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광복 직후 손원일을 중심으로 1945년 8월 21일 해사대가 조직되고, 동년 9월 30일 해사보국단과 통합, 해사협회를 발족시켰다. 이어 대한민국 해군으로의 발전을 목표로 1945년 11월 11일 해방병단이 결성되어 1946년 1월 14일 국방사령부에 편입되었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따라 동년 9월 5일 드디어 대한민국 해군으로 정식 발족하게 되었다.
한국전쟁 발발 직전까지 해군의 주요 창군활동으로는 1946년 1월 17일 해군병학교를 창설하여 장교교육을 시작하였고 아울로 동년 2월 15일 하사관 및 병 교육도 실시하였다. 또한 함정의 수리 및 건조업무를 위하여 1946년 2월 1일 조함창을 창설하고 군의 위계질서 확립을 위하여 1946년 2월 1일 장교계급을 부여하였으며 동년 6월 1일 하사관 및 병 계급을 제정하였다.
한편, 1946년 6월 7일 진해 근해를 중심으로 해상경비를 개시한 이래, 동년 10월 15일 미군으로부터 LCI 2척을 인수한 후 상륙정·유조정·소해정을 계속 인수하여 함정세력을 확보하였으며, 1947년 8월 30일에는 38도선 이남의 해안경비임무를 미 해군으로부터 인수하였다. 그리고 1946년 4월 15일 인천기지 창설을 시발로, 우리나라 주요 항구인 목포·묵호·부산· 군산·포항·진해에 해군기지를 창설하여 해안경비태세를 갖추었으며, 제주도 해상봉쇄작전 및 여·순사건 진압작전에 참가하여 다대한 전과를 올리며 실전경험을 체득하였다.
한편 1949년 4월 15일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창설된 해병대는 진주·제주지구 공비토벌작전에서 혁혁한 전과를 세움으로써 '해병대'를 국민에게 널리 알렸다.
해방병단 창설요원
최초의 해군 시가행진
충무공정 명명식
한국 전쟁기 (1950. 6. 25.~1953. 7. 27)
전비태세를 미처 갖추지도 못한 채, 북괴 인민군의 전면 기습남침으로 한국전쟁을 맞이한 우리 해군은, 개전당시 병력 및 물자의 현저한 열세에도 불구하고 동·서·남해 전역에 걸쳐 적을 제압해 나갔다. 옥계해전과 대한해협 해전에서 서전을 승리로 장식한 우리 해군은 38도선 이남해역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한반도 전 해역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여 해상봉쇄작전 및 지상작전을 지원하는 함포사격 등을 통해 해안포대와 같은 적의 군사시설을 무력화시키는 한편, 원산·함흥지구전투 엄호작전, 옹진·연백지구 의용군 엄호작전, 전략도서 확보작전, 소해작전 등 적극적인 공세를 펼쳐나갔다. 또한 중공군의 개입에 따른 지상군의 철수에 따라 흥남철수작전을 비롯한 동·서해안의 각종 철수작전에서 병력 및 군수물자는 물론 자유를 갈망하는 수많은 피난민을 철수 시켰다.
뿐만 아니라 육상에서도 육상근무장병들로 육전대를 편성하여 함정과 협동하여 후방 보급로를 확보하고 각종 지상작전을 전개하였으며 특히 개전 이후 아군이 처음으로 대승을 거둔 포항탈환작전에 참가하여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한편 해병대는 "귀신잡는 해병"이라는 자랑스런 별칭을 얻은 '통영상륙작전'을 비롯 진동리 지구전투, 인천상륙작전, 도솔산지구전투, 김일성·모택동 고지전투 등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쟁취함으로써 귀신잡는 해병, 무적해병의 위용을 전사에 길이 남겼다.
공중에서 본 인천상륙작전도
대한해협 해전에서 적 무장선박을 격침시킨 백두산호(PC-701)
통영에서 상륙하는 한국해병대 김성은 부대
전후정비기(1953. 7. 28~1965. 3. 3)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의 조인으로 3년간의 피어린 동족상잔의 전쟁이 종식된 후 우리 해군은 전쟁의 시련을 딛고 필승해군의 기틀을 다져나갔다.
정부와 함께 부산으로 이동했던 해군본부는 서울로 환도하여 조직을 개편하고 1960년 9월 1일에는 대방동 신축청사로 입주하였으며 한국함대를 창설 및 증편하여 함대조직과 해상전력을 정비하는 한편 상륙부대를 증편하였다. 또한 해군대학 및 교육단을 창설하여 장차 해군을 이끌어 나갈 인재양성에 힘썼고 조함창, 보급창, 의무단 및 해군병원 등을 창설하여 지원부대기능을 보강하고 아울러 1945년 제9기 해사생도부터 순항훈련을 시작하여 해군장교의 자질향상과 군사외교를 통해 대한민국 해군의 위용을 전 세계 우방국들에게 널리 알렸다.
