에 전체
카투만두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되어 온 도시였다.
특히 12세기에 만들어진
더르바르 ( Durbar ) 광장은
카투만두 계곡의 유네스코
문화 유산중 하나로 선정됐다.
포루투갈 사람들도 박타푸르를
관광하려고 그 호텔을 선택한
것 같이 생각되었다.
1시간 동안 문화해설사와 함께
둘러보았는데 주마간산격이다.
이런 곳은 좀 더 많은 시간을
두고 찬찬히 들여다 볼만한
곳이었다. 박타푸르를 뒤로 하고 카투만두 시내로 들어오면서 네팔에 대해
생각해 본다. 바다가 융기해서
히말라야산맥이 생기다 보니
큰 산만 많았지 그 속에는
석회암 외에는 아무것도 없단다
자원 빈국인 것이다.
산이 너무 높아서 사회간접자본인 도로 개설이
어렵고 비용도 훨씬 많이 든단다. 전기시설도 턱없이
부족한 이 나라가 후진국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세월이 흘러야 될 것 같았다.
카투만두 한국사랑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14일 동안
함께 했던 가이드 치링이와도
해어질 시간이어서 우리 총무가
공식 팁을 50달러를 주고 내가
별도로 30달러를 주면서 한국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했더니
나하고 개인 톡을 할 수 있도록
핫나인을 설정해놓는다.
짐을 가지러 호텔로 들어가니
여행사 사장이 호텔 로비에서
2023.10.2 ㅡ 2023.10.15에
안나푸르나 완주했다는 기념패를 수여하고 하얀 천으로
만든 목도리 같은 것을 4사람
목에 둘러준다.
우리는 모든 일정을 마치고
카투만두 공항에 도착했는데
두바이로 근로자로 떠나려는
네팔 사람들, 한국으로 산업연수
가려는 네팔 청년들, 한국과
일본으로 일자리를 찾아서
가려는 네팔의 아기씨, 아짐씨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네팔의 산업 전사들이다.
이들 모두에게 행운이 있기를
빌어본다. 우리는 다음 날
새벽 인천공항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