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연쇄 살인범을 만드는가? | ||||||||||||||||||
[세상 vs 영화 마주서다] <체인질링> 아이 잃은 엄마 정신병원에 가두는 권력 | ||||||||||||||||||
* 이 글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젊은 엄마에게 자신을 믿어주는 일터가 있고, 그 일터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보다 먼저 자신을 찾을 정도로 일을 잘 해내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어야 한다. 자신과 아이의 삶이 위협받지 않고 이어질 수 있다는 당당한 증거니까. 그렇지만 모처럼 아이와 나들이도 하고 영화도 보며 함께 보내겠다고 약속한 날, 느닷없는 일터로부터의 부름은 내키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나서는 엄마 크리스틴의 발걸음은 무겁고, 예정보다 늦어진 근무 끝에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막는 승진 소식도 마냥 기껍지 못하다.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아이 혼자 기다릴 아이가 걱정되고, 아이와 약속을 어긴 엄마가 되어 미안하다. 바삐 돌아간 집, 아이가 없다.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그러던 참에 경찰이 찾아와 아이를 찾았노라고 으스대더니, 기자들을 잔뜩 불러놓은 기차역 플랫폼으로 크리스틴을 데려간다. 경찰이 ‘자, 당신 아이요’라고 내미는 아이를 본 크리스틴은 소스라친다. 그토록 애면글면 찾던 아들 월터가 결코 아닌데도, 경찰은 자꾸 그 아이가 당신 아이 맞다고 우겨댄다. 게다가 자기가 월터라고 주장하는 낯선 아이는 크리스틴에게 엄마라고 부르며 매달린다. 몰려든 기자들이 그 상황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부정한 정치세력, 앞잡이 경찰 이 무렵의 L.A.는 파탄으로 치달아가는 경제 상황에다가 부정부패로 썩어 문드러진 정치 세력이 경찰을 앞세워 반대의 목소리를 처단하고, 부패 세력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저지르는 도시였다. 이렇게 공권력이 자신들만을 위한 야합의 정치를 벌이는 도시에는 그늘이 질 수밖에. 그리고 도시의 그늘에서는 흉악한 범죄가 저질러질 수밖에. 순종을 강요당한 신체를 통해 복종하는 주체를 만들어내는 정신병원의 ‘규율’은 바로 권력의 특유한 기술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현실의 모습이며, 권력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대상을 객체화된 구조 속에서 옴짝달짝 못하게 하는 교묘한 감시와 처벌의 시스템이다.
크리스틴이 갇힌 병원은 바로 감히 드러낼 수 없는 처벌의 권력이 객관성의 영역을 빙자해서 형벌을 공공연하게 치료법이라는 이름으로 강제하면서 은밀하게 거짓 진실을 조작하는 감옥 그 자체다. 다시 말해 권력이 저지르는 위법을 정당화하는 기관이다. 영화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사실 아버지와 누나의 근친상간을 통해 태어난 이 살인괴물 또한 사회로부터 소외된 존재다. 구원을 갈구하면서도 끝끝내 진실을 밝히지도 않고, 용서도 구하지 않는 연쇄살인마는 실종된 아이들, 살해된 아이들, 아이를 찾지 못해 애끓는 부모들 못지않게 무겁고 비참한 존재다. 가혹한 처벌로는 아이를 못 찾는다 감시와 처벌만으로는 이런 존재를 교정할 수도, 찾아낼 수도 없다. 그러므로 2년의 징역 기간을 거쳐 정확한 사형 날짜를 선고하는 판사의 준엄한 선고는 연쇄살인마에 대해 가장 가혹한 처벌로 응징한다는 분풀이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아들 월터를 찾고자하는 크리스틴의 절절한 마음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책임이 너무 무겁다며 월터가 태어나던 날 떠난 남편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찾기 위해 거짓과 맞서 싸우고, 끝끝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크리스틴의 모습은 그저 모성의 표상이 아니라 개인이 사회 안에서 주체적으로 살고자 할 때 지켜야 할 책임지는 주체의 표상이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만도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이니,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이니 하는 끔찍한 살인사건이 계속되었다. 그러더니 이번에 군포에서 여대생살해사건이 벌어졌다. 공권력은 어디 있어야 하는가?
<체인질링> 앞 부분에서 크리스틴은 학교에서 친구와 치고받고 싸웠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월터에게 이렇게 말한다. ‘싸움을 먼저 일으키지는 마. 대신 끝은 네가 내.’ 그리고 L.A.경찰과 맞서겠다고 결심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 싸움을 시작한 건 내가 아니지만 끝은 내가 내겠어.’ 부당한 상황을 끝내고자 하는 이 한 마디는 법과 조직, 권력으로 무장한 공권력보다 스스로 맞서 싸우고자 하는 책임감이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