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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차 백두대간은 금강과의 이별이기도 합니다. 산줄기는 물줄기를 떠나서는 예기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물줄기를 가르며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취산에서 금강과 만난뒤 지금까지 쉼없이 같이 달려 왔는데 산줄기를 떠나서 강줄기를 따라 가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우리가 걷고 있는 대간의 흐르는 물이 금강으로 흘러간다는 말은 들었지만 피부로 느끼질 못하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갈증을 풀어 보시기 바랍니다. 금강에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 봤습니다.
금강 : 국가하천인 금강은 하천연장 397.79km이다. 굽이치며 흐르는 물결이 마치 비단결과 같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는데
동국여지승람에는 여러가지 명칭이으로 표현된다. 상류에서는 赤登津江, 車灘江, 化仁津江, 공주지역에서는 熊津江, 부여에서는 白馬江, 하류에서는 高城 津江으로 되어 있다.
이렇듯 다양하게 불리는 이름은 각각의 지역에 따라 그 고장 사람들의 역사적이며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 녹아 있다.
충청남도와 충청북도의 양 절반과 전라북도의 약 1/4을 차지 하고 있다.
금강의 역사
금강유역은 선사시대부터 최적의 삶의 터전이었다.
공주 석장리 유적은 구석기시대, 부여 나북리와 서천장항읍장암리 등의 신석기 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부여 송국리 유적은 남한에서 발굴된 청동기 시대의 최대 유적으로 평가된다.
대전 갑천변의 괴정동의 돌널 무덤은 구릉지대의 청동기시대의 소중한 유적이다.
금강이 역사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른 계기는 백제 문주왕이 한성을 버리고 웅진 천도를 단행하면서 부터다.
북쪽으로 금북정맥과 남동쪽으로 금남정맥의 계룡산이 위치하고 그 사이에 금강이 흘러 천연의 요새다.
서해를 이어지는 금강을 대 중국 교통로로 활용했다.
삼국시대이후 백제패망의 한을 품은 곳이자 백제 부흥운동의 주요무대가 되었다.
조선시대 지방제도의 정비로 8도 체제가 되면서 금강유역의 충청도가 비로소 탄생하게 된다.
시인 신동엽의 "옛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속, 망하고 대신 정신을 남기는 곳"이라느 서사적 함축처럼 역사적 항쟁의 무대였다.
1862년 금강유역에서 18개 군현에서 농민 항쟁이 전개 됐고, 의병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고 항일 민족운동의 주요 근거지가 되었다.
금강은 흐르면서 많은 지류가 합류하는데. 대표적인 지류는 전북무주,진안.충남 금산의 남대천 정자천 봉황천이, 충북의 송천,보정천이 합류하고,
대전의 갑천 공주의 유구천 부여의 금천등이 금강과 합류하게 된다. 지금부터 이 초보 산꾼과 함께 금강을 따라 걸어 보겠습니다.
자료: 오마이뉴스블로그,충청일보불로그
금강 발원샘 뜬봉샘
장수군 신무산에서 발원된 뜸봉샘은 봉황이 하늘로 높이 치솟아 올랐다는 어원으로 태조 이성계의 간절한 기도로 봉황이 오른 곳에 샘이 있었다하여 뜬봉샘이라고도 하며,
신무산이 워낙 악산이다보니 중간에 뜸을 놓았다고 해서 뜸봉샘이라고도 한다.
뜬봉샘
발원샘을 떠난 물줄기는 백두대간의 영취산과 할미봉 남덕유산으로 오르면서 용담호를 이루게 되는데 용담호를 만나기전 죽도를 만나게 된다. 죽도 (진안상전면 수동리) 정여립이 의문사한 진안의 죽도. 대나무가 많아 죽도하 하고 안동의 하회, 예천의 회룡포와 같이 '물들이동'(육지의 섬)이다 죽도와 금강 용담호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에 있는 다목적 댐으로 높이 70m, 길이 498m이다. 총 저수량은 8억1500만톤, 수몰면적은 950만평이다. 용담댐은 1980년 착공해 1997년 12월에 너비 3.2m, 길이 21.9km의 導水터널을 완공한 뒤 2001년 10월 13일 완성되었다. 진안 구봉산에서 본 용담호
용담댐을 떠난 금강은 무주군 부남면일대를 흐르면서 금강 벼룻길을 이루며 금강은 북동진한다.
