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4월 20일 (일요일) * [부활절]
* [새재사랑산악회-제140차 산행] ♣ 전남 강진 주작산-덕룡봉 종주 (전야 11:30 출발)
* [산행 코스] 오소재(전남 해남군 삼산면)→ 291봉→ 412봉→ 421봉→ 작천소령→ 덕룡봉(437봉)→ 425봉→ 묘삼거리→ 436봉→ 서봉(433m)→ 동봉(420m)→ 암봉, 암봉, 암봉→ 그리고 289봉→ 또 암봉, 암봉→ 소석문(강진군 도암면 석문리) [→강진 ‘화경식당’]
* [프롤로그] — 진도 앞바다의 여객선 침몰(沈沒)! 바다의 대참사(大慘事)!!
☆… 믿기 어렵고, 믿고 싶지 않은 바다의 대참사(大慘事)가 발생했다. 승객과 승무원 476명을 태우고 인천에서 제주로 가던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16일 오전 8시 55분쯤 전남 진도군 병풍도와 관매도 사이 바다에서 좌초한 후 침몰했다. 군관민이 합동으로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사건 발생 일주일만인 23일 현재 174명이 구조되고, 사망·실종자가 무려 302명이다. 1993년 10월 전북 부안 격포 앞바다에서 사망자 292명을 낸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 후 21년 만의 참변(慘變)이다. 특히 이 배에는 제주도로 3박 4일 수학여행을 가던 경기 안산시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과 교사 15명의 단체 승객이 타고 있었다. 구조된 학생은 겨우 70여 명, 나머지 학생은 사망했거나 실종되었다. 실종자 상당수는 가라앉은 배의 선실·식당 등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 아무리 4월이 잔인한 달이라지만, 아아, 이렇게까지 잔인해야 하는가.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는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의 가슴을 태우고 있다. 배에 갇혀 있던 아이들이 어떤 일을 겪었을지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평생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온 필자로서는 속절없이 바다 속에 잠긴 아이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일상을 살고 있는 것이 죄스럽기까지 하다.
☆… 사고를 막지 못한 것에서 사고 후의 대처까지 어느 하나 명확한 것이 없다. 자신의 지위와 역할을 다하지 못한 선장과 승무원의 무책임, 이리저리 책임을 전가하면서 자신의 몸만 지키려는 공무원의 안일, 온 국민의 슬픔과 오열을 무색하게 만드는 장난질 SNS 메시지,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잔인한 인신공격과 비겁한 비아냥거림….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듯 불행을 비웃고 있는 인간의 추악한 모습이다. 이 모든 것에 우리는 분노를 느낀다. 이런 분노가 사회 전반에 대한 불신, 정부와 정치인에 대한 배신감을 초래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혼란과 혼돈이 우리 사회를 세월호처럼 침몰하게 만들 수 있다.
* [오늘의 산행] — 꽃다운 생명들의 회생과 명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 산행을 앞두고 많이 망설였다. 온 나라가 고통과 허무의 바다에 침몰해 있는 상황 속에서 산행을 꼭 해야 할까하는 고민이었다. 며칠을 고심한 끝에 산행을 감행하기로 했다. 우리들의 산행이 단순한 행락이 아니라 일종의 고통을 함께 하는 하나의 의식(儀式)으로써 이번 불의의 죽음을 당했거나 절망에 싸인 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출행했다.
☆… 오늘은 전라남도 해남군과 강진군에 걸쳐있는 주작산-덕룡봉 종주 산행을 하는 날이다. 주작산은 남도의 고찰 해남 대흥사를 품고 있는 두륜산 동쪽에 있는, 동서로 길게 뻗은 산줄기이다. 해발 475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산세(山勢)가 봉황이 날개를 활짝 펴고 나는 듯하다 해서 ‘주작(朱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곳곳에 긴 바위능선이 많고 그 능선을 따라가면 남도의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남군 삼산면 ‘오소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능선을 타고 안부인 작천소령에 이르고 난 후, 다시 덕룡봉(德龍峰) 능선을 타고 서봉-동봉을 경유하여 강진군 도암면 소석문(小石門)으로 하산하는 여정이다. 주작산과 덕룡산은 해발 430m~475m로 높은 산은 아니지만 전국 100대 명산으로 꼽힐 정도로 웅장한 산세를 자랑하고 있으며 산꾼들에게는 '남도의 공룡능선'으로 불린다.
