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래피의 미래를 쓰다
초등학교 때부터 붓을 잡았습니다. 지금도 서예가가 되고 싶은 욕심이 더 많
습니다. 디자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고, 일본여행을 통해 ‘손글씨’가 대중적
으로 활용되는 현실을 발견한 계기로, 캘리그래피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되
었습니다. 그 때 써놓은 글씨들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또, 한글이 아름다운데도 불구하고 획이 단순하다거나, 멋없다는 편견을 가진
점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2002년,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으나 간단한 손글씨에 돈을 줘야 하나 하는 인식이 많아, 한
발은 디자인에, 한발은 캘리그래피에 걸치고 포트폴리오를 쌓았습니다. 그러
다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캘리그래퍼로 전업하게 됩니다.
일본의 경우 1998년 무렵 당시, 이미 간판 10개 중 7개쯤이 손글씨로 만들어
져 있었고 글씨 하나가 모든 제품에 이용되고 있으며 글씨가 캐릭터 상품화된
시장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상용품 전체에 글씨가 디자인으로
활용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봅니다. 한자는 아무리 써봤자 중국이나 일본
것으로 인식되기 십상입니다. 한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은 역시 언제나
‘한글’입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캘리그래피
한국 캘리그래피 시장은 확대∙팽창기라고 봅니다. 붓으로 쓰는 글씨들은 이미
사용되어 왔으나 2000년 무렵 영화흥행과 함께 영화내용을 잘 담아낸 손글씨
들이 부각되면서 캘리그래피가 대중적으로 알려졌고, 월드컵 때 <Be The
Reds>를 계기로 더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작년부터는 좀 과도해지지 않나
하는 인상을 받으나, 여전히 캘리그래피 시장은 미답지로서 도전할 부분이
많은 분야입니다.
컴퓨터 폰트가 정보전달이라는 기능성에 충실하다면 손글씨는 정보전달은 물
론 감성까지도 담아내는 부가적인 장점이 있습니다.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다
양한 한글꼴을 이미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캘리그래피를 통해 디자인의 폭도
넓어졌고 이미지를 차별화하여 매출증진에도 효과를 가져왔다고 봅니다. 수
요처도 굉장히 다양해져 갑니다. 책, 포스터, BI, CI는 물론 영화, 드라마, 싸인
보드, 상품에 이르기까지 영역이 무수히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이상봉 디자이
너가 한글을 패션에 활용한 사례도 있었지요.
홍대 안상수 교수님의 노력과 공헌도 있었듯 타이포그래피 쪽에서는 많은 발
전을 이미 해왔다고 봅니다. 바람직한 것은 손글씨는 손글씨대로, 컴퓨터서체
는 그것대로 더더욱 발전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미적 상형성, 조형적 심미성
기본적으로 캘리그래피는 상업입니다. 광고라면 소비자를 생각해야 하고 마
케팅 전략 선상에서 캘리그래피가 고려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창작 지
점에서만 보면 순수예술성을 가집니다. 기능성을 뛰어넘어 심미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은 캘리그래피 작가로서 굉장히 즐거운 지점입니다. 또 다른 즐
거움은 한글미학을 창조하고 표현한다는 점입니다. 보시다시피 아름답습니
다. 한글이 상형문자는 아니지만 한글창제의 기본인 천,지,인에서 보듯 우주
만물의 원리가 담겨있기도 하고 그래서 자연과 가장 많이 닮은 글꼴이라고 여
겨집니다.
그것을 ‘의미적 상형성’이라고도 하는데요, 비,봄,뿔,꽃 등 의미를 담으면서도
의미의 심층을 시각화해서 표현하기가 딱 좋습니다. 즉 ‘꽃’과 함께 ‘꽃이 피
는’ 것도 표현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좌∙우∙상∙하 마구 뻗어갈 수 있는 역동성
이 또 있습니다. 한글이 가진 조형적 아름다움을 보일 수 있고 사람들이 그 점
을 좋아해주니 예술적 보람과 대중적 사랑을 함께 받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민체의 재발견, 마음을 담은 글씨
한글서체는 판본체에서 출발, 궁서, 민체로 변형, 발전해왔습니다. 그 중에서
도 대중의 정서가 반영되어 발전한 것이 민체라고 볼 수 있는데, 한자서예가
다양한 양식으로 발전해온 반면 한글서예는 궁서 중심으로 치우쳐 왔습니다.
이런 맥락 속에서 민체의 아름다움과 역동성, 감성을 복구하고 싶었고 그래
서 내가 하는 작업은 ‘민체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봄,봄날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봄날체가 폰트로 개발되어 상용되고 있는
데, 그 글씨체는 애초부터 광고카피로 사용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만든 것이
기도 해서 실제로 광고에 많이 활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주 뿌듯합니다.
