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에 있다-
" 문학사에 길이 남은 수많은 가족 이야기의 기본 플롯은 '집 나간 주인공의 귀환.' 즉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가족에게 돌아오는 문제적 인물의 이야기다. 예컨대 <오디세이>는 영웅적 풍모와 세속적 욕망을 동시에 지닌 오디세우스가 20년 가까이 집을 떠나 온갖 파란만장한 모험을 일삼다가 끝내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이며, 박경리의 <토지>는 그 수많은 땅과 재산을 다 빼앗기고 머나먼 이국땅 간도까지 쫓겨났다가 마침내 모든 것을 되찾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최서희 일가의 확장된 가족 서사라고 할 수 있다. 오디세우스에게는 이타카가 있었고, 서희에게는 평사리가 있었다"(정여울, '문학이 필요한 시간', 한겨레신문, 2020.9.25>
올해 내게는 여름방학이 없었다. 달력상으론 2주간의 방학이 주어졌지만, 새로 부임한 학교장의 의욕이 실린 '외부학교 탐방행사'에 불려나가느라 모든 교사들이 하루를 빼야했다. 또한 나의 경우, 익산 총부의 하계훈련에 참가하느라 다시 일주일을 밖에서 보냈을 뿐 아니라, 탈북 청소년 J를 돌보며 함께 지내야 했던 시절이라 실제로는 단 하루로 온전히 쉬어보지 못한 채, 올 상반기를 보내야 했다. "올 추석엔 부산에 오지 않는게 좋겠다. 집에서 푹 쉬어라. 내 걱정은 말고." 모친의 신신당부에 그러마고 대답하는 내 속내에 서운함만 있지는 않았던 것이, 너무도 절실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 휴식'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언젠가, 공부모임에서 만난 중년의 치과의사로부터 "저는 퇴근하고 집에 가면 일단 청소부터 합니다. 몇 십년이 되었지만 빠짐없이, 아무리 힘들어도 합니다. 남편과 아이들은 강박증이라고 놀리지만, 저는 합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 안에는 작은 깨달음이 있었고 그 때부터 귀가하면 일단 청소부터 하는 일이 몸에 배었다. 언제 떠날지 모른다 여기며 살고 있는 이 집에, 약간이나마 장소감이 생겼다면, 팔할은 내가 들인 노동과 시간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다. 아무튼, '절반만 읽어도 성공'이란 심산으로 도서실에서 열 권이 넘는 책을 골라 들고 집으로 돌아오던 화요일 오후는 어찌나 행복하던지. 여행 중 가장 기쁜 날은 '여행 전날'인 것처럼, 닷새하고도 절반의 휴일 중 가장 설레고 마음이 푸근했던 때는, 퇴근하던 그 순간이었고, 차마 이대로 연휴를 마감할 수 없는 아쉬움으로 그 연휴의 마지막인 일요일 아침, 손가락 고통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누적되는 각종 스트레스와 과로로 일상의 상수(invariable number)처럼 회의감이 들다가도, 두 달의 겨울방학을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의욕이 복구되는 게 교사생활의 묘미이자 고통의 원천이다. 일년에 한 번 리셋되는 삶이라니. 책 한 권, 진지한 만남 한 번, 여유로운 산책 한 번도 사치인 채 불려다니기 바쁜 삶은, '직장생활 개집생활'이라는 소설가 박상영의 말에 백 번 공감하게 만들지만, 그 방학조차 없는 대다수 직장인들의 삶을 생각하면 이조차 배부른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이번에 잘 쉬는 것에 남은 학기가 달려 있다'는 절박함마저 깃들었던 화요일 오후, 즐겨듣는 라디오를 켜서 블루투스 스피커와 연결해두고, 청소기로 바닥을 밀고 물걸레질을 한 뒤, 반신욕조에 몸을 담그니 비로소 심신이 휴식 모드로 입장하는 듯 하였다. 몸과 마음을 일터에서 집으로 옮겨오는, 별반 특별할 것은 없지만 1년 넘게 지키고 있는 내 '귀가-정례(routine)'.J에게 방을 내준 이후로는, 집밖을 나서고 집안으로 들어설 때 입구방 일원상에 인사 올리는 것도 할 수가 없었는데, 다시 '출고반면'이 가능하니, 무려 다섯 달 만에, 나는 거의 온전히 내 일상루틴 속에서 '휴식'할 수 있었다.
=> 도저히 수업이 진행될 것 같지 않던 화요일 3교시, 3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로 나갔다. '자연물을 이용한 조형요소 촬영하기'라고 근사한 이름도 붙여 주고, 휴대전화로 찍어오라고 하였더니, B가 갑자기 "쌤! 앞으로 걸어가봐요"한다. 찰칵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아이는 '이러면 좌우대칭이예요?'라며 내밀었다. 타인이 찍어준 사진을 보는 것이 얼마만인가.
