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13차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산행일시; 2010. 7.11 3;35—12:10
산행구간; 시티재..어림산..마치재..남사봉..
한무당재..관산..만불산..아화고개
참여인원; 37명
벌써 13차 산행이다.
남부 지방에 비가 많이 온다는 일기 예보가 걱정스럽지만 우의를 챙겨서 집을 나선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눈을 떠보니 육군 제 3사관학교 정문을 지나고 있다.
영천 호국원 입구를 지나고 영천을 알리는 네온등이 불빛을 비추는 조형물 건너편에 버스가 정차한다.
빗 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나무 가지가 휠 정도로 바람도 분다.
모두들 우중 산행을 각오한 탓인지 분주하게 우의를 챙겨 입고 출발 채비를 한다.
도로변 콘크리트 방어벽을 넘어 웃 자란 딸기와 찔레 숲을 건너 오른다.(3:35)
능선에 오르니 반듯한 등로가 나타난다.
낮은 능선을 지나고 나서 통신사 기지국을 우측으로 끼고 내려서니 시멘트 길이 나타난다. (3:50)
앞 사람을 따라 시멘트 길을 내려 서다가 지형상으로 내리막길로 이어지는 느낌이 이상하여
선두에게 돌아서라고 소리치고 뒤 따라 오는 팀에게 확인한 후 제대로 된 등로로 들어선다.
우중에, 어둠 속에서 아무 생각없이 뒤 따르다가 큰 낭패를 볼 뻔 하였다.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돌 무더기에 호국봉(340m) 이라고 쓴 나무 표지목이 서있다.(4:00)
주변을 둘러보니 나무 가지에도 빨간 글씨로 호국봉이라고 쓴 표시판이 메달려 있다.
누가 지은 이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산 아래에는 20,000위位 이상의
군인, 경찰,애국 선열들이 잠 들어있는 국립 영천 호국원이 있다.(아래 1)
빗 줄기와 어둠 때문인지 좌우로 고개를 돌려 보는 정도로 하고 그냥 지나친다.
한 동안 웃 자란 풀과 잡목이 진행을 성가시게 한다.
낮으막한 능선에 올라 땀으로 젖은 옷을 정리하니 한결 시원하고 가뿐하다.
소나무님이 건내주는 음료수를 한 모금 들이키니 뱃속까지 시원하다.(4:30)
탄산 스포츠 음료를 얼려서 병째로 건내 주는 손길이 고맙기 그지없다.
미끄러운 등로를 내려서서 안부에 이르니 좌우로 뚜렷한 길이 나있다.(4:40)
우측 아랫 동리 이름은 오드리 햅번이 주연한 영화 파계가 연상되는 동리, 파계리이다.
능선을 따라 우측으로 시멘트 기둥에 철조망을 둘러친 경계가 이어진다.
정상에 가까운 지점에는 철문(?)으로 굳게 닫힌 저장고 같은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고(4:50)
철조망 안에는 녹슨 경고판이 서 있으나 오래된 탓인지 내용을 읽을 수 없다.
어떤 분의 이야기에 의하면 이 지역은 인근 안강읍에 있는 무기(포탄) 공장에서 생산 중 발생하는
불발탄을 처리하는 곳이라고 한다.
호남 정맥 슬치재 구간에서도 이런 곳이 있었는데, 산 아래 동리 이름도 논슬리이다.
두 지역 모두 슬자가 들어가는 지명이라서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묘한 느낌이다.
정상에서 내려서는 내리막 길은 내리는 비로 인하여 매우 미끄럽다.
웃 자란 잡초, 나무 가지가 등로를 덮고 있어서 길 찾기가 수월하지 않다.
이 참봉 묘소는 웃 자란 풀이 봉분이 구분이 안될 정도로 무성하다.(5:00)
어슴프레 날이 밝아 오는 기운을 느끼지만 내리는 비로 인하여 숲으로 들어서니 아직은 어둡다.
주변이 툭 터진 묘지에 도착한다.
봉분은 풀 한포기 없이 온통 흙으로 뒤 덮혀 있다.
상석에 쓰인 내용을 보니 밀양 박씨 묘 이고 주변은 온통 갈참나무 숲이다.(5:15)
정맥 마루금에 자리잡은 묘소는 정기를 너무 많이 받아서 풀이 자라지 않는다고 마카루님이 설명한다.