금강벼룻길
금강벼룻길(금강옛길)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되는데 그중 부남면 대소리에서 율소 마을로 이어지는 금강 벼룻길이 가장 유명하다. 길 폭은 좁지만 편안하고 운치가 있다.
금강벼룻길 안내판
금강벼룻길과 금강
부남면 굴암리
동의 베틀봉과 남으로 조항산 과 각시바위의 대소리와 인접한다.
굴암리와 금강
금강은 흘러 용포리 잠두마을 옛길을 만난다.
잠두마을 강변 옛길
잠두마을 강변옛길 안내판
잠두마을과 금강
용포리를 떠난 금강은 무주의 남대천과 만나게 된다.
금강따라 천리길 2부에 만나게 될 것 입니다.
우리가 백두대간을 하면서 강줄기를 본적은 없을 겁니다. 노고단에서 멀리 섬진강을 볼 수 있기는 하지만/// 운해가 낄때 노고단에서 보는 섬진강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지요. ㅋㅋㅋㅋㅋ
그래도 산줄기가 굽이 돌따마다 접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저수지입니다. 강의 지류를 이루는 원천인 계곡의 발원지의 역활을 하고 있지요.
지금부터 백두대간에서 보았던 저수지를 따라 금강을 따라 가겠습니다.
무주남대천과 금강 (무주읍 대차리)
금강의 제1지류이머 길이는 54km.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덕유산 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무주 남쪽 상곡천과 적상천과 합류한 뒤 금강으로 흘러들어간다.
백두대간에서 보면 빼재와 대덕산과 삼도봉에서 민주지산,각호산에서 흘러들어 남대천을 이루고 무주구천동 계곡물과 함께 대차리 금강으로 흘러 든다.
무주구천동과 나제통문 적산산성등의 유적이 있다.
특히 나제통문은 신라와 백재의 경계를 이루었던 곳으로 지금도 백제 쪽이었던 설천면과 신라쪽이었던 무풍면은 같은 군에 속하면서도 생활풍속과 방언이 다르다.
남대천과 금강 합류지점
남대천과 만나 금강은 이제 북진을 시작한다
금산군 경계 방우리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는 산과 물줄기에 막혀 금산에 속하면서도 생활권은 무주인 외딴 동네이다.
방우리 개념도
금강물줄기가 방울처럼 매달린 지형을 만들어 방우리라 했다.
방우리 습지
향로봉에서 본 후두리마을
적벽강 (금산군 부리면 수통리)
방우리에서 북진하다 보면 적벽강을 만나게 된다.
적벽강과 대장금의 촬영지로 더욱 유명해진 수통리는 원래의 자연 그대로 감상할 수 있는 환경부가 자연생태 우수마을로 선정한 마을이다.
水桶이란 남쪽으로 흐르는 금강이 서쪽으로 한굽이 구부러졌다가 산 아래 쪽으로 굽이치며 북쪽으로 흐르다 다시 한번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등 두 굽이를 돌아도 물이 통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적벽의 바위산은 붉다, 아마도 그 붉은 색으로 부터 적벽의 이름이 유래 됐으리라 여겨진다.
적벽강
저곡리 닥실나루
금산 제원면 저곡리 닥실 임진왜란 당시 금강을 도강하는 왜군과 금산의 관군이 1차 접전 개티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닥나무를 많이 심어 닥실 또는 저고이라 했다.
저곡리 닥실나루
금산을 읍내를 흐르는 봉황천이 금강과 합류한다.
호탄천과 금강의 합류
봉황천과 합류한 금강은 이제 동으로 이동하다 호탄천과 만나다
호탄천은 고려조 공민왕의 발자취가 있는 천태산 누교저수지에서 시작되며,
갈기산은 호탄에서 겁도 없이 말이 갈기를 쳐 박고 물을 마신다 하여 갈기산이라 했다.
금강호탄교에서 본 봉화산
양산팔경과 강선대(송호리)
우리국문학상 신라가요 목록에서 중요하게 헤아리는 양산가의 고장으로 신라와 백제의 끊임없는 싸움의 역사 속에 신라 김흠운 장군의 애환이 깃든 곳이다.
양산팔경의 하나인 강선대는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옥퉁수를 불다가 그름을 타고 승선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동악 이안눌과 백호 임제의 시가 있다. 1956년 5월10일 지은 시멘트 육각기와집이다.