한편, 1955년 3월부터 유엔군으로부터 해상작전지휘권을 인수받아 한국 전 해역을 독자적으로 방어하게 되었으며 해상전력의 확보로 호위구축함, 고속수송함시대를 거쳐 1963년에는 드디어 오랜 숙원이던 구축함을 도입함으로써 해상전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구 해군본부 (서울 대방동 소재)
구축함시대를 개막한 충무함 (DD-91)
미국 보스턴에서 인수한 경기함 (DE-71),강원함 (DE-72) 인수식
1954년부터 순항훈련에 참가한 낙동함(PF-65)
전력건설기(1965. 3. 4 ~ 1974. 2. 24)
우리 해군은 한정된 군원과 예산으로 더 많은 전투함을 도입하기 위한 방편으로 미국 예비함대에 편입된 함정을 인수 후 정비하여 재취역시킨 바 있으며, 1968년 4월에 두 번째 구축함을 미국에서 도입한 이래 1973년까지 5척의 구축함을 계속 도입하였다.
1971년 10월에는 고속함(PGM)을 도입하여 해상초계 및 봉쇄작전에 투입하게 되었으며, 1972년 11월에는 우리 해군 기술진에 의해 건조된 학생호의 명명식을 가졌다. 이는 전국 8백만 학생과 20만 교사들의 애국방위성금으로 건조된 최초의 국산 고속정이다. 그리고 1973년 5월에는 함대항공대를 창설하였다.
한편 1973년 10월 10일 군조직기능개편에 따라 해병대를 통합하여 현대화된 해상전력과 항공작전을 수행하는 항공부대 그리고 상륙기동타격대인 정예 해병대 등을 보유함으로써 막강한 전력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1969년 9월 1일부터 시작된 낙도홍보활동을 통하여 대민유대를 공고하여 국민화합에 크게 기여하였고 국민에게 믿음주고 사랑받는 국민의 군대로써 해군상을 제고시켰다.
서울함 (DD-92) 명명식
미국 롱비치에서 인수한 전북함 (DD-96)의 위용
자주국방 기반 조성기(1974. 2. 25 ~ 1993. 5. 25)
1975년도부터 방위세를 재원으로 국산전투함을 건조하여 신예 국산전투함을 주축으로 한 전력구조로 개편하고 대잠 초계항공기와 함재 헬기 그리고 "현대전의 총아"라고 불리는 각종 유도탄을 보유하는 등 최신 해상무기체계를 갖추어 적의 해상도발을 격멸 및 억제할 수 있는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1975년 8월 두차례에 걸쳐 실시한 함대함 미사일 시험발사는 국민의 방위성금으로 건조된 국산고속함에 의해서 이루어진 쾌거로서 자주국방의 자신감과 긍지를 불어넣어 주었으며 또한 해군의 주력함인 국산호위함을 국내기술진에 의해 건조·취역한 이래 계속적으로 국산호위함, 국산초계함, 국산고속함 및 고속정을 건조·취역시켜 자주국방 의지와 능력을 국내외에 과시하였다.
아울러 합리적인 군조직 개편, 전술교리의 연구개발, 군수관리기능의 효율적인 개선 등을 통해 최고도의 전비태세를 유지하는 한편 대잠훈련, 상륙전훈련, 해상기동훈련, 대함·대공 사격훈련, 소해훈련 및 구조훈련 등을 비롯하여 각종 해상훈련을 통해 완벽한 해상방위체제를 갖추었다. 뿐만 아니라 팀스피리트 훈련을 비롯한 각종 연합훈련으로 우방국 해군과의 유대를 공고히 하였으며 특히 태평양 연안국들간의 긴밀한 협조체제를 위해 2년마다 실시되고 있는 환태평양 훈련에 1990년 처음 참가하여 한국 해군의 위상을 제고시켜며 새로운 전술을 터득하고 있다.
최초의 국산초계함 진수식
개혁 및 대양해군 시발기(1993. 5. 26 ~ )
1974년도부터 추진되어 온 자주국방을 위한 전력증강사업으로 한국해역 방어에 적절한 고속정, 고속함, 초계함과 같은 한국형 함정이 건조 및 전력화되어 연안방어능력이 한층 강화 되었고 1981년에는 국산호위함을 취역시킴으로써 원해에서의 작전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1992년 장보고함 도입 이후 잠수함의 국내양산체제를 갖추었으며 1995년에는 첨단 해상초계기인 P-3C가 도입되었고, 1998년에는 국내기술로 건조한 한국형 구축함인 광개토대왕함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북아 주변국들의 해군력 증강에 따른 한반도 주변 해양안보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다가오는 아시아·태평양시대 중심국가로의 발전이 요구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 해군은 대양해군 건설을 앞당기고 한국경제의 생명선인 해상교통로 보호 등 국가 이익 증진의 첨병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완수하기 위하여 전 장병이 혼연일체로 신명을 바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