지난 구간, 삼성산 갈림길을 지나고 나서도 동일한 형상의 묘지를 많이 봐서 그런지 일면 수긍이 간다.
그러나 토양이 좋은 묘지도 주변에 소나무 숲이나 갈참나무가 많이 자라면 풀이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비는 어느 정도 멎고 산새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침 산행에서 산새가 울 때 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을 되뇌어 본다.
늦잠 자는 이, 게으른 이는 하는 일이 신통치 않다는 말을 많이 들어온 터라
아침 일찍 새소리를 듣는 것은 얼마나 상쾌 하던지…
비가 올까 봐 걱정이 되는지 뒤 따라 오는 소나무님이
“산새가 울면 비가 안 오는 거지요, 맞지요…..?” 라고 몇 차례나 되 묻는다.
오늘은, 그 말이 정히 들어 맞았으면 좋겠다.
작은 능선에 오르니 하늘이 어느 정도 열리고 송전탑 전선 뒤로 높은 봉우리가 구름 속에 드러난다.
시간이나 지형으로 보건 데 어림산으로 추정이 된다.
벌목을 하였는지 왼쪽 산 비탈에는 무릎에 닿을 정도로 고만 고만한 크기의 나무들이 빼곡하다
작은 능선을 치고 내려서니 좌우로 길이 또렷한 안부가 나타난다.
초흔님이 이곳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본다.(5:20)
지도상에는 옛길로만 표시 되어있다.
우측으로는 논슬리 야수골, 좌측으로는 안강읍 두류리 보현사로 향하는 길이다.
능선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여러명이 우의를 벗고 복장을 정리하고 있다.
나도 벗을까 하다가…비가 완전히 멈춘 날씨가 아닌 것 같아서 그대로 진행을 한다.
서서히 오름길이 이어 지다가 송전탑을 지나고 나서부터 된 비알로 바뀐다. (5:45)
간간히 뿌리던 빗방울이 굵어 지면서 시야마저 흐려진다.
배슈막님 그룹이 다시 우의를 걸친다.
뒤 따르던 마카로님이 힘들다고 자꾸 내 뱉는다.
님은, 지난주에 호남정맥 첫 산행을 하였다고 한다.
1,3주에는 호남정맥을 하고 2,4주에는 낙동을 계속하여 마무리 하겠다고 한다.
한남정맥을 하는 범려님과 같이 4주 내내 정맥 산행을 하는 철심을 지닌 건각이다.
허기진 배 탓인지, 원래 힘든 오르막인지 코 끝에 단내가 날 정도로 힘겹다.
정상에 이르니 잡초만 무성하고 손 바닥 만한 어림산 표시판이 나무에 걸려있다(6:10)
등로는 우측으로 돌아 이어 지지만, 정상에서 직진하는 방향으로 꼬리표가 많이 달려있어서
주의를 요하는 구간이다.
어림산御臨山(510M)
신라시대때 임금님이 둘러 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함.
비는 앞을 볼수 없을 정도로 쏱아진다.
우려하던 대로 비를 피할 수 없는 상태가 온 것이다.
빗물과 땀으로 뒤 섞여서 안밖 모두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
엉덩이 이하만 비에 젖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속에 내 몸을 맡긴다.
그리고 다잡아 마음을 비운다.
누군가 그랬던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지루한 내림길, 이동 통신사 중계기가 지키고 있는 2차선 포장도로 마치재에 도착한다. (6:45)
텐트 플라이, 비닐을 이 나무 저 나무에 걸치고 그 아래에서 비를 피하면서
삼삼오오 식사를 하고 있다.
배슈막님이 건내는 막걸리를 한잔하고 대충 대충 아침을 마무리 한다.
그 와중에도 백야님은 텐트를 치고 맥주병님과 같이 오붓하게 아침 식사를 한다.
비가 올 것을 알면서도, 베낭 무게를 줄이고 싶어서 대충 산행을 나선 것에 비하면
산행의 도道와 식사의 예禮를 지녔음에 경의를 표한다.
마치재(馬齒)
이곳의 지형이 말의 이빨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옛날 이 곳에 서낭당이 있었다고 하여 서낭재, 당기미 라고도 하며,
지형이 말의 형상으로 생겼다고 하여 말티재 또는 馬峴이라 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갈 길이 먼 것을 아는 탓에 서둘러 출발한다.(7:10)
비탈길에 접어드니 금방 먹은 아침 탓인지 숨이 가쁘다.
