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승 오다.

객승 오다.    올해도 객승은 왔다. 그러나 양주는 풀지 않았다.  <어떻게 왔어?> <버스 타고 왔어요.>  크으. 어쭈구리 나를 무질러버린다. 그 말에 나도 더이상 물어보지 않는다.  <스님은 어떻게 살았어요?>  오히려 되묻는다.  <마음의 풀, 잡초 키우며 살았다. 연장창고에 보면 낫있다.>  객승은 낫을 들고 풀을 벤다. 헉, 그런데 거칠다. 법당 앞 화단에 풀을 베며 모란가지 모가지를 숭덩숭덩 잘라낸다. 아이고. 난 속으로만 아이고, 했지 겉으로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속으로는 애고애고, 내년에 모란곷 보려나? 했다. 이번에는 라일락 나무가 너무 무성하니 가지치기를 한다. 그냥 확 잘라버린다. 애고애고, 조금 조경적으로, 운치있게 솎아주면 좋으련만. 이번에도 난 아무 말 하지 않는다. 또 법당 앞에 매화나무와 목련가지치기를 한다. 나는 또 아무 말 하지 않는다. 키가 너무 커 법당을 가리는 거다.  첫날은 그렇게 대충대충 설렁설렁 풀베고 공양준비하고, 설거지 했다.  이튿날,  <스님.>  나를 부른다.  <왜?>  객승은 서른 두살 이란다.  <여긴 새벽안개가 너무 멋있어요.>  <지랄....애인은 만들어 놓았어?>  나는 픽 웃으며 지랄이라고 했다.  <애인요, 산하대지 두두만물이 제 애인입니다. 그나저나 스님이 너무 호강하시는 거 같아서 질투나요.>  <옘병하고 난리부르스를 쳐라. .....왜 넌 사는 게 고달파?>  <수행자가 그렇죠, 뭐.>  <......나도 니 나이때는 부처님 상머슴노릇 했다.>   밤이 이슥해지자, 산책 다녀온 객승이 안개에 젖어 스님스님 하며 내 방 앞에서 나를 부른다.  <왜?>  < 소주 한 병 하고, 과자 좀 사왔는 데요.>  <들어와.>  내가 술을 잘 먹지 않는다고 미리 못을 박아둔 터였다. 한 병 가지고 둘이 반씩 나누어 먹었다.  <스님, 제가 시봉 할 테니, 한 철만 살게 해주세요.>  <안돼. 젊었을 때 공부해야지. 늙으니까, 야 책도 못 읽겠드라. 눈이 아파서. 스님이 내 옆에 있으믄 나야 편하겠지. 그치만 스님한텐 쥐약이야. 공부할 때 공부해야지. 내년에나 와. 건너가 자. 나 원고정리해야 해.>  객승은 나의 말에 쓸쓸하게 웃는다.  어느덧 객승은 내방 아궁이로 가 장작 몇 개를 넣고 불을 지핀다. 나는 속으로 <스님이 저렇게 순해서 어찌 스님노릇을 할까?>하고 걱정한다. 여리다. 그리고 감성적이다. 마치 나의 괴로와하던 지난 시절을 떠올린다.  이게 사는 건가. 이건 아닌데, 하며 술없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나 자신과 싸움 없이는 잠들지 못하던 막막하던 젊음. 그래도 청춘 다 잘 견뎌내겠지.