* [산으로 가는 길] — 야심한 밤, 남도를 향한 어둠 속의 질주
☆… 2014년 4월 20일 토요일 밤 11시 45분, 서울 군자역을 출발했다. 오늘 참석한 대원은 34명이었다. 늘 고락을 함께하는 정겨운 대원들을 비롯하여 오늘 처음 나온 분들도 많았다. 오늘은 차박(車泊)을 하며 산행 들머리인 전라남도 해남의 ‘오소재’까지 달려가야 한다. 해남 땅끝마을에 가까운 곳이니 먼 남행길이다. 버스가 출발하자 장병국 회장이 인사말을 통하여 ‘진도 앞바다 대참사에 대해 언급하면서, 모두가 지금 참담한 마음이겠지만 애도(哀悼)하는 마음으로 산행을 하자’고 말했다. 며칠 동안 TV화면으로 참사의 현장을 지켜본 대원들이기에 모두가 숙연한 마음이었다. 우리의 ‘초록버스(분당항공버스)’는 경부선을 경유하여 차량 통행이 뜸한 호남고속도로의 어둠을 가르고 질주했다. 버스는 광주의 광산I.C에서 내려 광주 서쪽의 외곽도로를 타고 가다가 13번 국도를 이용하여 나주-영암을 거쳐 해남에 이르렀다. 해남에서 857번 지방도로를 타고 삼산면 오소재에 도착한 시각이 4월 21일 일요일 새벽 4시 30분, 아직도 사위가 캄캄한 밤중이었다. 남도의 새벽바람이 차가웠다. 대원들은 후드가 있는 윈드자켓을 다시 챙겨 입고 이마에는 랜턴을 장착했다.
[캄캄한 새벽] — 어둠 속에서 산행(山行)이 시작되다
☆… 새벽 5시 5분, 오소재에서 산행에 돌입했다. 오늘의 선두는 승조 김화영 대장이 서고, 중간은 베토벤 부대장과 김의락 총무가, 후미는 지평 민창우 대장이 수습하여 오기로 했다. 세 사람이 각각 무선기를 휴대했다. 어둠 속에서 안전한 산행을 위해서였다. 대원들은 각자의 이마에 장착한 랜턴의 불빛으로 앞을 밝히고 산길을 따라 일렬로 산을 올랐다. 산길 주위에는 신록으로 막 피어난 나뭇잎들이 남도의 바람결에 술렁이고 있었다. 그렇게 완만하게 오르는 산길, 나무테크로 만든 첫 계단을 차고 오른다. 아직 주위를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속이지만 능선에 올라선 것 같았다. 음산한 바람이 온몸을 감싸온다. …
완만하면서도 부드러운 흙길로 이어지는 산길이다. 그렇게 약 30분 정도 지나고 나니 여명(黎明)이 시작되었다. 사위의 윤곽이 드러나고 원근의 풍경이 어슴푸레하게 눈에 들어왔다. 날씨는 음산했다. 간간이 빗방울이 이마를 때리기도 했다. 필자는 승조 대장과 산조미가 길을 여는 선두그룹에서 산행을 했다. 오전 5시 47분, 드디어 여명(黎明) 속에서 첫 번째 이정표가 나타났다. 산행 들머리에서 1.6km 올라온 지점이었다. 1차 산행포인트인 ‘쉬양리재’까지는 4.2km의 거리이다. 날이 서서히 훤하게 밝아왔다.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작동하기 시작했다.
[남도의 여명(黎明)] — 두륜산, 다도해… 사위(四圍)를 조망하며
☆… 412고지에 오르니, 사위의 풍경이 완연히 그 윤곽을 드러냈다. 앞으로는 산의 능선이 이어지고 뒤를 돌아보니 두륜산의 거대한 산채가 우람하게 누워있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도 선명하지는 않지만, 지리적으로 해남의 아래쪽에 완도(莞島)가 있고 그 동쪽으로 강진만으로 이어지는 다도해가 펼쳐져 있는 것이다. 산의 능선은 동북쪽을 향하여 뻗어가므로 남도의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산을 타는 것이다. 어둠의 바다를 본다. 완도의 서쪽에 있는 진도를 생각하니, 아직도 생사(生死)를 알 수 없는 안타까움…, 캄캄한 바다에 잠겨 있는 수많은 생명들을 생각하니 온몸에 전율이 느껴진다. 아, 무구한 우리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강온이 교차하는 산길] — 아픔을 함께 하는 마음, 오늘 산행의 한 의미
☆… 잠시 안부(鞍部)를 지나고 나니 암봉(岩峰)이 나타난다. 가파르진 않지만 아기자기한 멋이 있는 바위산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능선은 암봉의 연속이었다. 바위는 편마암 계통이어서 절리(節理)가 심하고 각진 바위가 날카롭고 불규칙하게 깨어진 돌들이 너덜길을 이루어 보행하기가 순탄하지 않았다. 오늘의 산행은 ‘심신의 고행(苦行)’이라는 각별한 의미를 둔다. 대참사의 아픔과 동행하는 마음의 기도이다. 맹자의 불인지심(不忍之心)이다.
☆… 오전 6시 13분에 ‘제1비상탈출로 삼거리’ 이정표에 도착했다. 오소재에서 2.8km, 쉬양리재까지는 3.0km을 앞두고 있는 지점이다. 산길은 완만한 능선길과 바위 봉우리를 번갈아 오르내린다. 능선 길 안부에는 사람 키만한 산죽이 빽빽한데, 금방 또 앞을 가리는 바위 봉우리를 만나면 거칠고 가파른 바위틈을 치고 올라야 한다. 능선의 북쪽은 해남군이요 남쪽은 강진군이니 이 능선은 군계능선이다. 몇 개의 산봉우리를 넘고 뒤를 돌아다보니 두륜산의 모습이 아득하게 멀어져 가 있었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