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문: 어린 아이들도 세례를 받아야 합니까?
답: 예 그렇습니다: 그들도 어른들처럼 하나님의 언약과 그의 교회에 속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죄에서 구원 역시 그들에게 해당하고 믿는 자에게 역사하시는 성령도 성인들 못지않게 그들에게 약속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도 언약의 표시인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교회에 접붙임이 되고 불신자의 자녀들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신약에는 구약의 언약표시인 할례 대신에 세례가 채용되었습니다.
-Suntne etiam infant baptizandi?
-Omnino: Nam cum aeque ac adulti ad foesus & Ecclesia Dei pertineant, cumque; eis per sanguinem Christi, remissio peccatorum, & Spiritus sanctus fidei effector, non minus quam adultis promittatur: per Baptismum Ecclesiae Dei inserendi sunt, & ab infidelium liberis discernendi, itidem ut in Veteri foedere, per circumcisionem fiebat, cui in Novo foedere substitutus est Baptismus.
(해설)
제 74문은 종교개혁 당시 재세례파와 벌어진 매우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유아세례에 대한 것이다. 재세례파 사람들은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의식적(意識的)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유아세례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유아세례가 성경적인 근거를 지니고 있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칼빈은 만일 유아세례가 부인되면 기독교가 무너진다고 말한다.
1. 유아세례의 성경적 근거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신약성경 어느 곳에도 유아 세례에 대하여 명백하게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은 모든 백성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고 사도들은 가족 전체에게 세례를 베풀었다(행 10:44,47,48; 16:15,33; 고전 1:16). 그 이유는 주님의 교회에는 나이를 초월하여 모든 이가 주님께 거룩하게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 보면, 세례가 베풀어지는 가족 가운데 어린아이들이 없지 않음은 놀랄만하다. AD 2세기의 교부들도 유아세례를 언급했다.
사실 유아세례의 조건이 부모 모두가 다 신자(信者)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 그렇게 반대할 사항이 아니다. 부모 모두가 신자이면, 이를 통해 이 아이가 자라나면서 믿음을 배우는 것이다.
또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자들은 주장하기를, 성례는 가시적인 표시가 되어야 하는데, 유아들은 이 가시적인 표시들을 보고 이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다: 즉 우리가 유아세례를 받을 때 거기에 참여한 ‘세례 代父(대부)’ 또는 세례증인들을 통해 그리고 수세 증서를 통해 나중에 증거를 얻을 수 있다. 그 외에 세례가 회중이 모인 예배시간에 거행되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세례가 우리에게 무엇이었는지를 새로이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세례대부’제도는 우리나라에는 없다. 유럽의 경우 이 대부는 부모의 유고시(有故時)에 그 아이를 책임지겠다는 사람으로 주로 가장 가까운 친척이 그 직임을 받으며 매일 이 아이를 위해 기도해 주며 신앙적인 교육에 관심을 가진다.
세례대부는 그 교회의 교인이어야 하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는다. ① 그대는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주어진 예수 그리스도 안의 약속에 대한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가 우리 뿐 아니라 우리 자손의 천대(千代)까지 하나님 되심을 원하십니까? 예, ② 이 아이가 세례를 받고 하나님 자녀의 인치심을 받을 것을 원하십니까? 예. 대부는 세례를 받는 유아의 신앙고백을 대신하지 못한다. 단지 이 아이가 그 당시에 세례를 받았음을 증거하며 부모 다음으로 이 아이의 기독교 교육을 책임져야 한다.
2. 유아 세례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1)
ⓐ 유아세례는 언약사상에 근거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그 자신 분 아니라 그의 자손과 더불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 아브라함과 그에게 속한 자들은 하나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자의 자녀인 이 아이들도 부모들처럼 하나님의 언약과 그의 교회에 속한다.” 창 17:7 (너와 네 자손 사이에 언약을 세운다.). 바로 여기에 거절로 주시는 은총의 사상이 포함되어 있다.
“(롬 4: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롬 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롬 4: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롬 4: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롬 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 4: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롬 4:7)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롬 4:8)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또 유아세례는 이미 믿는 신자를 통해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 영적인 영향이 미침을 보여준다.
