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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직신학논총 제50집 55-98 춘계 이종성이 말하는 통전적인 기독교인의 삶* 1) 김선권
한국조직신학논총 제50집 55-98 춘계 이종성이 말하는 통전적인 기독교인의 삶* 1) 김선권 (장로회신학대학교, 초빙교수) \ I. 서론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전 세계 개신교와 한국 개신교 는 종교개혁 정신을 새롭게 구현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종교개 혁은 우선 교리의 개혁이었다. 하지만 교리의 개혁이면서 동시에 이것은 기독교인의 삶에 대한 개혁이었다. 종교개혁이 삶의 새로 움이 동반되지 않는 개혁이었다면 이것은 반쪽자리 개혁이며, 구 호만 있는 선언으로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종교개혁 사상과 정신 은 춘계 이종성(春溪 李鐘聲, 1922-2011) 신학사상에 깊이 뿌리내 려져 있다. 그가 성서에서 모든 신학의 근거를 찾고자 하듯이 종교 * 이 논문은 2017년 9월 20일에 개최된 제13회 춘계 이종성 강좌에서 발표한 것 을 한국조직신학논총 투고양식에 맞추어 수정, 보완한 것이다. 56 한국조직신학논총 제50집(2018년 3월) 개혁사상은 그의 사상의 토대가 되었다. 이종성은 자신의 독창적인 통전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신학의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루었다.1) 또한 이종성의 신학 사상을 재조명 하고, 다양한 신학 주제들과 대화를 시도하게 하는 춘계신학강좌 는 2002년 처음 시작하여 매 해마다 열려 지금까지 총 13회의 강좌 가 개최되었다. 춘계신학강좌를 통해서 총 41개의 논문이 발표되 었고, 그 중 28편은 이종성의 사상을 직접적으로 다루었다. 주로 조 직신학 관점에서 춘계의 사상이 조명되었지만 성서신학, 역사신 학, 선교신학, 기독교교육 등의 관점에서도 다루어졌다. 또한 전체 한국 신학계 속에서도 그의 신학방법론과 신학사상에 대한 여러 다양한 주제의 논문이 계속해서 발표되고 있다.2) 하지만 아직까지 1) 이종성, 춘계 이종성 저작전집 I-XL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2) 신학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중에 이종성에 대한 논문은 다음과 같다. 윤철호, “통전적 신학 방법론 - 춘계 이종성의 신학 방법론을 중심으로,” 「장신논단」 47(2015), 79-109. 최윤배, “춘계 이종성 박사의 구원론에 관한 연구,” 「한국개 혁신학」 47(2015), 158-183. 이상은, “공적 지평 속의 교회- 춘계 이종성이 말하 는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 「장신논단」 49/2(2017), 217-242. 백충현, “춘계 이 종성의 삼위일체론이 한국신학 안에서 가지는 위치와 의의,” 「장신논단」 49/1(2017), 283-306. 백충현, “춘계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에서 신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한 연구,” 「장신논단」 48/1(2016), 201-224. 박성규, “한국 칼빈연구 에 대한 춘계 이종성 박사의 신학적 기여,” 「한국개혁신학」 54(2017), 8-44. 이 동영, “삼위일체에 대한 이종성의 이해,” 「한국개혁신학」 47(2015), 92-127. 김 지훈, “이종성박사의 섭리론과 예정론,” 「한국개혁신학」 47(2015), 127-158. 이 상조, “이종성의 나선형적 역사관에 대한 비판적 고찰,” 「장신논단」 47/4(2015), 97-122. 소기천, “춘계 이종성 박사의 통전적 신학에 대한 성서신 학적 평가,” 「한국개혁신학」 47(2015), 68-91. 김도훈, “대한예수교장로회(통 합)의 <통전적 신학>적 정체성과 <온신학>의 과제,” 「장신논단」 48/1(2016), 115-144. 김선권|춘계 이종성이 말하는 통전적인 기독교인의 삶 57 기독교인의 삶 자체에 대한 연구는 없었다. 물론 주제의 연관성 속 에서 기독교인의 삶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기독교인의 삶을 통전 적 인간론과 연결해서 한 주제로 다루지는 않았다.3) 이종성은 그의 책 종말론에서 “우리의 삶을 총체적으로 볼 때”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기독교인의 삶이 통전적이라는 표현 을 직접적으로는 사용하지 않았다.4) 그렇지만 이미 그의 주장 안 에는 기독교인의 삶의 방식 역시 다른 신학의 주제처럼 통전적으 로 이해돼야 함이 암시된다. 춘계가 말하는 기독교인의 삶은 통전 적이다. 그가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이 통전적인 것처럼 그가 말한 기독교인의 삶 역시 통전적이다. 이 연구는 그의 신학 방법론이 통 전적인 것처럼, 기독교인의 삶을 통전적으로 접근한다. 이를 위해 통전적 인간론을 먼저 다룬다(II). 그의 신학적 인간학은 전체 조직 신학 구조의 틀을 형성한다(II-1). 인간 본성의 4중 상태의 문제는 그의 인간학이 신학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되는 이유이다. 이 종성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신학적으로 이해한다(II-2). 계속해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통전성을 다룬다(III). 이종성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신앙과 삶의 통전성(III-1)과 관계의 통전성(III-2)이다. 이 주 제를 살핀 후에 그가 제시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의인과 성화의 관계성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삶”(III-3), “사회와 교회 안에서의 그 리스도인의 삶”(III-4), “종말의 지평 아래서 사는 기독교인의 삶” 3) 김철영, “춘계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과 윤리학의 방법론에 관한 연구 - 믿음과 삶의 통전적 윤리학을 제언하며,” 제5회 춘계신학강좌 (2007), 1-44. 4) 이종성, 종말론 I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90), 61. 이종성에게서 통전적 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58 한국조직신학논총 제50집(2018년 3월) (III-5)의 문제로 다룰 것이다. 이 연구는 이종성의 견해를 밝히고,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뱅 의 관점이 어떻게 그의 사상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해명하는 방식 으로 전개된다. 그는 칼뱅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직접적 저술을 남기지는 않았다. 따라서 이 연구를 위해서 춘계의 저서 속에 흩어져 있는 사상을 모으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할 것 이다. 조직신학의 주요 저서(조직신학 대계)와 논문집과 설교문과 수상집 즉 등 춘계 이종성 저작 전집이 연구의 자료가 될 것이다. II. 통전적 인간론 1. 신학적 인간학에서 조직신학 대계로 기독교인의 삶은 신학적이다. 인간을 신학적으로 어떻게 이해 하느냐에 따라서 인간의 삶이 결정된다. 앙드레 비엘레(A. Biélér) 는 기독교인의 윤리는 자율성을 가지지 않으며, 그것의 모든 요점 과 생명력을 신학으로부터 공급받는다고 주장하였다. 즉 윤리는 신학에 전적으로 의존한다.5) 같은 맥락에서 춘계의 통전적인 기독 교인의 삶의 출발점은 신학적 인간학에 근거한다. 이종성은 인간 이해를 여러 관점과 여러 차원에서 시도한다. 하지만 그의 저서 신 학적 인간학에서 신학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것은 그가 5) André Biéler, Calvin, prophète de l’ère industrielle : fondements et méthodes de l’éthique (Genève: Labot et Fides, 1964), 14. 김선권|춘계 이종성이 말하는 통전적인 기독교인의 삶 59 궁극적으로 신학적 즉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인간을 이해하고 있 었기 때문이다.6) 그가 저술한 신학적 인간학에서 인간론을 다룰 때, 두 가지 방식에서 통전적으로 접근한다. 첫째는 틸리히의 방식과 유사한 질문과 답변 형식을 취하는 상관관계의 형태로서 인간론을 통전적 으로 접근한다.7) 이종성은 인간이 던질 수 있는 수많은 질문들은 여섯 가지 질문으로 환원된다고 보았다. 1) 존재 2) 실존 3) 삶 4) 공 동체 5)사회 6)역사의 물음이다. 그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신학 적인 답변을 각각 제시한다. 1) 신론 2) 그리스도론 3) 성령론 4) 교 회론 5) 기독교 윤리 6) 종말론이다.8) 그의 신학적 인간학은 질문과 답변을 통해서 인간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 리고 무엇보다 단지 그가 제시하는 신학적 인간학은 그 내용을 인 간론에만 국한 시킨 것이 아니라, 바로 위의 여섯 가지 질문과 답변 으로 그의 조직신학 전체 체계를 세우기를 원했다. 즉 신학적 인간 론의 관점에서 그의 조직신학의 틀이 형성된 것이다. 존재의 근원 문제에 대해서는 신론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실존문제는 기독론에서, 삶의 문제는 성령론에서, 공동체문제는 교회론에서, 사회문제는 기독교 윤리학에서 그리고 역사문제는 종말론에서 다루기로 한다.9) 6) 이종성, 신학적 인간학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79) 51 7) 윤철호, “춘계 이종성 박사의 신학적 인간학에 대한 고찰,” 제8회 춘계신학강 좌 (2012), 1, 11. 8) 이종성, 신학적 인간학, 7-305. 이종성, 이야기로 푸는 조직신학 (서울: 대 한기독교서회, 1995), 33-4. 60 한국조직신학논총 제50집(2018년 3월) 이종성은 전통적 교의학에서처럼 연역적 방법으로 시작하는 사도신조의 순서를 따르지 않고, 실존적 상황에서 출발하는 귀납 적 방법으로 신학 작업을 시도한다.10) 우리가 이종성의 신학적 인 간학의 접근 방식을 통전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는 그가 신학 적 인간학을 다루지만, 신학의 내용만을 배타적으로 다루지 않고, 인간의 질문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주제를 가지고 포괄적으로 다루 었기 때문이다. 