강선대
강선대에서 본 금강
송호리를 지난 금강은 다시 북진을 시작하고 심천유원지를 만난다.
일성대와 심천 유원지
일성대는 백여년 전 박래규라는 사람이 세웠던 것을 1973년에 시멘트로 새로 지었다.
일성대
일성대와 금강
강 너머에는 청암나루가 있었다고 한다.
옥계폭포
영동군 심천면 옥계리에 있으며 일명 박연폭포라고도 불린다.
충청권 최대 폭포이며 물줄기의 높이는 무려 20여 미터로 주변의 수려한 경관과 어울려져 일대의 장관을 이룬다.
옥계폭포
옥계폭포 월이산에서 본 금강
초강천과 금강
영동군 용산면 심천리에서 초강천과 금강이 합류한다.
삼도봉과 민주지산 그리고 석기봉의 북사면과 삼도봉에서 우두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사이에 물한계곡이 형성되어 황간면에서 난곡천과 석천이 만나 초강천을 이룬다.
추풍령고개에서 만난 추풍령저수지에서 발원한 추풍령천은 황간면에서 물한계곡과 만나 초강천으로 흘러들고
개터제에서 본 상판저수지의 물은 반야사 절로 유명한 석천계곡으로 흘러 황간면에서 초강천을 만나게된다.
심천교 부근 금강
이원천과 금강
건진천과 이원천이 만나 금강과 합류하는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로 이어진다
서대산 줄기인 장룡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장천리 이원저수지를 이루면서 이원천을 이룬다.
이원천과 금강
금강유원지 (옥천군 동이면)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금강휴게소 부근의 금강유원지를 만난다.
철봉산에서 본 금강 과 경부고속도로
철봉산에서 본 금강
고현마을(옥천군 청성면)
옥천의 하늘아래 첫 동네 '고현마을(높은별)'에서는 옥천의 최고의 숨은 비경을 볼 수 있다.
고현마을
고현마을 앞 금강
보청천과 금강(옥천군 고당리)
보은읍에서 남하하여 옥천군 청산면에서 서로 물길을 바꾸면서 고당리에서 금강으로 흘러든다.
한남금북정맥의 구룡산 직전 봉에서 분기하여 노성산,덕대산금적산을 거친 뒤 고당리의 국사봉을 일으켜 세우고는 금강과 보청천의 합수점인 청성면 고당리에서 맥을 다하는 50여 km의 금적지맥이다.
안남면 일대로 금강은 들어서면서 대청호를 이루게 된다.
안남면 둔주봉에서 본 금강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 ( 하계리)
옥천읍 죽향리 하계에서 태어난 시인 정지용의 생가 옆에 문학관을 건립하여 삶과 문학을 살펴보도록 건립했다.
정지용 문학관
향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멀는 모래성으로 발을 옳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둘러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대청호
금강수계에 최초로 건설된 다목적 댐이다.4대강 유역 종합개발계획의 하나로 1975년3월에 착공하여 1980년에 완공되었다.
대전과 충청도 3개군6개면에 걸쳐 있다.
대청호(저멀리 청남대가 숨어 있단다)
부강포구
금강여행의 마지막 종착역이다. 범위를 벗어났지만 너무도 중요한 곳이기에 소개한다.
금강수운의 가항 종점이었으며 수운이 이용되었던 하항이었던 까닭에 충청내륙지방의 관문 역활을 했다.
부강포구는 부강약수로 유명하던 청원군 금남면 부용리에 있다.
부강포구가 전성기였을 때 당시에는 초사흘과 보름에 한번씩 지내는 고사떡만 얻어 먹고도 인근의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로 풍성했다고 한다.
이 곳으로 배들이 싣고 온 해산물이 얼마나 많았던지 조기로 부채질을 하고', 미역으로행주를 삼으며, 명태로는 부지깽이를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얼 정도이다
이제 백두대간과 함께한 금강을 3회에 걸쳐 달려왔습니다.
금강의 다음부분은 백두대간을 끝내고 금남이나 금북정맥을 함께할 기회가 있으면
함께 달려보기로 약속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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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도덕산님의 글은 자료실에 보관되어 후답자님들께 도움이 되면 좋을듯하여 옮겨봅니다...
이런 모습으로 인해 금비령 대장님을 존경합니다. 전에 금강휴게소에서 만두![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12.gif)
겨찾기였는데... 먹고 싶어라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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