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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도 |
2003년 9월 첫 방송되어 5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대장금>이 방송 5주년을 맞았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간 아시아, 유럽, 중동, 아프리카까지 총 60개국이 넘는 국가에 방송되었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로서 <대장금>의 주인공 이영애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에 알려진 대한민국의 여배우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 이후 작품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이영애. 그녀는 요즘 무엇을 하고 지내고 있을까? 후속 드라마나 영화가 늦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깊어지는 그녀의 고민은 무엇인가? 작품에 대한 인터뷰 이외에 사적인 인터뷰는 좀처럼 하지 않는 그녀가 모처럼 카메라 앞에 섰다. <MBC스페셜-나는 이영애다> 편에서는 한국 배우 누구도 갖지 못한 그녀의 네 가지 얼굴을 분석해보면서 우리가 몰랐던 <나, 이영애>의 사실적인 모습과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를 공개한다. |
주요내용 |
방송 5년이 지났지만 <대장금>의 열풍은 현재진행형이다. 아시아를 넘어 현재는 중동, 아프리카까지 그 열기가 뜨겁다. 이에 제작진은 어느 곳보다 열기가 뜨거운 짐바브웨(아프리카)와 이란(중동)을 직접 방문했다. ① 아프리카, 중동에 부는 대장금 열풍 현재 화요일 프라임 타임에 <대장금>이 방송 중인 짐바브웨는 올림픽 중계 때문에 <대장금> 결방되자 방송국에 항의 전화가 쇄도하여 결국 올림픽 중계를 중단하고 다시 내보낼 정도였다. 또 <대장금> 관련 시청자 퀴즈에는 국민 1300만 명 중 3분의 1이 넘는 480만 명이 응모하여 대장금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대장금>을 보며 의사의 꿈을 키웠다는 짐바브웨 아이들이 전통춤에 맞춰 ▷
해외드라마로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장금>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던 이란. 이란 사람들은 거리에서 동양 여성을 보면 ‘양금’(장금의 이란식 발음)이라 부르며 관심을 보인다. 또 <대장금>을 보고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는 가정이 생겨나고 집안 일 잘하는 여성을 빗대는 말의 ‘양금스럽다’ 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는 등 <대장금>의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중동의 모나리자 한국음식, 맛있어요! 장금이를 위한 노래♪ ② 이영애에게 <대장금>은……. “모험이었죠. 대장금이란 작품을 하기 전에 걱정이 제일 컸었어요. 이영애의 매니저 이주열씨는 18년 배우 생활 중 <대장금> 출연 결정을 앞두었을 때가 가장 큰 고비였다고 말한다. 3년이라는 공백이 있었던 데다가 여배우 단독주연으로 6개월간 이끌어가는 사극에 출연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현재 외국인들의 관광명소가 된 <대장금> 세트장. 이영애가 5년 만에 그곳을 다시 찾았다. 세트장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촬영 당시를 회상해 보고, <대장금>이 배우 이영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녀를 일약 월드스타로 만들어 준 <대장금>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들어 본다. “대장금이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능력과
2. CF여왕의 얼굴 그리고 여배우의 얼굴 ① CF만 240여 편. CF모델 이영애 - 이미지를 만들다 “18년간 240여 편의 CF에 출연했다는 것은
1991년, 초콜릿 CF모델로 데뷔하여 18년간 출연한 CF만도 총 240여 편. 가히 CF퀸이라 부를 만하다. CF를 통해 당대의 가장 이상적인 여성상을 나타내며 다른 어떤 여배우와도 비교될 수 없는 자신만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영애. 제작진은 그녀의 CF 촬영 현장에 찾아가 18년 경륜이 만들어낸 CF퀸으로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국내 최다 CF 주인공 기록을 세우기까지 그 후일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다. 또 몇 해 전, 네티즌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CF 속 ‘이영애의 하루’에 대한 본인의 생각, 신용카드 광고모델로서의 책임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다. ② 배우 이영애 - 이미지를 깨다 “CF 속의 이미지는 저의 딜레마이자 하나의 큰 성장고통이라고 생각해요. 전대미문의 여성캐릭터로 한국영화계에 파란을 일으킨 영화 <친절한 금자씨>. 영화 속 이영애의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CF를 통해 만들어진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여신’ 같은 이미지는 온데간데없다. 술집 작부, 불량 여고생, 전과자 등 다양한 연기변신을 통해 CF 속 이미지를 깨기 위한 그녀의 노력들을 살펴본다.
3. 나 이영애. 우리가 몰랐던 또 하나의 얼굴 ① 3년간의 공백 <친절한 금자씨>로 각종 영화제의 상을 휩쓸고 단숨에 ‘충무로 흥행 파워 1위’로 등극한 배우 이영애. 하지만 그녀는 그 이후 TV에서 얼굴을 비춘 적이 없다. 단지 몇 개의 CF와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잠깐 출연한 것이 전부다. 최근 그녀의 공백을 두고 우려와 비난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평소 ‘뿌리 깊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하던 그녀가 3년 동안 아무 작품에도 출연하지 않고 있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는 대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공백에 대한 솔직한 심정과 우리가 몰랐던 그녀의 성격에 대해 들어 본다.