“(고전 7: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에서 구원을 얻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가 역시 그들에게도 해당하고, 믿는 자에게 역사하시는 성령도 성인들 못지 않게 그들에게 약속되었다.
“(막 10:14)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막 10: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막 10: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행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 아이들도 언약의 표시인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교회에 접붙임이 되고 불신자의 자녀들과 구별되어야 한다. 신약에는 구약의 언약표시인 할례 대신에 세례가 채용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할례로 언약을 맺으신 것을 보면 그의 가족들 가운데 유아는 물론 남자는 모두가 하례를 받고 그에게 속함을 보여준다.
“(창 17:11)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창 17:12)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또 신약은 세례가 할례와 일치함을 보여준다. “(골 2: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골 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3. 입교문답식
유아세례를 받은 아이들은 일정한 연령이 이르게 되면(보통 13세), 성경을 조직적으로 배워 하나님을 알고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분을 인정하고 그에게 신앙을 고백해야 교회의 정회원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교회는 자기들이 신봉하는 신앙고백서로 교육하되 특별히 ‘소요리 문답서’ 또는 ‘대요리 문답서’로 교육을 시켜야 한다. 이를테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 개혁교회는 통상적으로 이것으로 3년간 교육을 시켜야 한다.
유럽의 대부분의 개혁파 교회는 입교 대상자들을 교육시킬 때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를 거의 모두 암송할 정도로 교육을 시켜 교인들의 정체성을 확보한다. 이것은 교회의 정회원이 된는 경우 이미 그들이 성경 가르침의 골격을 세우고 기독인의 삶을 시작한다는 말이다. 이들은 세례의 의미를 깊이 있게 배우며 세례를 받기 이전의 삶의 비참함을 배워 새로운 피조물로 기쁨을 가지고 살게 된다.
한국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신봉하면서도 대부분의 경우 이것으로 학습자들을 교육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기껏해야 총회에서 발행한 작은 소책자 문답서로 훈련시켜 세례를 베푼다. 이들 중에 세례의 깊은 의미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번 점검해 봐야 한다. 이로 인해 장로교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많은 개신교 교인들이 현대교회의 문제점에 염증을 느끼고 떠나는 사람들은 이런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연고이고 또 교회의 관심이 다른 곳에 가 있기 때문이다.
부설(Exkurs): 할례에 대하여2)
이 부분은 Ursinus가 할례에 대해 대체로 상세하게 열거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1. 할례란 무엇인가?
할례란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 중에 남자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태어난지 8일 만에 양피지를(성기의 끝부분에 있는 가죽부분)을 잘라 내어 하나님과 아브라함 그리고 그의 후손들 사이에 맺어진 언약의 인침을 표시하는 의식이다.(창 17장).
유대교회 회원은 세 가지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다. 1) 순수 이스라엘 사람들. 이들은 아브라함의 육신적인 후손이다. 2) 개종자: 다른 민족으로 유대종교를 받아 들인 자들로서 할례를 한 사람들이며 그들의 믿음을 확고하게 만드는 모든 종교의식을 지키는 자들이다. 3) 경건한 사람들: 이들은 할례는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가르침과 약속을 받아들인 자들이다.
2. 왜 하나님은 할례제도를 세웠을까?
① 아브라함의 자손들에 대한 은혜의 표시가 되기 위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첫째 하나님께서 오실 메시아를 믿는 자들을 언약 속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둘째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 복지를 허락하시어 메시아가 등장하실 때까지 안식의 장소로서 그의 교회를 주시기 때문에.
② 할례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감사하는 삶, 회개하고 믿음,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율법에 순종하는 삶에 묶도록 하기 위해서.
③ 유대인들과 이방사람들을 구별시키기 위해서.
④ 이 땅에 하나님의 가시적인 교회가 시작되었음과 받아들여졌음에 대한 표징이 되기 위해서.
⑤ 자연적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들은 거룩하지 못함을 보여주며 그들로 하여금 자연적으로 태어났음이 하나님 앞에 불결함과 모든 죄악에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 중요함을 인식시키기 위함이다. 동시에 은혜의 법을 거슬리는 외식자들 내지 율법주의자들을 경고하기 위함이다.
⑥ 죄에서 구원을 얻는 방법이 아브라함의 씨에서 태어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임을 선언하는 표시로 할례를 주셨다.