질문 없이 답을 주려 하지도 않고, 대답 없이 질문 만을 던지지도 않았다. 둘째로 그의 인간 이해는 신학적인데, 이 신학적 인간에 대한 접근이 통전적이다. 신학적 인간론이 신학적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인간론이 근본적으로 신학적이기 때문이다. 춘계의 인간론이 아래로부터 출발하면서도 휴머니즘으로 전락하 거나,11) 무신론적 인간학으로 빠지지 않는 것은 그가 주장하는 인 간의 본질을 신학적 관점에서 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춘계는 인간 에 대한 본질적 이해가 아우구스티누스와 마찬가지로 수직적이 9) 이종성, 신학적 인간학, 305. 10) 이종성, 신학적 인간학, 13, 305. 11) 이종성은 일반 휴머니즘과 기독교 휴머니즘을 구별한다. 그리고 일반 휴머니 즘의 범주를 그리스 휴머니즘, 르네상스 휴머니즘, 현대 휴머니즘으로 세분 한다. 이종성은 휴머니즘 자체를 부정하기 보다는 하나님 안에서 인간의 인 간됨(휴머니즘)을 다루었다. 제임스 맥코드가 말하는 기독교 휴머니즘으로 서의 “성서적 휴머니즘”(Biblical Humanism)을 추구했던 것이다. 이종성, 하 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구원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252. 무엇보다 도 이종성은 칼뱅의 휴머니즘 방식을 뒤따랐다. 이종성에 의하면 칼뱅은 인 간에 의한 인간을 신에 의한 인간을 동시에 추구하고 그것을 통전적으로 결 합시키길 원하였다. 이종성,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구원, 253. 김선권|춘계 이종성이 말하는 통전적인 기독교인의 삶 61 다.12) 이 수직적 인간에 대해서 그는 통전적으로 접근한다. “타락 이전의 무흠의 상태”(posse non peccare, posse peccare), “타락 이 후의 부패의 상태”(non posse non peccare), “은혜의 상태”(simul justus et peccator, posse non peccare), “영광의 상태”(non posse peccare)로 인간에 대해 창조, 타락, 구원, 완성의 개념으로 접근을 시도한다.13) 2. 인간 본성의 4중 상태14) 아우구스티누스와 루터의 논의를 결합하여 이종성은 무흠의 상태로서의 태초의 인간, 부패의 상태로서의 타락한 인간, 은혜의 상태로서의 도상에 있는 인간, 영광의 상태로서의 종말의 인간으 로 인간을 통전적으로 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논의를 따라가면 서 이종성은 루터의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라는 논의를 덧붙인 12) 이종성, 신학적 인간학, 12. 13) 신학적 인간학이라는 저술에서 직접적으로 기독교 인간학을 수직적 관계 에서 네 가지 통전적 방식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윤리학 II와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구원에서 이런 관점을 피력하며 다루었다. 이종성, 윤리학 II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92), 26-61. 이종성,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구 원, 236-347. 14) 크벤슈텐은 영광의 상태 뒤에 정죄의 상태를 추가하여 인간의 상태를 다섯 종류로 구분한다. “1. 타락 전에 인간에게 존재했던 무죄의 상태(status intergritatia) 2. 타락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부패의 상태(status corruptionis) 3. 그 리스도로 말미암아 선사된 은총의 상태(status gratiae) 4. 구원을 받는 자들의 죽음 후의 영광의 상태(status gloriae) 5. 저주를 받은 자들의 죽음 후의 저주 의 상태(status damnationis)”이다. H.G. 푈만/이신건 옮김, 교의학 (서울: 신앙과 지성사, 2012), 247-248. 62 한국조직신학논총 제50집(2018년 3월) 다.15) 1) 이상적 존재로서의 인간(posse non peccare, posse peccare) 이종성은 타락 이전의 아담의 상태인,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posse non peccare)16)에 대해 “이상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라 하였다. 이종성이 말하는 이상적 인간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 다. 첫째,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지음을 받은 존재이며, 둘째, 그 형 상을 순수하게 지니고 있는 존재이다.17) 그는 이상적 인간에 대해 처음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 으로써 접근한다. 우선 이상적 인간이란 죄 없는 상태로서의 순전 한 상태의 인간이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처럼 전능하고 완전하 며 무흠하고 불사하며 거룩한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다.18) 말하자면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한계를 가진 상태에서 하나 님과 가장 친밀한 관계를 가지는 존재이다. 이에 대한 입장은 칼뱅 의 입장과 맥을 같이 한다. 칼뱅에 따르면 처음 창조된 존재로서의 인간은 창조의 중심이며 머리로서 아주 특별한 존재임이 틀림없 15) 루터는 로마서 강의에서 “언제나 죄인이고 늘 회개하면서 항상 의롭다”라 는 말을 한다. 루터/이재하 ․ 강치원 옮김, 루터: 로마서 강의 (서울: 두란노 아카데미, 2011), 478. 16)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는 죄를 지을 수 있는 상태(posse peccare)이기도 하다. 인간 본성의 4중 상태에 대해서는 이 책을 참고하라. 토머스 보스턴/스 데반황 옮김, 인간 본성의 4중 상태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6). 17) 이종성, 윤리학 II, 26. 18) 이종성, 윤리학 II, 26. 김선권|춘계 이종성이 말하는 통전적인 기독교인의 삶 63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피조물이다. 그가 하나님의 형 상으로 만들어졌더라도 그가 신이 아니었기에, 그 사실을 상기시 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들고 그것을 먹지 말라는 금지 명령을 내렸다. 그러므로 창조된 상태에서 인간은 피조물의 한계 를 인식하면서 하나님과 결합되는 것이 그의 본래적 실존이었 다.19) 이종성은 하나님의 원 형상에 대해 개혁교회, 루터교회, 로마 천주교회의 해석을 다루면서, 개혁파 입장을 지지한다. 원형상을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로 해석하면서, 이러한 상태에 있던 인간 을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을 따라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는 존 재”라 하였다(posse non peccare).20) 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로서의 타락 이전의 인간 에 대해서 왜 이종성은 이상적 존재라는 표현을 사용했는가를 문 제시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적이라는 말은 현실적 인간이 되어야 할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죄가 생기기 전, 인간의 상태를 이상 적 상태로 규정한다면, 인간의 이상이란 죄 짓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구속은 창조론적이면서 동시에 종말론적 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이해는 구속을 창조론적으로 해 석하는 방식이기에 구속의 목적을 한쪽 면으로 편향되게 이해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상적 존재로서의 인간 보다는 칼뱅이 제한 것 처럼 “순전성의 상태”(l'état de l'intégrité) 혹은 단순히 태초에 인간 (창조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더구나, 이종성 은 창조된 상태의 인간에 대해서 지나치게 하나님의 형상의 문제 19) Jean Calvin, Institution de la religion chrétienne II. xii. 6. 20) 이종성, 윤리학 II, 30. 64 한국조직신학논총 제50집(2018년 3월) 로만 접근한 것도 논의의 한계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21) 2) 전적으로 타락된 인간(non posse non peccare) 인간은 하나님의 금지 명령인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고 타락한다. 그 후 모든 인간은 아담의 범죄에 연루된다. 이종 성은 타락 후에 있는 인간의 상태를 가리켜 “전적으로 타락된 인 간”이라 규정했다.22) 그것에 대해 그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상 태”(non posse non pecarre)와 “죽지 않을 수 없는 상태”(non posse non mori)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표현을 사용하길 좋아했다.23) 아 우구스티누스는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에서 아담의 타락은 하나님 의 형상뿐만 아니라, 자유의지까지도 타락함을 주장한다. 타락 후 에 인간은 선을 행할 자유가 없고, 죄를 범할 자유만 가지고 있 다.24) 타락한 인간이 가지는 “죄인의 자유”(libertas peccatorum)는 타락한 본성의 한계에 부합하고 그런 한계에 국한된 자유로서 선 을 행하는 것에 있어서는 절대적으로 무능한 자유이다.25) 루터 역 시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을 따르면서 “타락 전의 아담은 선만을 21) 윤리학 II에서 뿐만 아니라, 신학적 인간학에서도 이상적 존재로서의 인 간을 하나님의 형상의 관점에서만 다루고 있다. 이종성, 신학적 인간학, 51-3. 22) 이종성, 윤리학 II, 31. 다른 곳에서는 “소외된 인간”이라는 말을 사용하였 다. 