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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고 57회 동문회
 
 
 
카페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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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乍 晴 乍 雨 스크랩 雲影(구름 그림자)
남윤면 추천 0 조회 370 17.07.20 11:03 댓글 16
게시글 본문내용


김삿갓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선 후기 참으로 물처럼 바람처럼 한 세상을 살다 간 도인 같은 사람이었는데, 금강산을 찾아가던 어느 가을날 저녁 호젓한 산골을 지나가게 되었단다. 날은 저물고 다른 민가도 달리 없어서 한 허름한 집에 유숙하게 되었나 보다. 그런데 그 집은 젊은 부부만 살고있는 가난한 집이어서 저녁이라고 얻어먹은  것은 곡식 알 건더기는 거의 없고 물이 대부분인 멀건 죽 한 그릇이었나 보다. 낮에 변변히 먹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걸었으니 얼마나 시장했을까. 한편 착하디 착한 젊은 부부는 부부대로 실로 미안한 것이었다. 모처럼 찾아든 손님에게 변변하게 따뜻한 밥 한 그릇 대접 하지 못한고 멀건 죽 한그릇만 대접한 것을 무슨 죄를 지은 것처럼 미안해 하고.

 

이튿날 아침 비록 옥수수가 대부분 섞인 보리밥에 소찬 일망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 어린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대접 받은 것에 감동한 김삿갓은 그 젊은 부부에게 너무 미안해 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시 한수를 지어준다.

 

四脚松盤 粥一器 (사각송반 죽일기) / 네다리 소반에 멀건 죽 한그릇

天光雲影 共排徊 (천광운영 공배회 ) / 하늘빛 구름그림자 함께 오가네

主人莫道 無顔色 (주인막도 무안색 ) / 주인은 면목없다 말하지마오

吾愛靑山 倒水來 (오애청산 도수래 ) / 나는 물에비친 청산을 사랑한다오

김삿갓/죽 한 그릇

 

조선시대 문과에 급제한 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비록 사마시에 入格(합격자는 진사 또는 생원으로 존칭된다)한 이만 하더라도 사서삼경은 물론이고 18사략 등 文史哲 전반을 휑하니 꿰고 있는 그 방면의 專門家들이었다. 문과 급제자는 바로 벼슬길로 나아가지만 이에 비해 문과 급제 전단계인 생원.진사들은 비록 벼슬을 제수받지는 못하더라도 그 희귀성은 대략 한 고을에 한명 있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으므로 그들의 권위나 그들에 대한 존경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김삿갓도 사마시에 패스하여 進士(과거 답안에 그의 조부를 욕하는 를 지어 나중에 이를 뒤늦게 알고 벼슬길을 마다하고 평생 방랑의 길로 갔다는 것으로 보아 그러하다) 타이틀은 이미 확보한 터였으니, 고금의 경전들은 이미 달달 외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였기에 조선 성리학의 원천인 新儒學의 교조인 朱子를 모를 리 만무하였겠다.

 

 

유학에는 天理詩라는 장르가 있다. 인간의 감정이나 정서를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류의 시와는 달리 자연의 이치나 인간의 도리를 주제로 하는 류의 시로서 소위 心性修養에 관련된 시를 말한다. 朱子勸學文이나 이퇴계의 시에 그러한 시가 많다.

 

++ 고등학교 한문시간 雪嶽山人 선생님에게 아래와 같은 朱子의 권학문을 배운 기억이 아련하다.

勿謂今日 不學而 有來日/ 오늘 배우지 아니 하고서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고

勿謂今年 不學而 有來年/ 올해에 배우지 아니 하고서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日月逝矣 歲不我延/ 세월은 흘러가나 나를 위해 늦추어주지 않으니

嗚呼老矣 是誰之愆()/ ~ 늙었도다 이 누구의 허물이겠는가

주자/권학문

 

주자는 南宋시대 사람으로 공자.맹자 이후 근 천년이상 불교에 비해 쇠퇴해 가던 유학을 부흥시킨 소위 新儒學(성리학 또는 주자학)의 종결자이며 성리학의 대가이다. 철학은 물론, 교육, 역사학에도 절대적인 위상으로 자리잡았으며, 후대 유학자들은 공자에 버금간다 하여 朱子라는 존칭으로 존경해왔다. 따라서 주자학을 통치이념으로 채택한 조선시대에 있어서 朱子의 위상은 실로 절대적이었으며 그가 해석한 주석은 단 한자라도 수정이 불가한 것으로 조선사회에서는 받아 들여져왔다. 그러한 그가 지은 아래와 같은 觀書有感이라는 제목의 가 있으니 살펴본다. 관서는 독서와 같은 의미겠다.

