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기다리던 중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얼마나 기다렸던가? 많은 선배 목사님을 통해서 중국교회의 부흥에 대해 귀가 따갑도록 들어 왔던 차였다.
기대 반 설레임반으로 내 온 몸의 신경이 아드레날린의 분비물로 넘치는 듯했다.
인천공항에서 중국 훈춘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잠시 생각에 잠겨 본다.
중국! 과연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내가 아는 간단한 정보론 이렇다.
중국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나라로써 세계 최고의 산맥과 고원이 있다.
세계인구의 21.3%로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이며, 대부분이 물 사정이 좋은 중부와 동부 해안지방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민족구성은 한족이 약 92%로 중국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약 8%의 소수종족이 살고 있다.
공식적으로 소수 종족은 55개로 알려져 있으나 종족언어 집단의 실제 숫자는 150여 종족에 달한다고 한다. 문자 해독 율은 73%이고 공영 어는 만다린인데 5개 자치구에서 지방어가 주로 쓰인다.
전체 언어는 142개에 이른다. 수도는 북경이고, 전 국토의 37%가 도시화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는 중국 훈춘은 어떤 곳일까?
중로, 중조 국경의 접경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훈춘 시는 중국에서 유일한 중국, 로씨야, 조선 3개국 국경인접도시이다. 훈춘시의 국토면적은 5120평방키로메터, 인구는 25만 명이며 22개 민족이 살고 있다. 그 가운데 조선족이 41.9%, 한족이 48.5%, 만족이 9.2%를 차지한다.
훈춘 및 두만강하류지구는 동북아 각국의 결제를 상호보완 할 수 있는 요충지이다.
이 곳은 국제화한 인적, 물적, 자금, 정보유통센터로 건립하고 산업개방 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유엔 개발계획서에서는 훈춘 개발을 지원프로젝트 1순위로 확정하고 20년 동안 300억 달러를 추자하여 이곳을 동방의 이나 북방의 으로 건설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곳이다…….
중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일까?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중국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중국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한다.
누구든지 교회에 가고 싶으면 교회에 가고 절에 가고 싶으면 절에 갈 수 있는 자유가 중국 헌법에 명백하게 명시 되어 있다.
그런데 중국 헌법은 누구든지 종교를 가질 수는 있지만 단 18세가 넘어야 된다고 못 박고 있다. 중국에서는 18세 미만의 사람에게 전도하거나 종교 모임을 갖는 것이 법으로 금지 되어 있다. 중국 정부가 말하는 이유는 이것이다. 자기 판단 기준이 없는 18세 이전에 종교를 선택하면 실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8세 이전에 “중국사회주의 인민 이론”을 확실히 가르쳐 놓으면 18세 이후엔 어떤 사상과 논리가 들어가도 그들의 근본 바탕이 변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찌 보면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성경에서도 이런 말씀이 나온다.
잠언 22장6절에 보면 “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서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 어린 시절에 무엇을 배우느냐? 어린 시절에 무엇으로 도전을 받느냐?
그것이 그 사람의 일생을 결정하지 않는가?
바로 그것을 노리고 있는 중국의 교묘한 종교 차단 정책을 보고 온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런 저런 일들을 유추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연길 공항에 도착했다.
여기저기 짐을 챙기고 있는 가운데 벌써부터 공기가 다른 듯 했다.
따지고 보면 중국은 공산국가 아닌가?
여권심사와 검사를 하는데 사람을 여기저기 쏘아보는 눈초리가 숨이 탁하고 막혔다.
어렵사리 모든 순서와 절차를 마치고 나가는데 갑자기 “와아아~~” 과도한 바이브레이션이 터져 나왔다. 중국 광명가 교인들과 조영강전도사님, 사모님, 선교사님 내외분들께서 마중 나오셨던 것이다. 할렐루야~~ 어찌나 반가운지 덩달아 나도 비명을....^^;
대형버스에 몸을 싣고 광명가 교회로 향하는데,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가는 곳곳마다 산과 들과 강의 경치가 엄청 뛰어났다. 그 중에서 한 가지 확실히 느끼는 것은 중국이라는 대륙이 정말 엄청나게 넓다는 것이다.