이종성,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구원, 337. 23) 이종성, 종말론 I, 82. 24) 이종성, 윤리학 II, 31. 25) Richard A. Muller, Dictionary of Latin and Greek Theological Terms (Grand Rapids, Michigan: Baker Book House, 1985), 176. 김선권|춘계 이종성이 말하는 통전적인 기독교인의 삶 65 좋아했다”는 표현과 함께 타락 후에 인류는 “온통 죄덩어리”(massa perditionis)라 부르면서 이 둘 간의 간격을 극명하게 대립시킨 다.26) 루터는 하이델베르크 논제에서 “원죄 이후의 자유의지는 명 목상의 이름에 불과하며, 할 수 있는 것을 행하는 것은 죽음의 죄를 벌뿐이다”고 말하였다.27) 칼뱅은 아우구스티누스와 루터의 입장을 수용하면서 더 적극 적으로 타락 후의 인간 상태를 기술한다. 칼뱅은 아담 이후 모든 인 류는 필연적으로 죄를 짓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필연성은 강 제성은 아니다. 강제라 하면 죄에 대한 책임이 죄를 짓는 자에게 있 지 않게 된다. 죄의 책임에 대한 면피를 줄 수 있다. “사람이 타락함 으로써 부패했을 때 마지못해서 억지로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자 발적으로 지은 것이며,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마음의 강력 한 이끌림에 의한 것이며, 외부로부터의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자신의 정욕의 충동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의 본성은 너무나 타락해 버렸기 때문에 그는 다만 악을 향해서만 움 직일 수밖에 없다.”28) 칼뱅은 이렇듯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필연 성 안에서 자연인의 의지는 언제나 자발적으로 악을 택함을 강조 한다. 칼뱅은 이를 가리켜서 “자발적 필연성”(nécessité volontaire) 과 “유해한 자유”(liberté pernicieuse)라 불렀다. 타락 후에 인간은 26) Luthers Werke, W., I, 427; 2,526; E., 28, 206, 이종성, 이종성, 윤리학 II, 31 에서 재인용. 27) LDStA 1, 47,15-17, 한스-마르틴 바르트/정병식,홍지훈역 마르틴 루터의 신 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5), 422-3에서 재인용. 28) Calvin, IRC II. iii. 5. 66 한국조직신학논총 제50집(2018년 3월) 필연적으로 죄를 짓지만, 그것은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 연적 의지에 의한 것이다. 자유의지란 하나님 보시기에 선을 택할 의지이기에, 타락한 인간이 자유의지는 상실된 것이다. 대신에 타 락한 인간은 “자연(적) 의지”라는 자유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죄를 짓는다. 이것을 가리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필연성 속에서의 자 유라 할 수 있다. 범죄는 죄의 필연성 속에서 그의 자유로 짓는 것이 기에 죄의 책임은 죄를 짓는 본인에게 있다.29) 루터 역시 인간은 그 의 의지 안에서 죄의 필연성을 경험한다고 말하면서 인간은 그의 내적 의지에 반하여 죄를 짓도록 강요받지 않고, 그의 의지에 따라 죄를 범한다고는 주장하였다.30) 이종성은 타락 후 인류에게 여전 히 자유의지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자유의지에 의해서 죄를 짓는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의지가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롭게 되 지 않으면 경건하게 사는 것, 즉 하나님 앞에서 선을 택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31) 자유의지에 대한 표현의 차이가 있지만, 주장하는 내 용은 루터와 칼뱅과 동일하다. 이종성은 원죄 유전의 교리로부터 죄의 보편성을 주장한다. 이 죄의 보편성은 인간이 처음 창조될 때부터 불완전하게 창조된 생득적 죄가 아닌, 아담의 죄가 모든 후손에게 유전되어 모든 인간 은 태어날 때부터 죄적 본질을 지니고 있는 것을 말한다.32) 이종성 29) Calvin, IRC II. iii. 5. 30) WA 18, 693, 파울 알트하우스/이형기 옮김, 루터의 신학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4), 180-1에서 재인용. 31) 이종성,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구원, 303. 32) 이종성, 윤리학 II, 43. 김선권|춘계 이종성이 말하는 통전적인 기독교인의 삶 67 은 타락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비기독교인들이나 인본주의자들, 도 덕주의들의 견해와 근본적으로 다름을 말하면서, 루터가 “자유의 지의 힘은 신성”33)이라고 주장했던 것과 동일하게 자유의지는 “성 령이 주시는 자유”임을 피력한다.34) 성령과는 관계없이 단독적으로 있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성령과의 불가분리의 관계 아래에 있는 자유를 말한다. 어디까지나 피조자의 한계 내에서 창조주의 도움에 따라 활약할 수 있는 자유, 즉 제약된 자유의지를 말한다.35)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자유의지는 내가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자연적인 자유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에 게 주시고 성령이 힘을 주시고 방향을 제시해 주실 때에만 가능한 자유, 그러한 자유가 곧 기독교에서 말하는 참 자유요, 그러한 자 유를 가질 때 비로소 자유의지는 그것이 가지는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요 8:32, 36).36) 이종성이 말하는 자유란 그리스도 안에서 또한 성령의 역사 아래서 하나님의 뜻에 따르길 원하는 변화된 의지를 행사하는 것 을 뜻한다. 33) 한스-마르틴 바르트, 마르틴 루터의 신학, 425. 34) 이종성,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구원, 286-7. 35) 이종성,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구원, 287. 36) 이종성,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구원. 290. 68 한국조직신학논총 제50집(2018년 3월) 3) 중생된 인간(posse non peccare, simul justus et peccator) 중생한 그리스도인은 죄와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아우구스 티누스는 중생된 인간을 가리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 (posse non peccare)라 하였다. 중생한 신자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 는 상태에 놓여 있다. 하지만 이 말이 실제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 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신자가 죄에 있어서 완전히 자유하 게 되는 것은 죄를 지을 수 없는(non posse peccare) 영화의 상태에 도달 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신자 의 죽음이란 우리의 죄에 대한 대가가 아님을 주장한다. 죄의 삯으 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죄에 대하여 죽고 영원한 삶에 들어 가는 것이다. 즉 하이델벨르크 요리문답은 신자의 죽음의 의미에 대한 적극적 고백을 나타냈다.37) 신자에게서 가장 큰 고통은 현실 에서 죄를 짓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존하는 그리스도인이 죄를 짓 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중생된 인간의 상태란 죄를 지어서는 안 되는 상태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 다. 즉 신자가 죄를 짓는 것은 적합한 것이 아님을 말한다. 그가 입 어야 할 옷은 죄의 옷이 아니라, 죄의 옷을 벗고 그리스도로 옷 입어 야 함을 가리킨다. 이종성은 중생된 인간을 가리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 라고 말하면서, 다른 곳에서 이것을 “화해된 인간”이라 표현하였 다.38) 또한 이 화해된 인간의 실존에 대해 루터의 “의인인 동시에 37) 이형기 편역, 세계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1), 83. 김선권|춘계 이종성이 말하는 통전적인 기독교인의 삶 69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이라는 표현이 더욱 적합한 것으로 보았다. 인간이 중생된 것은 은혜에 의한 것이지 그가 윤리적 명령 에 실천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 점에서 중생한 인간은 윤리적 명령 에서 해방된 자유자이다. 그렇다면 이 자유자는 윤리적 삶을 부정 하며 살아도 되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윤리적 명령에서 해 방된 자유자이더라도, 그리스도의 뜻을 세상에서 완성하기 위하여 윤리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이종성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 다. “중생자는 윤리적 명령에서 해방된 자유자이나, 그리스도의 뜻 을 세상에서 완성하기 위하여 윤리적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변증 법적 실존 상태에 있다.”39) 중생자란 의로운 자이면서 동시에 용서 받은 죄인이라는 이 역설의 상태에서 언제나 산다.40) 중생한 인간 에 대한 이러한 양극적 이해는 무엇보다 우리가 다루게 될 그리스 도인의 삶(그리스도교 윤리학)의 전제가 된다. 이종성이 말하는 그 리스도인의 삶이란 중생된 인간과 완성된 인간과의 변증법 긴장 아래에 놓인 삶이라 할 수 있다. 4) 완성된 인간(non posse peccare)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신자의 구원은 완성된다. 구원이 완성 된 상태를 “영광의 상태”라 한다. 영광의 상태에서 죄는 어떻게 되 는가? 