2. '집'에 있어도-
더이상 모험이 가능하지 않은, 노동력재생산을 위한 자기-돌봄노동을 스스로 수행해야 하는 독신 직장인들, 시간을 저당잡힌 직장인들에게 '집'은 잘디잘게 쪼개진 귀환서사의 공간이자, 자기치유의 장소일 수밖에 없겠으나, 미시적으로 살펴보면, 그조차 환상이자 과장된 사치임을 곧장 납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카프카의 <변신>과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싯다르타> 같은 근대 초기 소설에서는 전형적 가족서사가 지닌 '귀환의 구조'가 깨져버린다..(중략)....프란츠 카프카에게 제2의 고향이 '문학'이었다면, 헤르만 헤세가 창조한 제2의 고향은 '방랑'그 자체였다. 카프카는 가족보다 문학을 사랑하여 영원히 새로운 가족을 만들지 않았으며, 헤세는 방랑 그 자체를 일종의 '움직이는 고향'으로 삼아 영원히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주인공들을 그려냈다. 그러고보니, 항상 집에 있으면서도 한 번도 집에 진정으로 거주하지 않는 듯한, 미칠 듯한 불안의 주인공들을 그린 버지니아 울프도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천재성은 늘 집에 있으면서도 한 번도 집을 자신과 일체화시키지 못한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분열의 심리를 놀랍도록 생생하게 묘사했다는 점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그린 여성들은 집에 있으면서도 집을 벗어난 존재, 가족과 함께 있으면서도 가족과 유리되어 철저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뿌리 뽑힌 존재들이었던 것이다."(정여울, 같은 글)
그러니까, 역사적 고난과 파란만장한 모험을 뚫고 자기 가족을 일구어 다시 귀환한 <토지>의 최서희는, 엄밀히 말하면 남성주체의 서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셈이며, 그마저도 여성 작가였기에 성별전환이 가능했다고 다소 인색하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자는 삼계에 집이 없어/아버지의 집도 남편의 집도/아들의 집도/여자의 집은 아니어서"(<나혜석 컴플렉스>중에서)라고 노래한 80~90년대의 김승희 시인, 더 거슬러 '허난설헌'에 이르기까지, 세상과 불화하고 '고향을 잃은' 모든 (탈)근대적 주체들에게, '집'이란 세상에 지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던 셈이다. '집'과 '철학적 주체'의 연관에 대해 생각하던 내 의식은, '비혼'에 관한 최신 설문조사 결과를 읽으며 다시 사회학으로 옮겨갔다.
"성공하거나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결혼과 비혼 중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는 말에 남성의 76.8%가 결혼을, 여성의 67.4%가 비혼을 선택"(30대미혼 1000명(남녀각500명)을 대상으로 한 인구보건복지협회의 설문)했을 뿐 아니라, 비혼을 선택하는 원인으로 상당수의 남성이 '내 집 마련' 문제를, 여성은 '가부장제'를 꼽았다는 사실은, '집'이 갖는 사회적 상징성과 가부장제가 품은 성별 온도차란 측면에서,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음을 보여준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저자 마리아 미즈는 자본주의의 화려한 모습을 떠받치고 있는 3대 요소로 여성, 자연, 식민지를 꼽는다. 자본이 상품을 팔아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노동자와 천연자원이 필요한데, 이 두 가지 요인을 만들어내는 하위 요인이 여성과 자연, 식민지라는 것이다. 여성은 남성 노동자를 먹이고 입히고 재워 '재생산'해주고, 자연은 상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자원을 공급해주며, 최근에는 저개발 국가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 식민지는 값싼 노동력과 천연자원을 동시에 제공해준다...(중략) 우리는 흔히 성별 분업과 그에서 비롯된 권력관계가 전근대적 문화의 잔재이며, 그런 잔재를 일소하면 남녀가 평등하게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성별 분업이 전근대 문화의 잔여물이 아니라 현대자본주의 체제를 구성하는 핵심요소라고 말한다."(정아은,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136쪽)
거의 읽지도, 쓰지는 못하는 직장생활이지만, 타는 목마름에 한 모금 물처럼 읽는 독서중 그나마 가장 인상적이었던 책. 소설가이자 주부인 정아은의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이다. 정여울의 신문기사 속에도 동일한 책이 언급된 것을 보며, 이 책이 준 위로와, 통쾌함, 인식의 쾌감을 얻은 여성독자이자 동지가 여럿이리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여성과 소통하고 연대하고자 하는 모든 남성들에게 필독서로 추천하고 싶다) 간만에 맞는 긴 추석연휴, 코로나-19로 인해 달라진 명절에 성별 변수와 자본제, 가부장제를 X축으로, 계급적, 성차, 가족적 배경을 Y축으로 놓고 보면 좌표위에 스펙트럼처럼 갈라질 풍경이 보이는 듯 하였다. 명절이라도 집에 있을 수 없는 생계노동자, 집에 있어도 쉴 수 없는 돌봄노동자, 운좋게 휴식이 허락되었어도 공간과 자신을 일체화시킬 수 없는 장소 잃은 주체들까지. 과연, 명절에 행복한 자, 그대는 누구인가......묻지 않을 수 없고, 시간과 노동을 가시적으로 저당잡히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해야 하나....잠시 자문하였다.
