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전례 - (정의철 신부)
미사의 구조 : 말씀 전례 (1)
말씀 전례는 예물봉헌 예식부터 시작하는 성찬 전례와 더불어 미사의 골격을 이루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말씀 전례의 중심부분은 성서에서 취한 독서들과 그 사이에 오는 노래로 구성되며 이어지는 강론, 신앙고백 및 보편지향기도(신자들의 기도)는 중심부분을 발전시키고 끝맺는다(미사 전례서 총지침 55항). 즉 말씀 전례의 중심은 하느님 말씀이기에 성서 봉독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모든 말씀 전례, 특히 미사에서의 말씀 전례는 그리스도 생애의 사건, 그 장면의 신비, 그 때 그 장소를 상기시킴으로써 기념하는 것인데,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 전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이다.
수많은 교부들이 미사 중의 말씀 전례가 갖는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아를르의 체사리오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몸보다 덜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으며, 성 암브로시오는 "우리가 성찬의 잔으로부터 성혈을 마시듯이 성서라는 잔으로부터 그리스도의 피를 마신다"고 하였다. 또한 보다 전형적인 교부들의 충고는 손으로 성체를 받았을 때 축성된 빵의 한 조각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듯이 전례 중에 들은 하느님 말씀을 헛되이 흘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렇듯 교부들의 사상 안에서 나타나는 말씀 전례는 성찬 전례를 위한 서언 내지는 서곡이 아니라 영성체와 마찬가지의 효과를 지니는 것이며, 그러한 만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씀의 영성체 즉 신앙과 사랑 안에서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오리게네스는 우리가 말씀을 먹음으로써 즉 말씀을 들음으로써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온전히 먹을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많은 교부들이 말씀 전례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만 해도 말씀 전례 부분은 예비 미사라 불렸을 정도로 제대로 그 의미가 이해되지 못하였다. 말씀 전례 본래의 의미가 강조되어 성찬 전례와 같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부터이다.
현행 말씀 전례의 구조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고(독서, 복음, 강론), 인간이 이에 화답하는(화답송, 복음전 환호성, 신앙고백, 보편지향기도) 대화적인 특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구조를 도식화하면 위 도표와 같다.
따라서 말씀 전례는 여러 면에서 대단히 잘 준비되어야 한다. 즉 선포할 때는 기술적으로도 명확히 발음하고 띄어 읽기를 잘함으로써 신자들이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직접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온 회중이 말씀을 심도 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봉사를 맡은 이는 미사에 오기 전에 성서를 읽고 묵상해야 하고, 그 말씀을 듣는 공동체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순간 듣는 자세를 취하여야 한다. 듣는다는 것은 말씀하시는 이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며, 그분 말씀을 내 생명의 양식으로 삼겠다는 마음의 자세를 갖는 것이라 하겠다.
미사의 구조 : 말씀 전례 (2) - 성서의 선택 방법
성서의 선택 방법
어떠한 말씀의 전례이든 그리스도 생애의 한 사적과 가르침을 복음에서 택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미리 모방된 것을 구약성서에서 택한다. 그리고 그 복음의 말씀을 어떻게 생활화 하는가에 대한 사도의 가르침을 사도들의 서간에서 택한다.
말씀 전례의 중점은 그리스도 생애의 사건을 우리 측에서 상기하고 기념함으로써 하느님이 하신 일을 마음에 느끼고, 하느님으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받는데 있다. 따라서 말씀 전례의 중심 문제는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를 중심으로 한 것이라야 한다.
미사 독서 배분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례 개혁의 일환으로써 성서학, 전례학 등의 전문가의 협조를 얻어 주일 미사를 위해 3년 주기로 독서를 배분하였고, 평일 미사를 위해서는 이와 병행하여 2년을 주기로 배분하였다.
주일과 축일의 독서는 신자들이 가장 많이 모일 때이기에 성서의 주요 부분을 총망라하고 있다. 복음 배분에 있어서 연중 주일에는 공관복음을 기준으로 '가'해에는 마태오, '나'해에는 마르코, '다'해에는 루가복음이 낭독된다. 이중 '나'해의 마르코복음이 분량 면에서 짧기 때문에 연중 17~21주일에는 요한복음으로 보충하고 있다. 연중시기가 아닌 특수시기에는 요한복음이 봉독된다.