 

 

方塘一鑑(반무방당일감개)/ 반이랑 네모 연못이 거울처럼 열리니

天光雲影共徘徊 (천광운영공배회)/ 하늘빛과 구름그림자 이 연못 안에 함께 떠 있네.

問渠那得淸如許 (문거나득청여허)/ 묻노니 이 연못이 이리 맑은 까닭을

爲有源頭 (위유원두활수내)/ 샘에서 맑은 물이 계속 흘러나오기 때문이라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독서나 학문의 즐거움은 샘에서 계속 흘러 들어오는 맑은 물(活水)이 있기 때문이란 것을 그의 天理詩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끊임 없는 독서를 권장하는 이다.

주자/관서유감

어려서부터 文史哲을 달달 외고 있던 김삿갓으므로 비록 멀건 죽 한그릇에 불과하지만 먼 훗날 어느 시골 가난한 집에서 착한 젊은 부부의 따듯한 대접을 받으면서 위의 朱子의 싯구 한구절을 떠올린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리라. 天光雲影共徘徊! 얼마나 멀건 죽이었으면 죽 그릇 속에 구름 그림자가 배회하는 것이 비췄을까.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시장한 가운데에서도 어릴 때 배웠던 朱子의 저 싯구절을 생각해내는 김삿갓! 실로 감탄스럽다.

 

 

그런데, 朱子의 관서유감이란 시는 김삿갓에서 멈춘 것이 아니다. 주자학을 일국의 통치이념으로 채용한 조선에서 朱子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었고 朱子의 말씀에 토를 단다는 것은 소위 사문난적으로서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尤庵 宋時烈은 소위 주자의 팬으로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춘하추동이 바뀌어도 오직 朱子 朱子 만을 숭모하던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효종이 우암에게 선생은 언제나 주자 주자 하시니 어인 일입니까하는 질문에 , 오직 주자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분의 말씀엔 단 한자의 오류가 있을 수 없으니까요라고 대답을 하던 우암이었다. 그러니 우암이 저 관서유감이란 시를 그대로 놔둘 리 만무하였다.

우암 송시열

 

槐山 華陽九曲은 속리산국립공원 내 화양천을 중심으로 약 3km에 걸쳐 하류에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며 좌우 자연경관이 빼어난 지점에 1곡부터 9곡까지 거의 완벽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화양구곡은 우암이 朱子의 고향에 위치한 무이구곡을 본받아 자신이 머물던 화양계곡에 9곡 이름을 지은 것이다. 우암은 구곡의 주요 구성요소인 바위, , 절벽 등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곳에 무의구곡을 본따서 많은 유교적 이름과 巖刻字 등을 새겼는데 오늘날에도 역사적인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작년인가 동창회 주관으로 버스를 대절하여 화양구곡을 관광한 적이 있었다. 그곳을 도착할 즈음에는 해도 거의 저물어가는 오후였기에 귀경시간을 고려하여 부득이 암서재.화양서원.만동묘 정도로만 만족하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제1곡 경천대 제2곡 운영담 등은 시간관계상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었는데,


雲影潭이 바로 朱子의 시 觀書有感天光雲影共徘徊에서 따온 말임은 분명하겠다. 옛날 조상들이 유명한 산천경개나 골짜기에 이름을 지은 것은 전부 그에 합당한 이유와 근거를 상고한 후 작명을 한 것일진대 그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시각적인 관광 만으로 만족하고 돌아온다는 것은 실로 애석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군자정의 일감문