3. 왜 할례는 폐지되었나?
할례가 상징하던 실재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 세상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또 예수의 오심과 더불어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는 벽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4. 할례 자리에 무엇이 대신 등장했는가?
세례이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할례와 세례가 밀접하게 관계있음을 언급했다. 성례 집행 형태는 다르나 그 본질은 동인한 것이다.
5. 할례와 세례의 일치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일치점: ① 약속 내용이 같다. 즉 은혜로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을 얻는다. ② 둘 다 중생을 표시하며 믿음과 순종에로 묶는다. ③ 둘 다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과 받아들여짐에 대한 표시이다.
-차이점: ① 의식의 방법이 다르다. ② 할례의 경우 남성만이 해당하고 그리고 8일만에 해야된다는 시간적인 제한이 있음. ③ 할례는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하는 것으로 세례는 오신 그리스도에 근거하여 수행한다. ④ 약속의 내용에 각기 특징이 있다. 할례의 경우 현세적 축복을 포함한다. 교회는 메시아가 오실 때가지 가나안이라는 안식의 장소가 있다. 세례의 경우 현세적 축복에 대한 특별한 약속이 없다. ⑤ 의무 사항에 차이점: 할례를 받은 자들은 의식법, 형법 그리고 도덕법에 매어져 있다. 세례를 받은 자들은 회개와 믿음에 이르게 하는 도덕법에만 묶여져 있다. ⑥ 그 대상과 기간에 차이점이 있다. 할례는 메시아가 오실 때가지 오직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위해서 세워졌다. 세례는 교회 안으로 들어오기를 소원하는 모든 민족들을 위해 세워졌다. 이것은 세상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6. 왜 그리스도는 할례를 받으셨나?
① 할례를 받은 자들을 자기 교회에 끌어들이시기 위해서이다. 그가 세례를 받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가 구약 교회와 신약교회의 주된 성례에 참여하신 이유는 그가 교회의 머리시며, 구원자시며 ‘모퉁이 돌’임을 선언하기 위해서이다. 이로써 그는 하나의 교회를 이루시는 것이다.
② 그가 할례를 받으신 것은 우리의 모든 죄를 자기 위에 짊어지고 이 죄에 대해 공의만족을 이루시어 우리를 우리의 모든 죄책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③ 그가 할례를 받으신 것은 그가 우리를 위해 율법 아래로 굴복하셔서 그 자신 위에 율법의 저주를 취하신 채로 율법을 완전히 이루시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그가 성육신 한 목적은 바로 이것이다. 롬 8:3은 그가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다고 한다.
④ 그가 할례를 받으신 것은 그의 겸손의 일부분이며 우리 죄를 위한 속량금의 일부분이다.
1) Ursinus, ibid., 366-367.
2) Ursinus, ibid., 374ff.
제 75문: 당신은 성만찬식 때 당신이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과 그의 모든 유익에 참여함을 어떻게 기억하고 또 확신을 받습니까?
답: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이 뗀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시어 자기를 기억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마치 내가 지금 주의 떡이 떼어지고 그의 잔이 내게 전달됨을 내 눈으로 확실히 보듯이 그의 몸은 십자가에서 나를 위하여 희생 제물로 바쳐져 찢어졌고 그의 피는 나를 위하여 흘리셨음이 확신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다른 한편 내가 집례자의 손으로부터 받아 떡과 잔 곧 나에게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표시로 주어지는 주의 떡과 잔을 육감적으로 맛을 보게 될 때 그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힌 자기의 몸과 흘린 피로 내 영혼을 먹이고 마시게 하여 너무나 확실히 영생에 이르도록 합니다.
-Qua ratione in coena Domini admoneris et confirmaris, te unici illius sacrificii Christi in cruce oblati, atque; omnium eius bonorum participemesse?
-Quod Christus me atque omnes fideles de hoc fracto pane edere, & de poculo distributo bibere iussit, addita hac promissione: Primum, corpus suum non minus certo pro me in cruce oblatum ac fractum, & sanguinem suum pro me fusum esse: quam oculis cerno, panem Domini mihi frangi, & poculum mihi comunicari. Deinde animam meam, non minus certo, ipsius corpore, quod pro nobis crucifixum, & sanguine, qui pro nobis fusus est, ad vitam aeternam ab ipso pascii Quam panem & vinum, symbola corporis dominici, e manu ministri accepta, ore corporis percipio.