이곳에서 만나는 묘소에도 봉분에 풀이 없다.
에센시아님과 말없이 오른다.
정상에 도착하여 진행 방향에서 좌측으로 살짝 접어든다.
호젖한 산길이라서 지도를 몇 번씩이나 보면서 나침반으로 방향을 확인해 본다.
불쑥 나타나는 산자락의 밭, 황토색의 산 비탈 밭에는 옥수수를 심어 놓았고
가장 자리 밭에는 감나무가 자라고 있다.(7:30)
좌측 가장 자리를 따라 이어지는 등로에는 아크릴로 재단한 허수아비가 밭을 지키고 서있다.
뒤를 돌아보니 산 비탈 계곡에 넓다란 초원이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아담한 집 한 채가 자리하고 있다.
넓직한 임도와 주변에서 내려다 보는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날씨가 좋으면 임도 끝자락 소나무 그늘 아래서 쉬었다 가기에 아주 적합한 지점이다.
밭이 끝나는 지점에서 임도를 건너 오르막 길을 오른다.
한번 더 땀을 흘리고 나서 밋밋한 정상, 남사봉에 도착한다.(7:50)
나무가지에 걸린 남사봉(470m) 표시판이 없었으면 지나칠 뻔 한 지형이다.
남사봉(南莎峰)
남쪽 자락에 있는 남사리(南莎里)마을에서 따온 이름이며
가마들에 잔디가 많았고 마을이 남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하여 남사라고 불렀다 함.
이곳은 좌로는 御臨山(510M)이 우측에는 어림산 줄기인 이내산(389m)등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어 아늑하고 산세가 수려하여 世居之地의 명소라 일컬어 졌다 한다.
동학교주 최재우 선생도 남사지 아래 가정리 에서 출생 하였다.
완만한 내리막길 중간쯤 우측으로 넓게 펼쳐진 초원이 드러난다.
숲 속에 자취를 감추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초원은 비포장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진다.(8:00)
윗 초원은 좌우로 독립 구조물이 서있고(집) 우측 산 비탈에는 아주 예쁜 가옥이 들어서 있다.
아래에 있는 초원은 축구 골대를 세운 것으로 봐서 야외 행사를 위한 시설물로 생각이 된다.
길은 좌우로도 연결 되어있고 등로는 길을 건너 정면으로 나 있다.
지도를 들여다 보니 좌측 임도로 내려가면 한무당재로 이어져서 오늘의 종착지 아화리로 연결되고
우측 임도는 선암사와 탄산 약수터로 유명한 황수탕이 있는 덕정리 안정점으로 이어진다.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는 사이 에센시아님은 저 멀리 사라지고 흔적도 없다.
등로는 탄탄대로에 가깝다.
능선을 조금 지나니 곧고 넓은 임도가 한동안 이어진다.
지루하게 느껴질 만큼 임도는 길고 길다.
어림산을 지나고 U 자형으로 이어지는 정맥길은,
좌측에 높이 솟아있는 인내산(534m)이 지나온 어림산인 듯 착각을 하게 만든다.
능선으로 올라서서 지루하게 느낄 때쯤 산 마루 우측으로 조망이 트인다.
발 아래로 넓게 자리잡은 묘지에 여러 기의 묘가 잠들어 있고 파란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다.
묘지 아래 계곡을 따라 도로변 산 비탈에 조그만 동리, 청석골이 보인다.
갈참나무가 빼곡한 지루한 능선을 따라 이어 지다가 묘 4기가 아래 위로 자리한 내리막길 아래
포장 도로 한무당재에 도착한다(8:40)
한무당재(할미당 재,청석골 재)
옛날 무당 할미를 모신 서낭당이 있었다고 해서 한무당재, 할미당재,
또는 근처 골짜기에 靑石이 많고 산적이 출몰했다 해서 청석골재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전前 정권에서 地番지번 중심의 도로 표기명을 도로명 중심으로 바꿔서 시행 한 것은
시대 정신에 맞게 매우 편리한 것 같다.
이곳 고갯길 정상은 그 영향인지 전신주에 메 달린 표시판에는 심곡로 818 로 쓰여져 있다.
역사와 애환이 서려있는 고갯길은 그럴 필요가 있는지 선뜻 공감이 가지 않는다.
길을 건너 시멘트 계단을 오르니 이동 통신사 중계기가 홀로 서있다.
그 뒤로 여강 이씨 묘 4기가 자리하고 있는데 약속이나 한 듯이 봉분에 풀이 없다.
