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정은
여러 문헌을 근거로 기존 번역과 해석에 도전했다.
당 현장의 번역본 문제를 주로 비판했다.
그중 하나가 제목이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은 ‘큰 지혜의 힘으로 저 언덕에 이르는 마음의 경’이나 ‘위대한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르는 길’ 등으로 번역됐다. 산스크리트어 원문 제목은 ‘쁘라야-빠라미따-히르다야-수뜨라’다. ‘쁘라야(반야)’는 ‘지혜’, ‘빠라미따(바라밀다)’는 ‘완성’이다. 관정은 “빠라미따는 ‘최고’라는 뜻의 빠라미에 과거분사형 어미 ‘따’가 붙어서 ‘최고 상태를 이룬’, ‘완성’이란 뜻이 된다”고 했다.
영어권 학자들도 ‘the perfection of wisdom’으로 번역했다.
관정은 ‘빠라미따’를 ‘도피안(到彼岸, 저 언덕에 도달했다)’ 등으로 번역한 게 문제라고 했다.
‘히르다야(심)’도 ‘마음’이 아니라 ‘핵심’을 뜻한다고 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도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삼가떼 보디 스바하’다. 가떼(아제)는 ‘가신 분’ ‘소멸되어버리신 분’, 빠라가떼(바라아제)는 ‘열반으로 가신 분’이란 뜻인데도
‘저쪽으로 건너갔다’로 번역했다고 지적했다.
관정은 일부 대승불교주의자들의
의도적 오역 등으로 의심한다.
<반야심경>의 핵심은 영원히 소멸되는 ‘영멸(永滅)’인데, 이를 감추고
‘영생(永生)’하려는 대중 욕구에 부응하려
건너갈 피안이 있는 것처럼 번역했다는 취지다. “중생은 더 많은 복을 받기를 원하고 영생을 얻기를 원하지,
지혜가 완성되어서 자신이 소멸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 중생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그랬을 수 있다. 구마라집과 현장이 <반야심경>을 주문의 경으로 만들어버렸다”고 말한다. 그는 구마라집도 반야지혜를 완성하기 위한 수행보다는 신앙과 기도, 공덕, 복덕, 불보살의 가피, 소원성취 등을 중요시하는 법화사상을 주창했던 인물이라고 했다. 복을 받고 액난을 쫓겠다는 마음으로 반야심경을 외우는 일들이 이런 번역들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이다. 의정(613~713)이 한자로 번역한 <반야심경>은 현장 번역본과 똑같은데, 뒤쪽에 ‘밤낮 이 경을 끊어지지 않고 계속 외우면, 이루지 못할 소원이 없으리다’라는 내용이 덧붙었다.
불교를 주술화하려는 의도가 들어간 것이다.
관정은 이렇게도 말했다. “<반야심경>은 우주의 심오한 원리를 말해놓은 경으로 인식되어왔다. 사람들은 <반야심경>에 매우 심오한 철학이나 현대물리학 이론이 들어 있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반야심경>의 뜻은 이 이상도, 이 이하도 아니다.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 방법의 핵심을 말해주는 경’이라는 제목이 말해주고 있듯
<반야심경>은 우리에게
깊은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 방법을 말해주고 있다.”
책은 <반야심경>의 핵심이
“공도, 오온개공도, 마음, 없음도, 주문도 아니다”라며
‘지혜 완성의 수행’을 강조한다.
정작 한·중·일 독송본인 현장의 번역본 등엔 이 내용이 빠져 있다. 관정은 지혜륜이 번역(847~859년)한 걸 참조해
“깊은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을 하려고 하면,
존재의 다섯 요소(오온), 즉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관찰해 들어가서
그것들은 다 실체가 없는 것들임을 꿰뚫어봐야 한다”는 내용을 넣었다.
이 구절은 현장, 구마라집, 의정의 것에서 빠지고, 지혜륜 등 나머지 5종 한자번역본엔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