② 그녀의 일상
“그냥 편해요. 이러고 다닐 때가 사실은 저 같고 제 옷 입은 것 같고...” 작품 활동이 없는 요즘, 그녀는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여자로서의 여성성을 잃지 않고 본인의 능력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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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1971. 1. 31
학 력 : 한양대학교 대학원 박사 재학
신 장 : 165cm
가 족 : 2남 1녀중 막내
한양대학교 독어독문과 졸업. 중앙대학교대학원 연극영화 전공 재학 중.
대학교 진학후, '여학생'의 표지 모델을 찍었던 감독 덕분에 '투유 초코렛'의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1991년 '마몽드'의 모델이 '산소같은 여자' CF로 주목받았다.
1993년 SBS 드라마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로 연기를 시작, 1995년에는 SBS '아스팔트 사나이'에서 정우성의 누나로, MBC '사랑과 결혼' KBS '서궁' '파파' MBC '찬품단자' 등 한 해에 5개의 작품에 출연했다. 이어 배용준을 스타덤에 올린 KBS의 '파파'에서 딸을 홀로 키우는 당찬 커리어우먼 이혼녀 역할을 맡았다.
영화는 97년 <인샬라>로 데뷔했으며, 드라마 '그들의 포옹', '동기간', '간이역', '의가형제', '내가 사는 이유', 1998년 SBS드라마 '로맨스', '애드버킷', SBS '파도'와 KBS '초대'를 통해 연기력을 쌓았다. 김수현 작가의 '불꽃'은 한때 이영애의 파마 머리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불꽃'을 마지막으로 이영애는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가 크게 성공하면서 브라운관을 떠나 스크린에서만 활동하게 된다. 이정재와 공연한 <선물>, 유지태와 공연한 <봄날은 간다> 역시 여성스러우면서도 대담한 모습을 보여주어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으며, 한편으론 'LG 카드' '지펠' '엘라스틴' 등 수많은 광고를 찍으면서 CF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곧이어 그녀는 MBC의 <대장금>에 출연하게 되는데, 2003년 9월 방송을 시작한 이 드라마는 시청률 50%를 넘기면서 '국민 드라마'로 자리잡았고 그녀를 최고의 배우자리에 올려놓게 된다. 더구나 <대장금>이 중국, 대만, 일본을 비롯해 홍콩 등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공동경비구역 JSA>에 이어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에 출연, 다시한번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94년 SBS 연기대상 신인상, 95년 KBS 연기대상 인기상, 97년 MBC 연기대상 우수연기자상 2003 MBC 연기대상 대상 수상.
2005년 <친절한 금자씨>로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이후 4년간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다.
2009년 8월 24일 미국에서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리고, 25일 법무법인을 통해 이를 언론에 알렸다. 법무법인을 통해 결혼사실을 알린 경우는 유례가 없다.
이영애는 잠정초등, 정신여중, 잠실여고, 한양대 독어독문과를 졸업하고 배우로 활동하다 중앙대 대학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14살때 주니어 잡지 표지모델로 데뷔하여 화장품 CF에서 '산소같은 여자'라는 카피를 가지고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 별명으로 갖고 있다.
CF모델로 얼굴이 알려진 이후 SBS 특채로 탤런트가 되어 TV드라마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를 통해 데뷔한다. 그리고 CF에서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이미지와 드라마 속 인물 '도도희'의 도도한 아름다움으로 인기를 얻게 된다. 그 후 이영애는 다양한 드라마에서 도시적인 세련된 이미지를 보여주며 당찬 연기를 보여왔다. 이영애의 이런 이미지는 90년대 후반기가 되면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영애는 도전적이고 정열적인 모습에서 여리고 순수하며 정적인 이미지로 자기변신을 꿈꾼다.
이영애는 영화 데뷔작으로 이민용감독의 <인샬라>에 출연했었지만, 흥행에는 실패한다. 그리고 드라마에만 출연하다가 최근에 다시 출연한 작품이 2000년 최고의 화제작 <공동경비구역 JSA>이다. 흥행과 작품성에서 모두 높은 평가를 받은 이 영화는 영화에 재도전한 이영애의 야심작이기도 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이영애가 영화배우로서 입지점을 굳히는 중요한 작품이 됐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쉬리> 이후 한국영화의 흥행기록들을 갈아 치웠을 뿐만 아니라 2001년 베를린 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되면서 흥행배우로서의 위력을 발휘하였다. <공동경비구역JSA>에 이어 <선물>에 출연, 남편을 두고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아내의 역을 맡았다. 삼류개그맨인 남편(이정재)을 두고 먼저 세상을 뜨는 것에 가슴아파 하면서도 오히려 야멸차고 매몰차게 대하는 여인의 역을 잘 소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영애와 이정재의 열연에 힘입어 <선물>은 개봉 첫 주말에만 서울 10만, 전국 22만의 관객을 불러들였다. 송강호, 이병헌, 신하균 등 쟁쟁한 남자배우들의 그늘에 가려져 연기력을 인정받지 못했던 이영애가 연기력과 함께 흥행력을 입증한 셈. 이후 이영애는 싸이더스에서 제작하는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에서 이혼녀 은수역을 맡아 유지태와 호흡을 맞추었고, MBC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역으로 큰 인기를 모았으며,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친절한 금자씨>에 출연하였다. 한양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며, 2009년 8월 24일 재미교포인 정모씨와 결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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