주일 독서의 경우 과거에는 독서와 복음 사이에 내용에 있어 연관이 없었으나 현 미사 전례서는 1독서와 복음이 연결을 가지고 주제의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 예를 들면 1독서에서 하느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간 방탕을 이야기하면 복음에서는 회개를 말하게 된다. 반면 평일 독서는 주일과 축일의 보충 독서로서 성서의 나머지 부분을 수록하고 있는데 이 때 독서와 복음 사이에 주제의 조화는 고려되지 않는다.
성서 봉독
전례에서의 성서 봉독은 교회가 공식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신자들과 대면하여 독서대에서 봉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제대나 해설대에서 봉독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독서대는 말씀의 식탁으로서 성당 안에서 제대와 함께 전례적으로 가장 중심적인 자리이다.
성서 봉독은 신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게 되어 있으나, 독서자는 미리 영성적(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기도와 묵상을 통해 준비하여 자기의 완전한 내면적 말씀으로 소화시킴), 기술적(속도, 발음, 음정, 높낮이 등을 적절히 조절함)으로 미리 잘 준비하여야 함이 마땅하다.
즉 예언자와 사도가 직접 하느님의 말씀을 소신있게 전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독서자는 신자들이 잘 들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살펴 봉독해야 하겠다. 성서가 봉독될 때 신자들은 같이 읽기 보다는 들어야 한다.
미사의 구조 : 말씀 전례 (3) - 화답송과 부속가
화답송
말씀 전례의 목적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이에 우리들이 화답의 기도를 바침으로써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는데 있다. 하지만 제1독서인 구약성서 봉독 후 즉시 그러한 기도가 우리 안에서 우러나오지 않기에 교회는 전통적으로 화답송으로 시편을 사용하고 있다.
화답송은 1독서를 염두에 두고 선택한 것으로 직접 1독서 내용과 관련되기 때문에 미사 전례 성서(독서책)에 있는 시편을 사용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시편을 노래로 부를 때는 교우들이 시편 후렴을 더 쉽게 노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정 시편 대신에 전례 시기나 성인 축일의 등급에 따라 선정된 시편을 화답 시편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초기에는 화답송을 독서대에서 불렀는데 7세기 경부터 이 노래와 복음 사이의 등급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제단 밑의 층계에서 부르게 되었고, 여기서 층계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의 '층계송'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 노래는 독서를 통해 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 안에 새기고 기도로써 화답하는 것이기에 본래의 그 의미를 살려 '화답송'으로 명칭을 바꾸게 되었다. 따라서 사목자는 교우들이 전례에서 노래하는 시편의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하며, 시편이 선택된 이유와 그 시편이 어떻게 독서의 내용과 부합하는지에 관하여 간단히 해설하는 것이 좋다(미사 전례 성서 총지침 19항 참조).
시편은 그 성격상 읽거나 외우는 것만으로는 참된 시편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시편으로 이루어진 화답송은 노래로 할 때 비로소 전례에 있어서의 그 기능이 충분히 발휘된다. 하지만 화답송을 노래로 할 수 없다면, 하느님 말씀의 묵상을 촉진하는 적합한 방식으로 낭송할 수 있다.
화답송을 성가대가 따로 노래하지 않으면 독서자나 다른 봉사자가 독서대에서 노래하거나 낭송한다. 그러나 적어도 회중 전체가 따라하는 후렴은 노래로 하는 것이 좋다. 이때 화답송을 선창하는 이나 해설자가 『화답송』하고 말할 필요는 없다.
부속가
부속가는 라틴어로 세쿠엔치아(Sequentia)라고 하는데 이 용어의 뜻은 '부속(附續)', '덧붙임', '첨가'를 의미한다.