3. '집'을 그리며-
일을 해도 서럽고 일을 하지 않으면 더 서럽다. 집이 없으면 당연히 불안하고 집이 있어도 불안하다. 정아은의 통찰처럼, "내가 자본주의 체제의 시민이 아니었다는 사실, 전자본주의적 세상과 자본주의적 세상의 경계선에서 끊임없이 소환되고 돌아오길 반복하고 있기 때문"임을, 하이데거의 근원적 '고향상실'과 겹쳐, 자본주의 체제가 발딛고 서 있는 근본 지형, "인류가 전자본주의 체제(자급자족, 물물교환, 길드체제, 상부상조, 신분 사회 등등)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옮겨 올 때, 여성이라는 종족은 함께 옮겨 오지 않고 남겨졌"음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초판에 여성미술가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은 것처럼, 상대적으로 평등하다는 직업군에 속해 있지만, 계약직이자 여성이자, 나이까지 많은 내 눈에는,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겪는 모욕과 불평들을 발견하는 일은 그저 일상이며, 때문에 나는 날마다 상처받고, 결코 자발적이지 않은 침묵으로 응대할 수밖에 없다.
"살면서 우리는 종종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뒤덮은 수많은 사람 중에 눈에 띠는 사람이 되어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싶다고, 호감이 가는 이를 만나면 이런 생각이 강해진다. 너에게 기억되고 싶다. 네 안에 나를 남기고 싶다. 의식의 표면에 떠올려 인식하지 못할 뿐 우리는 모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매일을 살아가고 있으리라.....(중략) 왜 나는 내 가족의 안위만 생각하며 살아가는가? 이타적인 삶을 살며 이름을 남기는 이들은 왜 대부분 남성인가? 저와 제 가족이라는 범주를 뛰어 넘어 인류 역사에 족적을 남기는 이들 중 여성의 비율은 왜 그렇게 적은가....(중략) 이것이 주부라는 존재의 딜레마다. 가족의 안위를 챙기는 일보다 바깥에서 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면 '이기적'이라 비난받지만, 가족의 안위를 챙기는 일에 '너무'충실하면 그 이유 때문에 또다시 '이기적'이라고 매도당하는 것이다."(정아은, 같은 책, 232쪽)
가족이 없는 독신여성조차 이러한 딜레마에서 자유롭지 않다. 홀로 직장생활을 해 보니 그렇다. 오히려 혼자 살기 때문에, 댓가 없는 노동에 불려갈 일이 많았다. 갈 곳 없는 J가 몇 달 동안이나 내게 맡겨진 내력이 그러하였듯, 집은 또다른 노동의 현장이었고, 도무지 온전한 휴식을 제공해주지 못하였다. 복지의 단위가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누구나 이중삼중의 노동에 호명되며, 나이들어 감에 따라 점점 사위어 가는, 연대와 사회적 기여의 꿈을 묵묵히 바라볼 수밖에 없다.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휴식'할 수 있단 말인가.
"가족중심주의로 회귀하자는 것이 아니다. 가족에게조차 고통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독은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밖에는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의 외로움까지, 여전히 '가족'의 문제라는 것이다. 가족의 해체 담론이나 탈가족 이데올로기보다 더 강하고 질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향한 슬프도록 질기고 끈덕진 그리움이었다"(정여울, 같은 글)
닷새 중 사흘은, 감사한 마음으로 줄곧 바깥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지만, 사흘이 넘어가던 날, 나는 난데없이 '네이버 부동산'을 찾아 부산 금정구 오륜동 일대의 집값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평균적으로 영광의 두 세 배가 넘는 부산의 집값. 가뭄에 콩나듯 귀한 전세 매물을 살피다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내가 지금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구나. 내 주체가 태어난 오륜동이 내 존재의 고향이구나....부모도, 조국도, 선생도, 애인도....그 어디에도 내가 깃들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게도 돌아가서 여생을 살고 싶은 '고향'이 있구나. 거기가 내게 어머니의 땅이구나. '
점점 노쇠해가는 모친을 못 만난지 다섯 달이 넘어가고 있다. 이 시간의 길이만큼 언젠가 감당할 슬픔의 무게가 커질 것인데,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여기면 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나는, 꼬박 3년이 되어가도 여전히 제 삶자리와 공간을 장소로 일체화시키지 못한 채, 거의 날마다 미끄러지면서, 직장생활과 상투적 인간관계가 낳는 모욕을 견디며, 그 원인이 내 지나친 자의식 때문인지 아닌지조차 헷갈려 하면서, 이 단절과 침묵이 어떤 식으로든 내 존재의 주름과 무늬로 남기만을 근거없이 희망하며, 무엇보다 여전히 '불안'해하며, 그렇게 닷새 간의 연휴를 마감하고 있는 중이다.
=> 아이가 찍어 준 두 번째 사진이다. 씩씩하게 걸어가는 뒷모습이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