신자는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게 된다”(non posse peccare). 38) 이종성,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구원, 342. 39) 이종성, 윤리학 II, 56. 40) 이종성, 윤리학 II, 56. 70 한국조직신학논총 제50집(2018년 3월) 영광의 상태는 타락 이전 아담의 순전성의 상태와 비교하면 어떻 게 되는가? 영광의 상태란 최초 아담에게 주어졌던 순전성의 상태 로의 복귀가 아닌 더 적극적인 의미를 지닌다. 타락 이전 순전성의 상태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 말은 다르게 말 하면 죄를 지을 수도 있는 상태이다. 더구나 실제로 아담은 죄를 짓 고 타락했다. 하지만 영광의 상태에서는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 가 된다. 순전성의 상태에서 죄를 짓지 않게 되면 “죽지 않을 수 있 는 상태”(posse non mori)로 있지만, 영광의 상태에서는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로서 또한 “죽을 수 없는 상태”(non posse mori)가 된 다. 그러므로 천국은 아담이 잃어버린 상태의 재정향이 아닌, 더욱 향상된 상태(amelioration)인 것이다. 천국은 아담의 불순종 안에서 잃어버렸던 것의 단순한 복구가 아니라, 더 나은 것으로의 변혁 (renovatio in melius)된 상태인 것이다.41) 이종성은 구원이 완성된 후의 인간의 상태를 지금 보다 더 나 은 곳에서 사는 영복(지복)의 상태라 칭하였다.42) 그리고 현실에서 그리스도인은 이 영복의 상태를 향한 약속을 지니고, 그것을 소망 한다. 이 약속은 그리스도의 파루시아를 통해서 성취된다. 그에게 서 신자의 현실적 삶이란 그리스도의 약속과 성취를 믿고 그의 재 림을 기다리면서 오늘의 삶에 충실함에 있다.43) 이종성은 영광의 41) David Vincent Meconi, “Heaven and the ecclesia perfecta in Augustine”, in The Cambridge Companion to Augustine, edited by Eleonore Stump, Norman Kretzmann, (Cambridge, UK;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1), 252. 어거스틴/차종순 옮김, “비난과 은총에 관하여,” 어거스틴 의 은총론 IV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13), 342-343. 42) 이종성, 종말론 I, 243. 김선권|춘계 이종성이 말하는 통전적인 기독교인의 삶 71 상태에서 “신자는 세상에서의 삶에서 시작된 축복의 삶을 죽은 후 에도 더 완전하게 결실되어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함께 그 생활을 즐길 것이다”고 주장한다.44) 천상에서 신자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신비적 공동체의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종성은 완성된 인간의 삶에 대해서 신자가 하나님 안에 신비적으로 흡수되어 사라져 버 리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가졌던 성화된 모습 그대로 삼위일체 하나님과 생활하는 것이며, 이미 지상에서 알고 있던 믿음의 사람 들뿐만 아니라, 전혀 알지 못했던 모든 사람들과 순식간에 친구가 되어 무한대의 신령한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아간다고 주장을 하였 다.45) III. 그리스도인의 삶의 통전성 1. 신앙과 삶의 통전성 이종성에 의하면 믿음이란 “진리에 대한 확신과 그에 의존하 는 태도”이다.46) 그는 신앙을 성삼위일체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하신 역사를 아는 것이며(notitia), 시인하는 것이며(assensus), 그것 에 기초해서 자기를 정립하여 그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fiducia)이 43) 이종성,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구원, 346. 44) 이종성, 종말론 I, 97. 45) 이종성, 종말론 I, 433. 46) 이종성, 윤리학 II, 52-3. 72 한국조직신학논총 제50집(2018년 3월) 라고 정의하였다.47) 여기서 합당한 삶은 신뢰(fiducia)를 가리킨다. 즉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이다. 종교개혁자가 발견한 믿음 이 바로 신뢰로서의 믿음이다. 루터는 대요리문답에서 신앙과 신뢰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였다.48) 칼뱅 역시 신앙과 신뢰를 결 합하여 신앙은 신뢰를 하나님께 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49) 더 나 아가서 이종성은 믿음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논한다. 성경은 종종 믿음이 사람들의 힘이나 노력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처럼 보 이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요9:36, 38; 롬10:10), 사람 안에서 그러 한 믿음이 일어나게 하는 역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함을 더욱 주장한다(빌2:13). 현대 신학자들 중에는 믿음을 실존적 존재 양태 의 한 부분으로서의 “수용”(acceptance)이나 “결심”(commitment) 임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종성은 믿음은 루터와 칼뱅이 말한 것 처럼 신의 은총으로 주어진 선물임을 주장한다. 즉 믿음은 위로부 터 주어지는 은혜인 것이다.50) 이종성은 믿음이 삶으로 연결되는 것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47) 이종성, 윤리학 II, 53. 이종성은 신앙이 그 자체 내에 세 가지 내용을 포함 한다고 말하면서 “지적 요소(notitia)와 감정적 요소(assensus)와 의지적 요소 (fiducia)”가 종합되어 하나의 살아 있는 신앙이 형성된다고 주장하였다. 이 종성, 성령론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4), 293. 이종성, 하나님의 섭리 와 인간의 구원, 397. 48) “오직 마음의 믿음과 신뢰만이 신을 만들 수도 있고 우상을 만들 수도 있습니 다. 다시 말해 바른 믿음과 바른 신뢰가 있다면, 당신의 신은 바른 신(하나님) 이라는 말이다.” 마르틴 루터/최주훈 옮김, 대교리문답 (서울: 복있는 사람, 2017), 52 49) Calvin, CO 1, 56. 칼뱅은 동의로서의 믿음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동의 대신 그는 확신이라는 표현을 더 선호했다. Calvin, IRC III. ii. 7-15. 50) 이종성, 신학서론, 302-5. 김선권|춘계 이종성이 말하는 통전적인 기독교인의 삶 73 “교리에 대한 신앙은 윤리적 생활을 통해서 결실한다.”51) 게다가 그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 전체가 그리스도인의 윤리생활이 다”는 이 시대에 매우 적실성을 가진 표현을 하였다.52) 이 말은 신 앙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선한 행위를 지향함으로써 존재하고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삶은 항상 믿음으로부터 근거를 가져야 함을 뜻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천은 믿음이다. 그는 종교개혁의 핵 심 주장을 따르면서 선행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신앙이 근원이 며, 이 신앙이 가져오는 의는 우리 안에서 만들어 내는 내적 의가 아 닌, 우리 바깥에서 주어지는 외적 의임을 강조한다.53) 그리고 이종성은 믿음이란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잠재된 능력 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로 향하여 의존되어 있는 것임을 주장한다. 그 점에서 그는 “자기를 믿지 말고 예수만 참으 로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54)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아서”라는 이종성의 구호는 신자의 삶의 원천이 그리스도임을 매우 분명하게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55)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무한자와 유한자, 영원과 시간, 절대자와 상대자, 생명 과 죽음을 연결하여 모든 피조물에게 새로운 삶을 공급하실 수 있 는 유일한 중보자이시기 때문이다.56) 즉 그는 믿음이 그리스도에 게 향하고 있음을 주장한 것이다.57) 51) 이종성, 조직신학개론 (서울: 종로서적, 1984), 196. 52) 이종성, 윤리학 II, 73. 53) 이종성, 종교개혁에서 현대신학까지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42. 54) 이종성, 종교개혁에서 현대신학까지, 73. 55) 이종성, 윤리학 II, 408. 56) 이종성, 신학서론, 319. 74 한국조직신학논총 제50집(2018년 3월) 이종성은 신앙은 현세와 내세의 모든 영역에 해당됨을 주장한 다. 일부 극단적인 기독교인들은 신앙을 현세적인 것과 동일시하 거나, 신앙을 다음 생으로 가는 전환만을 의미하는 것처럼 주장한 다. 하지만 이종성은 내세성을 주장하면서도 단지 거기에만 빠져 서 현실적인 것에 있어서 무능과 무의미성을 신앙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신앙이란…미래에 있어서 영광 가운데 들어간다 해도 그 것은 오늘의 우리의 삶과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다. (...) 오늘의 생 활이 현세에 있어서나 미래를 위하여 매우 중요하다.”58) “기독교 의 신앙은 역사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다. 역사에 뿌리를 깊이 박고 있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현실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는 것 을 강조한다. (...) 신앙은 반드시 역사라는 바탕을 가져야 한다. 