뒤 따라온 쑥맥 대장님이 이 지역은 토양 때문에 풀이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봉분에 쌓인 흙에는 잔 돌이 많이 섞여 있다.
한 시간여를 혼자 진행 하다가 이곳부터 쑥맥대장의 뒤를 따른다.
훨씬 속도가 붙는다.
그것도 잠시, 어느 정도 진행을 하니 장딴지에 통증이 돈다.
보행 속도가 워낙 빨라서 따르기가 힘이 들지만,
비도 오고 혼자서 느릿느릿 걷기는 더욱 싫어서 죽기살기로 따라 붙는다.
그런데 이것이 주효 하였다.
마라톤에서 자기 속도를 조절하여 보조를 맞추는 페이스 메이커를 붙여 준다고 하는데
오늘 산행에서 내가 제대로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고만 고만한 능선을 이어 가다가 제법 경사도가 있는 봉우리에 도착한다(316m, 9:00))
삼각점 옆에 설치한 표시판을 내려다 보고 물을 들이키면서 잠시 다리쉼을 한다.
비가 오는 탓에 어디서 앉아서 쉴만한 장소도 마땅치 않다.
빗 줄기는 점점 더 굵어진다.
거의 폭우에 가까울 정도로 내리 퍼 붓는다.
이따금씩 좌측에서 올라오는 오솔길과 마주 치지만 그것을 판단할 겨를이 없다.
한동안 진행을 하다가 노란 우의를 입고 미음완보 微吟緩步를 하는 감사님을 만난다.
평소의 실력에 비해서 다소 걸음이 느리다.
아침 식사 때 술을 한잔해서 술 기운과 함께 밀려온 졸음 때문에 빨리 가지 못하겠다고 한다.
길은 평탄하고 등로에는 빗물이 고여서 졸졸 흐른다.
돌이 쌓인 성황당 안부, 골안 마을에서 올라 오는 길을 가로 질러서 능선에 오르니
툭 터진 전망과 함께 파평 윤씨 묘지 뒤로 관산이 우뚝하다.(9:50)
12차 구간에서 부터 줄 곳 우리를 지켜준 관산,
큰 파도가 밀려 오는듯한 묘한 흥분을 안겨준다.
구름에 쌓인 우측 부분은 높이를 가름하기 어렵고 좌측이 약간 높아 보인다.
형상으로 보면 커다란 중절모를 벗어 놓은 듯하고
뿜어내는 정기에 가슴이 뛰고 힘이 솟는 듯하다.
전북 진안의 마이산을 바라볼 때 감동과 흡사하다.
정상의 모양이 좌우로 길게 이어져서 갓(관冠)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 관산을 조망하는 능선 주위에는 묘지가 수십기나 된다.
이 분위기 마져도 전북 진안에 있는 마이산과 흡사하다.
이렇게 웅장해 보이는 관산도 주변의 다른 산에 비하면 높이가 393m밖에 안 된다.
주변에 이렇다 할 산이 없이 우뚝 솟은 탓이다.
우측 관산 아래 동리 이름도 관리이다.
관리,관동에는 돌할매가 있다.
돌할매
무개 10kg, 지름 25cm의 둥근 돌로서
두손으로 돌을 들어 올리면 자신의 염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고,
안들리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 고 한다.
점복요령은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돌을 들어 보라는 것이다.
다음에는 생년 월일과 주소, 나이, 성명 등을 알린 다음 소원이나 애로사항을 말하면
돌이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를 통해 그 가부를 알려준다고 한다.(영천 군지)
평탄한 능선이 끝나는 지점, 본격적인 오름길은 경사도가 매우 가파르다.
비가 와서 길이 미끄럽고 흙 길인 탓에 발을 디딜 지점이 마땅치 않다.
가쁜 숨을 여러 차례 고른 후 정상에 오르니
능선은 갈참나무 숲과 비로 인한 시계가 불량하여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힘겹게 오른 탓인지 발 걸음이 공중에 붕붕 떠다니는 느낌이다.
능선을 따라 조금 더 진행을 하니 관산의 정상이 나타난다.(10:30)
정상에는 묘 1기와 함께 나무 가지에 관산이라고 쓴 표시판이 메달려 있다.
미리 도착한 회원님들과 조우하여 짧은 휴식을 취하는 사이
회원 한 분이 오르막 길에서 미끄러져서 20여 미터를 굴러 떨어졌다고 한다.