중세 초기 그레고리오 성가 발생 이후부터 가사를 그레고리오 성가 가락에 맞추어 부르던 관습이 있었다. 예를 들어 '알렐루야'의 경우는 너무 음악적으로 싱겁고 곡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자체로 완성된 곡이 되고자 하면 무언가 더 첨가해야 했으므로 가락을 길게 늘려 부르게 되었다. 그 후 여기에 가사를 붙이려는 욕구가 생겨 만들어진 것이 부속가이다. 즉 '알렐루야 부속가'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과거에는 부속가를 '알렐루야' 다음에 서서 불렀으나 지금은 제2독서의 하느님 말씀에 대한 응답의 의미로 앉아서 부른다.
중세기에는 부속가가 굉장히 많았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개혁으로 가락과 가사에 가치가 있는 4가지 부속가만 남게 되었다(부활 대축일, 성령 강림 대축일,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이 4가지 부속가 중 부활 대축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 부속가는 의무이고 나머지는 자유로이 부를 수 있다.
미사의 구조 : 말씀 전례 (4) - 복음 환호송(Alleluia)과 복음
복음 환호송(Alleluia)
'복음 환호송'인 '알렐루야'는 복음 봉독에서 현존하게 될 그리스도를 환영하는 노래로서 그 뜻은 '하느님을 찬미하여라'이다.
알렐루야는 처음에 화답송처럼 독서 후 응답으로 들어왔으나 점차 복음을 준비하는 노래로 성격이 바뀌었고, 이와 동시에 성구(聖句)도 들어오게 되었다. 따라서 현행 예식에서 '알렐루야'는 위치상 독서 사이의 노래, 역할상 복음으로 오시는 주님을 환영하며 신앙을 고백하는 공동체의 노래이다.
'복음 환호송'(Alleluia)은 환호의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당연히 노래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노래로 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알렐루야'를 노래로 하지 않을 경우에는 생략이 가능하다고까지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가능한 활력이 넘치는 강한 리듬과 뚜렷하고 확실한 선율로 힘있게 불러야 하겠다. 그리고 이 환호송은 환영의 뜻을 나타내는 노래이기에 반드시 서서 함께 노래해야 한다.
복음전 성구(聖句)는 봉독할 복음의 내용과 조화를 이루거나, 전례시기를 반영하거나, 하느님 말씀의 의미와 가치를 반영하게 된다.
'복음 환호송'(Alleluia)은 사순시기를 제외한 모든 날에 부르며, 위령미사 때에는 과거에는 부르지 않았으나 지금은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이 환호는 주님 안에 죽은 이들이 부활한다는 믿음과 희망을 잘 나타내기 때문에 위령미사 중에도 부르는 것이 좋지만, 유족이나 다른 참석자들이 부활의 기쁨을 표현하는데 익숙치 않다면 사순시기처럼 생략할 수 있는 것이다.
복음
복음을 봉독할 때에는 독서와 달리 모두 일어서서 말씀을 듣게 되는데, 그것은 말씀의 형태로 신자들 가운데 오시는 지극히 중요하신 분, 다름 아닌 그리스도 자신을 맞이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복음을 통해 오시는 그리스도께 대한 성대한 존경과 환영의 표시로 향을 피우거나 좌우에서 초를 켜서 행렬을 하기도 한다.
복음을 봉독하기 전에 사제는 먼저 자신의 부당함을 느끼며 합당하게 봉독할 수 있도록 제대에 가서 '준비기도'("전능하신 하느님, 제 마음과 입을 깨끗하게 하시어, 합당하게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게 하소서")를 바친다. 그리고 독서대로 가서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인사한다. 사제의 이 인사는 주님께서 이제 봉독하는 복음을 통해 이 자리에 신자들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이어 선포의 말씀으로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라고 말하며 엄지로 책과 이마와 입과 가슴에 작은 십자표를 하면, 신자들도 그와 같이 하며 "주님 영광 받으소서"라고 말한다. 이 때 이마와 입과 가슴에 작은 십자표를 긋는 의미는 하느님 말씀을 경건히 알아듣고, 고백하고, 실천하겠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미사의 구조 : 말씀 전례 (5) - 강론, 신앙고백, 보편지향기도
강론
강론은 신앙생활의 영양소로서 매우 중요하다. 강론은 독서를 통해 선포된 말씀을 해설하며 현 생활에 적응시키는 것이기에 성서 독서의 내용 또는 미사의 통상문이나 그날 미사의 고유 전례문의 본문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더불어 강론은 개인 사상이 아닌 하느님 복음 선포의 장이기에 충분한 준비, 적당한 길이, 대중적 이해 등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오늘날에는 강론이 전례의 한 구성요소로서 매우 중요하기에 주일과 의무축일에는 교우들이 참석하는 모든 미사에 강론을 해야 하며, 중대한 이유 없이 생략하지 못한다. 또한 대림시기, 사순시기, 부활시기의 평일이나 교우들이 많이 참석하는 축일과 특별한 기회에도 강론을 하는 것이 좋다고 권고하고 있다.