경북 청도(淸道)는 예로부터 산과 물이 푸르고 맑으며 인심이 순후하다고 하여 三淸의 고장으로 불리었다는데, 청도에는 약 2만평 남짓의 유호연지라는 커다란 연못이 있는 바 이름 그대로 여름에는 그 못에 연꽃이 만발한 모양이다. 예로부터 연꽃은 염계 주돈이 이래로 청정한 선비가 사랑하는 꽃이었다. 이 유호연지 가에 君子亭이라는 정자를 갖추고 그 정자를 출입하는 문을 세웠는데 그 문의 이름이 바로 一鑑門!  일감문도 바로 朱子觀書有感에서 읊은 半畝方塘一鑑(반무방당일감개)/ 반이랑 네모 연못 하나 거울처럼 열리니라는 싯구에서 온 것은 분명하겠다. 유호연지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리라

일감문 

 

강릉 경포대 옆에 소위 99칸 사대부가 상류주택인 船橋莊이 있다. 이 한옥은 일찍부터 국가지정 국가민속문화재5호로 지정된 효령대군 후손이 세운 유명한 한옥인데 그 선교장을 들어가면 초입에 조그만 연못이 있고 그 연못가에 마치 두발을 담그고 앉아있는 형상의 아름다운 정자가 있다. 이름하여 活來亭! 이 활래정도 위 朱子 관서유감의 마지막 구절인 源頭에서 따온 것은 분명하겠다. 어느 여름날 연꽃이 만발한 저 정자에 앉아서 은은한 연꽃 향을 맡으며 글을 읽는 선비는 분명 活水가 정수리 꼭대기로 콸콸 들어오는 것같은 흥취를 느꼈으리라. ! 부러울지고.



 

경남 고성의 학동마을 그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서재 골에 育英齋가 있다. 육영재는 학동마을 사람들이 후손의 교육을 위해 세운 사립학교다. 과거에 유치원 교육부터 대학 수준의 교육을 모두 담당했다는데 한 때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육영재에서 공부를 했단다. 그 육영재의 주련을 보면 그것이 바로 朱子의 관서유감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유학을 아끼는 곳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朱子의 어록을 가까이 두고 朱子를 열심히 배웠던 것이다

고성/육영재



육영재의 관서유감 주련


 

 이 뿐이랴. 건국대에는 학교의 상징으로 여기는 호수가 있다. 학교 한가운데 자리한 一鑑湖! 그동안 건대를 거쳤던 학생은 물론, 교수와 교직원, 지역주민 대부분은 일감호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데, 그 호수의 이름 또한 朱子의 관서유감에서 나오는 一鑑活水에서 유래한 것. 일감호라는 호수 이름을 지은 이는 분명 건대생들이 일감호를 산책하면서 活水를 끊임없이 받아 항상 맑은 지성을 유지하기를 바랬을 것이다. 학교 당국이나 선배들은 다른 캠퍼스에는 없는 건국대에만 있는 맑은 湖水 일감호에 본래 이러한 깊은 뜻이 있음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주지시키겠지.

건국대/일감호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화폐 중 천원짜리 지폐의 뒷면을 보자. 시냇가(溪上)에 우뚝 솟은 두 개의 언덕이 있고 그 두 언덕 사이 뒤편에 조그마한 초당이 보인다. 그 초당 안에는 어느 선비가 책을 읽는지 사색을 하는지 고요히 앉아 있다(靜居). 이 그림이 바로 겸재 정선이 그린 보물 585호인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이다. 불과 몇 해 전 경매에서 34원에 거래가 되었던 그 유명한 그림. 그리고 이 그림속의 선비가 바로 이퇴계 라는 것이 아닌가[‘퇴우이선생진적(退尤二先生眞蹟)’이라는 그림첩 속에 이 계상정거도가 포함되어 있다. 이 때 退尤二先生은 퇴계와 우암이다]


퇴계가 60세시에 여러 차례 벼슬을 고사하고 낙향 한 뒤, 낙동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陶山 남쪽 자락에 터를 구해 도산서당 을 짓고 山雲野鶴을 벗삼아 독서와 학문에 전념하며 그의 말년을 보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저 계상정거도가 지금의 낙동강가 도산서원의 경치를 그린 것인지 또는 도산서원 이전 兎溪라는 시냇가에 위치했던 溪上書堂을 그린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렇지만 겸재는 관념 산수화를 그린 종래의 선배 화가와는 달리 소위 실경 산수화를 그린 화가로 잘 알려져 있는 바, 그렇다면 저 계상정거도에서 그린 사물의 구도와 현재 낙동강 가 도산서원의 지형 구도가 대체로 일치한다고 보아 아무래도 지금의 도산서원의 경관을 그린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겠다.