(해 설)
성찬식은 예수께서 유대인들의 큰 명절인 유월절 밤에, 그것도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제정하신 것이다. 그리고 성찬식에 사용된 자료들이 그 당시 사람들의 주식(主食)인 떡과 포도주를 사용했다. 예수께서는 이 두 가지로 자기의 구속(救贖)사역을 설명하시고 또 그가 다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까지 이것을 지키도록 명하셨다. 주님께서는 모든 세대의 성도들이 계속 이것을 지킴을 통해 주님과 신비한 연합을 체험하며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따라서 제 75문부터 몇 번은 구원이 어떻게 신자들에게 피부로 느껴지고 경험되는가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기독교 신앙은 사변(思辨)이 아니고 실재이다. 육체를 지니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피부로 느껴야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이를 위해 성만찬이 세워졌다는 말이다. 한국인들은 신비주의적으로 체험하기를 좋아한다. 예수의 몸도 신비주의적인 방법으로 만져보기를 원한다. 많은 성도들이 기도원을 찾는 이유 중에 하나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담판을 내겠다는 것이다. 더러는 특별한 은사를 체험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에 더러는 그렇지 못하여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알 것은 우리가 매우 자연스럽게 생활 도중에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체험하도록 주님께서 조치하셨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례라는 말이다. 칼빈의 신학을 추종하는 한국개혁 교회는 그 동안 성찬식을 너무나 쯔빙글리 주장대로 지켰기 때문에 이런 체험을 간과해 버렸다. 이 문제는 앞으로 매우 심도 있게 다룰 문제이다.
주님은 이것을 인간의 삶 가운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식사와 연관시키셨다. 먹고 마시고 사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이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두 가지이다: ① 기억하고 ② 확신하는 것.
I. 성만찬 식사
식사에는 초대자가 있고 초대를 받는 자가 있다. 물론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 초대자이다. 초대를 받는 자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와 연합된 자이다.
1. 식사의 명칭
성만찬에 대한 명칭은 예수께서 그것을 제정하셨던 당시부터 붙여졌고 또 다양하게 이름이 붙여졌다.
a) 성만찬(Das heilige Abendmahl): 주님이 제자들과 저녁에 가진 것이니까. 따라서 ‘밤의 식사’라고도 불리어진다.
b) 주님의 식탁 또는 식사(Tisch, Mahl des Herrn): 주님 자신이 준비하시고 또 자신을 하늘의 양식과 음료로 주셨으니까 이렇게도 부른다. 그는 자신을 하늘의 떡과 음료로 우리에게 주셨음을 말씀하셨다.
c) 떡을 뗌(찢음): 떡을 뗀(찢음)다는 것은 어떤 실재를 상징한다. 즉 그리스도의 몸이 유일한 희생제물로서 십자가에서 찢어짐 곧 죽임을 당하는 것을 암시한다(행 2:42, 고전 10:16)
d) Eucharistie(감사식사): 초대교회 당시에 불러진 명칭. 성찬식 때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구속사역의 공로에 감사하니까. 고전 10:16.
e) Kommunion(교제): 성만찬식 때 우리가 주님과 교제하고 동시에 그리스도인 상호간에 교제하니까. 사랑을 나누니까.
f) "Sakrament des Altars"(제단의 성례) 로마카톨릭 교회가 붙인 명칭. 이들은 제단에서 매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희생제물로 드린다는 미사를 올린다. 개혁교회는 이 명칭을 버렸다..
