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왕벚나무
잘못 알고 있거나 헛갈리는 꽃 이름도 많다. 지금은 많이 바로 잡혔지만 한때 한라산에서 자생하는 왕벚꽃을 한국 사람조차 일본 벚꽃(Japanese Chery)으로 안 적이 있었다. 왕벚나무 또는 제주벚나무의 왕벚꽃은 한라산과 전남 해남의 두륜산이 원산지이다. 지역에 따라 앵화(櫻花), 앵(櫻), 대앵도(大櫻桃), 일본앵화, 염정길야행, 큰꽃벚나무 등으로 다양하게 부른다. 이 왕벚꽃에도 전설이 서려 있다.
만수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효성이 지극한 청년이었다. 기운도 세고 마음도 착해 마을 사람들의 자랑거리였다. 한라산 기슭에서 나무를 해다 생활을 꾸렸지만 홀어머니를 공경하는 것만이 큰 기쁨이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던 어느 날 어머니는 그만 병석에 눕게 되었다. 만수가 온갖 노력을 다 해도 어머니는 점점 쇠약해졌다. 만수의 지극한 효성을 잘 알고 있던 스님이 만수네 집을 찾아왔다. 간절히 애원하는 만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라산에 가면 백록담 주변에서 풀을 뜯고 있는 사슴이 있을 것이다. 그 사슴의 뿔을 베어다 어머니께 달여드리도록 해라.” 이튿날 새벽, 만수는 한라산을 올라갔다. 해가 중천에 뜰 무렵 백록담에 도착하니 사슴 무리가 보였다. 눈여겨 보니 유난히도 커다란 뿔을 가진 사슴이 보여 가만히 다가가서 잽싸게 덥쳤다. 도망치려고 몸부림치는 사슴은 뿔이 나무에 걸려 툭 부러졌다. 만수는 얼른 뿔을 집어들고 산을 내려오는데 웬 여인의 상냥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여보세요, 도련님!”
만수는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추었으나 ‘결코 대답하지 말고 뛰어라’라는 스님의 말이 떠올라 애처로운 여인의 말을 뒤로 하고 급히 집에 도착, 뿔을 달여 어머니께 드렸다. 역시 어머니는 감쪽같이 나아 만수의 근심은 사라졌지만 여인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영 맘에 걸려 한라산에 오르니 사슴 무리 옆에 선녀 같은 여인이 앉아 있었다. 아버지 대신에 사슴을 지키고 있다는 여인은 만수의 사연을 듣더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버지도 도련님의 효성을 아시면 노여움을 푸실 것입니다.”하였다. 만수는 여인의 고운 마음씨에 반해 아내가 되어 줄 것을 청했고 여인도 허락했다. 둘은 여인의 집에서 정한수 한 사발로 결혼식을 올리고 달콤한 날들이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만수가 잠에서 깨어보니 여인은 간데 없고 나무 옆에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만수는 여인을 찾다가 밤이 되자 할수없이 집으로 내려왔다.
“아이구 얘야, 엿새가 넘도록 아무 소식도 없이 이게 무슨 꼴이냐?” 만수는 자신이 겪은 일을 털어놓을 수도 없어 말수가 줄고 식욕도 없어졌다. 이듬해 봄, 나무를 하러 한라산에 올라갔더니 옛날 그 여인의 집이 있던 자리에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왕벚꽃이었다. 꽃의 향기를 맡다 깜박 잠이 들었는데 꿈 속에서 아내가 나타났다.
“도련님! 저는 한라산 산신령의 외동딸이었는데 사슴뿔로 인해 당신을 만났고 용기 있는 당신의 아내가 되어 살았습니다. 그러나 사람과 결혼했다 하여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 지금 도련님 옆에 있는 나무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만수는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 보니 눈이 부시도록 왕벚꽃이 피어 있었다. 은은한 꽃내음에 만수는 며칠이고 나무 곁을 떠나지 않았지만 여인이 사라졌듯이 꽃도 지고 말았다.
이 꽃의 꽃말이 ‘정신적인 미인’ 또는 ‘보이지 않는 미소’라 하니 전설에 실린 의미가 더
욱 안타깝다.
11. 솜다리
우리 특산물인데 외국 이름 에델바이스로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솜다리이다. 이 풀은 우리나라 제주도 한라산과 중부 지방의 소백산, 설악산 등 고산지에서 자라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인데, 요즈음은 등산객들이 마구 꺾어 보기 힘든 풀이 되었다. 한라산이나 설악산의 해발 800 m 이상 되는 곳은 4월이 되어도 눈이 녹지 않고 남아 있는데 이때쯤 꽃대 줄기가 눈 속에서 올라와 꽃이 핀다. 눈 속에서 피지만 겨울꽃은 아니고 봄부터 가을까지 핀다. 또한 에델바이스와 똑같은 것은 아니므로 솜다리로 불러야 한다. 이 이름은 흰 솜털이 많아 붙인 이름으로 추정된다. 솜다리는 생명력이 강해 눈 속을 뚫고 나와 꽃을 피우거나 고산지의 험한 바위틈에서도 자란다. 이런 강인한 생태에 비해 이름은 무척이나 연약해 보인다. 그것은 연노란색의 아름다운 꽃 때문일 것이다. 눈 속을 헤치고 꽃을 피우는 처녀치마, 얼레지, 족도리풀, 당개지치 등은 그래서 더 아름답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12. 봉선화
우리 고유의 꽃은 아니지만 우리 가슴 깊이 들어와 있는 꽃이 있다.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고 우리에게 이로움을 주는 꽃이라면 그것이 우리 고유의 것이 아니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꽃들이 채송화, 나팔꽃 그리고 봉숭아 또는 봉선화라 하는 꽃이다.
봉선화 이름의 유래를 규방의 여인과 관련시켜 지은 조선 때 가사인 봉선화가(鳳仙花歌)도 있다. 지은이와 지은 때가 알려지지 않는데, 일설에는 허난설헌이 지었다고 한다.
이 봉선화는 우리와 무척 친한 꽃으로 ‘봉선화 물들이기’라는 민간 풍속이 생겼을 정도이다. 음력 5월경에 아녀자들이 봉선화 꽃과 잎을 짓찧어 손톱에 빨갛게 물을 들이는 것인데 이는 빨간빛은 잡귀를 물리친다는 데서 유래한다. 빨갛게 물들인다고 해서 봉선화에 빨간 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름철에 붉은 꽃, 흰 꽃 들이 피는데 붉은 꽃으로는 손톱에 물을 들이며, 방추꼴의 열매는 약재로 쓰인다. 원산지는 동남아시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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