등산복이 온통 흙으로 뒤 덮혀 있다. 그나마 다치지 아니 한 것이 천만 다행이다.
웃 자란 풀이 무성한 묘의 상석 뒤 봉분 아래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삼각점은 1982년에 재 설치된 것으로 봐서 우리 나라의 장례와 묘지 문화를 상기해 볼때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끄러운 내리막길을 조심조심 내려선다.
안부에 이를 즈음 우측으로 어마 어마한 납골 묘지 3기가 서있다.(11:00)
납골 묘 주위는 키를 넘는 풀이 무성하여 보기에 다소 답답한 느낌이 든다.
안부를 지나고 한번 더 오름막 길에서 힘을 쏱는다.
가파른 내리막 길이 끝나고 이어지는 임도 중간 우측으로 묘지가 집단으로 안장되어 있다.(11:10)
이곳에도 산소 주변에 풀이 웃 자라서 진행을 하는데도 수월하지 않을 정도이다.
묘를 지나고 나서 숲으로 들어 섰다가 빠져 나오니 다시 묘지가 이어 진다.
묘지를 선호하는 장례 문화로 볼 때 우리나라의 묘지는 얼마나 될까 ?
보건 복지부가 지난 1∼5월 대한지적공사의 항공사진과 지리정보시스템(GIS)을 이용해
항공사진 판독과 현장 조사를 통해 전국의 묘지 현황을 파악한 결과
분묘 수는 1435만 기(基), 면적은 여의도의 85배, 서울시 면적의 1.2배에 달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번 조사는 먼저 항공사진에서 발견한 분묘 890만 기를 먼저 세고
항공사진으로 판독하기 어려운 구역은 현장 실측 조사에서 산출한 가산율을 곱해
분묘 수와 면적을 추산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군사보호구역에 있는 분묘는 이번에 세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대한 지적 공사 공동 조사, 2010.7.13일 발표)
넓은 임도를 따라 완만한 경사로를 올라서니 양계장이 나타난다.(11:20)
코를 찌르는 닭 인분 냄새와 함께 흘러내린 인분을 먹고 자란 풀과 잡초가 키를 넘는다.
양계장 건너편 비닐 하우스에는 팔뚝 만한 수세미가 주렁주렁 메달려서 자라고 있다.
양계장은 여러 동棟이 이어져 있고
안을 들여다 보니 닭장이 천정까지 층층히 쌓여있다.
도회의 아파트를 빗 대서 닭장 같다고 하듯이 영락없는 그 모습이다.
계란은 자동으로 수거가 될 수 있는 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환기를 위해 설치한 대형 환풍기에서 뿜어 나오는 공기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고약하다.
시멘트 길과 양계장 건물을 빠져 나오니 전방으로 툭 터진 길이 이어진다.
그러고 보니 양계장은 주변의 산세에 비해 다소 높은 정상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닭똥,
왜 눈물을 흘릴 때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고 하였을까 ?
닭이 똥을 눌때 자세히 보면 똥을 누는 것이 아니라 흘린다는 표현이 걸 맞다.
좌측으로는 복숭아,사과 과수원이 이어진다.
산 아래 동리가 희미하게 보이고 경주에서 청량리로 이어지는 중앙선 기적 소리도 간간히 들려온다,.
S 자로 이어지는 시멘트 길을 따라 내려와서 안부, 애기재에 도착한다.(11:40)
물기를 머금은 검은 소나무 숲을 잠시 치고 오르니 넓다란 초지에 10층 석탑이 있고
커다란 바위돌 위에 광배와 대좌 모두 불상과 함께 돌 하나에 새겨져 있다.(11:50)
종鐘 모양의 광배(불상의 배후에 광명을 나타낸 의장(意匠)는 좌 불상 보다 약간 크고
머리 뒷 부분은 연꽃 잎 모양을 새겨 놓았다.
두개 층을 이루는 연꽃 모양의 대좌(불상을 안치하기 위한 대(臺)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불상은
왼손에는 둥근 공을 쥐고 있고 나발螺髮이며 육계(상투처럼 머리에 솟아 오른 둥근 부분)가 큼직하다.
눈은 정면을 보고 감은 듯 온화한 모습이다.
그 옆에는 스리랑카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5과를 이운하였다는 안내문이 서 있다.
초지에는 가까운 만불사에서 이어지는 염불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은은하게 들린다.
