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2 (목)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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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잃어가는 48세에 식칼 잡고 새출발"
광고인으로 20년 오시환씨 요리사 전업 성공…책도 펴내
“대학에서 4년 배운 것을 밑천 삼아 20년 먹고살았죠. 그런데 더 이상은 앞이 안 보이더라고요. ‘이쯤에서 물러나 다른 일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년을 ‘잘나가는’ 광고인으로 활동하던 중년 사내가 어느날 훌훌 손을 털고 직장을 떠났다. 그러곤 요리를 배우겠다며 홀몸으로 미국으로 떠난 지 3년. 그는 자그마한 해산물 요리 전문점의 주방장 겸 주인으로 지인들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는 동시에 자신의 새 인생 도전기를 ‘마흔여덟에 식칼을 든 남자’(새로운사람들 펴냄)라는 책에 수록해 출간했다.
오시환(吳始煥·51)씨.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계에 첫발을 디딘 뒤 코래드, 거손 등 여러 광고대행사를 섭렵한 그는 이 분야에 이름깨나 알려진 카피라이터 겸 AE였다. 1994년 ‘핸들링이 좋은 차 ○○○○’라는 카피를 내세워 그의 주도로 모 자동차를 광고한 뒤엔 ‘단일 광고로 매출 240억원 달성’이라는 신화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는 가운데서도 뭔가 모를 막연한 불안감이 늘 그를 감싸고 있었다. ‘10년 후에도 내가 이 일을 계속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래가 불안했어요.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런 모색의 시절, 오씨는 평소 취미로 좋아하던 요리를 제대로 한번 배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젊은 날부터 밖에서 맛있는 요리를 먹으면 한식이든 중국요리든 주말에 집에서 그 맛을 재현해 낼 정도로 요리에 흥미와 솜씨를 갖고 있었다.
그는 기왕이면 색다른 요리를 배우자는 생각에 2000년 6월 미국 플로리다로 훌쩍 날아갔다. 아내와 두 딸은 한국에 남겨둔 채였다.
넥타이 맨 채 부하 직원들을 지휘하며 일하던 광고전문가는 낯선 땅 초밥집 주방에서 설거지와 청소를 하는 ‘쿡 헬퍼(주방보조)’가 됐다. 오씨의 나이 마흔여덟. 마음은 급했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하루 12시간 근무가 기본인 주방일은 거의 전부를 선 채로 일하기 때문에 퇴근해 숙소에 돌아오면 다리와 발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그는 플로리다에서 1년간 곁눈질로 요리를 익힌 뒤 뉴욕으로 옮겨 맨해튼의 한 퓨전 레스토랑 주방에서 다시 2년을 보냈다.
미국에서 오씨는 외로웠지만, 외로웠던 만큼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배울 것이 많이 남았지만, 지난 2003년 10월 한국에 돌아온 오씨는 올해 7월 종로구 계동에 ‘해장금’이란 작은 음식점을 냈다. 그는 “늘 불안을 안고 사는 직장인들에게 내 작은 도전이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고 웃었다.
(온종림기자)
:
내 그릇이 조금더 커져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48세된 중년이 이렇듯 꿈을 향해 나아가는데..
내 젊음이, 내 지금 상황이 어찌보면 백배는 더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감히 든다.
전혀 해보지 않은, 단지 관심만 있던 분야로의 도전을 열정과 노력으로
이분은 밟아 나간 모습이 기사를 읽는 내내 느껴졌다.
나 역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다가 관광이라는 다른분야로의 전과를 선택한
경우라 그럴까? 기사내용이 와닿는건..왜인지..^^
나도 한때 마음에 품었던 카피라이터/AE 라는 직업.
한줄의 글쟁이가 되고 싶었던 예전의 내겐,
이분의 전직직업은 무척이나 부럽고 따라서 되고 싶은 모습이었는데..
그리고 지금은 요리사가 무척이나 잘어울려 보인다.
감히 박수한번 쳐드리고 싶다.
그리고 부끄럽다.
내겐 아직 한참이나 충전이 필요한 듯한 열정과 도전정신.
그것이 이분에게는
불혹을 한참이나 넘어선 나이도 무색하게끔
한트렁크 이상의 무게로 느껴지니 말이다.
[원하면 뻗어라, 가지않고 이룰수있는 길은없다]
라는 언젠가 책에서 본 글귀가 생각나는 기사였다.
이분은 원했고, 뻗었고....그 도전이 그에게 가져다준것이 있다는걸
기사를 통해 똑똑히 보았다.
졸업을 앞두고 불안과 조바심이 섞인 복잡한 감정을 안고 사는
내 동기들과 내게 힘이 되는 기사라 발췌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