겸재/계상정거도

 

아무튼 우리는 천원 짜리를 통해 당대의 최고의 학자와 화가를 날마다 만나는 행운을 누리고 있는 셈인데 이 또한 일상에서 만나는 인문학의 즐거움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다시 한번 천원짜리 뒷면에 있는 계상정거도를 본다. 왼쪽에 우뚝 솟은 언덕이 보인다. 그곳은 도산서원 매표소를 지나 도산서원 입구에 다 도달 할 즈음 즉 도산서원 초입에 있는 강변의 언덕인데 그 언덕의 이름이 천광운영대이다. 퇴계 또한 朱子 닮기가 평생 소원이었던 분이었던 만큼 서원 초입 언덕에 그런 이름을 지은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하겠다. 지면의 한계로 이 난에서는 생략하겠지만 참고로 퇴계가 지은 陶山十二曲의 가사에서도 雲影天光 내지 天雲臺 등의 단어가 인용되고 있는 바 그것들도 朱子의 관서유감중 天光雲影共徘徊 에서 온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천광운영대에서 바라본 시사단

 

저 천광운영대 앞에서 바라본 정조 때 지방유생들에게 과거를 보이던 試士壇의 아름다운 정경이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두 달전의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좋은 친구들과 마음껏 마시고 즐기던 고교 졸업 50주년 기념 12일의 안동 여행, 돌이켜 보니 며칠 전만 같은데 어찌 세월은 이리 빠른지 야속할 뿐이다. ()

(201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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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7.07.20 20:22

    첫댓글 勿謂今年 不學而 有來年을..
    勿謂今年不學 而有來年으로 하면..
    어떻게 해석이 될까 ?

  • 17.07.20 20:38

    말 하건대 올해 못배운것은 내년이 있지 않은가 ?

  • 17.07.20 20:41

    @이 종구 나도 종구하고 같은 생각인데..
    남박사님 해석은 어떤걸가...

  • 17.07.20 20:47

    @梁 榮善 어! 정말? 난 그냥 고 1 때 한문시간 회초리 맞기 직전 임기응변으로 둘러댄건데...

  • 작성자 17.07.20 23:24

    우선 카페지기가 이렇게 꼼꼼히 읽어줄 줄 정말 몰랐네. 그리고 고마워. 지금까지도 조심스럽게 글을 올렸지만 향후 글을 올리는데 대충대충 올리다간 큰 코 다치겠는 걸. 일단 질문에 답을 하자면, 원래 원문은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인데 쉽게 해석하라고 편의상 띄어쓴 것일세. 그러니 원문대로 해석하자면 勿謂(말하지 마라)는 動詞이고 今年不學而有來年는 목적절 일세. 그런데 영선이가 그 원문을 짓궃게 구태여 자의적으로 띄어쓰면서 해석하라네. 오케이. 해석해 봄세. 영선이가 제시한대로 띄어써서 해석하자면, " 금년 못배웠다고 말하지 마라. 내년이 있지 아니한가" 라고 번역이 가능할 듯!

  • 작성자 17.07.20 23:30

    @남윤면 결론하여 이렇듯 우리 카페지기 한문 실력은 아직 녹슬지 않았네. 맨날 운동만 하는 줄 알았는데 역시 보성출신일세. ㅎㅎ. 글구 종구도 미국생활이 벌써 얼마인데 아직도 이렇듯 한문을 기억할꼬. 설악산 선생님 정말 뿌듯하시겠다. 지하에서도.