그러나 만불산 표지판은 초지 옆 내림길 나무에 붙어 있어서 눈 여겨 보지 않으면 지나 칠 수도 있겠다.
진신사리
부처님 진신 사리는 얼마나 될까...... ? 젊은 아저씨가 궁금해 한다.
석가모니의 시신을 화장하여 거둔 사리가 여덟 가마 네 말 이었다고 한다.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유학하여 환대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석가모니 머리뼈와 어금니와
사리 100알과 부처가 입던 붉은 깁에 금점이 있는 가사 한 벌을 가지고 왔다.
사리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경주 황룡사 탑에, 울산 태화사 탑에, 그리고 나머지는 가사와 함께
통도사 계단戒壇에 두었다 (삼국유사 전후 소장사리 前後 所藏舍利 에서..)
왜구에 의한 탈취, 임진왜란 기간 동안 분실을 방지하기 위해서 분산 소장 등 우여 곡절 끝에
지금은 양산 통도사,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영월),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에 있으며
진신 사리를 봉안한 법당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하여 별도의 불상을 두지 않는다.
만불사
20세기에 설립된 현대 한국 불교의 중심 도량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1995년 사찰 설립을 완공하였다. 1993년에는 스리랑카에서 부처 진신사리 5과를 이운하였고,
노천아미타불을 점안하였다. 대중불교, 현대불교의 활성화에 힘쓰며 무료 만발 공양과
가람 불사 실현에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현재 만불회의 신도수는 전국 30만에 이른다고 한다.
내리막 길에서 에센시아 님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본다.
거창이 고향인 님은 이번 정맥을 하면 1대간 9정맥을 졸업 한다고 한다.
훌쩍한 키에 산행 중에는 말이 거의 없는 그러나 준족에 가까운 사나이다.
시간으로 보면 거의 5년여에 걸쳐서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고 한다.
중국을 오가면서 정맥 산행을 이어 가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을 감안할 때
그 의지와 체력 또한 대단해 보인다.
함께 한 성남 정맥님과 백두 대간을 완료한 이후,
낙동 정맥은 시작 하는지도 몰라서 이제야 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성장기 대부분을 부산에서 자라서 부산에서 마무리하는 낙동 정맥이 감회가 남다르고
금정산을 중심으로 몇몇 지점은 얼마나 변했는지 자못 궁금 하다고 한다.
내리막 길 가장 자리, 공장 옆 절개지에서 건너편 산자락 만불사 뒷편에 자리한
높이 33m의 아미타 대불 입상을 바라본다.
산 등성이에 우뜩한 입상은 황금색 가사를 걸치고 서쪽 방향 만불사를 바라보고 있다.
잡목과 싸리나무 가지가 길을 막는 등로를 지나고 나니 이번에는 국도 4번 절개지가 위협적이다.
배수로를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서서 아화고개에 도착 한다.(12:10)
도로와 중앙선 철길이 지나가서 고개로서 의미가 다소 없어 졌지만,
경주 방향에서 올라오면 만불사를 지날때 까지는 다소 높은 오르막에 속하는 지형이다.
아화고개
수리시설이 좋지 않아 농사를 짓지 못 하였으면 하절기에 초목이 枯死될 정도로 한해가 심하여
언덕에 불을 지르면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탔다 하여 아화阿(언덕,고개,구릉)火라 불렀다 한다. .
휴게소 바로 옆에 있는 못 이름이 애기지池이다.
민가를 지나서 국도 아래 지하 통로를 지나고 애기지 못을 지난다.
도로변에 설치된 휴게소에 올라 서니 비가 억수같이 퍼 붓는다.
부산에 연락을 해 보니 그곳은 더 심하게 온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비를 맞아 가면서 한 산행은 평생 처음이라고 쑥맥님이 내 뱉는다.
산행 내내 비를 맞으면서도 양말이 말짱한 국산 등산화에 감사하면서
날씨 때문에 산행 중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정맥 13차 산행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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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1.
국립 영천 호국원,
고경면 청정리 호국봉(382.9m)아래 산 자락에 2001년 1월에 안장을 시작한 호국원은
현재 국가 보훈처 소속 국립묘지 편재에 들어있다.
국가 유공자, 6.25 참전 군인, 월남전 참전 군인, 6.25 참전 경찰묘역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현재 총 22,958 위位 중에서 본인 19,864위, 배위 3,094위가 안장 되어있다.