역 사가 없이는 신앙이 불가능하며, 역사 밖에서는 신앙이 불가능하 다. 이와 같이 역사는 신앙에 대하여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성서는 언제든지 역사 안에서의 신앙을 강조한다.”59) 이종 성은 니버가 기독교와 문화에서 그리스도와 세속문화의 관계를 다 섯 가지로 구분하는 것에 있어서 그리스도가 문화에 대해 적대관 계, 유리된 관계, 싸우는 관계로서가 아니라, 문화를 변혁하는 즉 57) 칼뱅 역시 매우 신비주의적인 표현인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입맞추게 한 다”(La foy embrasse Jésus Christ)라고 말하였다(Calvin, IRC III. ii. 8.). “껴안 는다”로 번역할 수 있는 프랑스어 동사 엄브하세(embrasser)는 “껴안다”는 말 과 함께 “입맞추다”란 뜻도 가진다. 이 표현에서 우리는 신앙에 대한 가장 본 질적 의미를 발견한다.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우리의 전 인격의 결 합이다. 우리의 지성, 마음의 감정 그리고 의지의 순종까지 전체 인격, 지정의 가 결합되어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것이 신앙인 것이다. 58) 이종성, 거리의 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4), 107. 59) 이종성, 거리의 신학, 108. 김선권|춘계 이종성이 말하는 통전적인 기독교인의 삶 75 문화를 변혁시켜 유용한 것으로 만드는 관계임을 피력한다.60) 그 는 그의 저작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그리스도인의 삶이 통 전적으로 결합되어 있어야 함을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2. 관계의 통전성 인간은 관계 안에 있는 존재이다. 인간이 맺을 수 있는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로서의 “대신적 관계”, 타자들과의 관계로서의 “대린적 관계”, 자기 자신과의 관계로서의 “대자적 관계”이다.61) 먼저 “대신적 관계”를 살펴보자. 하나님은 인간이 존재하기 전부 터 존재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것은 영원자이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후 에 다른 피조물과는 다른 특별한 관계를 사람과 가졌다. 즉 인격적 관계이며 대화적 관계이다. “하나님은 다른 존재와는 달리 사람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인격적 관계, 대화의 관계에 있었다.”62) 하지만 타락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긋나게 했다. 하나님과 깨어 진 관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가져야 했던 생의 목 표와 방향과 표준을 절대자인 하나님 대신 상대적인 것에서 찾길 원했다.63) 따라서 이종성에게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 60) 이종성, 윤리와 토착화론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135. 61) 우리는 여기서 사물들과의 관계로서 “대물적 관계”를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종성은 대물적 관계에 대해 직접적인 논의를 하지는 않는다. 62) 이종성, 윤리와 토착화론, 16. 63) 이종성, 윤리와 토착화론, 18. 76 한국조직신학논총 제50집(2018년 3월) 님과의 새로운 관계로 들어가도록 부름을 받은 존재가 되는 것이 다. 그리스도인은 우선 대신적 관계인 신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해 야 한다.64) 십계명도 먼저는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의 중요성을 언 급한다. 성경은 계약이라는 단어를 280번 이상 사용하며 신 ․ 구약 성경 자체도 이미 옛 계약과 새 계약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지고 있 다. 하나님이 사람과 맺은 계약의 본질은 사람을 영적이며 인격적 관계로 여긴 것이다.65) 이종성은 칼뱅의 기독교 강요가 시작하는 내용을 인용하면 서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자기가 어떠한 존재인지 를 인지해야 함을 강조한다.66) 온전한 대신관계란 하나님을 창조 주, 구속주, 우주의 통치자와 역사의 주관자로 인정하며 믿는 것이 다.67)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써 중생하면서 창조자 하나님을 향 한 삶을 사는 존재가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 온전한 삶의 출발점이다.68) 다음으로 그리스도인은 “대린적 관계”를 가진다.69) 이종성은 태초에 인간은 남자와 여자라는 관계성 안에서 창조됨을 주장한 다. 즉 인간은 복수의 관계성 안에서 살도록 처음부터 지음 받았다. 64) 이종성, 윤리학 II, 62-3. 65) 이종성, 윤리학 II, 88-9. 66) 이종성, 윤리학 II, 63. 67) 이종성, 윤리와 토착화론, 63. 68) 이종성, 윤리학 II, 63. 69) 이종성은 1974년 11월 29일 호남신대 졸업예배의 “신성의 참여자”라는 설교 에서는 대린적 관계를 대인관계라고 표현했다. 이종성, 이 세대를 사는 지혜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297. 김선권|춘계 이종성이 말하는 통전적인 기독교인의 삶 77 “사람은 본질적으로 혼자서 사는 존재가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안 에서 살아야 한다.”70) 이종성은 타자와의 관계의 기초를 삼위 하나 님의 존재양식으로 이해하였다. “신이 본래부터 공동체로 존재하 시고 그 존재양식에서 인간은 공동체적 존재 양식이 연유되었다.”71) 성경의 전체 계명은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예수 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통해서, 이 웃에 대한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과 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음 을 선언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처음으로 한 질문이 “네가 어디 있 느냐?”(창 3:3)라고 말한다. 이 질문은 첫 사람 아담의 자기 이해와 실존에 관한 질문이다. 이 질문은 최초의 살인자로서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던져진 질문과 유사하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창 4:9) 아담에게 한 질문이 하나님 앞에서(Coram Deo)의 질문이라면, 가인에게 한 질문은 사람/세상/역사 앞에서(coram hominibus/mundo/historia)의 질문이다.72) 이렇듯 대린관계는 대신 관계와 연결된다. 이종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구 체적이고 윤리적인 삶의 장은 사회와 역사이며, 행동의 대상은 이 웃이다.”73) 이종성은 그리스도인의 대린관계가 그리스도교인의 70) 이종성, 신학적 인간학, 215. 71) 이종성,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구원, 277. 72) 김선종, “어디 있느냐,” 「말씀과 함께」 2 (2016.9), 124-125. 73) 이종성, 윤리학 II, 65. 78 한국조직신학논총 제50집(2018년 3월) 삶의 기본구조에 포함됨을 말한다.74) 성서는 하나님 앞에서의 인 간과 사람 앞에서의 인간의 무게를 동시에 취급한다. 이종성은 “그 리스도교의 모든 삶은 대린관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라고 주장 한다.75) 끝으로 그리스도인은 “대자적 관계”를 가진다. 이종성이 말하 는 대자적 관계란 본질적으로 신학적이다. 즉 대자관계란 신비주 의자들의 주장처럼 자연적 자아에 침전해 들어감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얻어지기 때문이 다.76) 이종성은 호남신대 졸업예배에서 대자관계를 위해서 하나 님의 지식과 인간의 지식을 동시에 가져야 함을 설교했다. “그러므 로 신성의 참여자는 신에 관한 지식과 자기에 관한 충분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77) 이종성은 기독교 신앙이 삼각관계에 있어서 지나치게 한편으 로 쏠리는 경향의 위험을 간파했다. 하지만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 면 세 가지 관계는 개별적인 것이지만 독립적이 될 수 있는 것은 아 니다. 즉 한편의 관계만 올바르고, 나머지는 잘못돼도 정당한 것이 아니라, 모든 관계는 동시적이며 통전적이다. 건전한 신앙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나와 타자와의 관계, 나와 나 자신과 더 나아가 나와 사물과의 관계를 통전적으로 결합하며 조화시킨다. 이종성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관계의 통전성 즉 하나님, 인간, 자기 자 74) 이종성, 윤리학 II, 64. 75) 이종성, 윤리학 II, 64. 76) 이종성, 윤리학 II, 65. 77) 이종성, 이 세대를 사는 지혜, 300. 김선권|춘계 이종성이 말하는 통전적인 기독교인의 삶 79 신 거기에 사물과 자연까지 포함하는 관계의 그물망 안에서 관계 의 통전성을 유지하며 사는 것이다. 3. 칭의와 성화의 동시성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 이종성은 일본 동경신학대학에서 “칼뱅의 의인과 성화”라는 제목의 논문을 졸업논문으로 제출하였다. 당시 그는 이 논문을 쓰 기 위해서 기독교 강요를 세 번 읽었다고 말하였다. 또한 칼뱅의 의인론과 성화론을 연구함으로써 개신교의 진수인 이신칭의 교리 와 기독교 윤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했다.78) 이러한 영 향 때문인지 그는 칭의와 성화의 관계를 매우 잘 이해하고 있고, 칭 의와 성화의 자리가 그의 신학 안에 균형 있게 자리 잡고 있다. 이종성에게 칭의(의인)는 “의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실제로 의롭게 만드는 의화가 아니라, 실제로는 의롭지 못하나 하나님이 그렇게 인정해 주었다는 뜻으로서의 칭의이다. 그러므로 칭의는 우리 안에 의가 “주입된 것”(infusa)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가 우 리 밖에서 우리에게 “덧입혀진 것”이다(imputatio). 