2. 성찬식의 본질
이 성찬식의 본질적인 성격은 “식사”의 본질과 연관되어 있다. 식사는 우리가 먹고 마심을 통해 받는 “내적인 하나 됨”을 예시한다. 고가 귀중품은 금고에 보관하거나 몸에 지니고 다닌다. 그러나 음식과 음료는 몸속으로 들어가 피와 살이 된다. 전자는 외적으로 소유하는 것이고 후자는 내적으로 소유하는 것이다(우리 생명과 불과분리). [물질적 양식]과 음료는 소화기관을 통해 섭취되나 [영적인 양식]은 내적 인간인 영혼을 통해 수용 섭취한다. 따라서 우리가 성찬식 때 물질인 떡과 포도주를 입으로 받는 동안 하늘 양식인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믿음을 통해 우리 영혼과 하나로 된다. 즉 우리가 성만찬식에 참여하여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때, 우리 문에 보이지 않으나 떡과 포도주의 실재인 ‘예수의 몸과 피’가 우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성찬식 때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함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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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례자를 통해 ☆☆☆☆
약속의 말씀을 ☆성령☆
들음 ☆☆☆☆
▧▧▧▧ ↙
▧말씀▧ ↙성령의 조명으로
▧▧▧▧↘ ↙
↘ ▣▣▣↙
↘▣나▣
▣▣▣↘
↖↘ ◉◉◉◉
나는 떡과 음료 ↖ ◉떡음◉
속에서 예수를 보고 ◉◉◉◉
취하여 먹음 예수 그리스도
이때 나는 이 모든 은사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린다.
3. 은 사
a) 땅에서 난 선물: 떡과 포도주. 이것은 실재에 대한 표징(表徵)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가장 고귀한 양식으로 우리 육체를 위해 주셨다. “(시 104:14) 저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의 소용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식물이 나게 하시고 (시 104:15)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b) 하늘에서 온 선물: 이것은 떡과 포도주를 통해 상징된 십자가에 희생된 그리스도의 피와 살이다. 성찬식 때 우리는 믿음으로 이 떡과 포도주를 먹음으로써 이 하늘의 은사를 맛보는 것이다. 주님자신도 분명히 말씀하셨다.
“(마 26:26)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 26:27)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마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막 14:22)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막 14:23)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막 14:24)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여기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인 ‘떡과 포도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살과 피’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 문제를 두고 네 가지 견해로 나누어졌다. 이 문제는 나중에 다룬다.
4. 유월절과 성찬식
그리스도께서 성만찬식을 유월절에 세우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성찬식은 구약의 성례(표징)인 유월절을 암시한다. 이 유월절은 신약의 성례의 의미를 그 속에 많이 내포하고 있다. 유월절이란 모세의 인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던 날 곧 열 가지 중에 마지막 재앙이 임할 때 죽음의 천사들이 이스라엘 집의 문설주에 양의 피가 발린 것을 보고 지나가고 그렇지 못한 애굽사람들의 집으로 들어가 모든 장자를 죽였을 때 그때의 구원을 기념하며 지키는 절기이다. 유월이란 간과(看過)하고 지나갔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양을 잡아 그 고기는 함께 먹었으나 그 피를 문설주에 바름을 통해 구원을 얻었다는 점에서 성찬식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이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예수 자신도 성찬식을 세우실 때 이 두 가지를 연결시켰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 날 어린양을 잡지 않으시고 떡을 사용하셨다. 이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구약의 의식은 제거된 것이다. 이젠 어린양 대신에 자기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사용하신 것이다. 요한복음 6장은 이 사실을 매우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신약의 성례로서 성찬식의 특성
⑴ 구속을 기념하는 만찬: 유월절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을 받은 것을 기념하듯이 성찬식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죄에서 구원을 받은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용서함을 받은 것을 기억하며 기념한다.
“(고전 11:24)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고전 11: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⑵ 언약의 만찬: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는 유월절 어린양의 고기를 함께 먹음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립이 되었고 또 견고히 했다.
“(고전 10:16)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교제)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고전 10: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고전 10:18)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 여기 참예 또는 교제는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연합하는 것, 곧 인격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여기서 참예 또는 교제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이 교제는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제물을 먹던 제물교제와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그 당시 제물의 고기를 함께 먹음을 통해 하나로 되었듯이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함(성찬식)을 통해 하나로 되어 된다는 것이다. 즉 신약의 성도들은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음을 통해 그 모든 구속의 은총을 맛보며 동시에 함께 식사를 나눈 다른 지체들과 하나됨을 체험하는 것이다.
⑶ 신앙고백 만찬: 유월절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은혜로우신 언약의 하나님과 연합되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백했다. 동시에 이들은 할례를 통해 이방사람들과 구별되었다. 신약시대의 성도들도 성찬식에 참여함을 통해 하나님과 연합되었음을 고백하며 불신자들과 구별됨을 깨닫고 구별되게 살려고 한다.
