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날..
눈이 몹시 내려서 테니스를 할 수 없는 상황.
현대 체육관이나 삼성 체육관에서는 공을 칠 수 있을 텐데.....
삼성은 까다로울 것 같고,
현대는 너그러울 것 같아서
현대 체육관 안에 있는 케미칼 코트로 무작정 찾아갔다.
현대 계열사의 사장, 부사장, 임원들이 모여 운동을 하고 있었다.
염치 불구하고 찾아 들아가서
" 공 좀 칩시다. " 하면 거절당할 것이 뻔하여
우선 심판대 위로 올라가서 앉았다.
심판 봐 주는데 싫다고 할 사람은 없으니까.
한참 심판을 봐 주었더니 내려와서 같이 운동을 하잔다.
코트에 들어서니 성질 급한 백화점의 L사장이
다가와서 신분을 밝히란다.
( L사장 그때 당시 명예회장님의 비서실장 이었다. )
점촌 이 외과 원장이라면 "나가시오" 할 것이 뻔하여
"네. 메디칼센타에 있습니다" 하니 " 박사요?" 하고 재차 묻는다.
"네 그래요" 하고 대답을 하니
"그럼 공치시오" 하고 일단은 허락을 한다.
'사람 차별하나?' 생각이 들었지만......
운동이 끝나고 우동을 시켜서 먹는데
면면들을 보니 대단한 분들이었다.
종합상사의 J사장, 건설의 L이사. 중공업의 황사장...
이분들은 명예 회장님을 모시고
영국에 가서 우여곡절 끝에 차관을 얻어오고
울산 앞바다 모래 사장 위에
큰 공사를 이루었던 일, 등등
그 일화를 들어보고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분들은 회장님을 모시고
해외 출장 중에도 라켓을 꼭 지참하고 가서
공항에서나 호텔에서 쉬는 시간만 나면
테니스를 하였다 하며
간간히 들려주는 여러가지의 일화에서
" 이분들이야 말로 사나이 중에 사나이 " 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진짜 애국자들과 어울려서 운동을 하게 하여주니 너무 고마웠다.
그러나 이 저돌적인 Hyundai men 들과 같이 운동하기엔 너무 벅찼다.
겨울에 눈이 오고 코트가 살짝 얼었을 적에는 눈을 치우고 나서
얼음판 위에서 운동을 할 수밖에 없는데
코트에 붙어있는 빙판은 떨어지지가 않는다.
그 위에서 운동을 하기란 불가능한 상태.
이때 J사장이 제안하기를
" 맨발로 뛰자! 그러면 덜 미끄러울 것이다 "
이리하여 운동화, 양말 모두 벗어 버리고
차디찬 빙판위에서 맨발로 공을 쳤다.
발가락은 아리고 케미칼 코트에 살짝 깔린
매연, 먼지가 발바닥에 묻어서
아주 새카맣게 물들고 감각은 없어졌다.
이 매연과 먼지는 그 이후 아무리 발을 씻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여러 달이 지나서야 겨우 탈색이 되었다.
집사람 왈, " 테니스에 미쳤지, 미쳤어 "
여러 달이 지난 후 나는 나의 신분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사실 점촌 이외과 원장이다." 하니 모두 놀라는 표정이다.
" 다음주 주말에는 내가 점촌으로 여러분을 모두 초대하겠다 "
"점촌 가면 술과 한우, 송어회가 너무 좋다 .
테니스 코트는 국제적이다" 하고 유혹을 하여
동의를 받아 사장단을 점촌으로 모셨다.
숲속의 테니스장, 호산춘의 술맛,
한우고기, 송어회 실컷 즐기는것 같았다.
상경하는 차속에서는
모두 " 뿅 " 가서 자면서 올라갔다고 전언하였다.
그러나 이 멋진 사나이들이
이제는 테니스장에서 다 사라지고 한분만 아직 남아있다.
퇴임하시고 난 후 내곡동 테니스 장에서
여유롭게 운동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텅 빈 테니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