우리는 여전히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 것이 다.79) 이 점에서 “전가”를 뜻하는 종교개혁자의 “칭의”는 “주입” 을 뜻하는 로마 천주교회의 “의화”와는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이 종성에 의하면 칭의란 실제로 의롭지 못한 자가 의롭다고 인정받 78) 이종성, 산을 보고 바다를 보고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84. 79) 이종성,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신학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421-422. 80 한국조직신학논총 제50집(2018년 3월) 으며, 의롭다고 인정받은 자가 이제 의에 합당한 삶으로 초대를 받 는 것이다.80) 중생한 자는 의인으로 여겨진다. 의인으로 여겨진 사건은 단 회적 사건이다. 하지만 일단 의인이 되면 그 순간부터 성화가 시작 된다. 칭의의 사건이 단번에 일어나는 것이라면 성화는 일평생을 통하여 계속해서 일어난다. 의인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그의 생활 목표는 완전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는 성화가 되어야 한다.81) 그리 고 이 성화는 개인의 생활로서의 성화와 공동체 안에서의 성화로 구별된다.82) 이종성은 칭의와 성화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 는가?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신학자들 가운데는 의인과 성화를 동일한 사건으로 취급하지 않 고 한편을 다른 편의 선행조건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예를 든다면 로마 천주교회와 감리교회는 의인보다 성화를 더 강조하며, 루터 교회는 의인교리를 성화교리보다 더 강조한다.83) 종교개혁자들은 신자들의 생활의 선별적인 면을 강조하면서 의 인과 성화를 부각시켰다. 루터가 의인(justificatio)에 더 중점을 둔 반면 칼빈은 성화(sanctificatio)에 더 중점을 두었다. 그런가 하 면 로마 천주교회는 의인 교리를 성화론의 서론이라고 했다.84) 80) 이종성, 윤리학 II, 53. 81) 이종성, 윤리와 토착화론, 25. 82) 이종성, 성령론, 297. 83) 이종성, 윤리학 II, 59-60. 84) 이종성,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구원, 388. 김선권|춘계 이종성이 말하는 통전적인 기독교인의 삶 81 웨슬레에게는 의인교리는 중요하지 않다. 성화교리가 모든 신앙 생활과 윤리를 지배한다.85) 신학적 입장차에 따라서 논란이 될 수 있는 칭의와 성화의 관 계에 있어서 이종성은 칭의와 성화를 그 전제와 의미를 구별하면 서도 그 둘을 분리하여 취급해서는 안 됨을 강력하게 주장하였 다.86) 그가 칼뱅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이종성 은 칼뱅의 핵심 사상인 그리스도와의 연합 사상을 간파하고, 그 연 합 사상에서 칭의와 성화의 비분리성을 끌어내었기 때문이다.87) 85) 이종성, 윤리학 II, 564. 이 주장은 매우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왜냐 하면 성화가 웨슬레신학의 중심인 것은 사실이지만, 웨슬레는 두 개의 기본 적인 교리로서 의인과 성화를 동시에 중시했기 때문이다. 웨슬레의 구원론에 서 의인은 성화와 함께 두 개의 기둥과 같다. 더구나 한영태는 웨슬레의 의인 의 개념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성화 사상조차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한영태, 웨 슬레의 조직신학 (서울: 성광문화사, 1994), 164-5. 86) 이종성,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구원, 388. 87) 이종성, 윤리학 II, 544. 하지만 여기서 이종성의 칼뱅 해석이 선명하지 않 다. 이종성은 의인과 중생(성화)의 연합을 말하는 칼뱅의 사고를 이렇게 이해 한 듯하다. “즉 먼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되고 그 다음에 성화가 있다. 이 두 가지 기초 위에서 그는 의인을 말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는 의인을 먼저 말한 다음에 성화를 말한다…. 칼빈은 성화를 말한 다음에 의인을 말한다”(윤 리학 II, 544). 여기서 말한다가 신학적으로 그렇게 주장했다는 것인지 혹은 기 독교 강요의 순서로서 그렇게 했다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후자로 말했다 면 타당하지만, 전자적인 의미 즉 그리스도와의 연합 → 성화 → 칭의를 칼뱅 이 신학적으로 주장했다는 것은 칼뱅 해석의 오류이다. 칼뱅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주장하고 그 연합에서 이중은혜로서 칭의와 성화가 동시에 주어진다 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칼뱅은 논의의 순서로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 성화 → 칭의의 순서를 선호한다. 애매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이종성 의 다른 책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신학적 순서가 아니라 논의의 순서를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82 한국조직신학논총 제50집(2018년 3월) (칼빈은) 의인과 성화는 동시에 받은 은사이며 중생자들의 삶에 함께 계속된다(simul et coniunctium)는 점을 강조한다.88) 칼빈은 성화와 의인이 두 가지 별개의 교리가 아니라 분리될 수 없 는, 동시적으로 현실화되는 사건임을 강조한다.89) 칼빈은 값없이 의롭게 된 중생된 사람들은 그에 합당한 선행 또는 성화의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90) 신자는 실제로는 의롭지 않은 죄인이지만 은총으로 의롭다함 을 받은 자들이다. 이 점에서 신자는 종교적 측면에서 의롭다 함을 인정받으면서부터 윤리적 측면에서 성화의 생활을 지향하게 된 다.91)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떠나서는 성화가 없다”92)는 칼뱅의 주장처럼 신자의 성화 생활은 끊임없이 그리스도와 연합하 여 그의 은혜에 의해서 가속화된다. 성숙한 신앙은 그리스도와 하 나가 되는 경험 안에서 성장한다.93) 성령이 내주하여 성화의 생활 에 힘과 원동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94) 그러므로 이종성은 성화 와 관계된 윤리는 신자에게 구원에 이르는 한 과정으로서가 아니 라, 의롭게 해 주신 은총에 대한 보답으로서의 윤리 생활에 있음을 주장한다.95) 88) 이종성, 윤리학 II, 60. 89) 이종성, 윤리학 II, 544. 90) 이종성, 윤리학 II, 60. 91) 이종성, 조직신학개론, 193. 92) Calvin, IRC III. xiv. 4. 93) 이종성, 성령으로 사는 생활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90-9. 94) 이종성, 성령으로 사는 생활, 28. 김선권|춘계 이종성이 말하는 통전적인 기독교인의 삶 83 마지막으로, 성화의 완전성에 대해 이종성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그에 의하면 신자는 성화에 있어서 완전성에 도달될 수 없 다. 왜냐하면 성화의 표준은 하나님 그분에게 있기 때문이다.96) 그 러므로 신자는 죽을 때까지 완전 성화를 향해 달려갈 뿐이다. 이 점 에서 이종성은 로마 천주교회와 웨슬레의 견해와는 달리 완전 성 화의 불가능성을 주장한다.97) 신자란 완전한 자로서 존재하는 것 이 아니라, 완전한 성화를 향하여 이 땅 위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는 자인 것이다.98) 그리스도와 연합 안에서 칭의의 은혜와 성화의 은혜를 동시적 으로 누리며 사는 삶, 즉 의롭게 함과 거룩하게 함이 나눠지지 않고 결합되는 삶이 이종성이 말하는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고전 1:30)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러므로 칭의는 믿음과 은혜로 성화는 노 력으로 된다는 막연한 사고는 오히려 신자의 성화를 방해한다. 왜 냐하면 성화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 안에서 하는 일 임을 인정하며 그리스도를 의존할 때, 신자들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다.99) 95) 이종성, 조직신학개론, 193. 96) 이종성, 성령론, 296. 97) 이종성, 윤리학 II, 60. 98) 이종성, 윤리학 II, 60. 99) 이종성, 성령론, 296. 84 한국조직신학논총 제50집(2018년 3월) 4. 사회와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삶 신앙인의 삶은 수직적인 것과 수평적인 것 둘 다 포함한다. 하 지만 신앙인의 실제적 생활양식은 수평적 삶에 보다 많이 관계한 다.100) “사람은 본질적으로 타자와의 관계에서 사는 존재다.”101) 이종성은 신앙인의 수평적인 삶을 두 가지로 구별한다. 사회 안에 서의 그리스도인의 삶과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이 종성은 성속을 이분법적으로 구별하여 사는 것을 그리스도인의 삶 으로 인정하지 않는다.102) 교회(성)와 세상(속)을 나누는 것은 예 수님 자신도 인정하지 않았다. 예수의 성육신 사건 자체가 세상과 사회에 대한 긍정의 사건이요 세상과 사회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103) 교회를 향한 세상의 비난은 신자의 이중적 태도 때문이다. “주일이 되면 거룩한 사람이 되나 월요일부터 토요 일까지는 악당이라는 말을 듣지 않는가? 겉으로는 양순한 척하면 서도 뒤돌아서는 중상모략을 하지는 않는가? … 신자가 성숙한 상 태에 들어가면 이러한 이중적인 성격은 완전히 없어지고 성과 속 이 하나가 되고 외부와 내부가 일치되고 밤과 낮이 같게 되고, 형식 이고 외식적인 생활은 완전히 없어질 것이다.”104) 이러한 이원론적 신앙에 종지부를 찍은 자들이 종교개혁자들 100) 이종성, 신학적 인간학, 219. 101) 이종성, 신학적 인간학, 232. 102) 이종성, 종말론 II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90), 158-61. 