가는 도중에 두만강이 보였다. 그러자 갑자기 “ 두만강 푸른 물에”이란 노래를 생각하며 두만강 물이 푸르게 넘실거리며 흘러갈 줄 알았는데 현장에서 본 두만강은 발이라도 담가 볼 마음이 없을 정도로 오염된 흙탕물이었다. 에공 -_-;
두만강을 가로질러 놓여 있는 다리가 “도문다리”라고 하는데 중국과 북한 땅의 경계선이 그려져 있었다. 두만강 건너 북한 땅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50년을 가지 못하고 남북이산가족들의 눈물겨운 사연들이 많지마는 북한 사람과 중국 사람들은 통행증만 있으면 왕래할 수 있다고 한다.
왜 한 핏줄은 오고가지 못 하는가 슬픈 눈물이 앞서기도 하였다.
도착하자마자 광명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곳에선 또 하나의 경이로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광명가 교회의 예배였다.
다 쓰러져 갈 듯한 그야말로 낡고 초라한 집을 개조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교회가 매우 협소하고 너무나 좁아서 나머지 성도들은 밖의 뜰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부족해서 창가 쪽에는 고사리 같이 애들이 기웃거리며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아.아.아.. 나는 보았던 것이다.. 그 안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말이다. 내 안에는 형용할 수 없는 눈물이 주체 없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오! 하나님!~~ 오! 하나님!..... 이 죄인을 긍휼히 여기소서…….
부흥하는 교회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으니 그것은 찬양의 열기가 뜨겁다는 것이다.
광명가 교인들의 독특한 몸짓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열망이 곳곳에 느껴졌다.
그러나 찬양하는데 어찌 벧엘 청년들이 가만히 있으랴?
아니나 다를까 이어서 벧엘 청년들의 찬양이 있었다.
특히 벧엘 청년들의 중국어 찬양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어찌나 열심을 다해 준비해 왔는지 그들의 열정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말할 것도 없이 벧엘 청년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목숨 거는 청년이었다.
청년들의 눈 속에, 그 들의 몸짓 속에, 하나님을 향하는 열망이 느껴졌다.
보는 내 마음도 덩달아 뜨거워졌음은 물론이다.
목사로서 이들의 열정이 한 없이 부러웠다.
문득 우리 벧엘 농아인 청년들이 생각이 났다. 왜 이리 새삼스럽게 그들이 보고 싶은지, 너무나 미치도록 그리워졌다.
역쉬 난 농아인 목사인가 보다...
우리 벧엘 농아인 청년들에게도 이런 찬양의 열정이 살아났으면 한다. 그들에게도 이런 현장을 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랑한다. 벧엘 농아인 청년들이여~~
둘째 날 저녁 예배는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나를 위한 예배 였다고 말하고 싶다.
나의 마음이 말할 수 없는 성령의 탄식으로 녹아 가고 말았다.
하염없이 탄식하는 내 영혼의 아픔을 하나님은 아셨다.
말할 수 없는 성령의 위로하심이 내 안에 흘러 넘쳤다.
바로 특별 수화 찬양 때 였다. “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 난 사람 ” 이란 수화 찬양이 있었다.
난 거기서 청년들의 수화 찬양을 보고 말 할 수 없는 설움과 눈물이 내 시야를 가렸다.
우리 농아인 들은 수화 찬양을 별로 달가와 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듣지 못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보면 이해한다.
그러나 나는 알게 해 주고 싶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와 같은 농아인 들의 수화 찬양도 받으시고 계시다는 것을…….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많은 청년들이 뜻을 품고 왔지만 다들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간 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알게 모르게 나도 지쳐 간다. 가르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지만 듣는 것만큼은..... 찬양을 가르치는 것은....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말로...이것이..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런 생각도 해본다. 차라리 수화를 잘하는 일반 목사가 들어왔다면 우리 벧엘 농아인 청년들에게 뜨거운 찬양을 심어 주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오 주님! 당신께선 왜 이렇게도 부족한 나를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셨습니까?”
나는 수화 찬양의 시간에 속으로 얼마나 절규하고 절규했는지 모른다.
마치 주님께서 십자가를 져야 할 시간이 왔을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가 생각난다.
“주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소서” 내가 그 심정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 마음을 만지시는 것이 아니신가?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없는 내 안에 하나님의 평안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내 입술의 기도가 나 자신도 알수 없는 말들로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안에 짧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누가 이들을 위하여 나를 위하여 갈 것인가?”
아아 난 갑자기 머리부터 발끝까지 엄청난 전율이 느껴졌다.