여태까지의 작업 중 <대왕세종>작업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부담도
컸고, 캐릭터가 명확하지 않거나 너무 많은 경우라 컨셉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아 글꼴을 찾기가 어려워 작업을 거듭하면서 마지막에서야 글꼴을 잡았던
경우입니다. 반면 <참이슬>경우는 첫 작업이 채택된 경우입니다. 물론 첫 작
업이 채택되었다고 해서 한번만 작업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숭례문>작업은
아픈 마음으로 작업했던 경우입니다. 화재로 소실되던 뉴스를 보면서도 현판
이 불타면 안 되는데 하며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훈민정음, 월인천강지곡
도 한글로 쓰여졌고, 숭례문 현판도 한글로 쓰여졌더라면 역작이 되지 않았을
까 생각도 합니다. <정표이야기>라는 작업은 백혈병으로 죽은 아이의 이야기
를 담은 책표지 작업이었는데, 처음 상세 설명 없이 의뢰를 받고는 컨셉을 꺼
내지 못하다가, 얼핏 동아일보에서 보았던, 정표의 아픈 기록들을 떠올렸고
그 정표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글씨 하나하나에는 기획과 주제와 캐릭터와 드라마, 정서를 담으려는
애끓는, 작가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드러나게 마련이고 그런 때에 만이 작
가와 대중이 함께 만족하는 즐거움을 얻는 것 같습니다.
글꼴의 탄생
새로운 글꼴을 창조해야 한다는 점은 늘 고민이 되는 부분입니다. 연기자도
감정이입이 되지 않으면 캐릭터를 소화해내기 힘들 듯 드라마타이틀을 쓸 때
도 드라마의 기획의도, 주제에 감정이입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별다른
연구보다도 그런 지점에 몰입되어 상상하다 보면 형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창조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처음 손글씨가 각광받았던 것은 독특성, 희귀성, 심미성이었을 것입니다. 보
편화되면서 손글씨가 가진 ‘차별화’의 프리미엄이 소실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
이 많고 실제로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사람도 다 다르듯, 제품도 다 다
릅니다. 거기에 맞추어 손글씨도 달라져야 합니다. 조형성, 독창성, 심미성은
기본입니다. 손글씨라고 해서 모두가 좋은 캘리그래피인 것은 아닙니다. 마구
쓴 글씨가 남용되기보다는 기능성과 예술성을 고루 갖추고 거기에 덧붙여 삶
의 해학까지를 녹여낸 품질 좋은 손글씨가 많아지는 것이 바람직한 캘리그래
피의 행로일 것입니다.
지금은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있어 자신을 알리기가 좋은 조건입니다.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블로그의 이동성을 잘 활용한다면 두려움 없이 자기작업
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겁니다. 노력하고 실력을 갖춘다면 접근이 어렵지 않습
니다. 인터넷이 아니었다면 나조차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추사를 넘어가는 꿀맛
꿈을 크게 가져야 합니다. 내 경우는 영원히 먹과 함께 산다는 생각으로 중학
교 때 ‘영묵’이라는 호를 스스로 붙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처음 붓을 잡은 이
후에도 그림이 좋아 그림을 할까, 서예를 할까 망설였습니다. 시골학교라 선
생님께서 양봉을 하셨는데, ‘네가 서예반에 오면 꿀은 실컷 먹게 해줄게’라는
그야말로 ‘밀어’에 유혹된 동심은 서예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끼’도 있었고
글씨도 잘 써져 서예대표로
도 나가니 너무 좋았습니다. 물론 꿀도 많이 먹었습니다!
잘 쓰지는 못했어도 늘 썼습니다. 중학교 때도, 군대 가서도, 술을 먹고도 내
가 좋아서 항상 썼습니다. 글씨를 쓰겠다는 꿈을 한번도 놓쳐본 적이 없었습
니다.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맞았을 때도, 잡지를 만들던 그 어려웠던 때에도.
꿈을 버리지 않고 현실과 병행하며 꿈을 펼칠 때를 준비한 것 같습니다. 캘리
그래퍼가 되어 매스컴에도 오르락 거리는 지금의 나를 보며 사람들은 놀랍니
다. 서예를 제대로 배운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글씨를 쓴다니 말입니다. 계속
노력한 결과입니다. 꿈을 접지 않고 애쓴다면 언젠가는 그 꿈, 꼭 이루어집니
다.
나는 한글의 아름다움이 온 세상에 피어나는 그날까지 한글의 아름다움을 표
현한 사람으로 불리고 싶습니다.
‘한글문화’가 많이 생겨나면 좋겠고 한글‘꼴’이 세계에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추사를 호로 쓰는 이유도 추사를 닮고 싶어서입니다.
내게는 너무 큰 산입니다만 빨리 올라갈 필요 없이 꾸준히, ‘추사’라
는 산을 오르는 매일매일이 참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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