103) 이종성, 거리의 신학, 144. 104) 이종성, 성령으로 사는 생활, 96. 김선권|춘계 이종성이 말하는 통전적인 기독교인의 삶 85 이다. 루터는 성속을 나누는 것을 반대했으며, 직업에서 소명 개념 을 도입하면서, 사회에 있는 모든 직업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근거 함을 역설한다. 그는 사회 속에서 행하는 직업의 고귀성을 회복시 켰다.105) 또한 칼뱅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의 구 호를 가지고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서, 말하자면 생활 전체에 신적 주권이 세워지길 원했다.106) 중세 수도원 운동은 세상을 떠나 서 신과의 합일을 추구했다. 하지만 막스 베버가 규정한 것처럼, 칼 뱅주의의 금욕주의는 세계 밖에서의 금욕주의가 아니라, 세계 안 에서의 금욕주의였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칼뱅은 중세 영성 의 목표점인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 cum Christo) 혹은 신비적 연 합(unio mystica)을 신앙의 목표점으로만 둔 것이 아니라, 출발점으 로 상정했다. 신비적 연합은 신앙의 출발점이자 신앙의 목표점으 로 동시에 주어진다. 그리스도에게 목마르고 굶주린 모든 사람은 신비적 연합으로 신앙을 출발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자리는 신비적 연합의 실현(천)의 장(長)이다. 하나님과의 합 일이 세계 밖에서 즉 일상생활로부터 해방된 곳이 아닌, 철저하게 현실적인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난다.107) 신자는 신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믿음이 시작한다. 비록 성과 속을 나누는 것이 비성경적이고 반종교개혁적일지라도, 교회는 세 상을 개혁하는 전진기지이다. 교회는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 들기 위해 존재한다. 이종성의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선교를 해야 105) 이종성, 윤리와 토착화론, 137. 106) 이종성, 윤리와 토착화론, 137. 107) 김선권, “칼뱅의 신비적 연합,” 「한국조직신학논총」 38 (2014.6), 187-188. 86 한국조직신학논총 제50집(2018년 3월) 하며, 세상은 교회의 선교를 받아 더 나은 세상이 되어야 한다”라 는 매우 타당한 주장을 한다.108) 그는 본회퍼의 “그리스도는 자신 을 있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위해서 있다”는 말을 빌려 교회는 교회 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서 존재해야 함을 천 명한다.109) 신자들은 참 공동체를 교회 공동체 안에서 경험한다. 현실 교 회 안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는 이상적 사 회(공동체)이다.110) 교회 공동체의 일원들은 그리스도를 믿어 자 연적인 삶의 양식 즉 본성에 따라 사는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삶의 양식 즉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을 실천하는 자들이다.111) 교회 생활 의 본질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은혜를 서로 나누는 데 있다.112) 이 나눔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처럼 수직적 차원과 수평적 차원으로 확대된다. 수직적 차원에 있어서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고 복음을 전하여 구원 사역에 참여하며, 수평적 차원에 있어서 교회는 사랑의 실천으로서의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나눔과 섬김의 사역에 동참한다.113) 교회는 하나님이 세상 을 향하여 그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역사하게 하는 선교의 본부인 것이다.114) 108) 이종성, 종말과 하나님의 나라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249 109) 이종성, 윤리와 토착화론, 25. 110) 이종성, 이야기로 푸는 조직신학, 246-247. 111) 이종성, 신학적 인간학, 220. 112) 이종성, 신학적 인간학, 221. 113) 이종성, 이야기로 푸는 조직신학, 247. 114) 이종성, 주기도문, 십계명, 사도신경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9), 205. 김선권|춘계 이종성이 말하는 통전적인 기독교인의 삶 87 그리스도인은 장성한 분량에 이를 때까지, 즉 천국에 도달할 때까지 교회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야 한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이종성은 루터와 칼뱅을 따라 교회를 신자들의 어머니로 보 았다. 교회가 어머니라는 것은 어머니적인 돌봄과 양육을 제공함 을 뜻한다. 교회는 신자들을 말씀과 성례전에 의해 영적으로 양육 하고, 진리로 교육한다.115) 그러므로 신자는 세상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처럼 교회를 떠나서 신자로서의 삶을 살 수 없다. 교회 안에 서 수평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과 함께 연합하여 교제하 며, 수직적으로 그리스도와 신비적 연합을 통해서 신앙이 강화되 어 천국에 소망을 두며 전진해야 한다.116) 5. 종말의 지평 아래서 사는 기독교인의 삶 기독교는 역사의 종말을 믿는다. 성경은 수많은 곳에서 역사 의 종말을 가르친다. 그 날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재림이 역사의 오메가 포인트다.117) 한국교회는 잘못된 종말론,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오심을 정하여 기다리는 시한부 종말론자들에 의해 진 통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들은 재림일이 임박하다며 가정을 파괴 하고, 학업과 직업을 중단하게 했다. 많은 성도들이 거기에 미혹 당 해 넘어졌다. 그렇다면 이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이종성에 따르면 카이로스적 사건을 크로노스적으로 계산한 것이다.118) 115) 이종성, 주기도문, 십계명, 사도신경, 205. 116) 이종성, 이야기로 푸는 조직신학, 209. 117) 이종성, 종말과 하나님의 나라, 107-8. 88 한국조직신학논총 제50집(2018년 3월) 하지만 문제는 시한부 종말론자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 종말 신앙을 가진 사람들 중에도 현재의 실존 생활을 소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과 삶의 태도는 건전한 기독교적 종말 신앙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지금 여기”의 중요성을 주장 한다. 종말의 견지에서 현재를 비출 때 지금 여기의 중요성이 회복 된다. 이종성은 종말 신앙은 언제든지 현재적이라고 말하면서, “현 재적 영원”(nunc aeternum)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119) 기독교인 은 “현재를 살면서 미래를 살고, 현재 안에 미래가 약동”하는 삶을 산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땅과 역사 안에서 안주하 는 삶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사는 “나그네 의 삶”(vita viatorum)이다.120) 이종성은 시간의 성화를 주장한다. 크로노스의 시간이 카이로 스의 시간이 되는 것이 시간의 성화이다. 그에 따르면 시간의 성화 의 토대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 은 시간을 성화하여 시간과 역사를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동시자 로 만들기 위하여 일어난 사건이다.”121) 이종성은 칼뱅의 주장을 따라 기독교인의 삶을 내세를 갈망하는 삶이라 하였다.122) 종말의 118) 이종성, 종말과 하나님의 나라, 108. 119) 이종성, 종말과 하나님의 나라, 136. 120) 이종성, 종말과 하나님의 나라, 136. 121) 이종성, 종말론 II, 156. 122) 칼뱅은 미래 삶의 묵상의 주제를 기독교 강요 3권 9장 1절-6절에서 다루 었다. 반면 현재 삶의 주제를 기독교 강요 3권 10장 1-6절에서 다루었다. 말하자면 미래의 삶을 현재의 삶보다 앞서 다루었다. 왜 칼뱅은 현재에서 미래로 가는 시간적 순서가 아닌 미래를 먼저 다루고 현재로 넘어오는가? 칼뱅은 현재의 삶에서 미래의 삶으로의 경과는 단순한 시간적 전이의 문제 김선권|춘계 이종성이 말하는 통전적인 기독교인의 삶 89 지평 아래서 현재의 순간을 사는 것은 장차 하늘나라에서 가질 복 락을 이곳에서 “미리 맛보는” 삶이다.123) 그리고 이것은 승천하여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와의 사귐 안에서 이루어진다.124) 종말 론적 삶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종성의 정의는 이 삶의 본질이 무엇 인지를 가장 분명하게 제시한다. 종말론적 삶이란 “세상의 종말을 앞에 두고 사는 종말이 아니라 매일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 대 해서는 죽고(종말) 하나님을 향해서는 사는(영생) 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자기 자신 안에서 죽고 사는 삶이 종말론적이 다. 그러므로 이종성에게 ”기독교인의 삶은 언제든지 종말론적이 다.”125) IV. 나가는 말 이종성은 이종성에게 신실하다. 즉 그의 사상은 오랜 기간 동 가 아닌 미래의 삶에 대한 소망이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이 미래 의 삶의 소망이 더욱더 현재의 삶을 강화시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즉 현재 삶의 조건에서 미래 삶의 묵상은 단지 미래의 소망만을 가리키는 것 이 아니라, 더욱더 현재의 삶의 실재를 지시한다. 부활의 소망은 우리가 현 세의 삶에서 선을 행하면서도 낙심하게 하지 않게 한다.” Calvin, Commentaire sur la première épître aux Corinthiens 15,18. 