우리가 출발한 지점과 호국봉을 잇는 삼각 꼭지점 부근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하늘 우체국이 있다.
국립 영천 호국원에서, 하늘나라에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남편에게
보내는 그리움을 편지로 전하는 곳이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 한다.
아버지~! 아버지~!
아무리 애타게 불러봐도 아버지를 볼 수도 없고 대답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아직도 아버지의 모습과 목소리가 생생합니다.
어찌 그리 허무하게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나셨습니까?
그 어떤 마음의 준비조차 되지 않았는데...
너무도 마음이 아프고 한 달이 된 지금도 너무 힘이 듭니다
돌아가시기 전날 집을 나선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라도 생각 못한 일이었는데...
가슴이 무너져 내립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부족한 것 없이 늘 사랑만 받아 왔었는데 이 자식에겐
마음 편하게 효도할 시간도 주지 않고 그리 바삐 떠나 셨습니까?
너무도 원통하고 애석합니다...
…..중략….
아버지~!
아픔과 고통 없는 그곳에서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자식인 저도 이렇게 삶이란 여행이 끝나면 아버지 곁으로 갑니다
그때까지 외롭지 않게 좋은 곳에서 늘 지켜 봐 주세요
이제 울지 않고 아버지를 보내 드려야 하는데...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질 않네요
사랑하는 내 아버지~! 너무...너무...보고 싶습니다...
사랑해요
---2010.7.8. 김 세란 님….
사랑하는 내 사랑 !
내가 갈 수도 없는 그곳을 당신은 무엇이 그리도 좋다고 혼자 훌쩍 가버렸는지 ..이 야속한 사람아 ..
당신 생각에 울다 웃다가 그래도 당신이 있어서 행복한 세월이 너무 많아서
그 시절을 생각하니 그래도 행복할 수 있어 !!
당신이 떠난 지도 다음주면 4년이 돼네 ! 그 동안 당신이 없는 나날들을 난 어떻게 지냈을까 ?
내 사랑 ! 당신이 떠난 날 난 당신 보러 갈거야 !1
어디 가지 말고 기다려요 일부러 휴무 내고 연차 내고 갈거야 !
그때 가서 우리 많은 애기하자 ^6^ 사랑해
---2010.6.19. 박 순임 님….
할아버지 ~ 이쁜 손녀가 할아버지 보러 왔어요~
하늘 나라에서 잘 지내시죠?
난 할아버지가 보시는 대로 잘 지내고 있어요
거기에선 할아버지 하고 싶은 청소도 마음대로 하고 환기도 마음대로 시키고
할아버지 좋아하는 술도 마음껏 드시고 있는 거죠?
살도 많이 찌고 옛날처럼 멋진 모습이겠죠?
난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요
안동에 가면 할아버지가 "희정이 왔나?" 하고 나오실 꺼 같은데..
하늘 나라에선 아프지 말고 우리 할머니 외롭지 않게 계속 지켜봐 주세요^^
…2010.4.5. 권 희정님……
메모
우중 산행 후 온 몸에 땀띠가 나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비가 와도 몸에서 나는 땀이 배출이 안된 탓인지….우중 산행에서 묘안이 없을까요 ?
첫댓글 나도 오른쪽 팔목에 땀띠가 나서 짜증나네요,왼쪽엔 풀독이 올랐는지 가렵고 암튼 여러가지로![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12.gif)
거웠습니다..![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12.gif)
감하고 갑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날 온누리님이 우의 안에 걸친 옷이 너무 덥지 않았나 합니다. 제 경우 팬티, 반바지 그리고 반팔티만 입었었는데 괜찮거든요. 언제나 그러하듯이 자세한 기록 감사히 읽고 갑니다.
완벽한 A+ 리포트 잘보고 갑니다. 세세함에 그저 감탄할뿐입니다. 범여가 1.3주에 무박으로 타는 구간은 한남정맥이 아니라 낙남정맥입니다. 김해 고암나루터에서 지리산 영신봉까지 가는 구간인데 이제 2구간만 가면 졸업입니다.
아...땀띠가 나만 나는게 아니었구나.....ㅋㅋㅋ
그 비 맞으며 가기도 바빴는데 어떻게 이렇게 기억하고 기록하시는지.....참...놀랍습니다^^
복대까지 하고 갔지만 땀띠는 안났습니다...중간에 우의를 모두 벗어버리고 쏱아지는 비를 시원하게 흠뻑 맞고 가서 그런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