“(출 12:43)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유월절 규례가 이러하니라 이방 사람은 먹지 못할 것이나 (출 12:44) 각 사람이 돈으로 샀다는 종은 할례를 받은 후에 먹을 것이며 (출 12:45) 거류인과 타국 품군은 먹지 못하리라”
“(고전 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즉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신앙 고백적으로 선포하는 행위라는 말이다.
II. 표징과 인침
1. 주님의 명령
성찬식은 예수께서 그것을 세우실 때 하신 명령에 근거한다. 고린도전서 11:24절에서 주님은 분명히 이것을 지킬 것을 명령하신다. 성찬식은 어떤 인간이 만들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이 세우신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거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2. 생명의 양식
성찬식 때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가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된 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며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몸으로 우리 영혼을 먹이시며 그의 흘리신 피로 우리로 마시게 하여 영생을 얻게 한다.
제 76문: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그의 흘리신 피를 마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답: 그것은 그리스도의 모든 고난과 죽음을 확실하게 믿는 마음으로 받아들여 또 이를 통해 죄사함과 영생을 받을 뿐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동시에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통해 점점 더 그의 거룩하신 몸과 하나로 되며 또 비록 그가 하늘에 있고 우리는 땅에 있지만 우리는 그의 살 중에 살 뼈 중에 뼈가 되어 한 마음으로 몸 전체의 지체로서 하나 되고 또 한 성령을 통해 생명을 얻고 또 다스려짐을 의미합니다.
-Quid est crucifixum corpus Christi edere, et fusum eius sanguinem bibere?
-Est non tantum totam passionem & mortem Christi, certa animi fiducia amplecti, ac per id remissionem peccatorum, & vitam aeternam adipisci: sed etiam per Spiritum sanctum, qui simul in Christo & in nobis habitat, ita sacrosancto eius corpori magis ac magis uniri, ut quamvis ipse in coelo, nos vero in terra simus: nihilominus tamen, caro simus de carne eius, & os de ossibus eius, Utque; omnia corporis membra ab una anima, sic nos uno eodemque Spiritu vivificemur & gubernemur.
(해 설)
문 76-80은 문 75에 대한 해설이며 동시에 여러 가지 이단적인 오류에 대항하는 내용이다. 위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에 대답하면 명백해진다.
①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몸을 믿음으로 어떻게 먹습니까? “믿는 마음으로 그의 고난 죽음을 마음으로 받으면”,
② 우리는 무엇을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로 됩니까? “우리와 성자(그리스도)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통해”,
③ 우리는 믿음 안에서 어떻게 그와 하나로 됩니까? “비록 그가 하늘에 있고 ................ 또 한 성령을 통해 생명을 얻고 또 다스려짐을 의미합니다.”
I. 성만찬식 때 손님이 하는 일
1. 식사에 초대된 손님은 먹고 마심으로 즐거워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할 때에는 영적인 시각을 판단해야 한다. 성만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성찬식때 지상적(地上的) 선물과 외적인 것(떡과 포도주)을 먹고 마시는 것이 주된 것이 아니고 이 떡과 포도주가 표징하는 하늘나라의 영적인 내용을 맛보는 것이 그 중심을 이룬다. 따라서 성찬식에 초대를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맛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6:27-58에서 이 맛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하셨다. 그 내용은 성만찬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말씀하지 않으나 그것을 바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예수께서는 여기서 자기가 바로 생명의 떡이며 음료임을 말씀하셨다. “(요 6: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요 6: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요 6:34)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요 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주님은 가시적인 것(떡)에만 관심을 가진 가버나움 사람들을 물리치시며 이 “단단한 말” 때문에 그를 떠난, 믿음에 서 있지 않던 제자들은 그를 떠났다. Calvin은 이와 연관하여 주석하기를 단단한 것은 그리스도의 말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었다고 했다.
2. 모든 식사문화에는 먹는 방식이 있다.
한국 음식은 수저와 젓가락으로 한국식대로 먹는다. 양식(洋式) 음식을 먹을 때는 칼과 포크를 사용해서 먹는다. 성찬식은 ‘믿음으로’ 먹는다. “확실하게 믿는 마음으로 받아들여”. 말하자면 이것이 내 몸속으로 들어가면 이롭다는 식으로 마치 보약을 먹듯이 먹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먹으면 어떤 공로나 되는 듯이 먹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매달려 붙어사는 마음으로 먹는다.