미래의 삶의 묵 상은 현재의 삶에 항구적으로 영향을 주는 바로 그 점에서 미래 삶에 대한 강조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123) 이종성,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구원, 367. 124) 이종성, 이야기로 푸는 조직신학, 252. 125) 이종성, 신학서론, 382. 90 한국조직신학논총 제50집(2018년 3월) 안 다양한 저술 작업을 통해서 표출되었지만, 사상의 근본적 단절 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의 사상은 발전하면서 심오해지지만 항상 일관성을 유지한다. 신학 서적이나 설교 등에서 산발적으로 나타 난 기독교인의 삶이 모두다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 이종성이 말하 는 통전적인 기독교인의 삶의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그가 말하는 기독교인의 삶이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짐을 주장한다. 첫째, 이종성이 말하는 기독교인의 삶은 그의 통전적 신학과 통전적 인간론 안에서 살펴볼 때, 그것의 의미가 분명하게 파악된 다. 통전적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과 세계와 우주와 신학과 역사를 통전적으로 이해한다. 즉 파편적이거나 부분적, 편협하거나 양극 단적인 형태로 신학함을 지양하고 종합적 전체적으로 이해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통전적 신학 안에 있다. 이종성은 인간론을 신 학적이라 하였다. 신학적 인간론은 인간의 본성을 4중 상태로 통전 적으로 파악할 때 분명해 진다. 인간의 원형이 어떠했는지, 거기서 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화해된 존재가 되었는지, 모든 문제의 해결 후에 가지는 완전한 인간은 무엇인지 의 통전적 신학적 인간 이해가 기독교인의 삶의 신학적 배경이다. 둘째, 이종성은 신앙과 삶의 통전성과 관계의 통전성을 주장 한다. 그는 신앙이 개인과 공동체의 삶과 유리되어 존재하는 것을 비판하고 “신앙적 삶”을 주장한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 전체는 윤리적 삶을 지향한다. 편협한 신학은 한편에서는 인간과 하나님 과의 관계(주로 보수적 신학의 경향)에 집중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점에 집중한다(주로 진보적 신학의 성향). 하지 만 이종성은 대신, 대인, 대자 관계의 동시성과 통전성을 주장하면 김선권|춘계 이종성이 말하는 통전적인 기독교인의 삶 91 서 모든 관계 안에서 열매를 맺는 신학을 추구한다. 셋째, 기독교인의 삶은 의인과 성화의 동시성 안에서, 사회와 교회 안에서, 종말의 지평 아래서 살아낸다. 기독교인의 삶은 그리 스도를 닮아가는 성화의 과정이다. 그리고 이 성화는 우리를 은혜 로 의롭게 하시는 그리스도와의 교제 안에 있다. 그리스도인은 죄 를 지어서는 안 되는 상태 안에서 완전 성화를 지향한다. 그리스도 인의 신앙의 실천의 장은 사회와 교회이다. 성과 속의 이원론적 구 별은 기독교인의 삶을 왜곡시킨다.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선교하 며 세상은 교회의 선교를 통해서 더 나은 세상이 된다. 기독교인은 현재를 살면서 미래를 살고 현재 안에 미래가 약동함을 경험한다. 그리스도인은 장차 있을 하늘 영광의 삶을 미리 맛보고, 매일 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종말의 지평 아래서 산다. 마지막으로 이종성은 기독교인의 삶에 대해 수많은 신학자와 철학자들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어떤 부분은 동조하고 어떤 부분은 반대하지만 특별히 그의 사상의 대부분은 종교개혁자의 사상에 근 거를 둔다. 루터의 사상의 영향도 크지만, 칼뱅 사상이 지배적인 자 리를 차지하고 있다. 칭의와 성화의 동시적 이해, 그리스도인을 하 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인식하는 방식에 있어서 칼뱅의 주장을 직 접적으로 따른다. 이종성은 척박한 한국의 신학 지형에 신학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저서들을 저술함으로써 후학들에게 조직신학에 대한 접근 을 용이하게 했다. 더구나 그의 신학은 그가 추구하는 신학 방법에 따라, 성서적이면서 복음적이며 개혁신학적 입장을 추구했다. 하 지만 그는 칼뱅과 개혁신학을 교조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 92 한국조직신학논총 제50집(2018년 3월) 다. 그는 현대 신학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신학 영역을 넓혀서 일반 학문과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면서 개혁신학의 현대적 재현 을 시도한다. 이종성의 통전적 방법은 극단성과 편협성, 부분적 접근이 아 닌 가능한 한 다양한 측면들을 다루고 제시함으로 인해서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는 스스로 신학함의 길에 들어서게 한다. 하지만 이 것은 장점이면서 동시에 약점이 될 수 있다. 신학의 주제가 있으면 그것을 신학자, 철학자들의 입장을 열거하고 소개하는 방식으로 논의가 건너뛰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종성은 어느 사상까지 지지하며 어떤 사상을 거부하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의 작품 속에서 이종성의 사상 자체를 발 굴해야 하는 후학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방대한 신학의 영역을 저술하다 보면, 때로는 그 내용의 깊이로 천착하지 못하고 표면적인 논의로 머무를 수 있다. 이런 장단점을 포함하고 있는 그 의 평생의 역작들은 신학을 연구하는 모든 이에게 큰 도움을 준다. 이종성의 작업은 후학들에게 도움닫기가 되어 더 나은 환경에서 신학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한다. 김선권|춘계 이종성이 말하는 통전적인 기독교인의 삶 93 참고문헌 김도훈.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의 <통전적 신학>적 정체성과 <온신학>의 과 제.” 「장신논단」 48/1(2016): 115-144. 김선권. “칼뱅의 신비적 연합.” 「한국조직신학논총」 38 (2014): 157-196. 김선종. “어디 있느냐?(창 3:9; 4:9).” 「말씀과 함께」 2 (2016): 124-136. 김지훈. “이종성박사의 섭리론과 예정론.” 「한국개혁신학」 47(2015): 128-157. 김철영. “춘계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과 윤리학의 방법론에 관한 연구 - 믿음과 삶의 통전적 윤리학을 제언하며.” 제5회 춘계신학강좌 (2007): 1-44. 루터, 마르틴/이재하 ․ 강치원 옮김. 루터: 로마서 강의. 서울: 두란노 아카데 미, 2011. 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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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cturer, Presbyterian University & Theological Seminary Seoul, Korea Lee Jong-Sung poursuit la théologie “holistique”. Il souhaite de la même manière la vie holistique du chrétien. Toute sa théologie se fonde sur l'anthropologie. À partir de celle-ci, elle s'étend jusqu'à toute la théologie systématique. Pour la raison que la compréhension à propos de l'être humain soit biblique et s'en appuie sur le quadruple état, son anthropologie peut dire être théologique: l'état d'intégrité, l'état de corruption, l'état de grâce, l'état de gloire. C'est sur ce fait qu'il affirme la vie chrétienne. Avant tout, la foi s'unit à la vie chrétienne. Les chrétiens sont à vivre la “vie croyante”. La vie chrétienne mûrit dans la simultanéité de la justification et de la sanctification. La justification n'est pas séparable de la sanctification. Le chrétien ne détache pas dichotomiquement l'Église du monde: il fait prévaloir la vie dans ce monde. La mission de l'Église se trouve pour le monde. Ce monde en devient mieux par l'activité missionnaire. Bien que Lee Jong-Sung 98 한국조직신학논총 제50집(2018년 3월) soit contre la dichotomie (le sacré et le profane), pour lui l'Église était encore une communauté idéale. Le croyant vit jusqu'à son terme de la vie en recevant l'aide de l'Église, qui est la mère des chrétiens. Il vit actuellement sous l'horizon eschatologique. Lee Jong-Sung traite sotélioliquement, ecclésiastiquement, eschatologiquement etc... à savoir holistiquement de la vie chrétienne. ‖ 주제어 Keywords ‖ 이종성, 그리스도인의 삶, 통전적 신학, 성화, 종말론 Lee Jong-Sung, La vie chrétienne, Théologie holistique, Sanctification, Eschatologie ‧ 투고접수일: 2017년 12월 27일 ‧ 심사(수정)일: 2018년 02월 10일 ‧ 게재확정일: 2018년 0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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