그리고 외쳤다. “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왜 이런 고백이 나왔는지 그 때 일을 지금 생각하면 풀리지 않은 의문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장애인들을 마음을 누구보다도 아파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장애인의 영혼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계시며 지금도 장애인들의 아픔 때문에 우시고 계신다는 것이다. 감히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눈물을 공유할 수 없지마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주님은 내가 아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르지만은 나는 느낀다. 이 광명가 교회 찬양 예배를 통해서 나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숨결을 말이다.
벌써부터 설레이기 시작한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하나의 비전이 생생하게 내 마음속에 그려지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망으로 가득한 찬양의 예배가 지금의 광명가 교회 예배 보다 상상 할 수 없는 은혜가 오리는 것이다.
이 땅의 소외 받고 있는 여호와를 향한 청각장애인들의 불꽃같은 찬양이 울려 퍼질 날을 말이다.
오, 예수여 오시옵소서!! 속히 오시옵소서!! 대망의 여호와의 날을 사모합니다!!
셋째날은 아쉽게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예배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기억한다. 이틀 동안의 예배를 통해서 내가 만난 하나님의 숨결을 말이다.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눈물을 보았고, 향후 농아인 뿐만 아니라 장애인을 향한 하나님의 기쁨의 날이 도래할 것을 말이다.
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이제는 이 세계에 장애인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부흥의 불씨가 타오르게 하옵소서!!
장애인을 향한 하나님의 눈물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게 하소서!!
참으로 아쉽고 아쉬운 모든 일정을 정리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제는 냉철하게 목회자로서 중국교회의 향후 5년 10년을 추론해 보았다.
그 하나는 앞으로의 세속화가 중국교회에 큰 어려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사실 교회는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중국 가정 교회는 수차례 핍박을 받았다. 그러니 오히려 외부에서의 공격과 핍박은 교회내부를 더욱 하나 되게 하였다. 아울러 성경 말씀으로 돌아오고, 더욱 주를 의지하고, 영적으로 강건하게 되었다.
이것은 왜 가정 교회가 과거 20, 30년간 각지로 퍼질 수 있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예전에 한 선배목사님의 말씀이 생각이 난다. 선배 목사님이 시골로 갔을 때는 등불, 길도 없었으나 복음은 곳곳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사이 몇 년 동안 생활이 나아지고 있어 이 교회 또한 큰 도전을 받게 될 것을 피부고 느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이 세속화의 물결을 대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도전은 물질 환경의 유혹이라고 불 수 있다.
이는 중국교회에 겪은 감옥에 대한 공포를 능가하며 심지어는 중국교회를 핍박하는 정치세력보다 그 위험성이 강하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일찍이 “너희들이 나를 섬기지 않으면, 맘몬을 섬기는 것이다.” 라고 했다. “맘몬”이라는 히브리어는 “금전, 재화”를 뜻한다.
금전이 주는 사람의 마음에 대한 유혹과 부패는 아주 강력하다.
또한 내가 듣기론 중국의 지식인들은 “개인주의”를 강조하며 자기중심의 사고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국가적 이상주의는 그들에게 있어서 너무 뜬구름 잡기식이어서, 그들은 개인의 현실만을 생각 할 뿐이다. 공리주의로 가는 추세가 아주 뚜렷할 뿐 아니라 “다원화”의 경향도 가세하여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다원화”만 있을 뿐이므로 각자는 자신의 감정에 따라서만 살기에 “내가 좋아하기만 하면 안 될게 뭐가 있어!” 라고 여긴다.
그 밖에 대학생들 가운데 가장 위험한 그림자는 “실업”이다. 대학졸업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보장 할 수 없고, 많은 졸업생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했고, 혹은 자기 맘에 들지 않아서 이기도하다.
이러한 시대적 현상은 졸업한 이후 “할일없는” 많은 수의 현상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이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주는 여향 또한 크다.
학교에서의 인터넷의 보편화는 말 할 필요도 없고, 도시의 개인 컴퓨터, 보급도 상당히 보편화 되어 있고, 농촌의 시골에도 을 볼 수 있다.
젊은이들은 수중에 조금의 돈이 있으면 바로 PC방으로 달려간다.
나 개인적으로도 위에서 기술한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교회가 직면한 이런 위기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그 속에서 기독교적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 역사관을 잘 나타내어야 할 시기가 아닐까 싶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중국 교회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첫댓글 무엇인가 한마디 해야 하는데....아무 말도 할수가 없습니다. 그저 부끄러울뿐 ......ㅠㅠ"
목사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저도 중국선교를 다녀 왔지만 또 다른 감동과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 동기들과 함께 갔으면 좋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