따라서 성만찬식에 초대를 받은 참된 손님은 가시적인 물질에 관심을 두지 않고 불가시적 영적인 내용에 두며(고후 4:18) 믿음으로 받아먹는 자이다. 예수께서도 유대인들이 자기를 믿지 않으므로 영혼의 양식인 예수의 살과 피를 못 먹는다고 한탄하셨다. “(요 6:36)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범신론적인 이단들은 이 먹는 물질속에 신적인 요소가 들어 있어서 그것을 먹을 때 실제로 신적인 요소를 섭취하는 것으로 가르친다. 이들에게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믿음의 관계에는 관심이 없다. 이를테면 통일교는 합동결혼식 다음에 성찬식을 거행하는데 이때 그 포도주 속에 문선명의 몸의 요소를 섞어서 마신다고 한다. 전도관 사람들은 박태선의 발 씻은 물속에 신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서 그것을 먹어 몸속에 넣으면 구원을 얻는 것으로 여긴다. 이것도 범신론적인 사고방식에 기인한다.
3. 성찬식으로 얻은 유익
인간 사회에도 식사를 통해 거리가 멀어졌던 사람들 사이가 가까워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에는 서먹서먹했는데 함께 식사를 나누고 난 후부터는 좋은 관계를 지니게 된다. 성찬식도 마찬가지이다. 믿음으로 참여하게 되면 주님과 더 가까워진다. 이는 성찬식을 통해 죄사함과 영생을 얻었음에 대한 확신을 얻기 때문이다. 여기 죄사함과 영생은 칭의와 성화와 같은 것으로 자연인(비중생인)이 중생인(重生人)이 된 이후의 모든 삶을 요약한 것이다.
주님은 자기에게 와서 교제를 나누는 자들에게 분명히 영생의 약속을 하셨다. “(요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요 6: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요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요 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요 6: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요 6:50)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요 6: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요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 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 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요 6:57)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요 6:58)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II. 성만찬식 때 주인이 하시는 일
1. 성찬식의 주인되시는 주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를 자기와 연합시킨다.
이미 앞에서 성찬식때 우리는 주님과 신비한 연합을 이룬다는 것을 언급했다. 그런데 주의해야 될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에게 연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단지 그의 몸에 연합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여기서도 수동의 위치에 놓여 있다. 그러면 이 연합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통해 점점 더 그의 거룩하신 몸과 하나로 되며” 즉 이것은 성령(그리스도와 우리 안에 있는)을 통해서 일어난다. 그리스도의 몸은 지금은 하늘에 있고 우리는 땅에 있으나 이 둘은 하나로 연합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와 주님을 잇는 줄은 성령임을 본다.
2. 얼마나 견고하게 하나로 연합될까?
“우리는 그의 살 중에 살 뼈중에 뼈가 되어 한 마음으로 몸 전체의 지체로서 하나되고” 이 말은 아담이 자기의 아내인 하와가 등장했을 때 한 말이다. 이 말은 성만찬식 때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로 되는 것은 너무나 정확하고 내적인 것이기에 우리는 그의 살 중에 살이요 뼈중에 뼈가 된다는 말이다. 이 말은 우리와 주님은 Ep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말이다. 이로 인해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살 때 자신의 입장 내지 신분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이원론적으로 살지 않으려면, 즉 교회에 가서는 거룩한 채 하고 세상에 나가서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않으려면, 우리와 주님 사이의 이런 관계를 늘 깨달으며 사는 것이다. 만일 한국교회가 처음부터 성찬식의 이런 점을 잘 가르쳐서 주님과 하나로 연합된 삶을 가르쳤다면, 현금의 교회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3. 온 교회는 한 분으로부터 다스림을 받는다
“또 다스려짐을 의미합니다.” 나만 주님과 연합된 것이 아니라 모든 지체들이 주님과 연합되기 때문에 온 교회는 한 성령으로 다스림을 받는다. 말하자면 성찬식을 통해 교회는 하나로 된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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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있는 그리스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