  • 17.07.20 20:26

    우리나라 돈 천원짜리가 저렇게 생긴거야? 옛날 내가 사용했던 돈에도 영어가 들어 있었나? 굳이 우리나라 돈에 영어표기가 필요할까? 겸재의 그림은 나도 엄청 좋아하는데..

  • 작성자 17.07.20 23:47

    무슨 소리! 이제 영어는 미국 영국만의 전유물이 아니지. 만국 共有자산이라고 봐야지. 영어 발음도 그래요. 영미식으로 못하면 어때? 소위 영어의 표준 발음은 없어진 지 오래쟎아. 뜻이 정확히 전달되면 그만이지 꼭 영미식 발음을 고집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오늘은 호주에서 온 방문객을 데리고 城北洞 吉祥寺를 해설했는데, 그 친구 종교가 가톨릭이라던데 나하고 한시간 가량 그 절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한 끝에 나보고 그러드만. 당신 종교가 불교냐고. 불교에 대해서 나로부터 처음 듣는 것이 조금 있었던 모양이지? 나처럼 불교도도 아닌 사람이 콩글리쉬로 떠듬거리며 설몀해도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하다면

  • 작성자 17.07.20 23:52

    @남윤면 그 언어가 유창한지 여부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닌 것같더라구. 아무튼 내가 얘기한 것이 비교적 상대방이 잘 이해했구나 하고 생각했지. 오늘 무지 더웠는데 해설하기 정말 힘들더라구. ㅎㅎ.

  • 17.07.21 00:08

    @남윤면 하긴 한국뉴스보면 아나운서는 그래도 괜찮은데 초대된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영어를 막 섞는데 농촌에 있는 분들도 다 이해를 하는지 걱정이 되던데...
    윤면이는 엄청 건강하더라 산행 등을 보니..요즘 같은 날씨에도 야외에서 해설을 하다니.. 오늘 날씨보니 서울과 뉴욕이 똑같은 온도던데 94도 F.

  • 17.07.21 01:24

    @이 종구 종구야, 너 네가 살던 동네인 명륜동과 혜화동을 한자로 쓸 수 있니? 종이에 써서 사진찍어 여기에 올려봐라. 근데, 그거 클릭 하면 다 나오는 세상이라..!? 아무튼 한 번 써 봐.

  • 17.07.20 22:40

    좋은 글 잘 읽었네. 오늘저녁엔 시간도 있고 하니 이 글에 나온 문구들을 한문공부도 할 겸 한 번 베껴서 종이에 써 볼 참이네.

  • 작성자 17.07.20 23:56

    고맙네. 내가 쓴 하챦은 글을 이렇게 重하게 취급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 이상 한치의 실수도 없이 글을 써야겠다고 새삼 다짐하겠네.

  • 17.07.21 01:11

    @남윤면 하다 못 해 뭐 하나 궁금해 알아보려 하면 얼마나 많은 자료를 뒤져야 겨우 입에 맞는 정보를 찾을 수 있는지는 오늘날 누구나 다 알며, 또 진짜 중요한 정보들은 유료로 로그인 하여 크레딧카드 번호대고 얼마를 결재해야 그걸 볼 수 있는 곳으로의 클릭이 되는 세상에.. 이 글 그리고 여기 올려진 모든 글들이 어찌 감히 하찮다고 말 할 자가 있단 말인가?!
    단지 고교동창이라는 이유로 이런 정보와 지식을 무료로 아무때나 얻어볼 수 있으니 오늘아침에 그 감동을 흠뻑 느꼈음에 오늘 저녁 일찍 집에 들어가 소중히 베껴보겠네.

  • 17.07.21 10:27

    full 로 읽어 보았네
    勿 謂 今 日 不 學 而 有 來 日 하고
    勿 謂 今 年 不 學 而 有 來 年 하라
    日 月 이 逝 矣 라 歲 不 娥 延 이니라
    嗚 呼 老 矣 면 是 誰 之 愆 고

  • 17.07.22 03:16

    보통실력들이 아니네..김 종권 한문선생이 저런식으로 읽으면 중국사람들은 더런 걸 어떻게 읽을까 하고 궁금했는데 저런 절을 잇는 접미사(?)는 다음 문장까지 눔에 다 들어와야 지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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