미사 강론은 원칙적으로 주례자 자신이 하되 필요한 경우 공동집전 사제 가운데 한 사람이나 부제에게 맡길 수 있지만, 평신도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특히 선포된 하느님의 말씀을 해설하는 강론 시간에 타 종교인의 강연이나 강론 형태를 띤 어떠한 강의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미사 후 별도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 사제는 주례석이나 독서대 또는 다른 적절한 장소에서 강론하며, 제대에서의 강론은 피해야 한다.
신앙고백
주일과 대축일과 성대하게 지내는 특별한 전례 거행에서 사제와 백성이 함께 신앙고백을 노래하거나 외운다. 신앙고백은 교우들이 독서와 강론을 통해 들은 하느님 말씀에 부응하도록 도와주며, 성찬 전례를 거행하기 직전에 신앙의 진리를 일깨워 준다.
현행 미사 전례에서 사용하고 있는 신앙 고백문은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경과 사도신경 두 가지이다.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은 6세기 초 콘스탄티노플에서 처음으로 미사에 도입되었는데 그후 전 동방 교회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로마에서는 오랫동안 세례 신앙고백문으로 사용하다가 1014년에 이르러 미사에 도입되었다. 로마 미사 전례의 공식 신앙고백문은 바로 이 니체아신경이다.
사도신경은 서방의 세례 신앙고백문에서 발달했으며, 로마 미사에는 니체아신경보다 다소 늦은 11세기 초의 그레고리오 7세 때 도입되었고, 13세기 이래 서방 교회의 공식 신앙고백문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 신경은 사도들이 전해준 신앙고백문이라는 믿음에 따라 사도신경이라 불린다. 사도신경은 니체아신경과 함께 미사 전례서에 실려 있고 자주 사용되지만 어디까지나 보충 역할을 하는 예비 신경이다. 그러므로 니체아신경이 단지 길다는 이유만으로 항상 사도신경을 바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니체아신경을 바칠 수 있도록 사목적으로 배려할 필요가 있다.
보편지향기도
보편지향기도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신자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권장하는 의미로 전례 안에 다시 복구되었다. 모든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고 있기에 인류 성화를 위해 기도할 의무가 있고, 그런 의미에서 모든 이를 위한 구원제사인 미사에서 하도록 한 것이다.
보편지향기도는 개인적인 것을 청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느님 은총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있는 공동체를 위하여 하는 기도이다. 이런 공동체에는 많은 차원이 있을 수 있기에 이 기도의 지향을 크게 4가지로 구분하도록 하고 있다.(물론 교회에서 기도 숫자를 정하지는 않았으나 6개를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첫째 부분은 모든 교회를 위한 기도로써 그리스도인 공동체인 하느님의 백성이 된 사람, 즉 모든 신자, 교회 전체를 위한 기도이다. 둘째 부분은 전 인류로 시야를 넓혀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도로 전 세계의 모든 민족, 국가, 각 종교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평화와 구원을 기원하게 된다. 셋째 부분은 구체적이고 긴급한 필요를 위한 기도인데 모든 차원의 공동체를 위한 부분이다. 넷째 부분은 우리들의 공동체를 위한 것, 즉 본당이나 지역 공동체, 각종 단체 등 여기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이다.
<가톨릭신문, 2004년 5월 30일, 정의철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